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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83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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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183화

182화. 아가리 뺨따구를

 

 

 

 

“헥, 헥…….”

“헉, 헉…….”

고작 하루가 지났다.

고작 하루 만에 눈이 퀭해졌고 사지가 발발 떨려 왔다.

실수였다.

애초에 부탁하는 게 아니었다.

무슨 이따위 수련이 다 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각자의 창술을 선보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거기까지는…….

초식을 선보임과 동시에 소청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수련이 시작되었다.

초식 수련? 대련? 그딴 건 없었다.

머리에 물을 가득 채운 물통을 올리고 마보를 취한 그들은 양팔에 오십 근(30kg)짜리 환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연무장을 엉거주춤하게 걷는다.

발은 지면을 스치되 바닥에 닿아서는 안 되고 머리에 이고 있는 물동이에서 물이 한 방울도 쏟아져서는 안 되었다.

악이군이 물을 조금 쏟고는 ‘땀’이라고 우겼다가 정말 죽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내공은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승혜가 몰래 내공을 끌어 올렸다가 역시나 악이군처럼 죽도록 구타를 당했다.

조금이나마 불쌍하게 보이면 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그저 바람일 뿐이었다.

정말이지 사정없이 구타했다.

“뭔가 착각하나 본데. 수련을 하기로 한 이상 봐주는 건 없다.”

창대를 들고 매처럼 자신들을 바라보는 소청은 단 한 순간도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미쳤다.

진소청은 악마였다.

그를 동경했던 마음은 이미 싹 사라졌고 마음속에는 그에 대한 원망과 욕설뿐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시작부터 이 정도의 수련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들이 무공을 처음 익혔을 때도 이런 고된 수련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소청에게 수련을 부탁했을 때만 해도 이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초식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고, 좀 더 상위 단계로 나아가는 깨달음은 개뿔……. 그딴 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꾀부리지 마라. 죽는다.”

소청은 축의 묘리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관조(觀照: 바라보다)’의 경지에 이르고 난 뒤부터 굳이 눈을 돌리지 않아도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두 바퀴!”

소청의 외침에 악이군과 승혜의 얼굴에 더욱 집중이 어린다.

지금까지 여덟 바퀴를 돌았다.

남은 건 두 바퀴, 만약 물통을 떨어뜨리거나 내공을 사용해 꼼수를 부렸다가는 죽도록 맞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둘은 드디어 열 바퀴를 끝냈다.

“헉, 헉.”

“헥, 헥…….”

목표를 달성한 악이군과 승혜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바닥에 널부러졌다.

“자, 이렇게. 여기서 비트는 거야.”

멀리 한쪽 구석에서 혁련휘에게 수련을 받고 있는 황보인의 모습이 보였다.

세세하다.

자상하고 친절하기까지 했다.

발의 위치를 손수 보여 주고 황보인이 자세를 잡으면 웃으면서 고쳐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자신의 깨달음을 알려 주며 주먹을 내지르는 방법을 가르쳤다.

후웅, 휘릭!

어찌나 성취도가 높은지 와류투공이라 불리는 그 묘한 비틀림을 조금씩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오랫동안 권을 수련했기 때문에 그 성취가 빠른 것이 아니었다.

스승이 뛰어나다! 부럽다! 정말이지 뼈에 사무칠 정도로 부러웠다.

누가 사도련의 소련주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고 했단 말인가? 사파가 무조건 나쁜 놈이라고 했던 놈은 누구란 말인가?

지금이라도 그렇게 말하는 놈이 있으면 입을 찢어 놓고 싶었다.

그는 현신한 관세음보살처럼 자비롭고 자애롭고…….

반면.

“야! 누가 이렇게 오래 쉬래? 가서 창 들고 와!”

이런 개…….

수박씨 발라 먹을…….

정천의 영웅?

그딴 건 다 거짓말이다. 이놈이 마천이라는 놈들보다 더 지독할지도…….

“어쭈? 빨리 안 뛰어?”

소청의 외침에 악이군은 뛰었고 승혜는 한 호흡만이라도 더 쉬고 싶은 마음에 천천히 일어났다.

짜악!

“……!”

이 자식이! 여인의 궁둥짝을!

노려보며 따귀라도 올려붙일…… 용기가 나질 않는다.

승혜는 눈물을 집어삼키며 알이 잔뜩 밴 다리로 최선을 다해 뛰어야 했다.

자신보다 먼저 달려가 창을 잡고 오는 악이군도 미워 보인다.

좀 기다려 줄 수도 있는 일이고 승혜의 창을 들고 올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의리도 배려도 없는 놈.

하지만 그의 눈이 ‘미안, 나도 살아야지.’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찰법 수련, 오천 회. 늦게 온 승혜는 칠천 회.”

“…….”

하늘이 무너진다.

그들이 잡은 창은 소청이 특별히 준비한 통짜 쇠뭉치였다.

“핫핫핫!”

“아주 잘했네.”

멀리서 황보인과 혁련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찢어 버리고 싶다.

승혜와 악이군의 눈동자에 시퍼런 독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시작해.”

“칠천 회는 좀…….”

“둘 다 만 회!”

제기랄…….

 

찰법의 수련은 오후 늦게나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근육을 혹사했던 때문인지 표국의 일꾼들이 식사를 연무장으로 가져왔지만, 젓가락 들 힘조차 없었다.

팔다리는 물론 손가락까지 발발 떨려 왔다. 이러다가는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황보인이 신나게 밥을 퍼먹고 닭 다리를 양손으로 잡고 뜯었다.

“저, 소저. 먹여 드릴까요?”

“…….”

나름 선의를 베푸느라 자신을 째려보며 비웃는 황보인의 얼굴에 승혜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리고 황보인에게 정말 작은 목소리로 스산하게 속삭였다.

“눈깔 돌려. 아가리를 뺨따구까지 확 찢어 버리기 전에…….”

“…….”

얹힐 뻔했다.

언제나 부드럽고 현숙하고…….

황보인은 그녀의 눈에 맺힌 시퍼런 독기에 소름이 쫙 하고 돋아 올랐다.

그리고 승혜와 악이군은 열심히 퍼먹었다.

 

잠시 후, 식사가 끝날 무렵 소청과 혁련휘가 연무장으로 들어왔다.

“황보 공자.”

“예?”

“잠시 스승님께서 부르셔서 연맹에 다녀와야 할 듯합니다. 오늘은 시간도 늦었고 하니 여기까지만 수련하시죠.”

“음, 알겠습니다. 홀로 연습하고 있겠습니다.”

“헛헛, 벌써 하루 만에 비틀림을 익숙하게 펼쳐 내시고는 욕심이 과하십니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에 대한 칭찬을 하고 있는 사이 승혜와 악이군의 눈동자에 희열이 떠올랐다.

쉴 수 있다. 쉴 수 있…….

“영원히 쉬고 싶어?”

영혼까지 옥죄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려 왔다.

소청은 그들에게 작은 약병을 꺼내 내밀었다.

“이게.”

“군자산(君子散)이다.”

“군자…….”

군자산은 별다른 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열두 시진 동안 공력을 일으킬 수 없도록 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공력이 회복되긴 했지만 악이군과 승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믿어? 보고 있어도 몰래 내공을 쓰는데……. 안 그래?”

“…….”

악이군과 승혜는 어색하게 웃고 있는 표정이었지만 속으로는 갖은 욕설을 쏟아 내고 있었다.

무섭도록 치밀한 놈! 측은지심과 같은 건 애초에 배우지 않은 막돼먹은 놈!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돌아올 때까지 각자 초식 수련하고 있어라. 확인한다. 처음 보여 준 것보다 얼마나 좋아졌는지.”

제길, 어떻게든 눈에 들어 보려고 처음부터 최선을 다했던 것이 이 순간 너무나 후회되었다.

“초사, 쉬는지 안 쉬는지 철저히 감시하고 있어. 사정 봐줬다가는…….”

소청의 음산한 미소에 초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장문인, 가시죠.”

“응? 아, 알겠네.”

멸절사태가 승혜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소청을 뒤따랐다.

 

* * *

 

소청과 혁련휘가 정사 무림 연맹의 대회의장인 춘추관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무황, 제갈휘문을 비롯해 구파와 무가의 수장들, 사도련의 수뇌들이었다.

혈승의 일이 있은 이후 우진혜가 북해의 동향을 보고했기 때문인지 소집령이 떨어진 듯했다.

“어서 오게.”

화산 장문인 운상자가 반가운 기색을 띠고 소청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장문인.”

“헛헛, 자네는 어찌 갈수록 그리 대단해지는가? 내 근래에 자네의 소식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네.”

“과찬이십니다.”

소청에게 인사를 건넨 운상자는 혁련휘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소련주, 지난번엔 감사했소. 덕분에 화산이 무사했소이다.”

“별말씀을요.”

“사숙께서 후에 다시 방문하시면 좋은 술을 준비하겠다 하셨습니다.”

“헛! 정말입니까?”

“암요. 진 공자와 함께 오시오. 정사의 두 젊은 영웅이라면 화산은 언제나 문을 열어 두겠소.”

술이라는 말에 혁련휘가 금세 들뜬 얼굴이 되었다.

그사이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숭을 비롯해 정사의 무인들이 소청과 혁련휘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자, 모두 그만하고 앉으시지요.”

대충 인사가 끝나자 제갈휘문이 좌중을 정리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시라고 한 것은 모두 들으신 대로 마천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회의를 시작하자 좌중의 인물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했다.

“이번 혈승이 관을 이용해 무림에 재제를 가한 것은 모두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북해를 남하시키기 위함으로 밝혀졌습니다.”

“음…….”

들어 알고 있는 자들도 있었지만, 소식을 접하지 못한 이들이 신음을 흘렸다.

“오늘 자리에는 구 사도련이자 현 북천맹을 맡고 계신 섬뢰 문주님과 서천맹의 주요 인사분들은 따로 뫼시지 않았습니다. 회의가 끝나는 대로 소식을 알려 드릴 생각입니다.”

“듣자 하니 세작이 있었다고 하던데.”

“예, 맞습니다. 그렇게 솎아 내려 노력을 했는데 여전히 세작이 기승을 부리고 있군요.”

제갈휘문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현재 중원 무림의 전력은 모두들 아시다시피 정천의 주력은 서천맹에, 사도련의 주력은 북천맹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중원 각파에 남아 계신 분들은 원로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하면 원로들을 이용해 세작을 잡겠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하오문을 이용해 북쪽과 서쪽을 면밀하게 감시하는 동안 내부의 세작들을 남아 계신 분들께서 직접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모두가 제갈휘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황보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한 번 마천에 변절했었던 과거를 사죄드리며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황보숭의 말에 구파의 인물들은 과거의 일이라며 괘념치 말라 했고 같은 처지에 있었던 무가의 인물들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음마의 습격을 받으면서 세작들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진 공자가 돕지 않았다면 큰 피해를 입을 뻔했지요. 화산도 마찬가지였다 들었습니다.”

황보숭의 말에 또 한 번 모두가 소청과 혁련휘를 향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데 음마의 습격 이후 조사를 해 보니 정말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황보가를 드나드는 이들 중에 정보를 팔아먹지 않은 자들이 없더군요. 식자재를 대는 노인부터 일을 돌봐 주는 아낙까지 손대면 손댈수록 많았습니다.”

“허, 그 정도란 말이오?”

황보숭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놈들이 아주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거, 큰일이군요. 하면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잡아 치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저들에게 정보를 주다니…….”

여기저기에서 우려 섞인 말들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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