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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25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9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225화

224화. 종전, 북해 섬멸되다

 

 

 

 

퍼억!

한기를 가득 머금은 빙궁주 미여령의 일장이 태존의 가슴에 선명한 장인을 남겼다.

“크윽!”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태존.

오랫동안 북해에 군림해 온 제왕은 태존의 무위에 모자람이 없었다.

풀어 헤쳐진 머리가 산발이 되고 피와 육편이 엉겨 붙은 얼굴은 지옥의 야차처럼 잔혹했다.

“흐흐흐…….”

수백 초의 싸움.

드디어 태존을 잡았다.

그의 손에 미여령을 수호하던 호위 무인 오십이 죽었다.

빙궁 최강이라 불렸던 전력이었지만 태존의 검 앞에 고혼이 되고 말았다.

그들과 합격해 태존을 공격했던 미여령 자신도 팔 한쪽이 날아가는 참혹한 상처를 입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 선명하게 남은 검은 장인, 북해의 현음신장(玄陰神掌).

죽을 것이다.

현음신장의 무서운 점은 극음지기를 동반한 극독이었다.

손바닥 자국이 선명히 남았고 태존의 입가에 검붉은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앗아 가는 독을 맨몸으로 맞았으니…….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미여령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을 때 태존의 입가에는 그보다 잔인한 미소가 그려졌다.

“……?”

푸욱!

등 어림을 파고드는 예기.

미여령은 자신의 가슴으로 삐죽이 돋아 모습을 드러내는 송문고검의 모습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무당의 태극혜검(太極慧劍).

새하얀 백광에 휩싸여 저절로 허공을 날아다니며 북해를 괴롭혔던 그 검이 자신을 꿰뚫고 있었다.

“크윽!”

설마 자신에게 가슴의 허점을 보인 것은 검의 공격을 감추기 위한 미끼였단 말인가?

허물어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태존이 서둘러 혈도를 눌러 현음신장의 독기가 퍼지지 못하도록 막았다.

“과연 북해의 주인이라 할 만했다.”

“네……노……옴…….”

태존은 자신을 노려보는 미여령을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좋은 싸움이었다.”

손잡이를 움켜쥔 태존이 송문고검을 뽑아내었다.

푸학!

미여령의 몸에서 핏줄기가 솟구치듯 뿜어지고 코와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털썩.

북해의 지배자.

여섯 패주들의 수장.

마천에 굴복한 뒤 뜻을 함께하며 중원을 침공해 온 그녀는 단강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꿇어앉은 채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그녀의 모습을 지친 표정으로 바라보던 태존이 온 힘을 다해 거센 일갈을 질렀다.

“빙궁주가 죽었다!”

태존의 외침이 전장을 향해 수많은 메아리를 만들며 퍼져 나갔다.

눈을 감지도 못하고 죽은 미여령의 모습에 정사 무인의 본대와 싸우던 설화궁의 무인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지어졌다.

그리고 그 당혹스러움은 점차 북해의 모든 이들에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주인 잃은 개는 오갈 데가 없어지는 법이었다.

백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빙궁주마저 죽었다.

치열했던 전쟁의 흐름은 점차 변해 가고 있었다.

여전히 북해 무인들의 수는 많았지만 사기가 꺾인 그들은 지리멸렬하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라!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된다! 적들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북해의 수뇌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며 수하들을 독려해 보지만 넘어가 버린 분위기를 뒤바꾸지는 못했다.

북해는 수적으로 여전히 우세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 정사 무인들에 의해 밀려나기 시작했다.

여유가 생겼다.

태존의 외침이 전장에 숨통을 틔워 놓았다.

검을 들고 싸우며 지휘하던 제갈휘문이 재빨리 전황을 분석했다.

“되었다!”

설화궁의 무인들이 후퇴의 정황을 보이자 제갈휘문이 재빨리 무인들의 일부를 빼내 우회해 온 적을 막고 있는 별동대를 지원했다.

지쳤을 것이다.

강을 우회하며 공격해 온 천빙궁의 무인들을 막고 있는 것은 소강이 이끄는 별동대와 몇백의 무인들이 전부였다.

소강과 별동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수적인 문제를 뒤엎기에는 모자랐다.

조금 무리가 있더라도 일부의 병력을 빼내어 속히 그들을 지원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여 주어야 했다.

“후위 일천은 지금 즉시…….”

다급하게 병력을 움직이려 했던 제갈휘문이 멍한 표정으로 강 쪽을 바라보았다.

우우우우!

장소성과 함께 날 듯이 강을 넘어오는 사내.

“소청?”

진소청이었다.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적의 후미를 뚫고 나타나 백효와 맞닥뜨렸던 것을 제갈휘문도 보았다.

설마? 벌써 백효를 죽인 것인가?

하지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정사 무인들 중 그를 대체할 만한 고수는 없었다.

그가 나타나 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열쇠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마치 수면 위를 비행하는 제비처럼 물을 밟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소청이 창대를 휘둘렀다.

쫘좌좌작!

그의 창이 설화궁 무인들의 후미를 완전히 찢어 놓았다.

“소청! 이곳은 우리가 맡겠네! 우측이 위험하네!”

목에 핏대를 세워 올린 제갈휘문의 외침에 전장에 참여하려 했던 소청이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방향을 틀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제갈휘문이 반색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후위의 오백 무인들은 우측의 적을 공격하라!”

 

* * *

 

“제길…….”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방효곤이 가까스로 적의 공격을 피해 바닥을 굴렀다.

모두가 미쳐 있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던 방효곤에게 전장은 처참한 지옥과도 같았다.

‘이리도 처참할 수가…….’

그들은 팔이 잘리면 반대편 팔로, 양팔이 잘리면 입으로 칼을 물고 적을 베어 내었다.

중원의 무인이든 북해의 무인이든 모두가 똑같았다.

적을 무조건 죽여야 하는 중원의 명운이 달린 싸움.

방효곤은 땅바닥을 나뒹굴며 흙과 핏물이 엉겨 붙은 조각난 사지들과 눈을 감지 못하고 쓰러진 시신들을 보며 욕지기가 끓어오르는 것을 겨우 참아 내었다.

싸워야 했다.

지금은 한 사람의 손이라도 더 필요한 시점이었다.

적이 본대의 우측에 나타나자마자 그들을 막기 위해 나선 모자겸도 꽤 지쳐 보였다.

적들의 목줄기를 뜯어내며 공포를 심어 주던 그였지만 하루 종일 이어진 전투에 내력이 달리고 있었다.

소강을 비롯해 악이군, 승혜가 미친 듯이 창을 휘두르며 적들을 죽이고 있었지만, 계속된 전투로 인해 별동대의 일부도 죽음을 면하지는 못했다.

수의 열세, 쉼 없이 이어지는 전투에 모두가 지쳐 있었다.

까아앙!

난전에서 궁술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기에 시위를 풀어 검처럼 사용했던 십자궁 위로 거친 충격이 전해져 왔다.

“크윽!”

궁술을 빼고도 가진 바 검술이 약하지는 않았으나 오랜 시간 이어진 전투의 피로에 방효곤의 몸이 쭉 하고 뒤로 밀려났다.

“죽어라!”

높이 떠오른 해를 가리며 검을 수직으로 들어 올린 적이 방효곤을 향해 덮쳐 오는 순간…….

우우우우!

장소성이 전장을 가득히 울렸다.

방효곤은 자신의 적이 주춤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활대를 휘둘러 적의 머리를 부수었다.

그리고 장소성을 만들어 내며 날아오는 사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장소성의 주인은 거대한 구체와 함께 전장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콰아아앙!

지면을 향해 맹렬히 후려친 창대에서 뻗어진 기운이 거친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정적.

그의 일격에 모두가 멈춰 버렸다.

정사의 무인도, 북해의 무인들도…….

모두가 그를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전신(戰神)처럼 나타나 자신이 만들어 낸 흔적 위에 우뚝 섰다.

치열했던 전장에 고요를 만들어 낸 것은 다름 아닌 진소청이었다.

“형님!”

“은공!”

소강과 모자겸의 말에 적들을 맞아 싸우던 정사 무인들과 별동대 무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그저 나타난 것만으로 지친 그들에게 활력을 주는 존재.

천빙궁의 수천 무인들에 비하자면 몇백밖에 되지 않는 중원의 무인들에게 승리를 희망하게 만들어 주는 그의 존재는 든든한 버팀목 같았다.

“소가앙!”

거친 울음과도 같은 외침이 일시적으로 경계가 나누어진 전장을 파고들었다.

“별동대!”

그의 외침이 모든 이에게 기력을 돋게 하고 가슴을 부풀게 만들었다.

창극이 북해의 무인들을 향해 곧게 뻗었다.

“중원을 침공해 온 북해의 무인들을 모조리 참하라!”

파앙!

외침과 함께 다시금 천빙궁의 무인들을 향해 뛰어드는 소청의 뒤를 따라 별동대가 움직였다.

뒤이어 제갈휘문이 보낸 오백의 무인들이 치고 들어왔다.

콰콰콰!

소청이 휘두른 창대는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며 적을 죽이는 것은 물론 인근의 지형마저 바꾸어 놓았다.

마치 양 떼 속을 파고든 배고픈 사자처럼 창을 휘두를 때마다 수십의 무인들이 찢겨 나갔다.

“끄아악!”

“으악!”

만인지적.

홀로 만 명을 상대하는 무인.

오직 무황에게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창술은 이미 천지를 진동시킬 정도였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묻혀 버렸다.

여유가 생긴 방효곤은 서둘러 활대에 시위를 걸었다.

소청이 왔으니 굳이 자신이 난전에 참가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피피핑!

시위가 걸리자마자 당겼다 놓는 움직임에 무형의 기운이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컥!”

“윽!”

갑작스럽게 날아온 무형의 화살은 적을 죽이기보다 움직임에 제약을 두어 별동대에게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더욱 흉포하게 날뛸 수 있게 했다.

전투의 치열함은 사라지고 서서히 도주하는 적들을 학살하듯이 변해 버렸다.

북해의 무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수적 우세는 더 이상 아무런 효과도 발휘되지 못했다.

콰드득!

소청의 창대가 적의 목에 깊숙하게 박혀 들었다.

“끄으…….”

창에 꿰인 무인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꺾었다.

“후우, 후우…….”

소청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가슴을 들썩거렸다.

근 하루 넘게 이어 온 단강구의 전투는 종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적이 공포를 느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기 위해 가진 모든 내공을 사용한 터라 손끝이 잘게 떨려 왔다.

단전에 남은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별동대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남들보다 더욱 많은 힘을 가진 그들은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꺼냈다.

더 열심히 싸웠고 더 오래 싸웠다. 이제 남은 것은 적의 잔당뿐이었다.

멈춰 선 소청과 별동대의 무인들을 대신해 정사의 무인들이 도주하는 적들을 뒤쫓았다.

북해빙궁의 본대인 설화궁도 태존이 이끄는 정사의 무인들에 의해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혁련휘가 맡고 있는 우측에 적이 남아 있을 터였다.

우측의 적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효과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겠지만 지쳐 있을 게 분명했다.

“대족장! 남은 적을 부탁합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소청의 말에 모자겸이 눈을 부릅뜨며 대답했다.

“소강, 별동대와 함께 휘를 도우러 간다!”

“알겠습니다!”

소청이 방향을 바꾸어 달리자 소강과 별동대가 그 뒤를 따라갔다.

적들은 분위기를 바꾸어 놓을 만한 수장들을 모조리 잃었고 겁에 질려 있으니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전쟁은 끝났다.

남은 것은 적의 잔당을 섬멸하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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