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2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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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208화
207화. 빙마동, 무너지다
“이제 곧 하곡(河曲)이야! 슬슬 준비하세!”
소청의 말에 혁련휘가 고개를 끄덕이고 섬뢰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곡.
대막과 산서성이 만나는 교차점이자 길목인 곳, 소청이 빙마동의 무덤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미리 제갈휘문에게 연통을 보냈으니 지금쯤이면 세작들에 대한 작업이 끝났을 것이다.
초사의 연락에 따르면 세작 소탕의 마지막 작업을 맡은 것은 은수였다.
그의 도착은 서량과 빙마동의 무인들에게 죽음의 신호가 될 것이다.
‘남은 것은 사백여 명. 얼마 되지 않는군. 소강이 빙마동주와 싸우는 동안 단숨에 정리한다.’
소청은 별동대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소강이 서량을 데리고 빠지는 순간 적을 섬멸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산서의 경계에 다다르는 순간 적서가 나타났다.
소청의 눈동자에 파란 불꽃이 어렸다.
“소강!”
소청은 몸을 돌려 맨 후미에 있던 소강을 뛰어넘었다.
적을 섬멸할 때였다.
“네놈…….”
자신의 머리 위를 날아가는 소청의 모습에 서량의 눈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콰아아앙!
소청의 창대에 머금어진 거대한 기의 구체가 빙마동의 무인들을 향해 떨어졌다.
“크아악!”
마치 포탄이 터진 것처럼 지면이 폭발했고 충격파에 휩쓸려 버린 빙마동의 무인들이 비명과 함께 육편이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뇌령도문의 무인들과 별동대가 빙마동의 무인들을 둘러쌌다.
대열에서 떨어진 것은 서량 하나뿐이었다.
“이노옴!”
서량이 분기에 가득 찬 모습으로 몸을 돌려 소청을 향해 쌍장을 뻗었다.
쿠아아아!
응축된 극음지기가 맹렬하게 쏘아져 나왔다.
휘리릭!
창대를 돌려 뒤로 잡은 소청이 서량이 뿜어낸 장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쩌어어엉!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부서진 극음지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그 주위의 풍경을 하얀 설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크윽…….”
서량은 두 걸음이나 물러나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눈에 보이는 사내, 진소청.
서량의 극음지기가 실린 장력을 맨손으로 튕겨 버린 그는 한 치의 물러남도 없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누가 봐도 서량이 밀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어떻게?”
서량은 눈을 부릅뜨고 소청을 바라보았다.
“네 상대는 내가 아니다.”
소청의 싸늘한 한마디가 서량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자신의 장력을 피해 도망 다니던 놈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무엇이란 말인가?
펄럭!
소청은 서량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피풍의를 벗어 소강을 향해 던졌다.
진기를 머금은 검은 피풍의가 서량을 넘어 소강이 잡기 편하게 날아갔다.
“형님?”
“극음지기를 어느 정도 막아 줄 게다.”
“…….”
“놈이 가진 극음지기만 조심하면 네가 훨씬 강하다.”
소강은 멀뚱히 소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청이 씨익 하고 웃었다.
“믿겠다. 다치지 마라.”
“…….”
나지막하게 몸을 돌리는 소청의 목소리가 소강의 귓가를 맴돌았다.
믿겠다.
제 형에게 직접 들은 그 한마디가 그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고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
“예!”
소강이 힘차게 대답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와 소청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별동대!”
소청의 외침이 전장의 모든 곳까지 울려 퍼져 모두의 전의를 깨워 놓았다.
그리고 창극을 지면으로 향하게 한 그의 입을 통해 잔인한 한마디가 뱉어졌다.
“죽여.”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와아아!”
소청이 천천히 걸음을 떼자 빙마동을 포위했던 뇌령도문의 무인들과 별동대의 무인들이 엄청난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콰앙! 쩌어엉!
사방에서 장력이 폭발하고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보인이 뿜어낸 와류의 천왕삼권이 그 중심에 회오리를 만들고 악이군의 창이 적의 몸에 수십 개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
옥명자는 쉬지 않고 매화를 그려 내었으며 매화가 부서진 자리에 서문중걸의 검격이 빠르게 스쳤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전쟁, 아니 학살이 시작되었다.
으드득!
죽음을 미리 예감했던 백괴는 별동대의 무인들을 향해 모든 힘을 끌어 올려 금강섬모를 던졌다.
한기를 머금고 사방으로 뿌려지는 그의 모침(毛針)은 빙마동의 무인들까지 죽였지만.
이젠 중요하지 않았다.
백괴는 빙마동의 어느 누구도 생존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 자식들이!”
소청이 자신의 공격을 막은 것에 잠시 멍해져 있던 서량이 지독한 한기를 뿜어내며 움직이려는 순간 예리한 기운이 그의 머리를 노려 왔다.
쩡!
“……!”
검은 피풍의를 두르며 자신을 바라보는 약관의 사내.
산서까지 오는 동안 그 후위를 맞으며 자신을 공격했던 소강이었다.
소강이 한 손으로 든 창을 곧추세우며 서량을 향해 말했다.
“어딜 가는 거냐.”
“…….”
“네 상대는 나다!”
파앙!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면이 파헤쳐졌고 사라진 소강의 신형이 서량의 측면에 나타났다.
“이놈이!”
쩌어엉!
주먹으로 후려친 창대에서 거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콰아아앙!
첫 번째 천뢰충파!
“크윽!”
한기를 가득히 담았으나 전해지지 못했다.
소강의 천뢰충파가 서량의 주먹에 실린 한기를 날려 버렸다.
“이런 개자식!”
비틀거렸던 서량이 주먹에 한기를 머금고 소강을 향해 날렸다.
쩌엉!
재빨리 창대를 들어 주먹을 흘리려 했던 소강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에 다음 공격을 이어 가지 못했다.
극음지기가 실린 주먹의 반탄력이 창대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팔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슈욱!
갑자기 서량의 몸이 쭉 하고 늘어나 소강의 측면으로 다가왔다.
서늘한 한기가 옆구리를 통해 느껴져 왔다.
‘쳇!’
창대를 휘두르기에는 늦어 버린 소강이 피풍의를 잡아당기며 진기를 주입했다.
쩌어엉!
진기를 주입한 혈잠의 보포는 강철보다 단단했다.
서량의 주먹이 피풍의를 때렸고 소강의 몸이 쭉 하고 뒤로 밀렸다. 일합을 시작으로 둘의 공방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소강은 일보월하를 펼치면 서량이 그의 잔상을 뒤쫓는다.
직접 맞부딪친 서량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세워져 훑어 오고 장력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차디찬 한기가 뼈마디까지 전해져 왔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서량으로서도 소강이 잡힐 듯 잡히지 않자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공격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으하압!”
서량이 온 힘을 다해 기운을 펼쳐 내자 그의 주위에 겨울이 찾아온 것처럼 허연 서리가 맺혔다.
파앙!
소강은 다급히 한기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무려 십여 장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형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소강은 떨어진 채로 서량을 노려보았다.
마치 눈보라가 치듯이 그의 몸 주위에 퍼진 한기의 영역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서량의 양손이 펼쳐지는 순간 수십, 아니 수백 개의 암기가 허공에서 만들어졌다.
창이 아닌 암기.
대기 중의 수분을 얼려 만들어 낸 것이다.
파하하핫!
그가 손을 뻗자 수백 개의 암기가 허공에 떠올랐다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안에 실린 한기가 세상을 허옇게 얼려 놓았다.
소강은 재빨리 두 번째 태극을 만들어 창대를 회전시켰다.
창대의 궤적이 잔상을 만들고 그 회전력이 갈수록 더해져 한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쿠우우우…….
창대의 회전으로 소강이 있던 자리에 공진이 만들어졌다.
태극으로 만들어 낸 태월식은 이전보다 훨씬 강한 힘을 발휘했다.
수백이 넘는 얼음 비수가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우읍!’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한기가 소강의 전신을 짓눌러 왔다.
“흐아압!”
소강은 태월식에 빨려든 한기에 천뢰충파를 심었다.
쩌어어어엉!
폭발과 함께 한기가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쩌저적. 쩍쩍.
하지만 모든 한기를 떨쳐 내지는 못했다.
소강의 옷에 허연 서리가 맺히고 금세 얼어붙기 시작했다.
‘젠장!’
콰앙!
빙마동의 괴인들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반 이상이 죽어 나갔다.
이미 수적으로도 우위에 있었던 뇌령도문의 무인들은 손쉽게 그들을 죽여 나갔다.
특히나 별동대 무인들은 가공할 위력을 선보였다.
굳이 소청과 혁련휘가 나서지 않아도 그들만으로도 충분한 싸움이었다.
“크으윽!”
황보인의 주먹과 부딪혔던 백괴가 서너 걸음이나 밀려나며 신음을 토했다.
황보인의 주먹이 만들어 낸 와류가 그의 극음지기를 부수고 주먹을 뒤틀어 버렸다.
그의 주먹에 금강섬모가 가진 방어력이 무너진 것이다.
살갗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졌다.
“이노옴…….”
백괴가 핏기 서린 눈으로 황보인을 노려보았다.
이길 수 없다.
죽음을 각오한 싸움이었음에도 상대가 너무 강했다.
‘한 놈이라도…… 단 한 놈이라도 함께 데려가 주마!’
백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극음지기를 끌어모아 금강섬모를 향해 뿜어내었다.
그의 몸에 있는 모든 털은 암기가 되어 세상을 뒤덮을 것이다. 모두 죽일 순 없지만 최대한 많이 죽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금강섬모를 발출하려는 순간 기이한 움직임이 그의 눈동자에 그려졌다.
슉!
하얀 도포를 입은 사내, 옥명자였다.
그리고 그의 가슴이 꾹 하고 눌리는 충격이 전해졌다.
쩌적, 쩌저저적!
“……!”
잘려 나갔다.
하나의 상처가 수십, 수백으로 늘어나며 그의 몸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그의 가슴에서 시작된 검격의 상흔이 거대한 매화를 만들었고 피가 뿜어져 붉게 물들었다.
축의 묘리에 따라 펼쳐진 화산의 매화검이었다.
백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제법이군.”
그 모습을 본 소청이 옅은 감탄성을 내었다.
전투는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빙마곡은 전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 싸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소청이 고개를 돌렸다.
“어?”
그의 눈동자에 비친 소강의 모습.
극음지기에 의해 허옇게 얼어붙고 있는…….
“이런 썅!”
소청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그가 나서려는 순간, 혁련휘가 옷자락을 잡았다.
“놔!”
“기다려. 아직 싸우고 있잖아. 믿고 맡겨.”
“…….”
소강은 자신의 몸이 얼어붙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기는 그의 옷부터 얼어붙게 했고 점차 그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피마저 차갑게 식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누가 이대로 끝낼 줄 알고?’
소강은 멈출 수가 없었다.
형이 맡긴 첫 번째 임무이자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싸움이었다.
절대 질 수가 없었다.
소강은 곧바로 세 번째 태극을 만들어 온몸으로 돌렸다.
우우우웅!
기운이 단전을 채우고 사지백해를 흐르자 그나마 움직임이 편해졌다.
시간이 흐르면 좋지 않았다.
몸이 완전히 얼어 버리기 전에 결착을 보아야만 했다.
‘형님의 피풍의…….’
소강은 발을 굴렀다.
우드드드.
얼어붙었던 옷에서 얼음이 깨어졌다.
파아앙!
이전보다 느려진 움직임이었지만 충분할 것이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소강은 서량의 전면으로 다가갔다.
그의 주먹이 한기를 머금고 뻗어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화악!
소강은 곧바로 등 어림에 메었던 피풍의를 끌러 펼쳤다.
쩌어엉!
서량의 주먹이 극점에 다다르는 순간 피풍의가 뿜어져 나오는 한기를 감쌌다.
그리고.
우우웅!
소강의 창대가 그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앙!
세 번째 천뢰충파가 극음지기에 단련된 그의 금강섬모를 헤집고 육신을 파고들었다.
서량의 옆구리가 짐승이 뜯어 먹은 것처럼 찢어졌다.
“크아악!”
서량이 비틀거리는 순간.
네 번째 태극을 머금은 소강의 창대가 원을 그리며 되돌아왔다.
쩌어억!
서량의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기우뚱, 털썩…….
머리를 잃은 서량의 몸이 쓰러졌고 모든 기운을 다 써 버린 소강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소강!”
소청이 날 듯이 달려왔다.
소강의 몸에 남은 한기가 그의 몸을 서서히 얼려 가고 있었다.
“이런 멍청이!”
소청은 다급하게 단중의 화기를 운용해 소강의 몸에서 한기를 몰아내었다.
“헤헤, 형님……. 이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