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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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15화
214화. 성공적인 기습?
“공격해라!”
신승의 외침과 함께 백인회의 무인들이 일제히 비스듬한 절벽을 내달렸다.
산서성의 하곡.
절벽의 상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승과 백인회는 적의 꼬리가 빠져나가는 순간 곧장 공격을 시작했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라! 적을 끌어내야 한다!”
사자후와 같은 일갈과 함께 뻗어진 거대한 일장이 적의 좌측을 터트려 놓았다.
그와 동시에 백인회의 무인들이 북해의 좌측에 포진한 천빙궁(天氷宮)을 향해 들이쳤다.
“적의 매복이다! 방어선을 구축하라!”
천빙궁의 무인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순식간에 진형을 갖추고 매서운 한기를 머금은 검이 백인회를 향했다.
우두둑! 콰앙!
신승을 필두로 한 공격은 단숨에 천빙궁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틈새로 파고들었다.
“감히 중원의 땡중이 죽을 자리를 찾아왔구나!”
벽안(碧眼)의 무인이 신승을 맞아 새하얀 검신을 휘둘렀다.
북해의 여섯 패자 중 하나인 천빙궁주 천우명은 곧바로 응수해 나갔다.
새하얀 검기가 한기를 머금고 신승의 전신 요혈을 노렸다.
하지만 신승의 막대한 내공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십여 초를 교환하기도 전에 천빙궁주가 힘을 잃고 밀려났다.
“궁주님! 저희가 돕겠습니다!”
천빙궁주가 밀려난 자리를 열 명의 사내가 채웠다.
열 개의 검이 만들어 내는 한기의 폭풍이 신승의 모습을 순식간에 감추어 놓았다.
“이놈들!”
일갈을 내지른 신승의 몸에서 은은한 불기가 일어나며 사방에 발자국이 만들어지고 권격이 그의 주위를 가득히 채웠다.
불영보(佛影步)에 이은 나한권.
소림의 무승들이라면 누구나 펼칠 수 있는 나한권이었지만 신승의 주먹을 통해 뻗어져 나온 그것은 어떠한 절기보다도 뛰어났다.
서로 다른 잔상이 내지른 주먹에 검격이 튕겨 나갔고 주위의 적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당황하지 말고 몰아붙여라! 놈은 하나다!”
천빙궁의 무인들이 악착같이 자리를 채우며 밀려들었다.
“신승! 홀로 무리하지 마시오!”
파파팍!
신승의 주위로 뛰어든 멸절사태가 서천보살자를 찢어 내며 암기처럼 날렸다.
“크아악!”
불기를 머금은 염주가 매섭게 적들을 꿰뚫었다.
“고맙네!”
신승은 머뭇거리지 않고 적을 향해 달렸다.
밀려서는 안 되는 싸움이었다.
무조건 죽여야만 하는 싸움이었다.
빼앗김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는 이미 아미파에서 일어났던 혈겁으로 충분히 느낀 바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대해야 했다.
그들은 불가의 제자로서가 아닌 중원의 수호자로서 여기에 있는 것이기에 나찰이 되어 적을 멸해야 했다.
“놈들의 좌우측을 공격해 포위하라!”
신승과의 싸움에서 밀려났던 천빙궁주가 핏대를 세우며 수하들을 지휘했다.
그의 독려로 천빙궁의 무인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신승과 백인회의 퇴로를 막아 갔다.
“신승! 적의 방어가 너무 탄탄하오!”
생각보다 북해의 좌측을 지키는 천빙궁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기습에 당황했을 만도 한데 뚫렸던 적의 방어선이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반드시 천빙궁을 본대로부터 떼어 내야만 했다.
그래야만 태존과 제갈휘문이 맡고 있는 단강구 전선의 부담을 줄일 수가 있었다.
“아직이야! 모두 힘을 내게! 좀 더! 밀어붙여야 하네!”
신승이 기운을 끌어 올리자 황색 가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합장하듯이 모은 손이 떼어지는 순간 수천 개의 장인이 뿜어져 나갔다.
천수여래장(千手如來掌).
천 개의 손이라 불리는 장법이 펼쳐지자 사방이 터져 나가고 천빙궁의 무인들이 피 떡이 된 채 쓰러졌다.
신승이 펼치는 소림의 절학은 가공할 정도였다.
오존이라는 이름이 걸맞을 정도의 무위.
적의 몸에서 튄 피가 그의 황색 가사를 피로 물들이고 찢어진 살점들이 엉겨 붙었다.
“신승! 물러나야 합니다! 퇴로가 막히고 있습니다.”
서천보살자를 암기처럼 쏘아 대고 강력한 일장으로 적의 머리를 바스러뜨리는 멸절사태의 외침에 신승의 시선이 전황을 살폈다.
적과 싸우고 있는 백인회의 무인들 중 일부가 수십 개의 검을 몸에 맞고 쓰러지고 있었다.
더구나 깊숙이 들어오지 않았음에도 적이 후방을 채우며 압박해 오고 있었다.
적을 죽이는 것도 중요했지만 물러나는 것도 중요했다.
그들이 해야 할 싸움은 적을 섬멸하는 것이 아닌 본대에서 떼어 내기 위한 싸움이었다.
“퇴각하라!”
신승은 대력금강장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무인 둘의 머리를 터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렸다.
“적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서둘러 퇴로를 막아라!”
천빙궁주의 외침에 천빙궁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도주로를 차단했다.
“비켜나게! 퇴로를 열겠네!”
쿵!
백인회의 무인들이 좌우로 갈라지자 신승이 거칠게 일보를 내디디며 주먹을 뻗었다.
백보신권(百步神拳).
주먹에 어린 불기가 거대한 주먹으로 변해 방어선을 꿰뚫어 놓았다.
“크아악!”
권기의 영역에 있던 자들의 몸이 무언가에 짓눌려 버린 것처럼 뜯겨 나가고 혈로(血路)가 만들어졌다.
“퇴각! 퇴각하라!”
신승의 외침에 백인회의 무인들이 좌우를 공격하며 빠르게 적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신승은 그들의 퇴로를 지키며 천천히 물러났다.
“망할 자식들이!”
천빙궁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본대에 전령을 보내 피해 상황을 알려라! 나는 놈들을 추격하겠다!”
천빙궁주는 곧바로 신승의 뒤를 쫓았고 그를 따라 대열의 일부가 꼬리를 만들며 달렸다.
* * *
“대공! 좌측 천빙궁의 전갈입니다.”
전령이 거대한 백마차에서 느긋하게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백효를 향해 외쳤다.
“무슨 일이냐?”
“천빙궁에 적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습격한 인원은 약 백여 명! 피해는 이백, 천빙궁주가 적을 추격 중입니다.”
전령의 보고에 백효는 덤덤한 표정이었으나 북해빙궁주 미여령의 얼굴에 은은한 노기가 어렸다.
“적을 추격하고 있다고?”
“예!”
고작 백여 명의 기습이었다.
굳이 추격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이백이라면 그리 큰 피해도 아니었다.
차라리 놈들이 다시 올 때를 대비해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 훨씬 옳은 방법이었다.
설영궁주도 그렇고 이번엔 천빙궁주까지…….
“이놈들이…….”
미여령이 눈살을 찌푸리자 백효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놔두게. 저들도 전투가 일어나지 않아 무료했을 게야. 중원에 들어왔으니 자잘한 전투야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나저나 어떤 놈들이었나?”
“다른 이들은 모르겠으나 노승의 무위로 보았을 때는 정천 오존의 하나인 신승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신승?”
무덤덤하기만 했던 백효가 처음으로 흥미를 드러내었다.
중원의 세력에 대해서는 그간의 정보로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사도 삼위와 정천 오존.
특히나 정천 오존의 최고수였다 알려진 검존 현우자는 마종과 일전을 벌였던 인물이었다.
“신승이 나타났단 말이지?”
무인들 간의 전투 따위는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검존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신승이라면?
“재미있겠군.”
“대공.”
백효가 허리를 세우고 자세를 바로 하자 미여령이 황급히 말했다.
“직접 나서시려는 겁니까?”
“궁금하지 않은가? 정천 오존이라는 자의 무위가…….”
“고작 마천의 세주들에게도 미치지 못할 자들입니다. 제가 직접 나서서 처리하겠습니다.”
“아니. 이것은 나의 작은 유흥거리다.”
“…….”
백효가 뛰어내리자 마차가 멈추었다.
“여령, 중원에 들어왔으니 놈들의 공격이 사방에서 이어질 것이다. 본대는 멈추지 말고 진격해라. 곧장 중원의 심장부를 관통해 무한까지 진격한다.”
“알겠습니다.”
“마궁이 서천맹을 무너뜨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중원의 중심부를 무너뜨린다.”
“예!”
마궁에서 보낸 전서구들이 수차례 날아와 있었다.
이미 사천의 경계를 넘어 서천맹으로 진격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 대부분은 제갈휘문에 의해 조작된 전서구였다.
“습격받은 곳으로 안내하라.”
“예!”
백효가 전령의 뒤를 따라 동쪽으로 곧장 몸을 날렸다.
* * *
“신승, 놈들이 따라오고 있소!”
멸절사태가 뒤를 살피며 말했다.
“뒤쫓는 적의 수는 놈들의 수장을 포함해 일천 명 정도 되는 것 같소!”
“좋네. 적과의 거리를 유지해 이대로 북천맹의 무인들이 매복한 곳까지 이동하세!”
기습은 성공적이었다.
백인회 무인 중 십수 명이 죽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갈휘문이 그들에게 부탁한 것은 북해의 좌측 병력이었다.
그들을 본대에서 떼어 내 섬멸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적이었다.
일천이라는 수가 좀 아쉽기는 했으나 적의 수장이 끼어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승! 검곡입니다!”
하곡의 아래쪽에 위치한 작은 협곡.
적의 본대와 사십여 리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적이 추격을 멈추지 않고 있으니 후속이 오기 전에 섬멸하고 도주하기 충분한 거리였다.
검곡은 제갈휘문이 신승에게 알려 준 첫 번째 격전지였다.
끝이 막힌 거대한 분지.
이미 그곳에는 북천맹의 무인들이 언덕 위에 모습을 숨기고 대기하고 있었다.
“속도를 늦추게. 소규모의 교전을 치러 적이 의심 없이 따라오게 만들어야 하네! 섬멸하지 말고 패퇴하는 듯이 물러나야 하네!”
신승의 명령에 백인회 무인들이 속도를 줄였다.
후미가 벌써 적과 교전을 시작했다.
천천히 끌어들여야 했다.
저들이 오로지 백인회를 잡는 데만 혈안이 되어 주위를 보지 못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분지까지 완전히 끌어들이고 나면 빠르게 적의 후미를 막고 섬멸해야 했다.
현재 단강구에 모여 있는 전력은 무당의 태존과 각파의 원로 무인들.
그리고 서천맹에서 병력을 이끌고 온 대족장 모자겸과 이천의 운남 무인들이 전부였다.
있는 모든 병력을 끌어모아도 오천이 조금 넘는 수였다.
진소청이 적의 후미를 끊어 낸 덕분에 수천의 전력이 줄었다고 하지만 북해 무인들의 수는 여전히 많다.
제갈휘문이 단강구에 수많은 함정을 만들고 있었지만 그대로 그들의 전력과 부딪힌다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더구나 수적 열세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이끄는 자가 북천대공이었다.
신승은 서천맹의 전투 당시 마천의 또 다른 대공이라는 구자겸을 본 적이 있었다.
진소청이 이기기는 했으나 그 강함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무황이나 진소청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지금의 단강구에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어떻게든 수를 줄여야만 했다.
서둘러 자신들을 따라온 일천 무인들을 섬멸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 전투를 준비해야만 했다.
“퇴각하라!”
신승은 백인회의 후방으로 물러나 일부러 모두가 들리게끔 음공을 실었고.
“하압!”
콰앙!
신승의 일장이 협곡의 측면을 때리자 무너진 돌무더기가 추격해 오는 적을 때렸다.
“이런 망할 중놈이!”
선두에 있던 천빙궁주는 돌무더기에 깔린 수하들의 모습에 쌍심지를 돋워 올렸다.
“뭣들 하느냐! 적이 코앞이다!”
천빙궁주가 콧김을 뿜어내며 달려 나오는 모습에 신승이 검단의 협곡으로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