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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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82화
세 사람의 정체?
그 말뜻을 깨달은 장천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제 꿈에 나타났던 그 자들 말입니까?”
금포노인, 청의도사, 흑포노인.
매일 자신의 팔을 뜯어내고, 머리를 터트리고, 배에 구멍을 낸 자들. 이가 갈리도록 강했던 자들. 장천운은 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맞아. 언젠가 사부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들이 아닌가 싶네.”
“그래요? 누굽니까?”
“삼십여 년 전, 하늘도 놀랄 절대고수 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네. 그들은 강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
“아무리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정도 고수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군요.”
“사부님 말씀으로는, 그들은 하늘 아래에 자신들의 적수가 자신들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더군.”
정말 광오한 자들이었다.
“게다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모습을 보인 기간도 삼 년이 채 안 되어서, 말을 해도 그들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네. 그 바람에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갔지.”
구양명이 말끝을 흐리며 괴물을 보듯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삼십 년 전에 사라진 사람들을 장천운이 꿈에서 만난 셈이었다.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정말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네. 자네가 어떻게 사라진지 삼십 년이나 된 그 노인들을 꿈속에서 만난 거지?”
그 이야기를 하려면 무 노인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우문각이 기를 쓰고 무 노인을 잡으려 했던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도대체 무 노인의 정체가 뭐기에?
그때 구양명이 세 사람의 별호를 말했다.
“그들을 아는 사람들은 금포노인을 금룡신군(金龍神君), 청의도사는 청산자(靑山子), 흑포노인은 암천신마(暗天神魔)라는 별호로 불렀다고 들었네. 본명은 아무도 모르고 말이야.”
“삼십 년 전이면 지금쯤 모두 죽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또 꼭 그렇지만은 않네. 당시 나이가 오륙십 대였다고 했으니 별 일만 없다면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네.”
살아 있다 해도 나이가 팔구십 대다. 예전보다는 약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때로는 상식을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더구나 절대 경지에 도달한 사람 중에는 육체의 노화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도 있네. 특히 도가나 선가의 사람 중 양생과 관련된 무공을 익힌 사람들은 팔십 세가 넘어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
“그런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이상하겠는데요?”
이제 삼십 대인 줄 알았는데 팔십 살이라고 해봐라. 얼마나 어이가 없겠는가.
“좌우간 중요한 것은, 자네가 그 전설 속의 인물을 꿈속에서 만났다는 거네. 그것도 셋 모두를.”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매일 죽었죠.”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이가 갈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갈아봐야 자신만 손해다.
“그런데 천하제일에 이른 고수들이 왜 갑자기 사라진 거죠?”
“그에 대해선 여러 가지 소문이 있었는데, 사부님께선 강호의 고수들이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 협공했다고 하셨네.”
“강호의 고수들이 협공을 해서 그들을 죽이려 했다?”
“그들이 활동한 삼 년 동안 내로라하는 강호의 고수 수십 명이 소리 소문 없이 그들에게 패했다고 하네. 그때의 패배로 자존심이 상한 고수들이 그들을 협공했을 거라 하셨지. 마제 나극도 그들에게 패한 사람 중 하나네.”
마제 나극조차 패했다고?
도대체 얼마나 강하길래?
“왜 그 사람들이 제 꿈에 나타난 걸까요?”
“나도 그게 궁금해서 미치겠네.”
***
자정이 넘은 시각.
우문각은 서신 하나를 정성들여서 썼다.
받은 이의 이름도, 보내는 이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은 서신이었다.
서신을 다 적은 그는 몇 번에 걸쳐서 접은 다음 가느다란 통에 넣었다. 그러고는 철저히 밀봉한 다음 창문 가로 다가갔다.
창가에는 비둘기 몇 마리가 든 새장이 놓여 있었고, 그 중에서 유난히 하얀 비둘기를 꺼내 다리에 통을 걸었다.
그는 통이 튼튼하게 걸렸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후 창문을 열고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풍운이 몰려오겠군. 진한 피바람을 풍기면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랐거늘…….’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그는 비둘기가 완전히 사라지자 창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는 것이지. 하늘이 원한다면…….’
***
아침이 되자 충격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사마경은 마신총 사건의 조사를 장천운에게 맡겼다.
이제 그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철무와 소연추, 장천운과 초기의 흑월조밖에 없었다. 자신과 함께 구천성을 떠나서 강호로 나갔던 사람들.
심지어 우문각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오히려 우문각보다 구양명을 믿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 방법은 천운이 알아서 하고.”
“일단 경비무사들부터 조사해보겠습니다.”
“좋을 대로 해. 만약 조사를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그게 누구든 잡아넣어.”
지금 상황에서 조사를 방해할 만큼 간덩이가 큰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공손백이나 나극조차도 방해할 수 없으리라.
그 점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예, 소성주.”
“이것 갖고 다녀.”
사마경이 손바닥만 한 황금패를 하나 내밀었다.
[구천령(九天令)]
황금패에는 힘이 넘치는 필체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성주를 상징하는 신물 중 하나로, 성주 외의 누구에게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최고 권위의 영패.
장천운은 마다하지 않았다.
그도 이번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도움이 된다면 쥐구멍에서 대가리를 내민 쥐새끼라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구천무원을 나선 장천운은 벽호당으로 갔다.
마신총 경비는 벽호당에서 맡았다. 마신총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면 경비무사들이 모를 리 없었다.
벽호당주 서호는 마신총 사건을 조사한다며 목에 힘을 주고 나타난 장천운이 영 못마땅했다.
‘꼴도 보기 싫은 놈을 며칠 만에 두 번이나 보는군.’
그도 장천운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소문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직접 상대해보진 않았어도 장천운에 대한 말이 나올 때마다 장로들의 얼굴이 구겨지는 걸 보면 대충 짐작은 되었다.
그래봐야 놈은 대주, 자신은 당주다.
더구나 아들의 손목을 부러뜨렸던 놈 아닌가!
‘흥! 내가 네놈에게 순순히 협조할 줄 알고?’
하지만 장천운이 시작부터 척! 구천금령을 내밀자 찍소리도 하지 못한 서호였다.
“소성주님의 명입니다. 협조해주셨으면 합니다, 당주,”
아들인 서궁이 장천운의 손에 죽었다는 걸 모르는 서호로선 반발할 용기마저 낼 수 없었다.
기껏해야 인상을 쓰는 정도뿐.
“뭘 알고 싶은가?”
“전대 성주님께서 마신총에 안치된 이후부터 어제까지 경비를 섰던 사람들을 알고자 합니다.”
“그거라면 순찰일지에 적혀 있네. 이대주 호궁도에게 물어보면 알려줄 거네.”
서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이…… 친구를 호궁도에게 데려다줘라!”
‘이놈’이라고 하려던 걸 꾹 참았다.
몇 년 전만 같았으면 한주먹거리밖에 안 되는 놈인데…….
‘나도 성질 많이 죽었군.’
그때 장천운이 고개를 쓱 돌리고 쳐다보았다.
서호는 숨을 멈추고, 움켜쥔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뭐…… 더 필요한 거라도 있나?”
장천운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아드님의 죽음에 대해서 애도를 표하는 바입니다.”
“고맙군. 어떤 놈인지 몰라도, 내 아들을 죽인 놈을 잡으면 갈가리 찢어서 기름에 튀겨버릴 거네.”
‘누가 죽였는지 아냐고 물어보고 싶군.’
이렇게 생각하고는 이를 가는 서호에게서 그냥 돌아서는 장천운의 뒷덜미가 이상하게 근질거렸다.
***
마신총 경비는 평소 네 명이 일조로 이루어서 삼조 열두 명이 담당했다.
마신총이 만들어진 후 경비를 선 적이 있는 무사는 총 스물두 명. 책임자는 이대 대주인 호궁도였다.
그런데 호궁도의 말에 의하면 스물두 명 중 열여덟 명은 아직도 벽호당에 남아 있고, 둘은 죽었으며, 둘은 구천성에서 나갔다고 한다.
“성을 나갔다는 자들, 자진해서 그만 둔 겁니까?”
장천운이 다그치듯 묻자 호궁도는 머뭇거리며 말꼬리를 길게 끌었다.
“그게…….”
“지금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죠? 대충 얼버무리다 사실이 밝혀지면 중벌을 받을 겁니다.”
장천운이 싸늘한 눈빛으로 호궁도를 노려보며 협박에 가까운 어조로 다그쳤다. 그 눈빛이 어찌나 살벌한지 호궁도는 잠시도 견디지 못했다.
“사실은…… 자진해서 나간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네.”
“사라졌다?”
“그렇다네. 그래서 우린 두 사람이 그만 둔 것으로 생각했지.”
누구라도 바로 눈치 챌 정도의 핑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호궁도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 다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 사라졌습니까?”
“전대 성주님의 장례를 치른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네.”
“거짓말하면 총사께서 직접 조사할 겁니다. 머리에 충격을 받아서 미치고 싶지 않으면 사실대로 대답하셔야 합니다.”
“사실이네. 믿어주게.”
호궁도는 거짓말을 할 만한 배짱이 없었다. 우문각이 나선다면 거짓말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잘 아는 것이었다.
“그때 사라진 두 사람과 함께 경비를 섰던 사람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죽었네.”
“죽어요?”
“두 사람이 사라진 후 사흘쯤 지났을 때 밖에 나갔는데 시신이 되어서 돌아왔지 뭔가.”
빌어먹을 일이었다. 결국 시신이 실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날, 경비를 맡았던 조원들이 모두 죽었다는 말 아닌가.
둘은 사라지고, 둘은 죽었다? 열흘 차이로?
누군가가 입을 막기 위해서 고의로 죽였을 가능성이 컸다.
“밖에는 왜 나갔습니까?”
“당시 둘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 말에 의하면, 저녁 무렵에 누군가가 불러냈다고 했네.”
“누가 불러냈는지 아십니까?”
호궁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 자도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은 것 같은데, 외곽 순찰을 나갔다가 죽었네. 그래서 더 조사할 수가 없었지.”
‘젠장!’
속이 울컥한 장천운은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호궁도의 말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의 죽음은 고의적인 살해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결과물은 연결고리가 끊어졌다는 게 전부였다.
전문적인 솜씨. 철저한 계획에 의해서 시신 절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지?’
왜 시신을 훔쳐간 거지?
‘혹시…… 비싼 값에 팔아먹기 위해서?’
천궁마신의 시신이라면 엄청나게 비싼 값에 팔릴 것이었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개중에는 일반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물건을 수집하는 자들도 있다. 그들의 동일한 특징은 돈이 많다는 것이다.
아마 천궁마신의 시신을 판다고 하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지불하겠다는 자들이 줄을 설 것이었다.
‘아냐, 돈이 아무리 좋아도 천궁마신의 시신을 훔치는 건 타산이 안 맞아. 목숨을 걸어야 할 테니까.’
***
벽호당을 나선 장천운은 새롭게 율검당 당주가 된 전무궁을 만났다.
몸이 빼빼하고 눈빛이 날카로워서 꼬장꼬장하게 보이는 전무궁은 과거 황궁의 금의위에 몸담은 적이 있었다.
이십 년 만에 감찰과 수사 조직을 맡게 된 그는 눈에서 활기가 넘쳤다.
게다가 당주가 바뀐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율검당의 분위기가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전무궁이 한바탕 뒤집은 지 사흘 만에 벌어진 변화였다.
그가 얼마나 단호하고 매듭을 확실하게 맺고 끊는지 알려주는 반증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 아홉 명이 크게 다치고, 열두 명이 뇌옥에 갇혀서 전력에 손실을 입긴 했지만 대부분이 강극효의 수족처럼 행동했던 구율대원들이어서 실질적인 손실은 크지 않았다.
장천운은 전무궁에게 호궁도의 이야기를 전해준 후 조사를 부탁했다.
“경비무사들이 사라진 날, 마신총 인근에서 벌어진 수상한 일이나 이상했던 점에 대해서 탐문해주십시오. 저희도 사밀령과 백천대의 대원들을 동원해서 최대한 알아보겠습니다.”
전무궁이 소성주파로 분류되긴 해도 성격이 깐깐한 걸로 유명했다. 그가 나서줄지는 장천운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전무궁은 장천운의 고민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히려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신총 부근뿐만이 아니라 성 전체를 조사해야 할 것 같군. 태상호법과 공천도의 살해사건은 잠시 미루고 그 일부터 하겠네.”
어차피 두 호법의 죽음에 대한 단서는 대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우문각이 말한 것 이상의 증거를 찾기 힘든 상황.
답답하던 차에 장천운의 부탁은 그에게 다시 활력을 불어넣었다.
“즉시 조사를 시작하지!”
당장 조사하겠다며 뛰쳐나갈 것 같은 그를 보고 장천운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아 예……. 고맙습니다.”
“가세.”
“지금……말입니까?”
“그럼 내년쯤 갈 건가? 흔적이 다 지워진 뒤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