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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32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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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232화

231화.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데……

 

 

 

종리세는 담담한 표정으로 소청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열흘 후.”

“…….”

“마천이 서천맹을 시작으로 중원을 공격할 것이네. 그때 자네가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네. 서천맹에 결집된 중원의 병력도, 전신과 신산도…… 그리고 무황도…….”

종리세는 대화를 끝내고 떠날 것처럼 걸음을 내디뎠다.

차자자작!

그를 그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소청은 벌떡 일어나 거리를 벌리며 창을 길게 만들었다.

“누가 그냥 보내 준대?”

“…….”

“이 자리에서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만은 죽일 거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보군.”

“의미 있는 죽음인데 두려울 게 뭐 있겠어. 그리고 어차피 두 번 산 인생이야. 전생의 시간과 합하면 이미 천수를 누렸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

그래 봐야 고작 환갑이 조금 넘은 나이에 불과했다.

“그런가?”

종리세는 여전히 뒷짐을 풀지 않은 채로 웃었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보게. 나도 궁금했으니까. 자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종리세가 소청 쪽으로 가볍게 발을 내디뎠다.

일보.

한 자 반의 거리, 무척이나 짧다.

팔 길이에도 못 미치는 그 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소청은 순간적으로 일 장을 물러났다.

“……!”

기세를 품은 것이 아니었다.

작은 바람조차 일지 않았다.

그런데 살기를 가득히 머금은 거대한 범의 아가리가 입을 쩍 벌리고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왜 그러지? 나를 죽인다고 하지 않았나?”

“…….”

담담하고 조용한 목소리에 숨어 있는 것은 빈정거림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강하다.

아니 그것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저 강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지독한 긴장감에 심장이 터져 버릴 것처럼 뛰고 있었다.

스윽.

그저 몸을 비트는 것인데 미끄러지듯 내밀어지는 그의 발이 움직일 때마다 조용한 살기가 바늘이 되어 피부를 찔러 왔다.

‘씨발…….’

소청은 속으로 욕설을 집어삼켰다.

그가 수준 이상의 상대를 처음 만났던 것은 구자겸이었다.

당시의 자신보다 배는 강했던 그였지만 어쩌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라강기라는 최강의 방패를 가지고 있었지만 두들기다 보면 찢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고, 지긴 했어도 결국 찢어 낼 수는 있었다.

무황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싸울 대상이 아니었고 자신을 상대해 준 무황은 자신만큼의 힘만 보여 주었다.

그런데 종리세는 다르다.

소청은 처음으로 다가서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어디서부터 공격을 시작해야 할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종리세와 수십 수백 번을 싸우고 있었다.

패배, 패배, 패배…….

자신의 머릿속에서 상대를 가늠해서 만들어 낸 전투는 계속해서 패배하고 있다.

어떤 방향에서 어떤 공격을 해도 통하지 않았다.

종리세는 미소를 잃지 않고 소청을 향해 다가왔고, 소청은 그가 다가오는 거리 이상을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삼궁의 정수.’

필시 그가 오랫동안 준비하며 얻어 내었다는 그것으로 인한 것이리라.

정말 거지 같은 하늘이었다.

어째서 이런 마귀 같은 놈에게 이런 힘을 주었단 말인가?

그렇다고 칼을 빼 들었으니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놈이 마지막이다.

놈을 잡으면 전쟁은 끝난다.

물러나던 걸음을 멈추고 소청이 창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 방법밖엔 없어!’

우우웅!

거친 공명음과 함께 창대가 잘게 떨려 왔다.

단전의 기운이 일어나자 그의 몸이 서서히 푸른 불꽃을 피워 내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가라앉고 종리세가 뿌려 놓은 압박감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

머리카락마저 푸르게 변해 흩날리자 종리세가 다가섬을 멈추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청염이라…….”

종리세는 소청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힘이로군. 좋아, 어디 한번 해보게.”

종리세가 팔을 활짝 펴며 자신이 가진 힘을 끄집어내었다.

쿠우우…….

그 순간 하늘이 짓눌러 왔다.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주변의 공기가 소청을 짓눌렀다.

으적, 으저적.

주변의 나무들이 종리세가 뿜어낸 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짓눌리며 터져 나가고 바닥의 돌들이 푸석거리며 부서졌다.

‘크으…….’

엄청난 힘이었다.

마치 중력이 수십 배는 늘어나 버린 것처럼 발이 땅바닥 속으로 푹푹 박혔다.

굽히지 않고 버티는 무릎뼈가 아스러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만 했다.

축의 묘리? 신의 묘리?

소용없다.

그건 결국 하나의 힘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만든 편법에 불과할 뿐이었다.

자신이 가진 가장 강한 위력의 공격, 천뢰충파.

어울림의 태극에 또 하나의 힘을 얹는다. 하지만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단전이 버텨 줄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후우…….”

소청은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일보를 내디뎠다.

내디딘 것은 한 발이지만 담긴 것은 일보월하였다.

콰드드득!

공간을 접어 버린 일보와 함께 곧게 뻗은 창대가 대기를 꿰뚫으며 쏘아져 나갔다.

다가오는 창극을 향해 종리세가 가볍게 풀어낸 손을 뻗었다.

쩌어어엉!

청염의 기운과 종리세의 손바닥이 부딪히며 만들어 낸 충돌음이 아미산을 뒤흔들었다.

한 치.

소청의 창극은 종리세의 손바닥에 닿지도 못하고 한 치 앞에서 멈춰 버렸다.

무언가 튼튼한 막을 찢지 못하고 막힌 것처럼…….

그리고 반 보.

종리세는 서 있던 자리에서 조금 밀려났을 뿐이다.

무려 두 개 혈의 내공이 담긴 힘을 반 보의 물러남으로 틀어막은 것이다.

“예상보단 강하군. 무황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다. 나에게 이 정도로 가깝게 다가선 자는…….”

나지막한 감탄사였지만 소청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빠지직!

“……!”

청염의 불꽃을 대신해 소청의 몸에서 새하얀 뇌전(雷電)이 일어났다.

백색으로 변한 소청의 눈동자가 종리세를 향했다.

휘휘휘…….

기파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청염의 기운에 백회에 잠든 뇌기가 더해져 창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크윽…….’

소청의 얼굴이 더 이상 찡그려지기 힘들 정도로 구겨지기 시작했다.

어우러진 태극에 충돌시킨 백회의 내공이 소청의 단전을 거칠게 긁어 놓으며 창대로 뻗어 나갔다.

찌직, 찌지직!

다시 반 보가 더해져 한 보가 되었을 때, 창극이 종리세가 만들어 놓은 막을 찢어 내기 시작했다.

종리세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생겼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제법…….”

어우러진 태극에 백회의 뇌기가 담겨 폭발하려는 순간 종리세가 거칠게 손을 움켜쥐었다.

꾸우우우…….

폭발했어야 할 천뢰충파가 압살당하듯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시도는 좋았다.”

종리세가 진심 어린 감탄사를 내뱉는 순간 소청의 어금니가 강하게 다물어졌다.

“아직 안 끝났다!”

“……!”

비틀림.

‘이건? 우도의 와류?’

곧게 찔러 오던 창극에 한 방향으로 비튼 손의 회전력이 더해졌다.

쿠류류류…….

콰드득! 콰아앙!

압살당해 소멸되어 가던 천뢰충파가 거대한 회전력을 머금고 종리세의 힘을 찢어 놓았다.

뒤이어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고 금정봉 자체가 날아가 버렸다. 폭발 속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복호사가 있었다는 흔적조차 사라져 버린 그곳.

마종 종리세는 원래의 자리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뚝, 뚝…….

흉물스럽게 찢어진 손바닥에서 흐른 피가 지면을 붉게 물들였다.

“죽더라도 나를 죽이겠다 하더니…… 도망친 것이냐? 결국은 삼류 도적에서 벗어나지 못한 놈.”

종리세가 자신의 손을 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곳에 소청은 보이지 않았다.

“마종!”

폭발이 일어남과 동시에 산 정상을 향해 달려온 십이마령들이 일제히 종리세의 주위를 둘러쌌다.

그들은 종리세의 손에서 흐르는 피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소청이 그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호들갑 떨 것 없다. 겨우 생채기 하나 난 것뿐이야.”

종리세의 시선이 멀리 산 아래를 향했다. 그곳에 작은 점 하나가 달리고 있었다.

“쫓을까요?”

“아니다. 중원이 구원자라 믿고 있는 사내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허무하게 죽일 순 없지.”

종리세가 입가에 비웃음이 지어졌다.

“적어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어야겠지. 희망이라 믿었던 것이 짓밟힐 때 지어지는 절망의 표정…… 나는 그것을 보고 싶거든.”

“…….”

종리세의 말에 십이마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돌아가자. 잠시 기대를 했었다만…….”

“예!”

 

* * *

 

“우웩!”

단전이 만 갈래로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게워 낸 피가 앞섶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음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일 합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격돌이 남긴 상처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고통을 전해 주었다.

무모했다.

무려 세 개의 혈을 동시에 사용했으니 몸에 무리가 올 만도 했다.

자칫 마천과의 싸움이 벌어지기도 전에 삶에 종지부를 찍을 뻔했다.

마지막 순간 천뢰충파에 권마 우도의 와류를 섞는 순간 종리세는 자신의 힘을 증폭시켰다.

그의 손을 통해 빠져나온 공력.

미증유의 힘이 전신을 덮쳐 오는 순간 소청은 명문의 기운으로 몸을 감싸 보호하며 회음의 기운을 용천혈에 때려 박았다.

일보월하를 펼쳤음에도 종리세의 힘을 온전히 피하지 못했다. 몸에 호신강기처럼 둘렀던 명문의 한기가 통째로 날아갔다.

반응이 조금만 늦었다면 죽었으리라.

“그래도 닿았다.”

죽였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상처를 입힌 것만으로 충분했다.

마종 종리세.

아직 그를 대적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직 넘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자였다.

그는 뚫리지 않았던 구자겸의 방어력과 그 어느 것보다 날카로운 공격력을 지닌 백효의 옥령한기를 동시에 지닌 것 같았다.

아니 그들이 가진 힘은 그저 종리세를 흉내 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능성은 발견했다.

분명히 닿았다.

어우러짐의 태극에 더한 백회의 기운이 폭발해 그의 손바닥을 찢었다.

작은 상처였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무황…….’

그에게 기대를 걸 수는 없었다.

그는 산공의 때를 맞이하고 있었다. 죽음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다.

‘혁련휘…….’

지금의 무림에서 무황 다음으로 자신과 비교될 수 있을 만큼 강한 친구.

하지만 모자란다.

지금의 혁련휘는 마종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결국 답은 합일(合一)뿐이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기운을 한곳으로 뭉칠 수만 있다면 그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들었다.

단중, 백회, 명문, 회음.

팔괘가 넷으로 뭉쳤으니 이제 음양의 태극을 이룬다면 그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시간은 그가 말한 열흘.

그 열흘의 시간 안에 어떻게든 이루어 내어야만 했다.

그런데.

자꾸만 발걸음이 느려진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고 하늘이 핑핑 돌았다.

‘제길…… 내상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한 힘은 그의 기혈을 들끓게 했고, 완전히 피해 내지 못한 종리세의 힘이 상처를 부추겼다.

턱! 우당탕.

헛디딘 발에 나무뿌리가 걸렸다.

소청은 땅바닥을 뒹굴었다.

입에서 흘러나온 피에 흙과 낙엽이 뒤엉켰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되는데…….’

진가까지는 아직 멀었다.

멀리 간양으로 가는 길목이 아직도 저만치 앞에 있었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자꾸만 몸에 힘이 빠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소청은 가까스로 힘을 내어 품속의 옥병을 열었다.

툭, 데구르르…….

옥병이 바닥에 떨어지고 단약 하나가 빠져나왔다.

스으으…….

지면에 흡수되는 단약과 함께 소청도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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