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6화
무료소설 풍운사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6화
팔 일째가 되자 청곡자는 운호에게 천룡무상신공의 구결을 전해주고 모두 외울 때까지 옆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려 삼백팔십 자에 달하는 구결은 외우는 것 자체만으로도 난해했기에 운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정성을 다해야 했다.
구결을 외우는 데 성공한 것은 꼬박 하루 반나절이 지난 후였다.
그나마 그 시간에 구결을 외울 수 있었던 것은 운호의 천부적인 암기 능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청곡자는 운호가 구결을 모두 외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강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단순히 외우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는데 강론이 시작되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을 부릅뜨고 사부가 해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일 할조차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난해했다.
알아듣지 못하니 표정이 좋을 리 없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운호는 체력이 약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힘든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곡자는 심법의 문구들을 하나씩 해석해 가며 보름 동안 끝없이 운호의 귀를 자극시켰다.
아홉 살에 불과한 제자.
훌륭한 스승 밑에서 사서삼경과 대학을 수학하고 기초부터 제대로 무공을 익혔다 해도 단시간에 천룡무상신공의 구결을 받아들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운호가 알아듣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그만큼 천룡무상신공의 구결은 그 뜻이 모호하고 수많은 해석이 가능했다.
청곡자 스스로도 이론적인 정립만 해놨을 뿐 실질적인 수련은 해보지 못한 상태였다. 마지막 몇 구절에 대해서는 확실한 해석조차 해주지 못했으니 운호의 우둔함을 탓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무려 보름 동안의 강론.
알아듣지도 못하는 우주만물의 이치와 음양오행의 이론에, 운호는 사부의 입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정신줄을 반쯤 놓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수십 차례에 걸친 반복적인 강론으로 인해 정확한 의미는 알아듣지 못해도 대부분의 내용이 머릿속에 기억되었다는 것이다.
평범한 아이였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운호의 오성은 생각보다 훨씬 뛰어났다.
보름 동안 천룡무상심법을 강론하면서 청곡자는 놀라움을 숨기느라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운호의 머리가 뛰어나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만난 지 불과 하루 만이었고, 체력의 보완이 이루어진다면 타고난 무골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에 두말하지 않고 제자로 삼아 점창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운호의 오성은 자신의 판단을 뛰어넘어 두려움을 느낄 만큼 엄청났다.
중원 천하에 그 누가 있어 단 보름 만에 천룡무상심법 구결을 암기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건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안타까웠으나 며칠이 지나고부터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하는 운호를 보며 청곡자는 전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 아이가…….
의심은 들었으나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천명지에서 본 것과 너무나 흡사했기에 청곡자는 운호의 눈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다 자신의 행동에 헛웃음을 짓곤 했다.
천명지는 그저 무림에 떠도는 전설들을 집대성해 만든 것에 불과했다.
물론 신빙성이 있는 것도 있었으나 대부분 흥미를 끌기 위해 지어낸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청곡자는 머리를 흔들며 질문을 계속해 나갔다.
뜻은 알지 못했으나 운호는 자신이 설명한 내용들을 정확히 암기해서 답변하고 있었다.
욕심이 생겼다.
사부로서 제자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해 천룡무상심법의 구결을 전수했고, 그 해석을 강론했다.
운호의 운명이 천운으로 천룡무상심법의 한 자락이나마 잡을 수 있다면 자신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청문자와 약속한 기간은 단 한 달.
남은 수명으로 봤을 때 청문자와 지내야 할 시간에서 한 달을 뺀다는 것은 커다란 모험이었으나 청곡자는 주저 없이 제자와의 시간을 선택했다.
소득이 없다 해도 제자와 마지막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한 달은 천룡무상심법을 전수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으나 막상 운호가 자신의 해석 강론을 모두 암기하자 청곡자는 물끄러미 제자를 바라보다가 결심을 굳힌 후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리 된 이상 가능성을 증폭시켜 운호가 천룡무상심법에 쉽사리 접근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운호야, 이제 남은 칠 일 동안 사부가 너의 몸에 있는 혈들을 짚을 것이다.”
“혈이 뭔데요?”
“사람의 몸에는 삼백육십 개의 급소가 있단다. 맞으면 아픈 곳이고 어떤 곳은 잘못 건드리면 죽기도 하는 곳이란다.”
“그럼 저 죽어요?”
“허허, 사부가 너를 왜 죽이겠느냐. 내가 혈을 만지는 것은 네 몸에 길을 내기 위함이니 타격된 혈도의 순서를 잊지 말고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알겠느냐?”
“예, 사부님.”
“앞으로 와서 등을 대고 앉거라.”
운호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등을 대고 앉자 청곡자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 명문혈에 손을 댔다.
그는 주먹을 쥐더니 명문, 현추, 척중을 거슬러 아문과 풍부를 타격했다. 그 뒤 오른 주먹은 부분, 백호, 고황을, 왼 주먹은 독유, 간유, 격유 쪽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타격술이었으나 정확하게 일정한 흐름을 지닌 채 끊임없이 시전되었다.
청문자는 흥분되는 마음을 추스르며 상륜각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신법을 펼쳐 단숨에 날아가고 싶었으나 허둥대고 싶지 않아 천천히 걸었다.
수많은 시간을 기다려 왔다.
꿈속에서조차 이루고 싶던 사일검의 끝.
분광과 회풍을 보고 싶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눈물을 흘렸던가.
나락으로 떨어진 점창의 명예.
천왕성과의 전쟁에서 수많은 사조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고, 점창을 상징하는 만천자가 죽음으로써 분광과 회풍은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후학을 키우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 참화는 점창을 몰락의 길로 내몰았다.
더불어 칠절중수(七絶重手)와 냉염장(冷焰掌), 오귀검법(五鬼劍法) 등을 비롯해 문파의 주력 비기들이 소실되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몰락은 가속되고 말았다.
그러한 세월이 백 년.
그 백 년 동안 점창이 받아온 수모가 얼마나 한스러웠던가.
강호의 질서는 오직 무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백 년이었다.
무시당한다는 것은 무인에게 있어 죽음과 같은 것.
그랬기에 점창의 무인들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피나는 수련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그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상승 무도의 접근은 개인의 오성도 크게 작용하지만 스승의 도움이 결정적인데 점창에는 그런 무인이 존재하지 못했다.
청곡자가 주화입마에 빠진 것 또한 마지막 득검의 길을 스스로 찾다가 발생한 일이었다.
만약 만천자와 같은 스승이 옆에 있었다면 청곡자는 무림의 역사에 또 한 번 점창의 이름을 떨쳐 울리는 절대무인으로 우뚝 섰을 것이고, 자신 또한 그리 되었을지 모른다.
무인의 절망은 그 어떤 것보다 슬픈 것이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괴로웠고, 점창의 미래로 성장하는 후학들을 볼 때마다 부끄러워 산을 등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점창제일의 고수라는 청문자.
하지만 강호에 나가는 순간 그 이름은 무림백대고수의 말석에 겨우 오를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청곡자가 사라지면서 점창의 영광을 양어깨에 지고 살아야 했던 삼십 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무참한 심정과 절망 속에서 살아온 세월이다.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이 그러한 절망과 슬픔을 거두길 간절히 바라면서, 청곡자는 멀리 보이는 상륜각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분광과 회풍을 얻을 수만 있다면 점창의 영광은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발길에 힘이 실리고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상승의 검로에 들어선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마지막 길을 안내해 줄 스승만 있다면 득검을 이루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상륜각과의 거리는 이제 십여 장에 불과했다.
옛날부터 약속을 생명처럼 지키던 청곡자는 오늘 자신이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의 발걸음은 저절로 빨라졌다.
“사형, 이게 도대체……!”
상륜각에 도착해 방문을 열던 청문자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경직.
너무 황당한 일을 보게 되었을 때 사람은 일시 멈추게 되는데, 그 사실이 황당함을 넘어 충격적일 때는 지금의 청문자처럼 온몸을 경직시키게 된다.
너무나 놀라 움직이는 것조차 잊어버렸던 청문자는 이내 방문을 박차고 들어서며 거의 초죽음 상태에 빠져 있는 청곡자의 몸을 끌어안았다.
운호는 옆에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는데 그 또한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청문자에게는 오직 청곡자의 무너진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사형, 정신 차리시오!”
비명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어떻게 얻은 기횐데 이런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정신이 없음에도 급히 청곡자를 억지로 정좌시키고 명문혈을 향해 현천진기를 쏟아부었다.
현천진기가 도도한 장강의 물줄기처럼 청곡자의 전신 혈도를 어루만지며 고갈된 진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곡자의 몸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현천진기를 몸에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거의 한 시진이 걸려서야 겨우 단전에 미약한 진기를 갈무리할 수 있었다.
“음…….”
미약한 신음 소리와 함께 청곡자의 눈이 떠졌다.
그 모습에 청문자의 눈에서 번개가 쏟아져 나왔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의 얼굴은 악귀처럼 변해 있었다.
“사형, 미쳤소!”
“자네 왔구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는가.”
“이리 죽으면, 만약에 이리 죽었다면… 사형은 죽어서도 편치 않았을 것이오! 사문에 지은 죄를 어찌하려고 이런 짓을 한단 말이오!”
“죽지 않았으니 된 것 아닌가.”
“사형에게 점창의 미래가 달려 있소! 그런데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이오! 저 아이만을 위해 몸을 망치는 사형의 행동은 패륜과 다름없소!”
“점창의 미래… 맞아, 그게 있었지. 자네에게 점창의 영광을 남겨야 하는 사명이 남아 있는데 잠시 잊고 있었구먼. 원래 내가 한 가지에 몰두하면 잘 까먹는 버릇이 있긴 하지. 하지만 말일세, 사제. 이것 하나는 반드시 기억해 두시게. 자네가 떠난 점창의 미래는 저 아이로 인해 새롭게 쓰일 것이네. 그러니 저 아이를 잘 키워주게.”
사부도 지독했고 제자도 그에 못지않게 지독했다.
쉴 새 없이 제자의 몸을 타격하며 밤낮없이 오 일을 새워 버린 청곡자가 탈진으로 인해 쓰러질 동안 운호는 고통과 충격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어린아이에 불과했으나 몸도 성치 않은 사부의 몸짓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 가슴으로 느꼈던 운호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다가 결국 마지막 날 앉은 채 실신하고 말았던 것이다.
눈을 떴을 때는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와 세상의 모든 것을 화려하게 만드는 아침이었다.
일어나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몸부림을 치며 버둥거려야 했다.
결국 일어서는 것을 포기하고 고개만 돌려 방 안을 둘러보던 운호는 마주 앉은 두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걸 확인했다.
한 사람의 시선은 더없이 따뜻했고 반대로 또 한 사람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사부의 따스한 시선은 받을 때마다 나른함이 느껴질 정도로 기쁜 것이었지만 청의를 입은 노인의 차가운 시선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상청궁에서 본 청문자란 사숙이다.
그때에도 사부를 보면서 소리를 쳐댔기 때문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신을 노려보고 있자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여보게, 청문. 아이의 몸을 주물러 주게. 오랫동안 타격을 당했기 때문에 혈이 굳어 있을 걸세.”
“왜 그걸 나한테 시킵니까. 사형이 했으니 사형이 하세요.”
“허어, 그 사람. 성질머리하고는. 내가 할 수 있으면 벌써 했을 테지. 밖에서 운학이 기다리고 있지 않나. 그만 일으켜 주시게.”
“끄응!”
청곡자가 힘없는 웃음으로 재촉하자 청문자는 마땅치 않다는 기침을 토해내고는 엉덩이를 밀어 운호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이 운호의 가슴을 훑고 전신을 천천히 주물러 나갔다.
차가운 시선과는 다른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청문자의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급하고 빨라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의 손은 운호의 몸 구석구석에 가벼운 통증이 생성될 만큼 강하게 움직였는데, 어떨 때는 타격까지 이루어졌다.
신기한 것은 그 후 일각 만에 운호가 멀쩡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운호야, 몸은 괜찮으냐?”
“예, 사부님. 조금 뻐근하지만 움직이는 데 이상은 없어요.”
“힘들었을 텐데 잘 참아주었구나. 고맙다.”
“사부님이 더 힘드셨잖아요. 그에 비하면 저는 한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허허, 우리 운호가 갈수록 대견해지는구나. 운호야!”
“예, 사부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
“……잘 모르겠어요.”
청곡자의 질문에 골똘히 생각하던 운호는 결국 모르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에게 특별한 날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청곡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청곡자의 얼굴이 아련하게 변해갔다.
이전보다 훨씬 창백하게 변하고 골이 파여 반송장으로 여겨질 만큼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하루 반나절 동안 기절해 있던 제자.
겨우 눈을 뜨자마자 하고 싶지 않은 말을 꺼내야 하는 그의 목소리는 작은 진폭을 일으키며 심하게 떨렸다.
“운호야, 오늘이 사부가 너에게 약속했던 날이다. 너는 오늘부터 이곳을 떠나 공부를 하러 가야 한다.”
정신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롭게 눈을 떴고, 사랑하는 사부님의 얼굴을 보자 너무나 반가워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떠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
연이은 사부의 재촉에 정신이 돌아온 운호의 표정이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한 달 전, 사부가 말한 이별의 시간이 오늘이라는 사실에 그는 금방 눈물을 글썽이며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부님, 며칠만… 며칠만 더 있고 싶어요.”
“사내의 약속은 그 무엇보다 중한 것이다. 네가 이곳을 떠난다 해도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닐진대 왜 그런 표정을 짓느냐.”
“저는… 저는…….”
“나는 네가 점창의 별이 되기를 원한다. 사문에서 내려주는 은혜를 발판으로 무림에 우뚝 서는 무인이 되기를 바란단 말이다. 너는 내 뜻을 거역할 생각이냐?”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만 일어나라. 밖에 운학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를 따라가거라.”
“……사부님.”
운학의 눈에서 글썽이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방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청곡자의 질책을 받으며 눈물은 더욱 많아졌고, 꿇려 있던 무릎이 어쩔 수 없이 천천히 세워졌다.
아직 마음이 여린 아이 운호.
가슴 아픈 이별이 서러워 운호는 떨어지는 눈물을 소매로 막고 억눌린 울음을 터뜨렸다.
가고 싶지 않은 길.
어떻게 만난 사부님인데, 얼마나 사랑하는 사부님인데 만날 기약조차 하지 못하고 떠난단 말인가.
너무나 야속하고 가슴이 아파 운호는 사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일어선 운호가 한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울다가 천천히 절을 하기 시작한 건 청곡자가 자신을 외면한 채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걸 확인한 후였다.
그 모습에는 반드시 떠나보내고야 말겠다는 청곡자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사부의 냉정한 모습에 더욱 많은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사부님,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멋진 무인이 될게요. 그때까지…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만날 기약은 하지 못하나 사부님이 여기 계신 한 반드시 돌아온다.
사부님이 원하신 대로 사문의 동량이 되어 다시 돌아와 사부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기에 운호는 떨리는 음성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