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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사일 8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풍운사일 8화

청면자가 찬바람이 도는 태도로 돌아서자 운호는 천천히 눈앞에 보이는 전각으로 향했다.

눈치를 보니 앞쪽에 있는 전각이 사형제들이 머무는 곳이고, 청면자가 향한 전각이 무공을 가르치기 위해 온 장로들의 거처인 것 같았다.

별다른 말을 해주지 않았으나 들어가야 된다는 것 정도는 눈치로 알 수 있었기에 빠르지 않게 전각으로 걸어 들어갔다.

전각에는 용호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열 평 정도의 마당과 세 개의 방으로 구성된 단순한 구조였다.

마당을 가로지르자 두 명의 소년이 보였다.

체격이 자신보다 월등하고 나이도 두세 살 더 많아 보였는데 왠지 그들의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 위축감을 느낀 운호의 발걸음이 느려질 때 좌측에 있는 소년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음성이 튀어나왔다.

“거기 서라. 누가 마음대로 들어오라고 했나?”

“청면 사숙께서 여기에 머물라고 하셨어요.”

“시끄럽다!”

“…….”

아직 변성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고함을 치자 서릿발 같은 기운이 흘러나와 몸을 옭아맸다.

그는 고함을 친 후 천천히 운호를 향해 다가왔다.

“풍운대가 그리 우습게보였느냐?”

“무슨 말씀이신지…….”

“풍운대는 규율을 생명처럼 여긴다. 너는 진시까지 오라는 말을 어겨 형제들이 지금까지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도 잘했다고 고개를 쳐들고 말대꾸를 해!”

“사형, 저는 진시까지 오라는 말은 처음 들었어요.”

“누가 네 사형이란 말이냐!”

“운몽, 그만해라.”

다시 한 번 소년이 고함을 칠 때 방문이 열리며 커다란 덩치의 소년이 나타났다.

소년은 이미 어른처럼 당당한 체구를 가졌고, 머리에 두른 푸른색 두건이 그를 더욱 어른처럼 보이게 했다.

“나는 운곡이다. 풍운대를 이끌고 있다.”

“운호가 사형을 뵙습니다.”

“아침밥을 굶어서 애들 심사가 틀어진 모양이다. 네가 이해해라.”

“아닙니다. 저 때문에 식사를 못했다면 당연히 제 잘못입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다. 여기 있는 사형들과 먼저 인사를 해라. 이들은 운몽과 운천이다. 셋째와 넷째 사형이다.”

“운호가 사형들을 뵙습니다.”

“흥, 앞으로 조심하도록!”

운곡의 소개에 따라 운호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으나 운몽과 운천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돌렸다.

뒤틀린 심사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운곡이 인상을 스윽 긁은 후 운호를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

방 안에는 밖에 있는 사형들보다 어려 보이는 세 명의 소년이 편안한 자세로 쉬고 있었다. 그들은 운곡이 들어서자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운곡을 무척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인사들 해라.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할 운호다.”

“반갑다. 나는 운극이다.”

중간에 있는 소년이 먼저 인사를 하자 운상과 운여로 불리는 소년들이 따라서 인사를 해왔다.

밖에 있는 사형들보다는 훨씬 밝은 얼굴이었기에 화답을 하는 운호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곧 식사가 들어올 것이다. 식사가 끝나는 대로 연무장으로 모이도록.”

운곡은 사제들을 향해 지시를 내린 후 운호를 내버려 두고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나름대로 운호와 형제들이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해 준 것 같았다.

운곡이 나가자 운극을 비롯한 소년들이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듯 운호의 옆으로 다가왔다.

“너 도대체 몇 살이냐?”

“아홉 살인데요.”

“무슨 아홉 살이 그 모양이야. 훨씬 어려 보이잖아. 그래서 수련이나 할 수 있겠어?”

“잘할 수 있습니다.”

“청곡 사숙의 제자라고 했지?”

“맞아요.”

“장로들께서는 우리를 공동제자로 맞이하신다고 하셨어. 그랬기 때문에 입산과 관계없이 나이순으로 서열이 맺어졌지. 나는 열 살이라서 다섯 번째야. 여기 운상와 운여가 막내로 아홉 살이야. 너하고는 동갑이니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 얼굴 볼 시간은 별로 없겠지만 말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곧 식사가 들어온다니 많이 먹어둬라. 맛있을 거다. 감옥에서는 죽이기 전에 맛있는 음식을 먹인다고 하던데 여기가 꼭 그렇거든.”

 

사형제는 모두 식사를 마치고 연무장으로 나갔으나 운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선 청면자가 그를 남게 한 후 방바닥에 뉘었기 때문이다.

운호의 옷을 모두 벗긴 청면자는 아주 느린 속도로 전신을 어루만졌는데, 눈을 지그시 감고 있어 무척이나 신중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청면자의 손길이 멈춘 것은 거의 반 시진이 지난 후였다.

아득한 한숨 소리.

손길을 멈춘 청면자의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렸고, 그에 맞춰 깊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운호야, 너는 당분간 사형들과 함께 수련을 할 수 없겠구나. 그러니 나를 따라나서라.”

“예, 사숙.”

옷 입기를 기다린 청면자는 운호의 준비가 끝나자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섰다.

따뜻한 오월의 아침 햇살이 너무나 눈부셔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질 정도였다.

청면자가 운호의 허리를 낚아채서 공중으로 도약한 것은 새처럼 보이는 청의 노인이 왼쪽 절벽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였다.

그러나 청면자가 몸을 날린 곳은 청의 노인과 완전히 반대쪽인 계곡부였다.

점창을 대표하는 무인 중의 하나인 청면자.

운호를 안았음에도 신형의 흐름이 바람처럼 부드러워 달리는 것인지 날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현묘했다.

분명 같은 유운신법인데도 청면자의 것은 운학이 보여준 것과 또 다른 향기를 나타내고 있었다.

거의 일각 동안 달리던 청면자가 신형을 멈춘 곳은 깎아지른 절벽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무저갱의 입구부였다.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

“모르겠어요.”

“혈류동이라는 곳이다. 바닥까지의 거리가 삼십 장이 넘고 경사가 심해 내려가기 힘들 뿐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죽을 정도로 험한 곳이다.”

“그런데 왜 여길…….”

“너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체력이 너무 약하구나. 체력을 기르지 못하면 무공 입문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체력을 길러야만 다른 아이들처럼 무공을 익힐 수 있다.”

“저보고 저길 내려가란 말인가요?”

“아니다. 너는 여기서부터 용호각까지 뛴다.”

“매일요?”

“그렇다. 그러나 힘들면 안 해도 된다.”

“아니에요. 하겠습니다.”

“오늘은 내가 데려다 줬지만 내일부터는 스스로 하거라. 분명히 말하지만 너무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된다.”

청면자의 음성은 단호하고 냉정했다.

운호를 향해 던지는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동정심도 담겨 있지 않았다.

신법을 펼쳐 날아왔으니 용호각까지의 거리는 직선으로 따져도 오 리가 넘는다.

점창의 험한 산세에서 직선으로 오 리라면 하루 종일 뛴다 해도 용호각까지 도착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청면자는 차가운 얼굴을 풀지 않고 운호를 한동안 노려보다 온 길을 되짚어 사라져 갔다.

 

체력이 약해서 무공을 익히기 어렵다는 사숙의 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운호 역시 자신의 체격 조건이 형편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호각까지 매일 뛰라는 청면 사숙의 지시는 자신의 체력을 증진시켜 무공 입문에 도움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럼에도 혼자 남겨진 운호는 멍하니 청면자가 사라진 거대한 바위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암담한 현실.

올 때는 구름을 타고 유람하듯 건넌 길이었으나 지금 까마득한 점창산을 바라보자 기가 질릴 대로 질렸다.

한참을 제자리에서 멍하니 산을 바라보던 운호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숙은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그 말은 힘이 들어 하기 싫으면 무인이 되기를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사부님의 말씀은 멋진 무인이 되어 천하에 우뚝 서라는 것이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을 때 그리 될 수 있다며 사부님은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사부님의 말씀을 믿었다.

천애고아가 되어버린 자신에게 따뜻한 정을 주신 사부님께 기쁨이 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랬기에 그는 늘어진 소매를 걷고 바지자락을 접어 달리기 편하도록 만들며 뛰어가야 할 길을 노려봤다.

비록 육신이 부족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은 힘든 싸움을 해야 했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해낼 수 있다며 이를 악물었다.

전력으로 달릴 필요는 없다.

사숙이 원한 것 또한 시간이 아니라 완주라는 것을 잘 알기에 운호는 자신의 심장에 맞추어 느리지 않은 걸음으로 산길을 달려 나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다리가 후들거려 오고 심장은 미친 듯 폭주하며 호흡을 거칠게 만들기 시작했다.

참았다.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시험하고 싶어 통증으로 인해 가슴이 터질 때까지 달렸다.

평지도 힘든데 산길을 뛰고 있으니 오죽할까.

머릿속을 가득 채운 뜨거운 의지가 막바지에 달한 그의 육신을 지배하며 계속 뛰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인내의 한계를 건너뛰고 싶었지만 어린 육신은 고통의 한계를 이겨내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그러나 쓰러진 것이 그를 완전히 포기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쓰러지면 일어났고, 다시 쓰러지면 기력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뛰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만큼 쓰러지고 또 쓰러졌지만 그때마다 호흡을 가다듬고 팔다리에 감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눈을 감으면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천근이 되어버린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끌어당겼다.

점심을 굶어 배가 등가죽에 붙을 정도로 고팠으나 계곡물을 마시며 허기를 채웠다.

“헉헉……!”

언제부턴가 거칠어진 호흡이 진정되지 않았다.

호흡이 진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체력이 한계를 넘었다는 뜻이고,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육신에 무리가 온다는 걸 의미했다.

그럼에도 그는 뛰었다.

처음의 두려움과 외로움은 한 올도 남아 있지 않았고, 대신 가슴을 가득 채운 것은 용호각까지 가야 한다는 열망뿐이었다.

 

“사제, 정말 그랬는가?”

“그런다고 했잖습니까.”

“어허, 이 사람. 농담이라고 생각했지,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였겠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짓을 해.”

“그럼 사형은 다른 방법이 있소?”

청면자가 빤히 쳐다보며 묻자 청운자가 거품을 물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청면자의 행동을 질책하고 싶었으나 막상 그의 반박에 적당한 대꾸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풍운대를 속성으로 가르치기 위해 그들은 각각 검법과 심법, 장법 등으로 나누어 집중적인 교육을 시행하는 중이다.

기재들만 모아놓았으니 솜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뛰어난 오성에 잠시도 한눈을 팔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수시로 상륜각을 찾아 분광과 회풍의 검리를 익혀야 했기에 그들의 하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운호의 출현은 고심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풍운대와 함께 운호를 가르친다는 건 차라리 방치하는 것만 못했기에 며칠 전부터 그들은 운호의 처리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따라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섣불리 따라 하다가는 몸을 완전히 망쳐 폐인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위해 따로 시간을 할애한다는 건 점창의 꿈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근골을 확인한 청면자는 운호의 재질이 보통 이하라는 결론을 내렸고, 기본 체력이 보강되지 않는 한 무공을 익히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집중해도 모자란 힘을 헛되이 쓴다는 건 결코 옳은 일이 아니었다.

청운자가 깊은 한숨을 쉬며 찌푸려졌던 인상을 풀고 입을 연 것은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제, 그래도 그건 너무 심했네. 천천히 체력이 증진되도록 하는 방법도 있지 않겠나.”

“어떤 방법 말입니까?”

“예를 들면…….”

“사형, 잘 알면서 그러십니까. 그 아이는 피를 쏟고 뼈를 깎는 고통을 겪지 않으면 풍운대의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청곡 사형이 원하는 것처럼 풍운대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삼 년 이내에 저들을 칠 할 이상 따라잡아야 합니다. 그리 되기 위해서는 더 힘든 일도 해내야 된단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그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언제까지 시킬 생각인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네.”

“눈을 보니 하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더이다. 며칠 지켜보겠소. 어렵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중지시킬 생각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오. 도저히 안 된다고 생각되면 청곡 사형 모르게 본문으로 보낼 생각이오.”

“청곡 사형이 원망스럽군. 어찌해서 그런 아이를 보내 우리에게 이런 괴로움을 준단 말인가.”

고개를 돌리는 청면자를 따라 청운자의 고개 역시 돌아갔다.

무거운 얼굴들.

그저 운호에 국한된 일이라면 마음에 꺼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돌덩이로 눌러놓은 것처럼 무겁게 만든 것은 운호의 뒤를 지키는 청곡자의 존재였다.

얼마 남지 않은 생명.

그 생명을 걸고 운호를 걱정하는 청곡자의 간절한 바람이 그들을 억누르고 있었다.

청자배 장로치고 청곡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삼십 년 전 그의 존재는 점창의 내일을 밝혀주는 뜨거운 태양이었고 전설의 시작이었다.

모든 이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철혈의 무인.

주화입마에 걸리기 전 십여 년 동안 강호행에서 그가 보여준 협행은 점창의 명예를 한껏 드높였고, 오십여 차례에 걸친 비무를 전부 승리로 이끌면서 점창문인의 자존심을 하늘로 치솟게 만들었다.

그런 청곡자의 마지막 바람을 어찌 가벼이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원하는 대로 쉽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운호의 재질은 청곡자의 바람을 채우기에 모자라도 너무나 모자랐다.

아쉬웠다.

운호가 지금 연무장에서 유운검법의 기초를 익히고 있는 풍운대원 중 한 명이었다면 정성을 다해서 키웠을 것이다.

하지만 운호는 그런 재질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헉… 헉…….”

입술이 갈라지고 거칠어진 호흡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어졌다.

뛰는 것은 고사하고 걷지도 못했기에 운호는 멀리 보이는 불 켜진 용호각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음마다 담겨 있는 고통과 슬픔은 운호를 더욱 힘들고 괴롭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번갈아가며 팔과 무릎을 움직였다.

간다. 반드시 가고 만다.

철혈의 무인이 되기 위해, 사부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아직도 눈에 그득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져 사물을 확인하기 어려웠으나 운호는 더듬거리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어두워진 오월의 산바람이 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몸을 싸늘하게 가라앉히며 괴롭혔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며 나아갔다.

용호각의 불빛이 흔들렸고, 그에 맞추어 그의 몸도 비틀거렸다.

누에가 나비로 변신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마지막 꿈틀거림처럼 운호의 몸은 그리 움직였다.

어린 육신 어디에서 저런 힘이 나올까.

청면자의 눈이 심하게 흔들린 것은 온몸으로 표현되고 있는 운호의 간절함이 그를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불굴의 의지.

연약한 체력을 상쇄해 버리는 운호의 뜨거운 의지가, 지켜만 보겠다던 청면자의 발걸음을 옮기도록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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