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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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30화
229화. 너 이 새끼 뭐야?
혁련휘와 일 합을 겨룬 소청은 소진각을 빠져나와 대연무장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휴우, 큰일 날 뻔했네.”
소청은 힐끗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팔 언저리를 바라보았다.
무복의 소매가 길게 찢어져 있었다.
혁련휘의 왼쪽 눈가에 땀이 스며드는 순간 소청은 곧바로 일보월하를 펼쳐 그의 좌측으로 파고들었다.
자신과 똑같이 관조의 영역에 들어서 있는 혁련휘였지만, 일보월하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는 없을 터였다.
그가 노린 것은 혁련휘의 목 어림.
생사투가 아니었으니 작은 생채기만 내면 충분했다.
완전한 사각으로 파고들어 봉을 뻗으려는 순간 혁련휘의 목검이 자신의 좌측을 향해 휘둘러졌다.
축의 묘리를 담은 일격이었지만, 역(逆)으로 위력을 줄여 버리면 되는 일이었기에 칼날을 튕겨 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혁련휘의 칼이 묘하게 비틀어졌다.
마치 순간적으로 도신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소청의 손아귀 두 치 아래에서 휘둘러져 옆구리를 노려 왔다.
다급히 몸을 틀었지만, 팔꿈치 부분이 예리하게 베여 나갔다.
반응이 조금만 느렸으면 옆구리를 내어 줄 뻔했다.
내공을 제한한 상태에서 일보월하가 없었다면 승기를 잡기 어려웠던 싸움이었다.
“역시 내공의 우위가 아니면 이기기 어려운 친구란 말이야.”
봉에 목 언저리를 얻어맞고 멍한 표정을 지은 혁련휘를 생각하며 소청이 피식 웃었다.
“어쨌든 내가 이겼어. 큭큭큭. 한동안 비무하지 말아야지.”
소청이 소진각을 떠나올 때까지 ‘땀 때문에…….’라고 중얼거리던 혁련휘를 생각하며 웃는 사이에 누군가 다가왔다.
“큰공자님.”
“에…… 아! 노복 아저씨.”
그는 진가 표국의 경계를 책임지고 있는 표사 강노복이었다.
“때마침 이곳에 계셨군요. 안 그래도 뵈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저를요? 왜요?”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이요?”
“네. 지금 표국 후문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소청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굳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표국 후문에서 기다리고 있을 이유도 없었다.
“저를 찾아왔다고 하던가요?”
“예.”
“소진각으로 안내하지 않으시고…….”
“저도 그리 말씀드렸습니다만 그곳에서 기다리겠다고만 하셔서…….”
“흠. 알겠습니다. 가시죠.”
소청은 연무장으로 가던 걸음을 돌려 노복과 함께 표국으로 향했다.
진가의 본전각을 중심으로 무관의 반대쪽에 있었던 표국은 전에 비해 꽤나 거대해져 있었다.
하나밖에 되지 않았던 표국의 건물은 표사와 쟁자수가 기거하는 숙소 외에도 두 채가 더 늘었고, 마차 열 대 정도나 들어설 수 있을까 싶었던 표국의 앞마당은 표물을 보관하는 창고 두 개가 들어서고도 마차 스무 대가 족히 세워질 규모로 변해 있었다.
“와! 엄청 커졌네요.”
“중원 제일 표국이 아닙니까. 모두가 큰공자님 덕분이지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노복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한참 진가를 성장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때 이후로는 가문의 일에 전혀 관심을 두지 못했다.
하지만 진가신과 진가성이 잘 꾸려 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아버님은 무인보다는 이런 쪽에 소질이 더 있으시다니까.”
“소질이 없으신 거 아니고요?”
소청의 말에 노복이 볼멘소리를 하며 툴툴거렸다.
“예?”
“가주님께선 과하게 안정적이십니다.”
“…….”
“저라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키웠을 겁니다. 지금도 물량은 넘치는데 여력이 되지 않아서 운송 건을 따내지 못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니 따내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하시는 것 같아요.”
갑자기 노복이 흥분하듯 열변을 토했다.
“그, 그런가요?”
“암요! 가문의 월문복에 월문기(月文旗)를 걸고 다니면 녹림이고 장강이고 무사 통과를 시켜 주는 실정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녹림과 장강 연합은 사도련 소속이었다.
혁련휘가 진소청과 둘도 없는 친구임을 사도련 모두가 아는데 어느 간 큰 놈이 진가 표국을 건드리겠는가.
진가를 건드렸다가는 마천으로 몰려서 사방에서 공격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라면 표국은 물론 해운업까지 사업을 확장했을 겁니다. 암요! 지금보다 몇 배는 커졌을걸요? 지난번에도 사돈이신 은가장에서 해운 사업을 제의하셨다고 아는데 가주님께서 거절을 하셔서…….”
노복은 수없이 침을 튀겨 가며 말했다.
아마 진가신이라면 그러했을 것이다. 그는 상생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중원에는 진가 표국 말고도 운송업으로 먹고사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만약 진가가 사업을 계속해서 확장하고 해운업까지 손을 뻗친다면 분명 손해를 보는 이들이 생길 것이다.
진가신은 그걸 염려하고 있었다.
‘하긴 아버님이라면…….’
노복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소청은 금세 표국에 도착했다. 소청을 알아본 표국 사람들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다.
“저쪽입니다.”
노복이 안내하는 곳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무복에 흑건으로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한 채 뒷짐을 지고 있는 사내.
마치 잘 벼려진 칼처럼 날카로운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
그를 보는 순간 소청의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주먹이 움켜쥐어졌다.
걸음을 멈춘 그의 모습에 노복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큰공자……님?”
파앙!
노복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소청의 발이 거칠게 떼어지고 옷자락이 날릴 틈도 없이 소청이 흑의인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터억!
사내의 목줄기를 움켜쥔 소청의 모습에 표국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너 이 새끼 뭐야?”
무섭게 치켜뜬 눈과 함께 소청의 몸에서 일어난 살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쳤다가 사내를 향해 집중되었다.
꾸우욱.
강하게 움켜쥐는 힘에 목뼈가 당장이라도 으스러질 것 같았지만 흑의인의 표정은 너무도 여유로웠다.
“손은…… 좀 놓지…….”
울대가 눌렸기 때문인지 답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답해! 너 뭐 하는 새끼야. 어째서 너 같은 새끼가 이곳에 있는 거지?”
소청이 부릅뜬 눈으로 주위를 매섭게 훑어보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기운이 훅 하고 뿜어졌다.
살피기 위함이었다.
홀로 왔을 리가 없었다.
그를 보는 순간 소청이 느낀 것은 ‘마기(魔氣)’였다.
접전지이기는 하지만 사천은 중원의 영역이었다.
그런데도 놈은 마기를 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흘리고 있었다.
정체를 들키지 않게 조심해도 모자랄 판에 대놓고…….
‘이 자식들이 감히 진가의 영역에서…….’
하지만 아무리 세밀하게 살펴보아도 주위에는 그 외에 다른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목을 잡힌 채 소청을 하는 양을 지켜보기만 했다.
“필요하면…… 점혈을 해도 좋다.”
“…….”
와중에 담담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가 주는 느낌은 이제껏 만나 왔던 마천의 어떤 인물들과도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소청은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손을 슬며시 놓았다.
어찌나 세게 잡았던 것인지 흑의인의 목에 붉은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운(雲)이라고 한다.”
“…….”
흑의인은 자신에게 집중된 소청의 살기 속에도 태연하기만 했다.
표국의 무인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한계치까지 끌어 올린 소청의 기운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손끝 하나라도 의심스럽게 움직였다가는 자신을 운이라 밝힌 사내의 몸이 갈가리 찢길 터였다.
“이름 따윌 물은 게 아니다.”
“통성명은 해야지.”
“이 자식이…….”
소청이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그를 위협했다.
자신이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소청은 진가가 전란에 빠지기를 원치 않았다. 그렇기에 진가신에게 피난 가기를 권했던 것이다.
마천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것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니 화가 나고 불안했다.
“간이 큰 놈이군. 적진임을 알고 찾아오다니 목적이 뭐냐?”
“널 보고자 하는 분이 계신다.”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그래. 조용히 따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직 전쟁이 시작된 것은 아니니까.”
“내가 이곳에서 네놈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보지?”
“그리되면 진가는 오늘 밤 안으로 쑥대밭이 되겠지.”
“미친 소리…….”
“시험해 보겠는가?”
소청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분명 놈의 동료가 진가의 근방에 있을 것이나 그 수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진가에는 혁련휘를 비롯한 별동대가 함께였다. 그 정도라면 고수의 수는 충분하다.
하지만 병력이 적다.
서천맹에 구원을 요청한다고 해도 간양과의 거리가 있으니 늦을 수도 있었다.
운은 느긋한 표정으로 소청을 바라보았다.
“단지 만나고 싶어만 하신다.”
“…….”
“따라가겠는가?”
“좋아. 따라가 주지.”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노복 아저씨.”
“예? 예.”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노복이 운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지금 즉시 진가에 비상경계령을 내리라 하세요.”
“비상……경계령을 말입니까?”
“예. 소진각에 머물고 있는 사도련의 소련주를 찾아가세요. 제가 잠시 다녀올 곳이 있으니 진가를 부탁한다고 전해 주세요.”
“…….”
“진가의 모든 사람은 이 시각부터 외부로의 출입을 금하고, 있을지 모를 적의 습격에 대비합니다. 반드시 그리 전하세요. 이것은 명령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소청의 목소리에 담긴 무거움이 평소와 확연하게 달랐다.
진가의 대공자가 아니라 전장의 장수 같은 위엄이 가득히 담겨 있었다.
-노복 아저씨.
소청은 운이라는 사내를 똑바로 쏘아보며 노복에게 전음을 날렸다.
운이라는 사내가 눈치를 채겠지만 상황이 급하니 어쩔 수 없었다.
-듣기만 하고 고개만 끄덕이세요.
“…….”
노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께 전해 주세요. 오전에 말씀드린 피난을 지금 즉시 시행하라고.
“……!”
피난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수뇌들끼리만 나눈 대화였기에 노복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 말씀드리면 아버님께서 알아서 하실 겁니다.
노복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대충 할 말이 끝난 것 같은데……. 출발해도 되겠나?”
“…….”
매섭게 쏘아보는 소청의 눈빛에 운이 몸을 돌려 훌쩍 뛰어올랐다.
단숨에 진가 인근에서 멀어질 정도로 뛰어난 경신술이었다.
‘대단한 놈이군. 경공만 따지고 보자면 마천의 세주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의 뒤를 쫓는 소청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세주들 말고도 이런 강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만한 자가 그저 전령에 불과하다면?
‘마종…….’
자신을 찾아온 것은 마종 종리세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새외만은 아니란 말이지. 종리세, 네놈은 중원을 정벌하기 위해 얼마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냐?’
운을 따르고 있는 소청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