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86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86화
185화. 최후를 아름답게 버티다
그저 내디딘 것만으로 거대한 기운이 단번에 소청의 영역을 짓눌러 왔다.
‘우웃!’
멈칫하는 순간 무황의 기세 안으로 들어가 버린 소청이 다급히 백회의 기운을 단전으로 밀어 넣고 일보월하를 펼쳤다.
화악!
무황은 칼을 뽑지도 않았다.
그저 팔을 휘저었을 뿐인데 날카로운 기운이 소청을 향해 쏘아져 날아왔다.
축도, 만경창파.
분명 혁련휘를 통해서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소청이 ‘관조’를 통해 날아오는 공격의 중심을 향해 창을 찔러 넣었다.
‘호오? 축의 결을 읽어 내다니 관조에 들었는가? 하나 그것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무황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더니 갑자기 공격이 수십 배로 거대해졌다.
“흡!”
순간적으로 중심이 사라져 버리자 소청은 내질렀던 창대를 되돌려 물러났다.
콰콰콰콰!
만경창파의 기운이 엄청나게 거대해져 소청을 덮쳐 왔다.
늘어났어? 어떻게?
소청은 도무지 무황이 보인 한 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축의 묘리가 도법에 담긴 변화의 그물을 촘촘하게 담아 뻗는 것이라면, 방금 전의 그것은 올이 굵고 성글게 짜인 것처럼 거대하게 변화시키는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소청이 기겁하며 물러나는 순간 무황이 기운을 흩어 버렸고 그 사이로 예리한 지풍이 쏘아져 나왔다.
투캉!
‘이, 이런!
말이 지풍이지 그 안에 담긴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과연 무황의 일격은 다른 것과 비교되지 않았다. 한 수 한 수가 고강한 절초처럼 펼쳐졌다.
창대를 때린 지풍의 충격에 소청의 몸이 튕기듯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커억!”
진한 충격에 소청이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재빨리 몸을 튕겨 올리며 진각을 밟아 쏘아져 나간 소청의 신형이 순식간에 무황의 전면을 노렸다.
화악!
허공에 날파리를 쫓아내듯 뿌린 손에서 막대한 경기가 휘몰아쳐 나와 소청의 몸을 찢어 버렸다.
픽!
하지만 이미 측면으로 파고든 소청의 창대에 차가운 뇌전의 기운이 꿈틀거렸다.
진 천뢰충파! 빙뢰!
쩌저적!
주변의 공기를 새하얗게 얼려 버린 일격이 창대와 함께 무황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순간적으로 사라졌던 소청의 모습에 당황할 만도 한데 이미 무황의 눈동자는 그의 신형을 뒤좇고 있었다.
쩌어어엉!
무황이 뻗은 손과 소청의 창대가 부딪치며 엄청난 충돌음을 만들어 내었다.
‘또?’
쩌저적! 꾸아아앙!
발출한 것이 아니라 창대에 담긴 기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무황이 그 중심을 향해 손을 뻗어 움켜쥐었고 폭발의 위력을 줄여 버렸다.
파악!
두 번의 천뢰충파가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하고 무력화되었다.
파앙!
하지만 놀라고 있을 새가 없었다. 천뢰충파의 기운을 터트려 버린 무황의 손에서 또다시 축도가 펼쳐졌다.
‘제길!’
소청은 재빨리 퇴보를 밟고 물러나며 축도의 중심을 향해 또다시 창을 뻗었다.
슈육!
하지만 부딪치려는 순간 또다시 무황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
확장.
만경창파의 기운이 또다시 늘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확히 보였다.
한 점에 응축되었던 결이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이 그의 눈가를 스쳤다.
범위를 피해 물러나는 순간 또다시 지풍이 날아왔고 소청은 막지 않고 측면으로 피했다.
파앙! 파앙!
회음의 기운을 단전으로 돌린 소청은 좌우를 번갈아 밟으며 무황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취리릭!
창대를 후려치는 순간 무황의 눈동자가 소청의 신형을 뒤좇는다.
그리고 손이 뻗어졌다.
타앙!
그런데 이번에는 창대가 튕겨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촤라라락!
휘말린 피풍의가 만들어진 거대한 구체가 무황의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건월식 만월의 압살!
까아아아앙!
강렬한 쇳소리가 연무장을 진하게 울려 놓았다.
자신의 제자와 바꾼 칼, 붉은 참작을 꺼내 든 무황이 소청의 공격을 막아 내는 순간 만월의 기운이 축소되며 픽 하고 꺼져 버렸다.
파아앙!
그리고 이전처럼 물러나는 소청을 향해 축의 묘리에 담긴 만경창파가 뻗어져 나왔다.
콰아아아!
소청이 결의 중심을 향해 창을 뻗는 순간 또다시 거대해진다.
소청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무황은 자신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군.’
소청은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
축의 묘리에서 벗어나 거대해진 만경창파가 다가오며 만들어지는 변화를 눈동자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리고 마치 만경창파의 기운이 안개처럼 소청의 눈앞에서 흩어져 버렸다.
“…….”
가만히 선 소청의 모습에 무황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그만 되었다.”
“…….”
어찌?
묻고자 했지만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보았느냐?”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기운의 결을 볼 줄 아는 게로구나.”
“예. 우연한 기회에…….”
“그것을 신(伸)의 묘리라 한다.”
신?
“줄이는 것을 축이라 하고 펴는 것을 신이라 한다. 줄였으니 능히 펼 수도 있는 것이지.”
축도에 실은 기운을 거대화시킨 것을 말함이었다.
“조금 전 너의 공격을 막은 것은 축(縮)의 묘리다.”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다.
혁련휘가 알려 준 축의 묘리에는 공격이 담겼지만 무황이 펼친 축의 묘리는 자신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휘, 너도 보았느냐?”
“예? ……예. 조금은.”
혁련휘의 대답에 무황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가 짙어졌다.
“그럼 되었다.”
무황은 둘 모두에게 보여 주기 위해 반복된 방어와 공격을 펼친 것이다.
“공격을 보아하니 너는 이미 오래전부터 신과 축의 묘리를 깨닫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찌 그 사용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지?”
“예?”
무황이 빙긋이 웃자 소청은 물론 혁련휘까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니?
분명 축의 묘리에 대해서는 자신이 소청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축의 묘리는 물론이고 자신도 모르는 신의 묘리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일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쯧, 사용하고 있음에도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던 게냐?”
“예?”
“둘 다 앉거라.”
무황의 말에 소청이 엉거주춤하게 곁에 앉았고, 혁련휘는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내었다.
“스승님.”
“흠…….”
그리 크지 않은 상처이긴 했으나 혁련휘는 스승의 손에 남은 상처에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감아 지혈했다.
“축이라는 것은 그저 공격에만 통용되는 법이 아니다.”
“…….”
“축은 말 그대로 줄이는 것이다. 자신의 힘을 줄여 사용하는 것도 축이나 타인의 힘을 줄여 피해를 줄이는 것도 축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청과 혁련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무황이 그답지 않게 피식 웃었다.
“쯧, 나름 정사의 기대주라 불리는 녀석들이 어찌 이 모양인지. 이러니 내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
소청의 눈동자에는 더 많은 의문이 생겼고 혁련휘의 눈동자에는 아련함이 어렸다.
“어쨌든 네놈이 방금 사용한 무공에는 신과 축의 묘리가 모두 담겨 있었다.”
소청은 쉽게 이해하지도 못했고, 대답하지도 못했다.
“두 가지 기운을 줄여 단전에 담았으니 축이요, 응축된 힘을 원래의 모습으로 발출해 내었으니 신이다.”
“아!”
“분명 나조차 놀랄 위력이었으나 네놈이 활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대로 제어할 줄 모르니 안타까울 수밖에…….”
옳은 말이다.
천뢰충파의 기술은 폭발력을 기반으로 하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태극을 이룬 이후에 오랫동안 단전에 담아 둘 수는 없었다. 완전히 제어되지 않았기에 반드시 발출해야만 했다.
“몇 번이나 가능하더냐?”
몇 번. 무황은 소청의 몸 안에 또 다른 기운이 담겨 있음을 알고 있는 듯했다.
“두 번 혹은 세 번 정도입니다.”
“허, 그 같은 공격을 세 번이나? 대단하군. 대단해. 하면 몸 안에 단전과 같은 기운을 넷, 혹은 다섯 개나 쌓아 두었단 말이냐?”
“예.”
소청은 자신이 익힌 패월창법과 팔괘공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의 무공을 드러내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였지만 그 대상이 혁련휘와 무황이니 관계없다 생각했다.
소청의 설명에 무황과 혁련휘는 그저 놀란 표정만 지었다.
“허, 독맥에 내공을 쌓는다니 지금까지의 무리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내공법이구나. 진가의 무공이더냐?”
“아닙니다. 기연이 있어서 얻게 된 무공입니다.”
소청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흐흠, 상리를 달리하는 방법이라 내가 너를 가르치기는 힘들 터. 한 가지 도움을 주자면 축은 강제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만드는 것이고 신은 발출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뿌리듯이 흘려 내는 것이다.”
“…….”
“강제로 뭉치면 지금처럼 폭발할 수밖에 없다. 하나 어우러진 것을 응축시켰다가 자연스럽게 펼쳐 놓으면 그 위력과 범위가 더욱 커질 것이다.”
“아!”
순간 소청은 무황이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만경창파의 변화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소청과 혁련휘가 무황이 일깨워 준 신과 축의 묘리에 대해 각기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사이에 만중이 술과 안주를 들고 왔다.
쪼르륵.
소청이 잔에 술을 채우자 무황이 말했다.
“어쨌든 지금의 너로서는 마종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아니, 과거의 마종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으나 겨우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그렇군요.”
역시…….
무황이 기억하는 마종의 모습은 십 년도 더 지나 있었다.
겨우 십 년 전의 마종보다 종이 한 장 차이만큼 강하다면 지금의 상태로 그를 만난다면 필히 패할 것이다.
마종은 더욱 강해져 있을 테니까.
“한 가지 더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라.”
“몸에 어떤 이상이 있으십니까?”
소청의 말에 무황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산공이다.”
“……!”
산공이라니?
산공(散功)이란 말 그대로 내공이 흩어짐을 말한다.
독에 의한 산공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찾아온 산공은 무황이 죽어 가고 있음을 뜻한다.
말도 안 된다.
무황의 나이는 환갑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얼마 전 만난 혈승이나 음마보다 훨씬 더 적은 나이를 살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에게 산공의 시간이 찾아온단 말인가?
딱히 병을 앓는 것도 아닌데 어찌?
“그리 놀랄 필요 없다. 세월의 흐름을 어찌 인간이 막을 수가 있단 말이냐? 과도한 내력을 쌓았으니 육신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것이지. 아직은 미련이 남아 내력이 흩어지지 못하도록 잡고 있으나 그도 얼마 버티지 못하겠지.”
“…….”
무황의 말에 소청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언제부터였습니까?”
“휘에게 흑룡아를 넘겨줄 때부터였다.”
“그런…….”
그제야 어째서 만중이 자신이 비무를 청했을 때 화를 내었으며 혁련휘의 얼굴에 떠오른 걱정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망할, 그런 줄 알았으면…….
비무를 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리하게 내력을 운용하도록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미리 알았다면…….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걱정 말라. 네놈과 비무 한다고 어찌 될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소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만 가 보라.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할 일이 많을 것이니.”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축객령이 떨어지고 무황이 연무동을 빠져나갔다.
소청은 답답하기 짝이 없는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님께서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다.”
그랬겠지.
아마도 그 사실은 자신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알고 있는 것은 소청과 혁련휘, 그리고 만중이 전부일 것이 틀림없다.
무황에게 산공의 때가 찾아온 것은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마종 종리세가 중원 무림을 단번에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황 위도혁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랬군. 그래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인가.’
만약 무황이 직접 움직였다면 서천맹과의 싸움에서 그리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
권마를 죽이기 위해 혁련휘를 화산으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혈승의 개입에 그가 나섰다면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저 후대에 맡기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다가올 마종과의 싸움에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자잘한 싸움을 버리고 최후까지 버티며 결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리라.
‘무황의 말로가 산공이었단 말인가? 저 대단한 양반이…….’
죽어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몸 안에 품고 있던 모든 것들을 무로 돌려놓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강제로 막아 죽음을 늦춘 무황은 뼈가 아스러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혁련휘를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가르침을 내려 주었다.
마종과 있을 최후의 결전을 자신의 무덤으로 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