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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213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1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213화

212화. 원산진(遠散陣)의 단점

 

 

 

 

대막혈궁을 떠나온 지 닷새째.

북해빙궁의 선두가 산서성의 경계를 넘고 있었고 원산진으로 포진을 바꾼 이후 설영궁은 북천맹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소청은 숲이 시작되는 곳에 숨어 적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멍청한 새끼. 진법을 책으로 배운 모양이군. 하긴 북해에서는 원산진이 꽤나 쓸 만했겠지. 보이는 건 온통 설원뿐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원산진이 가진 단점을 모르는군.’

기습을 멈추고 적의 움직임을 살피던 소청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원산진이 뛰어난 방어진임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격에는 쉽지 않은 진이었다.

‘이제 곧 숲의 영역으로 접어든다.’

원산진에는 제약 요소가 뒤따른다. 북해처럼 모든 곳이 훤히 보이는 개활지에서는 상관없지만, 숲과 바위가 즐비한 곳에서는 외곽으로 갈수록 통제력이 약해진다.

그리고 통제를 잃어버린 원산진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질 것이다.

나무와 바위로 가려져 전체를 보지 못하고 바로 옆의 동료만 보고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설영궁이 펼친 원산진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넓어지고 있었다.

전면전을 앞둔 소청으로서는 이보다 좋은 상황은 없었다.

소청은 그들이 숲의 영역으로 들어설 때를 기다렸다.

‘아깝군. 비마대가 있었다면 전투 없이 암살만으로도 충분히 적의 수를 줄여 놓을 수 있었을 텐데.’

소청은 그들이 숲으로 발을 들이밀기 시작할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별동대가 숨어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대장님. 좀 더 물러나야 할까요?”

악이군의 물음에 소청이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의 위치가 좋아. 놈들이 숲으로 완전히 접어들 때까지 기척을 지우고 숨어 있어.”

“예.”

사방에서 은신해 있는 별동대의 무인들.

전투가 머지않았다.

적의 주력이 아닌 이상 설영궁의 외곽을 맡고 있는 무인들은 별동대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공격이 시작되면 입구부터 깨부수는 것보다는 그들의 중앙에서 나타나는 편이 훨씬 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때마침.

찍찍.

설영궁의 선두가 별동대가 은신한 곳을 스쳐 지나갈 때쯤 적서와 함께 은수가 도착했다.

‘왔군.’

은수가 적서를 보낸 것은 자신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기 위함일 것이다.

드디어 북천맹의 무인이 도착했다.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점이었다.

-패월.

-고생했다. 북천맹 무인들의 위치는?

-후방에 대기 중에 있습니다.

-좋아. 북해의 본대와 설영궁은 얼마나 떨어졌지?

-오면서 확인했을 때는 약 백 리 정도입니다.

-됐다. 그 정도면 충분해. 북천맹의 지원대에 명령을 하달해라.

-…….

-우리가 중심에 소요를 만들겠다. 적의 중심이 공격당해 당황하는 사이 곧바로 지원대는 횡진으로 외곽의 적부터 섬멸해 들어온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린 소청은 곧바로 악이군을 불렀다.

-별동대를 준비해라. 적의 후미가 숲으로 완전히 들어오면 공격을 시작한다.

-예!

악이군이 은밀하게 별동대를 향해 움직였다.

자신을 포함한 별동대 열 명.

은수가 이끌고 온 북천맹의 전력 일천.

적의 수는 아직 삼천여에 달했다.

넓게 퍼트려져 있으니 적들이 결집하기 전에 중심을 무너뜨려 사기를 꺾어 놓아야 했다.

별동대의 무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설영궁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다음 전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하루가 지났으니 신승과 혁련휘가 좌측과 우측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빠르게 적의 핵심 전력을 무너뜨리고 신승과 합류해야 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설영궁이 이동한 삼분의 일 지점.

차자작!

소청이 모습을 드러내며 단창을 늘렸다.

때아닌 거친 쇳소리에 근처를 지나고 있던 설영궁의 무인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들의 눈에 떠오른 것은 의아함. 그리고 당황스러움으로, 다시 놀람에서 다급함으로 바뀌었다.

소청은 그들을 향해 싸늘하게 웃었다.

“죽여.”

파학!

소청과 눈이 마주쳤던 설영궁의 무인들은 무어라 외치기도 전에 나타난 별동대의 무인들에 의해 목이 잘렸다.

그리고.

파앙!

소청의 몸이 적진의 중심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차아악!

달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곧장 전방을 향해 휘둘러진 창극이 긴 호선을 만들고 범위 내에 있던 무인들의 목이 잘려 나갔다.

‘원산진의 중심까지는 이백 장. 단숨에 돌파한다!’

넓게 펼쳐진 설영궁의 무인들은 산개하여 중심으로 쏘아져 나가는 소청과 별동대의 무인들을 뒤늦게 쫓아오기 시작했다.

원산진이 가진 장점처럼 후방이 응집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관계없다.

지금의 별동대에게는 딱히 진형이라는 것이 없었다.

자신이 정한 노선을 따라 곧장 달리며 적을 죽이는 것 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떠올리지 않았다.

“막아라!”

소청의 앞으로 무인들 수십이 겹겹이 모여들어 감싸 오며 방어막을 구축했다.

“흥!”

소청은 달리는 속도를 더해 창대를 거칠게 집어 던졌다.

쐐애액! 콰드드득!

창이 쇠뇌처럼 쏘아져 나가며 십수 명이나 되는 적을 꿰뚫고 지나갔다.

“멈추지 마! 중심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

만들어진 통로.

그 사이를 빠져나간 소청은 아름드리나무에 박힌 창대를 뽑자마자 원을 그리듯이 휘둘렀다.

후웅!

반월형의 강기는 눈에 보이는 영역만큼의 세상을 반으로 갈라내었다.

나무와 함께 베여 나간 무인들의 피가 사방에 뿌려지고 순식간에 부채꼴 모양으로 피의 공터가 만들어졌다.

“끄아악!”

때마침 후방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는 전투의 향방을 결정지었다.

북천맹의 무인들이 전투에 돌입해 적을 죽이며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소청과 별동대가 만들어 낸 소요로 인해 중심을 향해 몸을 돌린 설영궁의 무인들은 뒤를 공격당했을 것이다.

통제력을 잃은 적은 당황했을 것이고 당황은 피해를 만들어 낸다.

‘좋아!’

전투는 애초의 계획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휘하는 자가 파악하지 못한 단점은 배가 넘는 수의 장점을 살릴 수 없을 것이다.

파악!

지면이 파헤쳐지고 소청의 신형이 순식간에 적을 향해 다가갔다.

충분히 적에게 모습을 보여 줘야 했다.

적들의 시선과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공격을 시작한 북천맹 무인들의 흔적조차 잡지 못하도록.

그리고 점차 그들은 중심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멀리 소란을 듣고 겹겹이 둘러싸 방어진을 만들어 낸 원산진의 중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별동대! 산개!”

소청의 외침에 별동대의 무인들이 부챗살이 펼쳐지듯이 산개하며 적들의 방어선을 파고들었다.

콰앙!

달리는 그대로 적을 치고 나가는 파괴력은 전장의 기마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차근차근 적을 죽였을 때보다 피해는 적겠지만 적이 느끼는 압박감과 두려움은 극에 달할 것이다.

어차피 별동대의 목적은 적의 중심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돌파하며 죽여 온 적은 수백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일직선으로 중심까지 달려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적을 섬멸하는 것은 북천맹의 무인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중심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주지!’

소청은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지면을 밟고 솟구쳐 올랐다.

단전에서 피어오른 푸른 불꽃이 그의 전신으로 퍼져 나가고 창대로 이어졌다.

건월식 만월(滿月).

푸른 달이 고개를 쳐들어 올린 설영궁의 무인들을 향해 쏟아졌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지축을 뒤흔들고 숲의 모습을 뒤바꾸어 놓았다.

만월이 만들어 낸 위력에 반경 십여 장이 초토화되고 충격파와 함께 만들어진 거대한 풍압은 수십 장을 뻗어 나갔다.

단 일격.

비록 새롭게 만들어진 ‘어울림의 태극’이 담은 모든 힘을 쏟아붓지는 않았으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소청이 가한 일격은 적의 사기를 강제로 꺾어 버렸다.

휘이이이…….

공격을 끝낸 소청이 창대를 늘어뜨리고 설영궁의 중심에 다가서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네, 네놈은 뭐지?”

설영궁주 금용우는 몇 겹의 방어선 안에서 소청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 진소청.”

“진소청……. 뭐?! 진소청이라고?”

금용우의 눈이 부릅뜨였다.

그의 눈동자에 떠오른 것은 놀람을 넘어선 두려움.

그 대단한 대공 구자겸을 무너뜨리고 마궁의 주인 혈승까지 죽여 버린 그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어째서 네놈이…….”

금용우는 그가 이곳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서천맹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아니면 북천대공과의 전투를 위해 더 늦게 움직이리라 생각했다.

무릇 강자들이 그러했으니까.

급이 맞지 않는다.

더구나 진소청뿐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중심으로 파고든 이들 중 호락호락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곁에서도 서너 명의 무인들을 창대에 꿰어 내고 있는 무인이 활개를 치고 있지 않은가?

“네놈이 어째서 이곳에 있냔 말이다!”

설영궁주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악다구니를 썼다.

“왜, 있으면 안 돼?”

“이, 이놈…….”

“너희들을 대막으로 끌어들일 때부터 계획되어 있었어.”

“끄, 끌어들였다고?”

“그래.”

“설마…… 빙마동은…….”

“다 죽였지. 그 성성이 새끼들.”

“…….”

순간 설영궁주는 ‘아!’ 하는 탄식을 흘렸다.

함정이다.

놈들은 함정을 파 두고 자신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이 있었다.

전령, 전령이 설영궁이 습격받았다는 것을 본대에 알릴 것이다.

지원군이 온다면…….

“어이, 설영궁주. 혹시 지원군 따위는 기대하지 마라. 전령들은 이미 다 죽었을 테니까.”

소청은 적의 전령을 차단하기 위해 설영궁과 북해의 본대의 사이로 소강과 방효곤을 보냈다.

“난 말이야, 생각보다 얍삽하거든.”

소청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지어졌다.

“너희들은 절대로 중원을 넘봐서는 안 됐어. 늘 그랬듯이 북해의 동토에 처박혀 살았어야 했어.”

우우웅!

소청이 양손으로 창대를 잡고 지면을 끌듯이 양발을 넓게 벌렸다.

“놈을 죽여라! 막으란 말이다!”

설영궁주가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원산진에 모인 정예들이 소청을 향해 몸을 날렸다.

소청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푸른 불꽃이 그의 전신에서 타올랐다.

축의 묘리를 사용한 기운의 어울림. 그리고 작은 힘으로 더 큰 효과를 만들어 내는 신의 묘리.

무황을 찾아가기를 잘했다.

내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전처럼 빠져나간 내공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다.

비고 나면 곧바로 다음 혈의 기운이 스며들듯이 단전을 채웠다.

마치 물이 흐르듯이…….

‘중심만은 확실하게 부순다.’

소청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설영궁의 무인들을 보며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머금었다.

창대를 돌려 뒤로 잡은 소청이 발을 굴렀다.

파앙!

소청의 몸이 폭발하듯이 쏘아져 나갔다.

창대가 궤적을 만들며 춤을 추었고, 메뚜기 떼처럼 그를 향해 달려들던 설영궁의 무인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창대가 휘둘러질 때마다 다가서는 모든 것을 부숴 놓았다.

강력한 힘을 머금고 있음에도 마치 춤사위처럼 아름다웠다.

몸 안에 자리 잡은 내공만이 어우러진 것이 아니라 그의 창술 자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변해 있었다.

“허, 정말 대단하군.”

악이군은 자신도 모르게 싸움을 멈추고 멍하니 소청이 펼쳐 내는 초식들을 바라보았다.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강맹하다.

창이 아니라 마치 소청의 손에 잡힌 무희의 천처럼 아름다웠다.

“악 공자!”

멍하니 감탄하던 악이군을 향해 날아들던 공격을 승혜가 차단하며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전장입니다. 정신을 놓지 마세요!”

“그래야 하는데…… 저건 도무지 감탄을 안 할 수가 없어서…….”

창으로 펼칠 수 있는 모든 초식들이 그곳에 있었다.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잔인하게 적을 섬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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