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사일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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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풍운사일 5화
사제라고는 하나 제자뻘도 되지 않을 만큼 어리다. 더군다나 육신마저 온전하지 못하니 더더욱 불쌍하게 여겨졌다.
한번 스승이 결정되면 누구도 그 결과를 바꿀 수 없는 것이 무림의 법칙.
그 이야기는 사문의 어떤 사람도 운호의 장래를 위해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운호.
불과 육 개월의 생명을 지닌 사부를 믿으며 점창으로 들어온 아이.
무공을 익히기 위해 기본 체력을 연마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따져도 최소 삼 년이다.
사부의 존재는 입문 후부터 십 년이 가장 중요하다.
기초 골격을 만드는 삼 년과 기초 무공을 익히며 무리를 터득하는 삼 년, 점창의 비기 입문 과정을 익히는 데 필요한 사 년.
그러나 그것조차 기재 중의 기재나 되어야 주파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 운호를 두고 계산한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청곡 사백이 점창의 역사 속에서 몇 안 되는 기재로 추앙받고 있으나 주화입마로 인해 반신불수가 된 이상 운호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용히 점창의 그늘에서 기본 무공만 익히다가 죽어야 하는 운명이 그것이다.
이것이 가혹하지 않다면 어떤 것이 가혹한 것일까.
그나마 그것도 점창이 청곡 사백을 받아들였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만약 장로회의에서 무단으로 산을 이탈한 청곡 사백의 파문이 결정되기라도 한다면 운호는 강호의 한 귀퉁이에서 굶어 죽게 될지도 몰랐다.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던 운학의 시선에서 이채가 생겨난 것은 운호의 눈이 자신과 부딪쳤을 때다.
처음에는 불안함으로 인해 안정되지 못하던 운호의 눈이 어느 샌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초롱초롱 반짝였고, 그와 더불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할 만큼 깊어졌다.
그만한 나이에서는 볼 수 없는 눈빛이었다.
운호의 입이 열린 것은, 운학이 이상 징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두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사형, 사부님께서는 언제 오실까요?”
“조금 기다려야 할 게다. 장로회의는 보통 세 시진씩 하니 너는 여기서 몸을 씻고 쉬고 있거라.”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요?”
“그래라.”
“사형은 왜 저를 불쌍하게 보시죠?”
“응?”
“사형의 눈이 저를 불쌍하게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물어본 거예요.”
“음…….”
운호의 질문에 운학이 목구멍 속에서 나오는 신음을 흘렸다.
이런 질문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문이 막혔다.
운학이 그저 당황한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하자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운호였다.
“사부님 때문인가요? 사부님이 오래 사시지 못한다는 사실을 사형도 알고 계신 거죠? 그래서 제가 걱정된 거죠?”
“……그렇다.”
“그런 거라면 사형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사내대장부는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사부님의 말씀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으니까 그 말도 맞는 걸 거예요. 그리고 사부님은 운호가 그리 될 수 있을 정도의 심성과 자격이 있다고 하셨어요. 저는 믿어요. 사부님의 말씀이 옳고 운호가 반드시 그리해야 된다는 걸.”
운호의 눈은 말을 하면서 더욱 빛나고 깊어졌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모든 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청곡 사백의 죽음마저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허허, 아직 털도 벗겨지지 않은 누에고치인 줄 알았더니 벌써 날기 위한 날개가 준비되었구나. 그래, 그런 마음이 있다면 무엇이 부족하겠느냐. 내가 옆에서 너의 비상을 지켜보마. 나를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거라.”
상청궁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로회의는 운학의 말처럼 벌써 두 시진이 훌쩍 넘어 세 시진에 가깝게 진행되고 있었다.
사일검법의 끝을 보겠다는 청문의 요청에 의해 장문인직이 청현자에게 넘어감으로써 가장 중요한 사안은 결정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속가에서 발생되었던 몇 개의 사건이 처리되었다. 또한 점창과 직접적인 연계는 되지 않았으나 사천에서 일어난 호원검파와 파령문의 충돌이 거론되며 시간을 끌었다.
비록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하지만 근래에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파 간의 분쟁은 그 빈도가 점점 많아졌고, 점창이 영향력을 두고 있는 운남의 일각까지 확대되고 있는 중이었다.
가볍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기에 그에 관한 토론으로 또다시 반 시진이 할애되었다.
그러나 장로들은 회의가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청허자와 이제 장문인으로 자리 잡은 청현자의 눈치를 보며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반가움마저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듯 회의를 지속해 온 이유도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가장 민감하고도 반드시 시행해야 되는 문호의 정리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문인에 추대되어 회의를 주재하던 청현자가 입을 닫은 후 꼼짝하지 않았다.
그 또한 사형들의 눈짓이 무얼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나 입을 굳게 닫은 채 언급을 피하고 있었다.
그는 청허자의 잔뜩 굳은 시선을 슬쩍 본 후 입술 끝을 지그시 내밀었다가 결국 청곡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현자가 입을 열지 않는 이유가 너무나 뻔했기에 장로들의 입에서 킁킁거리는 기침 소리가 연속으로 울려 나왔다.
청허자.
사형제 중 대제자임과 동시에 가장 연장자였고 현 점창파의 무인 중 가장 어른이었다.
전대의 현자배 사숙들이 산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살고 있을 터이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 연락조차 되지 않으니 현재로써는 청허자가 점창의 산증인이라 봐야 했다.
현재 장문인직을 물려받은 청현자와 비교한다면 무려 서른 살의 나이 차가 있고, 점창에 몸담은 세월 또한 그 정도 차이가 난다.
그랬기에 청현자를 비롯한 장로들은 청허자의 표정을 살피며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다른 사안은 몰라도 청곡자에 관한 것이라면 청허자의 뜻에 따라야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굴곡된 애증.
청곡자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누구보다 미워한 것은 다름 아닌 청허자였다.
방에 들였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청허자의 오랜 미움이 모두 걷혔다고 판단하기에는 그의 언행에 너무 날이 서 있었다. 장로들은 눈치를 살피며 방바닥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오랜 침묵.
장로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잃었고, 청곡자 또한 지금의 침묵이 자신으로 인해 생겨난 것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고개를 수그린 채 얼굴을 들지 못했다.
결국 입을 연 것은 청허자였다.
일곱에 달하는 인간이 모두 자신의 눈치만 살피니 나서지 않으면 침묵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었다.
말을 꺼내면서 신경질적인 기침 소리를 낸 것은 장문인인 청현자가 아주 잠이라도 자겠다는 자세로 눈을 꼭 감고 있기 때문이었다.
“험험, 장문인께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니 늙은 내가 나설 수밖에 없구먼. 지금부터 문호를 정리하기로 하겠네. 장로들은 청곡자의 처리에 대해서 의견을 말씀해 보시게.”
청허자가 먼저 돗자리를 펼쳤으나 장로 중에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부터 그들은 의견을 내놓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따라서 청허자가 눈을 부릅뜬 채 한 명씩 노려봐도 시선을 피하며 딴청만 해댔다.
그런 태도가 청허자의 입에서 또다시 신경질적인 기침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청곡자에 대한 징계?
어찌 보면 징계라는 표현 자체가 이상하기도 했다.
전전대의 장문인이던 현궁자는 청곡이 무단으로 산을 나서서 행방불명이 되었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것은 전대장문인이던 청학자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청곡자에 대한 징계는 현재까지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었다.
그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면 청곡자는 점창의 일원인 채 남은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다시 돌아왔다는 점이었다.
문규상 무단으로 산을 등진 것은 파문에 해당될 만큼 중대한 잘못이었다.
만약 전전대 장문인이나 전대 장문인이 결정을 내렸다면 장로들이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곡자가 비록 사형제 간이고 점창이 낳은 불세출의 기재임은 사실이지만, 칠백 년 역사의 점창은 내려진 결정을 번복하지 못할 만큼 엄한 문규를 가지고 있었기에 장로들의 입은 굳은 조개처럼 다물어진 채 벌어지지 않았다.
대쪽 같은 성격의 장로들.
문호의 정리를 논하기 시작한다면 그들은 문규에 얽매어 자칫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될지도 몰랐다.
입을 닫은 채 아예 꼼짝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조차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장로들이 묵비권을 행사하자 시선을 돌린 청허자가 장문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청현자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는 중이다.
“모두 아무런 말씀이 없으니 내가 의견을 내겠네. 어떤 결론을 내리든 이의가 없었으면 좋겠군. 장문인께서도 동의하시지요?”
“…사형, 그것은…….”
여전히 눈을 감고 꼼짝 안 하는 청현자 대신 칼같이 끊어버리는 청허자의 말에 청면자가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또다시 뒤로 물러났다.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다는 태도로 입술을 굳게 닫은 것이다.
“청곡은 문규상 당연히 파문해야 되는 잘못을 저질렀다. 선대의 어른들이나 전대 장문인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은 그의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님을, 장로들도 잘 알 것이야.”
“……청허 사형!”
“하나 청곡이 산을 나선 이유가 사일검을 얻기 위함이었음이 밝혀졌으니 그 죄가 상당 부분 희석되었음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청곡의 문호를 거두는 대신 장로직을 박탈하는 것으로 이 일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이고!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한숨을 내쉬며 청허자가 말을 마치자 듣고 있던 장로들이 죽었다 살아난 사람처럼 이구동성으로 반색했다. 눈을 감은 채 꼼짝하지 않던 청현자는 슬그머니 눈을 뜨면서 작은 목소리로 도호를 외웠다.
오랜 회의 끝에 신분이 결정된 청곡은 사형제들의 끈끈한 정을 느끼며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야 천선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유등이 매달린 천선각의 한쪽 귀퉁이에서 기다리고 있던 운호는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는 청곡자를 확인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 나와 품에 안겼다.
사부를 맞아들이는 그의 모습은 맛있는 걸 사 들고 돌아오는 할아버지를 반기는 막냇손자와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이 녀석, 들어가서 편히 쉬지 않고?”
“사부님이 돌아오지 않으셨는데 어찌 제자가 편히 쉴 수 있겠어요. 당연히 기다려야죠. 그런데 저녁은 드셨어요?”
“그래, 나는 먹었단다. 너는 어찌했느냐?”
“저도 운학 사형을 따라서 먹었어요.”
“허허, 잘했구나. 나는 네가 혹시 밥이라도 굶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청곡자가 너털웃음을 흘리며 운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혼자 떨어뜨려 놓고 마음이 불편했는데 운호는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으니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고사리만 한 손은 잡을 때마다 조심스럽다.
자신의 손 역시 늙고 야위어 그리 보기 좋은 건 아니었으나 운호의 손은 조금이라도 굳게 잡으면 부서질 것 같아 항상 조심스런 마음이 들었다.
청곡은 운호의 손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섰다.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운호를 정면에 앉힌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운호야, 지금부터 내 말 잘 듣거라.”
“예, 사부님.”
“너는 한 달 후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단다. 그러니 너와 내가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밖에 없구나.”
“왜죠?”
“사문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데 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사문의 명예를 위해 거기에 가서 최선을 다해야 하느니라.”
“안 가면 안 되나요. 저는 사부님 곁에 있고 싶어요.”
“운호야, 사나이는 어떻게 행동해야 된다고 했지?”
“뜨거운 심장과 냉철한 이성으로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
“잘 기억하는구나. 그렇다. 그것이 사나이가 지향해야 할 기준이란다. 그 말은 절대 치졸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비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데 너는 왜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려 하느냐.”
“……사부님.”
“결정된 일에 대해서는 망설이는 것이 아니다. 너는 어떤 상황이 와도 당황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현실과 싸워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너와 같이할 시간이 얼마 없으니 내일부터 자리를 옮겨 공부를 가르칠 생각이다.”
“공부요?”
“그렇다. 사부가 몸이 안 좋구나. 그래서 너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효율적인 공부가 될 수 있도록 할 테니 절대 한눈팔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실망하지 않으시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청곡자는 날이 밝자마자 운호를 이끌고 사문이 자신에게 배려한 거처를 향해 움직였다.
청현은 그의 몸이 편치 않다는 걸 감안해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서 벗어난 장소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상청궁에서 오백 장 정도 떨어진 외딴 전각이었다.
상륜각이란 글씨가 작은 현판에 새겨져 있었으나 말이 전각이지, 오래 방치되어 집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험한 곳이었다.
장문인의 명으로 문도들에 의해 깨끗이 치워졌음에도 군데군데 거미줄이 보였고 창문을 가로막은 창호지는 찢겨 너덜거렸다.
그럼에도 운호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든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주변의 경치였다.
마당 너머에서 흐르는 계곡물 소리는 천상에 사는 새의 지저귐처럼 청아했고, 전각 뒤쪽으로는 아름다운 꽃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쪽문을 열면 선계에 온 것처럼 황홀한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공부를 가르치겠다는 말에 잔뜩 긴장했던 운호는 책상을 마주하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부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해 어느새 눈을 반짝거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사부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학문에 관한 것도, 무공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점창의 기원과 역사, 무림을 좌지우지했던 영웅들의 일대기, 옛 선현들의 주옥같은 가르침과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점창을 이끌던 선조들의 족적과 무림의 한 획을 그었던 천왕성과의 일전을 들었을 때 운호의 주먹은 땀으로 가득 찼다. 선현들의 가르침을 들었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뜻을 되새겼다.
믿을 수조차 없을 만큼 신기로운 전설은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줬고, 소림을 창시했다는 달마조사의 유훈과 점창을 무림의 태두로 이끌었다는 만천자의 일대기는 원대한 꿈을 꾸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청곡자는 칠 주야에 걸쳐 운호를 앞에 앉혀놓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운호야, 사부의 이야기가 재미있느냐?”
“예, 너무나 재밌어요.”
“허허, 지루하지 않다니 다행이구나.”
“이렇게 사부님과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계속 이렇게 있고 싶어요.”
“이런, 쯧쯧……. 우리 운호가 계속 놀고 싶은 모양이구나.”
“헤헤.”
운호의 입에서 함박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느 날부터 조금씩 보이던 미소가 함박웃음이 될 만큼 운호의 가슴이 열린 것은, 청곡자가 보여준 끊임없는 사랑 때문이리라.
운호의 웃음을 받으며 청곡자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 나온 것은 청곡자 자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제의 연을 맺은 이후 이렇듯 오랜 시간 동안 마주한 적이 없기에, 운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사부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재미도 있었지만 사부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더없이 즐거웠다.
그것은 청곡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청곡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후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제자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부의 인생은 너에게 말한 것처럼 참으로 박복하고 기구했다. 오랜 시간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고, 천형에 처한 내 신세를 면해보고자 발버둥 쳤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은 지금에서야 나는 깨달았구나. 내 인생이 다른 사람에 비해 그리 불행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왜 그런가요?”
“버리면 얻는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기적처럼 그런 일들이 일어났지. 그러니 어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겠느냐.”
“그게 뭔데요?”
“하나는 사일을 얻은 것이고, 또 하나는 너를 얻은 것이다. 그 두 가지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으니 일생 동안 겪은 모든 불행이 한순간 꿈처럼 여겨지는구나.”
“사일은 사부님의 염원이었으니 당연한 거지만 저는 왜……?”
“내 꿈은 천하제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평생의 족쇄가 되어 나를 괴롭혔지만 너를 만나는 순간 그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되었다. 네가 나의 꿈을 이뤄줄 텐데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정말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너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오성을 가졌다. 사부를 믿고 지금부터 가르쳐 주는 심법을 밤낮없이 익히게 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너의 모든 것이 이 심법에서부터 발현될 터이니 한 치의 의심도 가지면 안 되느니라.”
“알겠습니다.”
“내가 가르쳐 주는 심법은 점창이 백 년 동안 잃어버린 천룡무상신공(天龍無上神功)이다. 너에게 지금까지 어떠한 심법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은 천룡무상신공을 익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천룡무상신공이 뒷받침된 사일검법은 천하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