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8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81화
마신총 중앙에 도착한 사람들은 석 자 높이 대 위에 놓인 석관을 보고 숙연해졌다.
연꽃문양이 가득 새겨진 그 관 안에 천하를 질타했던 천궁마신 사마중천이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
사마경은 먹먹한 가슴을 다스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아버지, 미안해요. 제가 철이 없었나 봐요. 하지만 아버지도 잘못한 것이 많아요. 왜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거예요? 힘들다고, 조금만 참아달라고. 딸에게 그 정도 말도 못해요?’
속으로 가슴에 맺힌 말을 쏟아냈다.
‘바보같이…… 왜 독에 당한 것도 모른 거예요? 아무리 괴상한 독이라 해도 아버지라면 알아챘어야죠. 진짜로 저를 걱정했다면 살아서 지켜줬어야죠.’
그렇게 원망도 해보았다. 아무리 그래봐야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한바탕 원망의 말을 쏟아내고 나면 가슴이 조금 풀릴 줄 알았거늘, 오히려 더 축축하게 젖는 듯했다.
‘제가 꼭 범인을 밝혀낼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사마경은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그제야 가슴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관을 열어라.”
우문각이 명을 내렸다.
천경전 무사 중 둘이 초롱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석관의 덮개를 잡았다.
묵직한 석관의 덮개가 천천히 들리면서 석회 냄새가 피어났다.
사람들의 모든 눈이 석관 안으로 집중되었다.
정말 사마경의 말대로 천궁마신의 시신에 증거가 될 만한 흔적이 남아 있을까?
남아 있다면?
공손백은 공손백대로, 나극은 나극대로 바쁘게 머리를 굴려댔다.
잠깐 동안 극에서 극을 달리는 추론과 대책이 수십 가지나 떠올랐다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두 무사가 석관의 덮개를 들고 옆으로 비켜났다.
그리고 곧……. 모두가 얼이 빠졌다.
“헛!”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 이런…….”
“맙소사…….”
공손백과 나극조차 넋이 반쯤 빠진 표정으로 석관 안쪽을 쳐다보았다.
“아버지이이이이이!”
사마경이 충격을 참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석관이 텅 비어 있었다.
천궁마신의 시신이 사라진 것이다.
***
-전대 성주의 시신이 사라진 일에 대해선 당분간 비밀에 부친다.
마신총에 들어간 사람들은 그렇게 합의를 보았다.
사람들은 사마경이 거부할까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그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천궁마신의 시신이 사라진 사실이 알려지면 강호가 뒤집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강호의 호사가들은 재밋거리로 치부하며 온갖 소문을 만들어내겠지.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이 재밋거리로 떠도는 게 싫었다.
마신총을 나온 사마경과 주요 간부들은 구천대전으로 돌아갔다.
다른 간부들에게는 거처로 돌아가서 기다리라는 명이 내려졌다. 간부들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자 별 다른 토를 달지 않고 거처로 돌아갔다.
구천대전으로 돌아간 사마경은 의자에 몸을 묻고 입을 꾹 다문 채 허공만 노려보았다.
구천대전까지 어떻게 왔는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텅 빈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로 가득 차있는 듯했다.
그녀만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공손백과 나극조차도 평소와 달리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천궁마신의 시신이 사라지다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공황상태가 되다시피 했다.
“누군가가 침입해서 성주의 시신을 빼돌린 것 같네.”
“대장로,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시신을 빼돌린단 말입니까?”
“본 성에 사악한 뜻을 품은 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시신을 건드리겠소? 어떤 놈인지 몰라도 반드시 잡아서 사지를 잘라 죽여야 하외다!”
“이 공손백도 이번 일만큼은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속마음은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분노를 표출하며 이를 갈았다.
그때까지도 사마경은 격정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장천운은 암암리에 진기를 발출해서 그녀의 심기가 다치지 않도록 보호했다. 하지만 혼란스런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시신이 사라지다니.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시신을 훔쳐갔단 말인가?’
그때 사마경이 웅얼거리듯 말했다.
“천운, 아버지가 살아나셔서 자신의 발로 걸어 나가시진 않았겠지?”
“예, 소성주.”
죽은 자가 제 발로 걸어 다니는 일은 전설이나 설화에서 나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니……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오래 전에 사라진 기괴한 대법 중에 연혼대법이란 것이 있다고 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에게 주술로 혼을 불어넣어서 육신을 되살리는 아주 사악한 대법.
그래봐야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어서 존재 자체도 알 수 없지만.
혹시 총사라면 알지도…….
“그럼 누가 아버지의 시신을 빼돌렸을까? 왜?”
“누군지 모르지만 반드시 찾아내야만 합니다.”
“찾을 수 있을까?”
“천하를 모조리 뒤져서라도 찾아내야죠.”
“그래, 그래야지.”
사마경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허리를 세웠다.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지만, 표정은 어찌나 싸늘한지 눈 안에 눈물이 맺힌 채 얼어붙어서 얼음구슬이 붙어 있는 듯했다.
“내 맹세하건데, 아버지 시신에 손을 댄 자는, 그게 누구든 절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토막토막 나직하게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모두들 가슴이 서늘해졌다.
공손백과 나극도 입을 꾹 다문 채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설마 사마중천이 살아 있는 건 아니겠지?’
‘분명 황사중이 죽음을 확인했다고 했는데…….’
참으로 미칠 노릇이었다.
우문각은 입을 꾹 다문 채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군.’
가장 혐의점이 짙은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공손백과 나극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표정을 봐선 아무 것도 모르는 듯했다.
정말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굳이 모른 척할 사람들이 아니거늘.
‘차라리 이 기회에 사마경을 제거하려고 했겠지.’
그렇다면 누가, 왜 시신을 빼돌렸단 말인가?
‘분명 우리들이 모르는 뭔가가 감추어져 있을 거다.’
***
고즈넉한 정자 안.
장산이라는 중년인과 칠순 노인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마신총에 들어갔습니다.”
“그럼 관이 비어있다는 걸 알았겠군.”
“예, 노야.”
“예상보다 너무 빨리 알아냈어. 대법이 완성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거늘…….”
얼굴이 온통 쭈글쭈글한 노인, 동방 노야라 불리는 노인은 그러잖아도 주름이 가득한 이마를 찌푸리고 찻잔을 들었다.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이라 하더니…….”
옆에서 보고를 올린 장산은 말없이 앉아서 다음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곧 노인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파천회는 어떤가?”
“생각지 못한 피해를 입긴 했습니다만, 어르신의 예상에서 크게 어긋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그래도 회주께선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입니다. 서문 선배께서 자숙하고 있는 데도 별 다른 말씀이 없으십니다.”
“허허허, 그 친구도 화가 났겠지.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움직여서 큰 피해를 입었으니…….”
“그리고 무림맹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보다 오래 참았어. 무림맹이 그토록 오래 참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야.”
“그만큼 구천성에 다한 두려움이 컸다는 뜻이겠지요.”
“그랬겠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이 그들의 가슴에 똬리를 틀고 있었을 거다. 워낙 철저히 당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자신감이 생긴 모양입니다.”
“아마 사마중천이 존재했다면 무림맹이 힘을 합쳐도 승률이 삼 할을 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이제는 승률이 오 할이나 되니 욕심을 낼 만도 하지.”
“저희가 한팔 거든다면 칠 할까지 올라갈 겁니다.”
끄덕끄덕.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인 노인은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하늘이 무척 맑군. 예감이 좋아.”
담담히 미소를 짓던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아, 그 녀석은 어떻게 지내고 있던가?”
장산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사마경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장천운입니다. 실력도 구천성에서 능히 십위 권 내에 들 정도로 강해졌다고 합니다.”
“후후후, 자질 하나는 정말 대단한 놈이었지. 내가 그놈의 능력을 처음으로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사마경과 너무 가까워지면 나중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어쩔 수 없지. 그 또한 그 녀석의 운명인데 어쩌겠나?”
순간적으로 흔들렸던 노인의 눈빛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
장산은 그에 대해서 말하려고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포기했다.
‘그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자. 지금은 말씀 드려봐야 소용없는 일이니…….’
그때 노인이 고개를 내리고 말했다.
“장산, 무덤 속이 비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들도 수상하게 생각할 거다. 어쩌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움직일지도 모른다.”
장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그들’이 누굴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도.
“그자들이 움직이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겠군요.”
“그들은 구천성이 움직이는 걸 지켜본 뒤 움직일 거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러겠지. 아무래도 우리 역시 계획을 조금 앞당겨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계획을 진행시켜라.”
장산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마침내 십여 년을 기다려온 명령이 떨어졌다. 최소한 대법이 완성된 후로 예상했거늘.
“예, 노야.”
76장: 天外(천외)의 절대자들
구천성 전체가 침묵에 짓눌렸다.
대폭풍이 몰려올 전조라도 되는 것처럼.
무덤이 빈 충격은 너무나 엄청나서 폭발 직전의 암투마저 잠재웠다.
사마중천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구천성을 농락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공통의 적.
내부에서 갈등이 있더라도 외부 문제와 부딪치면 함께 상대해야 한다.
힘을 합치지 않으면 구천성 자체가 위험해진다.
사마경은 복수보다 부친의 시신을 되찾는 게 더 급했다. 아니 복수를 하려면 부친의 시신을 찾아야만 했다.
공손백도 공멸은 원치 않기에 움직임을 자제했다.
빈껍데기 구천성을 차지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전대 성주의 시신을 찾을 때까지 싸우지 말자.
말은 없었지만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진 듯 구천성 전체가 고요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이 마주 않은 어두컴컴한 방안의 공기에선 진득한 피비린내가 풍겼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소이다, 대장로.”
“노부 역시 같은 마음이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누군지 몰라도, 뭔가 목적이 있으니 사마중천의 시신을 가져갔을 터. 당장은 그 의문을 짐작할 수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요.”
“다른 방법? 어떤 방법 말인가?”
“간혹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는 피를 보는 것도 괜찮지요.”
“피를 본다……. 어쩌면 많은 피를 봐야할지도 모르겠군.”
“다행히 무림맹이 움직이고 있으니 피를 볼 대상에 대해선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오랜만에 피가 끓는군.”
나극의 주름진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차가운 살소.
공손백도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후, 누군가가 우리를 세상으로 불러내려 했다면 성공한 거라 할 수 있소이다.”
하지만 나극은 잠깐만 웃음을 지었을 뿐, 표정이 곧 무겁고도 깊게 가라앉았다.
“대령주, 노부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이네…….”
말꼬리를 길게 끈 그가 공손백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세상으로 나온 건지도 모르겠네. 삼십 년 전에 사라졌던 그자들이.”
***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장천운에게 구양명이 대뜸 찾아와 말했다.
“이제야 생각이 났네.”
장천운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뭘 말입니까?”
“자네가 전에 말했던 그 세 사람의 정체 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