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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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20화
219화. 백효, 강을 걷다
모자겸이 백효를 노려보며 투박한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분명 신승과 싸움에서도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신승을 그저 유희거리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개새끼…….’
욕설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겨우 참아 낸 모자겸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일단은 물러나야 했다.
싸우고 싶지만, 승산 없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아직 독 기운이 남아 있으니 그것을 해독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독인가?”
백효가 자욱하게 퍼져 있는 장독의 범위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
순간 모자겸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장독은 중원이나 다른 곳에서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무리 독공을 아는 자라 해도 익숙하지 않을 터였다.
독물들의 사체가 늪에 빠지고 뜨거운 운남의 열기가 그것을 부패시켜 만들어진 독이다.
해약이라고는 운남의 무인들만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쩌저저적!
백효가 손을 내미는 순간 대기가 얼어붙었다.
“재미있는 독이군.”
후두둑.
대기에서 얼어서 바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독은 백효에게 아무런 위협조차 되지 못했다.
꾸욱.
모자겸은 백효를 향해 끓어오르는 호기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무인이었다.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제갈휘문의 부탁이 떠올랐다.
‘기회가 있겠지.’
모자겸은 백효를 노려보다 강물을 향해 훌쩍 몸을 날렸다.
“쯧, 도망치는 건가?”
백효의 들어 올린 손에 하얀 강기의 기운이 서렸다.
신승을 죽였던 옥령강기.
슈가각!
손을 내밀자 한기를 가득히 머금은 기운이 모자겸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자신의 뒤에서 거친 한기의 기운을 느낀 모자겸이 몸을 돌리며 백효가 뿜어낸 기운에 양손을 내밀었다.
쩡!
‘크윽! 제길 대단하긴 하군.’
기운을 잔뜩 둘러 놓았음에도 손바닥으로 한기가 스며들었다.
하지만.
파앙!
모자겸은 막거나 쳐 낸 것이 아니라 백효의 기운을 이용해 허공에서 재도약함으로써 더욱 먼 거리까지 도망쳤다.
“호오?”
오히려 그의 도주를 도와준 꼴이 되어 버린 백효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풍덩!
물속으로 빠진 모자겸이 한참이 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백효는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마주한 단강구의 강폭은 수상비의 경공으로도 쉽게 넘을 수 없을 만큼 넓었다.
백효조차도 경공술을 이용해 단번에 넘는다 자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백효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모자겸이 뛰어든 단강구의 물속에는 장강 연합의 무인들이 숨어 있었다.
모자겸이 그들의 도움을 받아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백효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상에서 이동하는 방법을 경공이라 한다면 물속을 유영하는 방법이 수공이었다.
장강 연합의 무인들은 물속에서만큼은 중원 최강의 실력을 자랑했다.
저항력을 줄이기 위한 어피복(魚皮服)을 입은 그들은 물고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한 장강 연합의 무인들이 숨어 있는 곳은 이 장여 깊이의 물속.
그 어떤 뛰어난 기감으로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이었다.
장강 연합의 무인들은 그곳에서 엄청나게 긴 대롱의 끝을 수초나 부유물처럼 위장해 숨기고 북해의 무인들이 도하하기만을 기다렸다.
“운남의 수공이라…….”
백효는 가늘게 뜬 눈으로 강물을 바라보았다.
모자겸이 수공을 익힌 것이 아니라면 필시 물속에 무슨 준비를 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
그사이 기다란 천리경(千里鏡)으로 강 너머를 살피던 미여령이 백효를 불렀다.
“대공.”
그녀가 건넨 천리경을 받아 든 백효는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강 너머에 열을 갖추고 있는 수천 명의 무인들이 보였다.
“저기로군. 저들이 마지막 격전지로 선택한 곳이…….”
백효가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들의 준비가 은근히 자신을 유혹하고 있었다. 백효는 그들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든지 자신이 있었다.
“넘어와 보란 말이지? 좋아. 얼마나 대단한 준비를 해 놓았는지 궁금하군. 여령, 강을 넘는다!”
“예, 대공!”
미여령은 대답과 동시에 북해의 무인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뒤에 있는 것은 선봉인 설련궁, 그리고 본대인 설화궁의 무인들이었다.
좌측의 한음곡과 우측의 천빙궁이 도착하지 않았으나 그들만 해도 중원 무인들의 수를 압도할 만큼의 전력이었다.
하지만 무인들이 건너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고 이미 정사 연맹의 무인들이 배를 모조리 치워 버린 뒤였다.
“나무를 잘라 길을 만들어라!”
미여령의 말에 북해의 무인들이 단강구 인근의 나무들을 베어 강물에 던졌다.
“한음곡과 천빙궁에 연락을 보내라! 본대가 도하해 적의 본진으로 진격하는 사이 강을 우회해 적을 공격한다.”
“예!”
미여령의 말에 전령이 급히 아직 도착하지 않은 한음곡과 천빙궁에 연락을 띄웠다.
“궁주님! 도하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단강구의 물길 세 곳에 나무를 띄운 징검다리가 만들어졌다.
“도하를 시작한다!”
명령이 내려졌고 설련궁과 설화궁의 무인들이 강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개미 떼가 도랑을 시커멓게 채우는 것 같았다.
“대공, 출발하시겠습니까?”
“…….”
미여령의 말에 백효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북해의 무인들이 강을 건너는 모습을 응시했다.
그사이에 북해의 무인들이 강의 중심에 다다르고 있었다.
피육!
갑자기 강물의 곳곳에서 시커먼 인영들이 솟구쳐 올랐다.
“크악!”
“으아악!”
그들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려 온 장강 연합 무인들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의 공격에 당황한 선두가 물에 빠졌고 동시에 물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으헉!”
물속에서 퍼져 나오는 핏물이 강을 채우고 시신들이 떠올랐다.
“적이다! 물속에 적이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공격으로 인한 당혹감이 북해의 무인들을 덮쳤다.
개중에 뛰어난 고수들이 장강 연합의 무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물의 저항력으로 인해 원래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속도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수십 명의 무인들이 그들이 느려진 틈을 파고들었다.
마치 어딘가에 있다는 육식 물고기처럼 사방에서 달려들어 그들의 몸을 찢어 놓았다.
“저놈들이! 감히!”
강을 건너지 않고 백효의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여령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선두에 있던 자들이 피해를 보자 강을 건너던 북해의 무인들이 주춤하기 시작했고 아직 강으로 뛰어들지 못한 무인들의 진격이 정체되었다.
“과연, 제갈휘문이 우리를 강을 건너도록 만든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군.”
“…….”
얼굴을 일그러뜨린 미여령과 달리 백효의 얼굴에는 그 어떤 당혹스러움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여령, 가자.”
“예?”
“놈들의 계략을 알았으니 이제 부숴 놓아야지. 저들이 자신 있어 하는 물속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려 줘야 하지 않겠나?”
“…….”
백효는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의 일보가 강에 닿았고 무시무시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쩌저저적!
그의 발이 닿은 곳이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발이 내디뎌질 때마다 겨울의 한파가 찾아온 것처럼 강이 얼어 길이 만들어졌다.
물에 뜬 시신이며 나무들이 모조리 얼어붙기 시작했다.
백효는 물을 밟고 달린다는 수상비와 같은 경공 따위를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디디는 곳을 모조리 얼려 버리며 걷고 있었다.
“놈을 죽여라!”
그로 인해 길이 생기려 하자 장강의 무인들이 먹이를 발견한 잉어 떼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촤촤촤촤!
사방에서 쏘아지듯이 헤엄쳐 오는 그들에 의해 수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감히 내 앞에서 수공을 펼치다니…….”
백효는 비웃음을 가득히 머금고 자신을 향해 헤엄쳐 오는 수많은 무인들을 보며 강하게 일보를 내디뎠다.
파학!
거대한 한기가 백효의 손을 통해 뻗어져 나갔다.
쩌저적!
파학!
백효를 향해 솟구쳐 오르려 했던 장강 연합의 무인이 몸이 물에서 반도 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얼어 버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가오던 무인들이 거대한 빙하에 갇힌 것처럼 얼어붙었다.
쿠우우우…….
얼음이 만들어 낸 새하얀 김이 사방을 가득히 채웠다.
장강 연합의 무인들은 경이로울 정도로 강력한 그의 빙공에 공격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멈춰 버렸다.
“여령, 길을 열어라.”
“예, 대공!”
백효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미여령이 나의를 펄럭이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중원 놈들, 모조리 죽여 주겠다!”
솟구쳤다 떨어지는 그녀의 머리가 풀어 헤쳐져 흩날리고 그녀의 손을 통해 한기를 머금은 장력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쾅! 쩌적!
백효만큼은 아니었지만 북해의 최고수인 그녀가 뿜어내는 빙공은 장강의 무인들이 막을 만한 위력이 아니었다.
그리고 미여령이 얼려 버린 장강 무인들을 받침 삼은 북해의 본궁인 설화궁의 무인들이 전투에 뛰어들었다.
“끄악!”
“으악!”
승기를 잡으며 적을 유린하던 장강 연합에 피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북해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군사님!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강의 전투를 살피던 전령이 제갈휘문에게 보고를 했다.
“음…….”
제갈휘문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대단한 빙공을 가지고 있다지만 강을 통째로 얼려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해라!”
제갈휘문의 말에 무인들의 뒤에 숨어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것은 다름 아닌 방효곤이었다.
“부탁하네.”
“예!”
방효곤의 지시에 수백 대가 넘는 화살이 궁수들 앞에 준비되었다.
찌이익!
그리고 화살이 걸린 시위가 당겨졌다.
거리는 칠백 보.
화살이 날아가기에는 너무도 먼 거리였다.
하지만.
퉁!
방효곤은 팽팽히 당겨졌던 시위를 놓았다.
쐐애액!
화살이 대기를 가르며 쏘아져 나가 선두에서 달려오던 무인을 꿰뚫어 버렸다.
첫발로 적과의 정확한 위치를 가늠한 뒤부터는 엄청난 속도로 화살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열 명이 동시에 화살을 쏘는 듯한 느낌으로 화살이 날아가고 강을 넘어오는 북해의 무인들을 향해 쏟아졌다.
“사백 보! 궁수들 조준!”
쉬지 않고 화살을 날리는 방효곤의 외침과 함께 또다시 시위가 당겨졌다.
“삼백 보! 시위를 놓아라!”
삼백 보라는 거리도 그다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통상 군문에서 사용하는 활의 사거리가 백오십 보를 넘기 힘든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거리였다.
활을 든 궁수가 일반 군병이 아닌 무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투웅!
동시에 놓아진 시위들이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 내었고 화살이 삽시간에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콰콰콰콰!
그리고.
고점에 다다랐다가 낙하한 화살은 곧바로 북해의 무인들을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굳이 조준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수의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크악!”
“으악!”
일부는 날아온 화살을 검으로 쳐 내긴 했으나 일부는 상처를 입고 물속으로 곤두박질 쳤다.
“이 선 준비!”
퉁! 쐐애액!
화살은 적이 가까워 올 때까지 계속해서 쏘아졌다.
그리고.
“이 공자!”
제갈휘문의 부름에 소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창을 잡았다.
“별동대! 적의 중심을 꿰뚫는다!”
소강과 별동대가 근접해 오는 적을 향해 쏘아지듯이 달렸다.
콰아아앙!
소강이 뿜어낸 천뢰충파가 거친 물보라를 만들며 적들을 찢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