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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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44화
243화. 무황의 죽음
무황의 얼굴에 놀람이 일었다.
온 힘을 다해 찍어 누른 힘에 생겨나기 시작한 균열.
짓눌리고 있던 종리세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 그는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고개를 들었다.
팽팽하던 긴장이 깨어지고 무황의 힘이 밀리기 시작했다.
드드드…….
대기가 괴성을 질러대며 뒤흔들렸다.
‘대단…….’
무황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적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경계를 넘어 버린 종리세의 힘 앞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는 이미 자신보다 강해졌다.
마지막까지 짜낸 힘은 더 이상 종리세를 속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찢어진 상처에서 흐른 피가 종리세의 몸을 적시고 있었지만, 치명상은 하나도 없었다.
분명 다음의 싸움은 자신의 제자인 혁련휘나 진소청이 이어가야 한다.
그들이 좀 더 수월하게…….
푸학!
악착같이 힘을 더해가던 무황의 입에서 피가 토해졌다.
‘아…….’
야속하게도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시간이 끝난 것이다.
내력이 산산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공을 받침 삼아 서 있던 그의 몸이 바람을 타지 못한 연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타깝구나…… 조금만 더 시간이 남았다면 좋았을 터인데…….’
마종을 상대함에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무황의 힘을 넘어 버린 종리세는 마지막 공격을 위해 손에 응축시켰던 마기를 흩어버렸다.
무황의 힘이 사라졌다.
아니, 피가 토해지는 시점에서 안개처럼 흩어진 것 같았다.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무황은 힘을 잃은 노인일 뿐,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싸움은 끝났다.
투우웅.
추락한 무황의 몸이 바닥에 거칠게 부딪혔다가 튕겨졌다.
투둑.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 뒹군 무황은 움직이지 않았다.
“…….”
종리세는 무표정하게 무황을 바라보았다.
힘을 잃었으니 몸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뼈가 부서지고 몸 안의 장기가 터져 버렸을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종리세는 천천히 무황을 향해 다가갔다.
예의 그 평범함으로 돌아와 무황의 앞에 섰다.
그리고 힘없이 쓰러져 있는 무황의 얼굴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무황의 얼굴에는 토해낸 선혈이 낭자되어 있었다.
떨어진 충격에 고통스러워할 만도 한데 너무도 편안한 표정을 하고 종리세와 눈을 마주쳤다.
“정말 대단하군.”
“…….”
무황은 웃고 있었지만 종리세는 그러지 못했다.
“그게 자네가 얻은 힘인가?”
“…….”
“놀랍군. 과연 중원을 손에 넣겠다 자신할 만해.”
무황의 목소리는 죽어 가는 사람치고는 무척이나 깨끗했다.
회광반조(回光返照).
밝음이 찾아오기 전이 가장 어둡고, 꺼지기 전에 가장 환하게 불타는 법이었다.
하지만 이미 무황의 몸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억누른 산공이 그의 죽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었다.
“무황,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말해 보게.”
“어째서 중원을 손에 넣지 않았소?”
궁금했다.
무황도 그러했고, 그의 후계인 전신 혁련휘도 전생에 그러했다.
최강이라는 칭호가 가장 어울렸던 두 사람은 사도련을 손에 넣었을 뿐 중원에 군림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중요한가?”
“…….”
“하려 했다면 할 수 있었겠지.”
“…….”
“하지만 그 다음은 무얼 할 것인가? 나라를 엎어보려는가?”
“…….”
“나라를 엎고 나면 또 무엇을 하지?”
“…….”
“그저 반복될 뿐이네.”
“…….”
“탐(貪)이라는 동물의 전설을 아는가?”
탐(貪).
전설 속에서 전해지는 신수.
용의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되 용의 머리, 개의 몸, 소의 발굽과 원숭이의 꼬리, 뱀의 비늘을 가지고 있다는 기괴한 짐승이었다.
타고난 욕심으로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종래에는 자신의 몸마저 먹어 치워 ‘무(無)’로 돌아갔다고 한다.
“나를 탐에 비유하는 것이오?”
“그럴 리가…… 단지 내가 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말하는 게지. 세상엔 그런 것 말고도 재미있는 게 많거든.”
“…….”
“그렇기에 그저 그대로 두었네. 모든 것을 죽이고 부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무황은 미소를 지었고, 종리세는 그의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다 되었군. 하지만 끝난 게 아닐 것이네. 소청, 그 아이가 자네를 찾아갈 테니…….”
“찾아온다고?”
“그래.”
“찾아온다고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는 거요?”
“곧 알게 될 것이네.”
“…….”
종리세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진소청은 자신의 힘 앞에 굴복해 도망이나 치던 겁쟁이 좀도둑일 뿐이다.
어째서 그를 믿고 있는 것인가?
오히려 전생에 전신으로 중원에 군림했던 혁련휘를 믿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무황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내공이 완전히 흩어져 버린 그의 피부는 가뭄에 말라 버린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몸은 목내이(木乃伊 : 미라)처럼 변해 버렸으나 미소만큼은 여전한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
“제길…….”
무황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본 종리세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삼궁의 정수.
그 모든 것을 얻었음에도 압도적으로 승리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산공의 때를 맞이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찝찝한 승리로군.’
종리세가 무황의 시신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종!”
전투가 끝나자 흑묘를 포함한 십이마령과 살아남은 세주들이 다가왔다.
그 뒤로 마천의 무인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황 위도혁의 시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에 희열이 가득했다.
“경하드립니다.”
파군 용유명이 마치 이미 중원 정벌을 이루고 세상을 평정한 것처럼 무릎을 꿇었다.
“마천혈세! 마종천하!”
그 뒤로 수만에 달하는 마천의 무인들이 무릎을 꿇으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무황 위도혁의 죽음.
가장 거대했던 벽이 사라졌다.
오랫동안 고대했던 중원 정벌의 꿈이 눈앞에 있었다.
“무황의 시신을 수습해라.”
“예!”
종리세의 명령에 십이마령들이 직접 무황의 시신을 공손하게 갈무리했다.
비록 적이었으나 한 시대를 풍미해온 강자에 대한 예우였다.
“서천맹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종리세가 자신을 기다리던 사두마차에 오르자 십이마령들이 무황의 시신을 전리품처럼 앞세우고 뒤따랐다.
마차의 창에 턱을 괸 종리세는 무황이 남기고 간 마지막 말을 곱씹으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진소청이라…….”
* * *
중원의 무인들이 떠나 버린 서천맹은 마천에 의해 점거되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남지 않았으니 무혈입성(無血入城)이나 다름없었다.
의기천추(義氣千秋)의 깃발이 불태워졌고, 마천의 수뇌들에 의해 천추관이 채워졌다.
첫 번째이자 마지막 같았던 전투의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가 술에 취한 밤.
서천맹의 성벽 한곳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소란스러움을 지켜보는 인물이 있었다.
검은 야행복을 입고 선 사내.
진가에서 혁련휘 등과 헤어져 홀로 명사평을 찾아갔던 소청이었다.
‘종리세…….’
무황과 마종의 싸움은 명사평의 풍경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그들이 만들어 낸 흔적만으로도 전율이 일어날 정도였다.
공전절후의 싸움 결과는 무황의 죽음이었다.
소청이 바라보는 곳.
서천맹의 중심에 높다랗게 쌓은 장작더미 위에 흰 천으로 감아 올려둔 시신 한 구.
어둠이 내려앉은 밤임에도,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의 시신이 선명하게 보였다.
흰 천에 감겨 있었지만,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무황.’
소청은 잠시 고민했다.
마천에 대한 정보를 운운했으나 소청의 목적은 종리세를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를 빼내 시간을 끌어준다면 능히 중원의 힘으로 마천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더 생겼다.
이제 곧 불이 오를 것이다.
무황의 시신을 그들의 손에 맡겨두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돌려주어야 한다.
그들은 시대를 풍미한 최강의 무인의 죽음에 예우를 다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그들에게 시신을 불태우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의 죽음을 지키지는 못했으나 시신만큼은 혁련휘의 품으로 돌려주어야 했다.
“은수.”
소청의 부름에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비마대의 은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시선을 끌겠다.”
“예?”
“무황 어른의 시신을 무한으로 모셔라.”
“…….”
은수는 당황했다.
소청이 만리향으로 자신들을 진가로 불렀을 때, 마천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말했다.
혁련휘도 들었고 진소강도 들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시선을 끌어주겠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소청은 지금 무황이 그러했던 것처럼 홀로 마천의 중심부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막아야 한다.
무황의 나섰던 것은 모두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은수.”
“…….”
소청이 불렀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무엇으로 설득해야 하는가?
“무황의 시신을 수습하고 나면 나는 종리세를 불러낼 생각이다.”
“패월!”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 순간 은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종리세…… 그만 없다면 중원은 충분히 마천을 상대할 수 있다.”
“패, 패월…….”
미친 짓이다.
마종 종리세와 싸울 생각이라니.
아무리 진소청이라고는 하지만 그 대단한 무황조차 막지 못한 자를 어찌 막는단 말인가?
더욱이 수만의 무인.
그런 마천을, 그들의 주인을 어찌 홀로 상대하겠단 말인가?
“패월! 놈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더욱이 마종뿐만 아니라 세주들도 있습니다.”
“아니, 틀렸다. 저들은 종리세의 명령이 없으면 절대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종리세만 상대할 것이다.”
음양합일을 이루었으나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를 다른 곳으로 유인한 사이에 혁련휘가 무인들을 이끌고 마천이 주둔하는 서천맹을 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종리세가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세력을 잃고 나면 종리세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중원 전체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와 일전을 겨룰 장소도 생각해 두었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인 곳.
“패월,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은수가 소매를 잡고 간곡하게 청했지만, 소청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어쩌면 그 때문에 내가 이곳에, 이 시간에 존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은수는 소청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은수.”
소청이 웃으며 다가와 은수의 어깨를 잡았다.
“묵영단의 단주로서 마지막 명령이다. 종리세가 나를 따라 서천맹을 떠나면 곧장 제갈휘문에게 연락을 보내라. 서천맹을 공격하라고.”
마지막 명령이라니…….
어째서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말하는 것인가?
어째서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가?
“패월…….”
“절대 시기를 놓치지 말아라. 내가 저들의 시선을 끌고 종리세를 유인함과 동시에 움직여라.”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은수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나를 따르느라 고생 많았다.”
“패월!”
은수의 외침이 있었지만, 소청의 신형은 서천맹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