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8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8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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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검당 무사들과 사밀령, 백천대 대원들은 각기 구역을 나누어 맡아서 탐문을 시작했다. 흑월대도 일조와 이조가 교대로 경비업무를 맡고 삼조는 탐문에 참여했다.
구천성 내부와 외부를 합쳐서 인근 십 리 이내에는 일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백여 명이 하루 종일 발바닥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조사해봤지만, 날이 저물 때까지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하긴 이미 일 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었다. 그 날의 일을 기억할 만큼 기억력 좋은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그런데 아주 가끔은 인간의 평균 능력을 뛰어 넘는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 자가 있곤 했다.
저두심이 만난 청목이라는 청년이 그러했다.
그는 무공에 소질이 없었다. 오죽하면 십 년 넘게 배웠음에도 아직 삼류무사였다. 그렇다고 해서 키가 크고 얼굴이 잘생겼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키는 남들 반 토막밖에 안 되었고, 얼굴은 여자들이 땅에 떨어진 호박 같다고 놀릴 정도였다.
그나마 눈빛이라도 초롱초롱해서 여자에게 혐오감을 주는 얼굴이 아니라는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또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에게도 재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닌 것이었다.
그는 한번 본 것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십 년 전에 잠시 만났던 사람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했다.
그 덕분에 첩밀각의 말단 자리라도 유지하고 있는 자였다.
“그때 두 사람이 맞은편에서 걸어왔소. 한 사람은 얼굴에 제법 큰 점이 다섯 개나 나 있었고, 한 사람은 피식 조소를 짓는데, 오른쪽 윗니 하나가 반쯤 깨져 있었소. 아마 누구와 싸우다가 깨진 모양이오.”
저두심은 귀를 쫑긋 세우고서 청목의 설명을 들었다.
청목을 보고 있으면 살이 빠지기 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어떤 여자도 돼지처럼 살이 찐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청목보다는 자신이 더 나았던 듯했다. 그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정말 기억력 하나는 뛰어나군.’
하지만 아무리 기억력이 뛰어나도 불필요한 내용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왜 그들을 수상하게 생각한 거요?”
“벽호당의 무사 둘이 사라졌다고 했잖소? 바로 그 두 사람이 사라진 자들이오.”
저두심의 눈이 커졌다.
“확실합니까?”
“삼 년 전에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언뜻 본 적 있소.”
삼 년 전? 그것도 스치고 간 사람을 기억해?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의 기억력이었다.
아마 이자는 몇 십 년 후, 자신과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남들에게 태연히 할지도 몰랐다.
‘이자 앞에서는 말을 조심해야겠군.’
속으로 혀를 내두른 저두심이 다시 물었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저쪽으로 갔소. 아!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었소. 멍청하게 그걸 이제야 떠올리다니. 이제 내 머리도 다 된 모양이오.”
‘그럼 멍청한 당신보다 훨씬 기억력이 못한 나는!’
저두심은 불쑥 소리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눈빛을 반짝였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자가 누군지 아시오?”
“거리가 먼 데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자세히 보진 못했소. 더구나 어스름이 깔린 터라…….”
거리도 멀고, 등마저 돌린 데다, 어스름까지 깔렸다면 모르는 게 당연했다.
저두심은 무척 아쉬웠지만, 청목이 머리를 쥐어짜듯 이마를 찌푸린 걸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잠시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청목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짙은 색 청의를 입고 있었는데……. 키가 오 척 팔 촌쯤 되었고, 그가 등에 찬 검에서 노란색 수실 두 개가 흔들렸소.”
많은 사람들이 짙은 색 청의를 입고 있다. 아마 구천성에 이삼천 명은 될 것이었다. 그 중 키가 오척 팔촌인 사람은 이삼백 명이나 될까?
‘거기다 노란색 수실 두 개가 달린 검을 찬 사람은 더더욱 적겠지?’
저두심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도 구천성의 인명록을 외우지 않았던가.
하지만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청목이 말했다.
“내가 알기로, 그 체격에 청의를 입고 그런 수실을 매단 검을 쓰는 사람은 구천성에 셋뿐이오.”
***
장천운은 저두심의 이야기를 듣고 시선을 돌렸다.
청목이 불안한 표정으로 어정쩡하니 서 있었다.
“장천운이오.”
“처, 청목입니다.”
청목은 당연하게도 흑월대 대주 장천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스치듯 지나간 것이 두 번, 정면에서 마주 걸어가며 본 것이 한 번, 멀리서 본 것이 네 번이나 되었다.
언젠가는, 키가 오 척 구 촌에 몸무게가 백스무 근 정도는 나갈 거라고 혼자서 추측해본 적도 있었다.
자신이 꿈을 꾸는 체격에 잘생긴 얼굴, 거기다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한 무공까지.
정말 부러운 놈이었다.
‘저러니 소성주께서 껌벅 죽지.’
바로 그 소성주를 껌벅 죽게 만든 놈이 입을 열었다.
“당분간 흑월대에서 지내시오. 첩밀각주께는 내가 말씀드리겠소.”
청목은 생각지 못한 장천운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예?”
“당신의 뛰어난 기억력이 필요할지 몰라서 그러는 거요.”
청목은 심심한 걸 싫어했다. 그 동안 첩밀각 서고에서 문서를 읽고 정리하는 일을 했는데 하루하루가 너무나 따분했었다. 아마 먹고사는 일만 아니었다면 진즉 때려치웠을 것이었다.
밖에 나가봐야 땅딸막하고 못생긴 삼류무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흑월대는 요즘 말 많고 제일 바쁜 곳 아닌가?
최소한 심심하진 않을 듯했다.
게다가 저쪽에서 바라보고 있는 여인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 걸까?
‘미쳤지, 내가 왜 저런 여자들을 놔두고 구석진 첩밀각에 처박혀서 곰팡이 냄새나 맡고 있어야 해?’
“정 싫으면…….”
그는 장천운이 말을 끝내기 전에 재빨리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주. 신명을 다해서 일하겠습니다!”
그로써 가여운 인생 하나가 또 흑월대에 편입되었다.
***
짙은 청색 옷에 키가 오 척 팔 촌, 노란색 수실이 두 개 달린 검을 멘 자.
그와 똑 같은 자는 청목의 말대로 구천성 내에 모두 세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당하의 전쟁에서 죽었고, 한 사람은 나이가 육순이 넘었다.
결국 남은 자는 하나.
그자는 철혈단 무사였다.
“그런데 청목의 말에 의하면 그 자도 일 년 전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장천운의 말에 사마경의 눈매가 치켜 올라갔다.
“그럼 뭐야? 또 끈이 끊어졌다는 거잖아?”
“끈은 끊어졌는데, 끊어진 끈이 남겨놓은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아주 조금.”
“찾을 수는 있겠어?”
“못 찾을 것은 없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어디에 있는데?”
“청목의 말에 의하면, 첩밀각의 자료에 ‘진모강이란 그자를 여주에서 본 사람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여주?”
“진모강은 본래 무당파의 속가제자였던 잡니다. 아무래도 무림맹과 연관된 것처럼 보입니다.”
치켜 올라간 사마경의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무림맹? 그럼 아버지 시신을 빼돌린 곳이 무림맹이란 말이야?”
“아직 확실하진 않습니다. 가능성이 있는 것뿐.”
“만약 사실이라면……. 무림맹이 우릴 공격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무림맹을 공격할 거야. 모조리, 싹! 막는 자는 누구든! 다 쓸어버릴 거야! 겉으로는 정이니, 협이니 부르짖으면서 시신을 훔쳐 가? 도적놈들!”
장천운은 악을 쓰는 사마경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이었다. 사마경이 불쌍하게 느껴지기는.
세상에! 대 구천성의 소성주, 아니 이제는 임시 성주가 된 여자가 불쌍하다니.
‘내가 미친 거 아냐?’
어쨌든 지금은 자신이 사마경을 달래야할 때다.
“진정하십시오. 일단 사실 확인부터 하는 게 먼접니다.”
“확인? 그래, 확인해봐야지.”
악을 쓰던 사마경이 거친 숨을 가라앉혔다.
소연추와 류화가 재빨리 그녀를 잡아서 의자에 앉히며 진정시켰다.
그녀가 의자에 앉자, 장천운이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뭐가 이상해?”
“무림맹이 왜 전대 성주님의 시신을 훔쳐가겠습니까?”
“뭔가 이유가 있겠지.”
“대령주나 대장로에게는 협박용으로도 쓸 수 없다는 걸 그들도 모르진 않을 텐데요?”
정나미 떨어질 정도로 냉정한 말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하지만 사마경은 장천운이 부친 시신을 놓고 협박용이라 운운하자 은근히 화가 났다.
“우리 아버지야. 너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
“냉정하게 상황을 직시하십시오, 소성주.”
사마경은 그 말에 장천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장천운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무심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바라보는 사마경 자신조차 심장박동이 느려질 정도로.
사마경은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보다 침착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좋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협박용으로도 쓸 수 없는 성주님의 시신을 훔쳐갔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무슨 이유?”
“그걸 알아봐야죠. 그래야 성주님의 시신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찻잔을 들어서 다 식은 차를 단숨에 다 마셔버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연추와 연송하는 행여나 그녀가 또 흥분할까 봐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마경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녀 역시 장천운의 말이 옳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알았어, 무슨 말인지.”
이전과 다름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한 그녀는 장천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백부와 대장로는 어떡하지?”
독살에 대한 증거로 사마중천의 시신에 나 있는 특징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 일이 물거품이 되었다.
독살 증거를 내놓지 못한 이상 그들을 속박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전대 성주님의 시신 실종 건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당장은 저들도 소성주를 공격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 당장은 움직이지 않을 거야. 하지만 충격이 가라앉으면 어떻게든 나를 제거하려고 할 걸?”
“그 전에 무림맹이 움직일 겁니다.”
“무림맹이 움직이는 것과 백부나 대장로가 무슨 상관이지?”
“그들이 움직이면 어차피 소성주는 출정을 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대백과 대장로도 출정해야할지 모릅니다.”
“그 일 때문에 독살에 대한 것을 일찍 밝혔잖아. 무림맹이 우릴 공격하면 좋아질 게 뭐 있어?”
“최소한 그 덕분에 독살 건이 모두에게 알려졌습니다. 이제 증거를 찾는 일만 남았죠.”
뭔가 그럴듯한 말이긴 한데, 그림이 명확하게 그려지지가 않았다.
고운 이마를 찌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사마경이 눈을 들었다.
“천운, 증거를 떠나서 지금 사람들이 누구 말을 더 믿고 있을까?”
“누굴 더 믿든, 소성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최소한 전보다는 더 많아졌습니다.”
사실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전대 성주가 정말 독살 당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범인이 공손백과 나극일지 모른다고 짐작하는 사람마저 생긴 판이었고, 그것은 그만큼 공손백과 나극의 입지가 좁아진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좋아, 그건 그렇다고 해. 그럼 무림맹과 싸우는 걸 왜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거지?”
“아직은 소성주의 힘이 부족합니다. 정면 대결에선 밀릴 수밖에 없죠. 그런데 무림맹과 싸움이 나면 공손백과 나극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 최소한 그들의 공격권에서 멀어질 수 있지요. 움직임도 자유로워지고요.”
“그럼 복수의 시간도 늦어지잖아.”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전대 성주의 시신을 찾아서 독살 증거를 내밀면 공손백과 나극을 몰아붙이기도 더 쉬워질 겁니다.”
“우리가 패하면 죽도 밥도 아니게 될 걸?”
“그러니 이겨야죠.”
말없이 서 있던 소연추와 연송하, 구양명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장천운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사마경은 눈초리가 찢어질 것처럼 흘겨보았고.
“결국 모든 게 천운의 말대로 되어야 복수를 할 수 있겠군.”
“뭐, 지금으로선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장천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마경이 그런 장천운을 여전히 흘겨보며 말했다.
“내가 당장 공손백과 나극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럼 다 함께 죽는 거죠. 그러고 싶습니까? 그러고 싶다면 명령을 내리십시오. 무조건 명령에 따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