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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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24화
223화. 고기처럼 다져 주지
소청의 공격은 특정한 부위를 노리고 있지 않았다. 그저 아무렇게나 뻗어 낸 것이었고 그 창이 백효의 볼을 스친 것이다.
“…….”
백효가 자신의 볼을 쓸었다.
진득한 피가 손끝에서 느껴져 오자 백효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의 송곳니가 아주 잠시 길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나. 상처라는 것을 입은 것이……. 역시나 네놈은 아주 즐거운 유희거리다!”
백효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가 입은 하늘빛 장삼이 거칠게 펄럭거렸고 단정하게 묶여 있던 머리칼이 허연 백색으로 변해 휘날렸다.
드드드드.
변화된 모습뿐 아니라 거칠게 끓어오르는 기세가 대기를 요동치게 만들자 그의 주위에 있던 나무들이 얼음 기둥처럼 변해 버렸다.
“씨발, 괴물 새끼. 구자겸이나 혈승도 대단했는데…….”
변해 버린 주변 환경에 소청이 짜증스럽게 이를 갈아 대었다.
그의 신형은 다시 백효의 영역의 끝부분에 닿아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차가워진 공기 때문인지 입김이 하얗게 새어 나왔다.
“좋아, 이렇게 되면 계속 두들겨 보는 수밖에! 그럼 어디 한번 다시 해보자고!”
소청이 백효의 한기에 얻어맞아 시큰거리는 어깨를 휘돌리다 창대를 움켜잡고 지면을 거칠게 밟았다.
파앙!
십여 장의 거리는 둘 사이에 아무런 제약도 되지 못했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와 함께 소청과 백효의 공격이 부딪쳤다.
쩌어엉!
거친 충돌음이 사방을 뒤흔들어 놓았고 진동이 퍼져 나가며 나무에 붙은 얼음들이 부서졌다.
하지만 그조차도 백효의 한기에 다시금 제 모습을 찾았다.
백효는 더 이상 대기를 얼려 만든 얼음 조각 따위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몸을 빠져나온 실낱같은 한기가 수백 수천 가닥으로 나누어져 소청을 향해 유도체처럼 날아왔다.
팔괘창법 태월식!
허공에 뜬 소청의 창대가 수백 개의 궤적을 만들자 한기가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짜아아앙!
몰려든 한기는 뿌려지는 소청의 창대를 따라 경로를 바꾸어 백효를 향해 되돌아갔다.
푸슥.
하지만 한기의 결정체와 같은 백효에게는 그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휘저은 손에 흩어져 버렸다.
촥! 촥! 촥!
그 뒤를 이어 날아온 강기 다발이 백효의 몸을 노렸다.
“흥!”
백효가 전방을 향해 손을 쫙 뻗어 내자 얇은 강기의 선들이 쏘아지듯이 날아갔다.
“……!”
순간 전방에서 사라져 버린 소청의 모습.
강기를 날린 직후에 소청은 백효의 측면에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창대에 단전의 내공을 모조리 때려 박고 백효를 향해 휘둘렀다.
쩌어어엉!
때를 맞춘 백효의 일장이 뻗어져 부딪쳤다.
거친 충격파와 함께 백효와 소청의 몸이 동시에 다섯 걸음씩 밀려 나갔다.
구자겸과의 싸움이 창과 방패였다면 백효와의 싸움은 창과 창의 싸움이었다.
찰나의 틈에 엄청난 상처를 입을 수 있었다.
내력이 달리거나 예리하지 못한 쪽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서로의 공격이 곧 방어인 싸움이었다.
쾅, 콰앙!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두 사람이 만들어 낸 충격파가 숲을 뒤흔들었다.
막상막하의 싸움.
둘의 공격은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옷을 찢어 놓고 살갗에 수많은 상처를 만들어 놓았다.
“칫!”
단전의 내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을 느낀 소청은 백효의 공격을 피해 물러나며 백회의 뇌기와 명문의 한기를 단전에 집어넣었다.
“어째서 공격을 멈추는 것이냐?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게냐? 좀 더! 좀 더 나를 즐겁게 해 줘야지!”
소청이 단전과 단중의 내공을 모두 사용했음에도 백효는 조금도 지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내공이 무지막지하군! 뭘 얼마나 좋은 걸 처먹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
끝을 알 수 없는 힘이었다.
소청은 백회와 명문의 한기가 그의 단전에 어우러져 태극을 이룰 때까지 백효의 공격을 쉬지 않고 피해 다니며 북쪽으로 이동했다.
뒤쫓는 백효가 만들어 놓은 한기의 풍경은 마치 거대한 붓으로 숲에 흰 선을 그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됐다!’
한참을 도망치던 소청의 단전에 다시 완벽한 태극이 만들어졌다.
푸른빛을 내던 그의 머리칼이 명문의 한기로 인해 백효와 같이 허옇게 물들었다.
“놈! 한기도 사용……!”
순간 소청이 몸을 되돌려 공격해 옴과 동시에 이제까지 느껴지던 기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퍼어엉!
“크윽!”
백효의 몸이 달려온 방향의 반대쪽으로 튕겨 나갔다.
갑자기 나타난 창대가 그의 복부를 강타한 것이다.
순간.
소청은 공격을 이어 가지 못했다.
먹혔다.
어째서지?
이제까지 귀신처럼 자신의 은신을 알아차리던 백효가 아니던가?
소청은 멈춰 선 채로 자신의 창을 바라보았다.
명문의 한기로 인해 허연 살얼음이 낀 창대.
‘혹시?’
소청이 비틀거리며 물러난 백효를 묘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복부를 잡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놓쳤다.
이전까지 소청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은 미약하게 느껴져 오는 열기 때문이었다.
소청의 움직임은 이전까지 보아 왔던 어떤 이들보다 빨랐다.
눈은 물론 기감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사라진 뒤 공격이 시작될 때의 열기가 찰나적으로 거대해진다.
그 찰나만으로도 충분히 소청의 공격 방향이나 움직임을 쫓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의 공격…….’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공격해 오는 순간에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완벽하게 사라져 버린 것처럼…….
“그렇군.”
소청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상대의 기감에서 사라지자면 주변 환경과 완벽한 동화를 이루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일보월하가 펼쳐지는 동안에는 상대의 시야와 기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공격하는 순간에 끌어 올린 힘은 발각되고 만다.
그리고 그사이 이루어지는 공격은 뛰어난 반사 신경을 가진 자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구자겸이 그러했고 혈승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힘을 뛰어넘는 천뢰충파의 위력으로 그들을 쓰러뜨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백효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 것처럼 예측했다.
하지만.
백효는 한기의 무공을 극한까지 익히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중의 화기를 사용한 소청의 은신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명문의 한기로 인해 그가 만들어 낸 영역에 동화되어 버리자 백효가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왜? 이젠 안 즐겁냐?”
소청의 이죽거림에 백효가 매섭게 노려보았다.
“네놈 살수들의 기술을 쓰는군.”
“…….”
“어째서 너만 한 무인이 그따위 비열한 기술을 사용하는 거냐? 무인이 아니라 암살자였나?”
“뭐 그딴 거 구분해 본 적 없다. 필요한 능력은 죄다 끌어모아서 사용하는 편이라서…….”
“…….”
“그리고 지금부터는 푸줏간 주인이 되어 볼까 하고…….”
“뭐?”
“이제부터는 고기처럼 다져 주겠단 말이지!”
백효의 허점을 찾아낸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파앙!
소청의 신형이 사라졌다.
종적을 놓쳐 버린 백효가 당혹스러워하며 몸을 웅크렸다가 펴자 한기를 머금은 거대한 강환(環)이 그의 몸 주위에 둥글게 맺혔다.
콰드득!
강환은 만들어짐과 동시에 주변을 향해 날카롭게 뿜어져 닿는 모든 것을 소멸시켜 버렸다.
전후좌우 어디에 나타나도…….
“병신 새끼! 위는 안 보냐!”
“……!”
슈가가각!
머리 위에서 나타난 소청의 창대가 수직으로 내리쳐 왔다.
백효는 재빨리 고개를 꺾었다.
콰직!
“크윽!”
오른쪽 승모근을 파고들어 박혀 버린 창대.
백효의 얼굴이 고통으로 와락 일그러졌다. 그 한 방으로 어깨뼈와 빗장뼈가 으스러져 버렸다.
“합!”
하지만 백효는 그 와중에도 허연 강기를 두른 왼쪽 손으로 소청을 노렸다.
하지만 그 순간.
취리릭!
창대를 놓아 버린 소청의 신형이 내뻗은 백효의 왼팔을 휘감아 내려왔다.
“…….”
찰나의 틈.
백효가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자신의 전면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든 소청의 모습이 눈동자에 가득히 그려졌다.
소청의 눈에 어린 짙은 살기가 그의 전신을 관통했다.
‘이, 이런!’
등줄기로 소름이 돋아 올랐다.
쩌억!
방비하기도 전에 백효의 복부에 거친 주먹이 틀어박혔다.
쾅! 쾅! 쾅쾅쾅!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좌우의 주먹이 번갈아 가며 백효의 복부를 때리기 시작했다.
깊숙이 박힌 주먹이 그의 내장을 터트리고 갈비뼈의 하단을 강타했다.
벌어진 백효의 입에서 핏물이 쉴 새 없이 토해져 나왔다.
정신이 아릿해질 정도의 고통에 익숙해질 무렵.
파라락!
소청이 피풍의를 휘말아 쥐었다.
“말했지. 다져 주겠다고!”
팔괘창법, 연환!
빠바바박!
고수든 하수든 한번 깨어진 팽팽함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백효는 공격을 허용한 뒤로 바로 앞에서 날아오는 마구잡이식의 공격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
빡! 빠바박!
피풍의로 만들어진 봉이 백효의 전신을 강타했다.
단 한 차례도 피하지 못한 백효는 모든 공격을 허용한 채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크윽…….”
온몸의 뼈가 완전히 바스러지는 고통에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 백효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이 개자식이…….”
마종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꿇어 본 적이 없는 무릎이었다.
자존심이 상하고 분노가 뇌를 지배하자 마음 깊숙한 곳에 담겨 있던 의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역천.
마천의 수뇌들이 최후를 위해 남겨 놓은 힘.
거친 마기가 단전을 잠식하며 휘몰아쳤다.
“끄으으…….”
백효는 새로운 힘에 집어삼켜졌고 그의 눈동자가 검은 마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콰득!
그의 변화에 소청이 재빨리 다가와 머리를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끄…….”
마기로 인해 검게 변해 가던 백효의 눈동자가 소청을 응시했다.
“누가 그냥 두고 볼 것 같아?”
“…….”
푸욱!
“……!”
꼿꼿하게 세워진 소청의 손이 백효의 단전을 꿰뚫었다.
으드득!
소청은 백효의 몸에 깊숙이 박힌 손을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끄아아아악!”
백효의 비명이 사방을 울려 놓았지만, 소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배꼽 아래 세 치.
모든 무인들이 가진 힘의 원천.
으드득!
소청은 백효의 단전을 잡아 뜯어 버렸다.
완전히 몸을 잠식하지 못한 마기가 옥령한기와 함께 빠져나와 허공에서 아스라이 사라졌다.
“끄으으…….”
소청이 손을 놓자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백효가 허물어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을 만큼 다져져 버린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소청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
하지만 감상에 젖을 필요는 없었다.
마천.
세상에 해악을 가져올 자들.
소청은 그저 짐승 떼의 우두머리 중 또 한 놈을 잡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살아난다면 곤란하지.”
소청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손바닥에 기운을 모았다.
퍼억!
꿇어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백효의 머리가 터져 버렸다.
그리고 그의 몸이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자신과 함께 과거로 돌아온 또 다른 귀환자.
“마종…….”
소청이 스산한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창대를 움켜쥐었다.
아직 싸움은 남아 있었다.
중원을 침탈해 온 북해의 종자들…….
“단 한 놈도 남겨 놓지 않겠다.”
파앙!
소청의 신형이 단강구를 향해 쏘아지듯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