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82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82화
181화. 가르쳐 주십시오!
혁련휘가 무모하기만 한 소청에게 걱정이 가득 담긴 욕설을 내뱉었다. 소청의 몸에서 피가 튀어 올라 사방으로 뿌려졌다.
뭔가 깨달음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권마조차 일격에 죽여 버린 축도의 위력을 견딜 리가…….
“후우…… 엄청나군. 이게 진짜 축도인가?”
“…….”
그 순간 감탄이 가득 담긴 소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청?”
옆으로 털썩 주저앉아 혁련휘를 향해 히죽 웃고 있는 소청의 모습이 보였다.
“피, 피했어? 어떻게?”
비록 너덜너덜해진 옆구리의 옷자락 사이로 거미줄 같은 상처들이 보이고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축도의 중심을 피해 낸 것이다.
“뭐야?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소청의 이죽거림에 혁련휘가 난색을 표했다.
“어쨌든 대단하군. 넌 정말 대단해. 역시 하루아침에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
소청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혁련휘를 치켜세웠다.
분명 반응이 늦었다.
피해 내기에 충분치 않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일어나는 소청의 모습에 혁련휘는 그저 멍한 표정만 지었다.
“자, 그럼 이제 진짜로 시작해 보세.”
“…….”
소청의 모습을 바라보던 혁련휘의 표정이 당황스러움에서 놀람, 그리고 희열로 바뀌었다.
“좋아!”
쉭! 쩍! 쩌적!
묘한 대련이었다.
서로 멀찍하게 떨어져서 칼과 창을 휘둘렀다.
혁련휘가 칼을 휘두르고 나면 소청이 뒤를 이어 창대를 휘둘렀다.
옆에서 보기에는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헛손질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둘 사이의 공간이 미친 듯이 일그러지며 강렬한 폭발음을 만들어 내었다.
쾅! 콰쾅!
대기가 진동하며 떨어 대자 진가 표국이 요동치며 뒤흔들렸다.
“이, 이게 뭔 난리야? 둘이서 뭘 하는 거지?”
강렬한 진동과 폭발음에 놀란 진가의 사람들이 연무장의 외곽으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이 주고받는 공방을 볼 수는 자는…….
“이건 뭐, 괴물도 아니고…….”
“애초에 사람이 아니었잖아. 둘 다.”
“그러게, 저건 막지도 못하겠는데? 보이지도 않는구먼.”
“정말이지 흉내도 못 내겠어.”
악이군과 황보인만이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을 어렴풋하게 눈치채고 있었다.
“그게 뭔 소리인가?”
멸절사태와 승혜가 의문을 드러내었다. 그들의 경지로는 도무지 소청과 혁련휘의 사이에 있는 공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 그게 지금 저 둘 사이에 엄청난 위력의 공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뭐? 어디?”
황보인의 말에 모두가 시선을 집중했다.
어디서 소리는 들려오지만 어디서 어떤 충돌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희도 정확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부딪히는 순간에 생기는 공간의 일그러짐 정도만 보인달까요?”
안 보인다.
“근데 대장이 살짝 밀리고 있네요. 뒤늦게 움직여서 그런가?”
“아니야. 소련주의 공격에 실린 힘이 더 강한 것 같아.”
도무지 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멸절사태가 궁금함에 언성을 살짝 높였다.
“그렇게 물어보셔도 그게 답니다. 저희도 보이지 않거든요.”
“…….”
그 순간.
파앙!
바닥을 강하게 차는 소리와 함께 소청의 모습이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만큼의 빠른 움직임을 가진 일보월하가 극성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뒤이어 혁련휘가 허리를 슬쩍 젖히자 갑자기 나타난 소청의 창대가 그의 전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허! 이건 뭐……. 측면으로 파고들 때 잠깐 기운이 드러나는군.”
“그래, 근데 또 저걸 피하는 소련주는 또 뭐냐?”
황보인이 마치 둘의 대련을 설명하듯이 말했고 악이군이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
황보인이 눈을 부릅뜨며 시선을 집중하는 순간 혁련휘가 뻗은 주먹에서 엄청난 기류가 만들어지며 대기가 비틀렸다.
“와!”
공간의 일그러짐과 함께 생겨난 거대한 회오리만큼은 모두의 눈에 보였던 것인지 감탄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혁련휘가 만들어 낸 와류투공에서 물러나던 소청은 묘한 움직임을 발견했다.
회오리의 중심점에서 이어진 희미한 실선 같은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실선의 중앙을 향해 소청이 빠르게 창극을 찔러 넣었다.
휘리리리…….
회전의 중심점에 박혀 든 창극이 회오리를 멈추었다.
쩌어어엉!
강렬한 파열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소청과 혁련휘가 멀찍하게 물러났다.
“후우……. 후우…….”
혁련휘가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하지만 소청은 그 엄청난 공방을 계속하고도 호흡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다.
“너 이 자식!”
혁련휘가 얼굴을 찡그리며 소청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얼굴에는 희열이 가득하게 느껴졌다.
모두가 보기에는 동수를 이룬 것처럼 보였지만 혁련휘는 자신이 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청의 무공은 지금의 대련과 같은 초식의 싸움이 아니었다.
화려한 초식 따위는 단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가공할 폭발력을 머금은 천뢰충파. 그리고 쫓을 수도 없이 빠르게 펼쳐지는 신속의 경공이 그의 장기임을 알고 있었다.
혁련휘는 가진 바 최선을 다했지만, 소청은 단 한 번도 천뢰충파를 펼치지 않았다.
만약 실전이었다면, 그가 온 힘을 다했다면 고전을 면치 못했으리라.
“얕보는 거냐?”
“얕보는데 이렇게 지쳤을까?”
“…….”
거짓말.
혁련휘의 표정이 떫은 감을 씹은 것처럼 변했다.
“대단해. 축도라는 것. 보이기는 하지만 그 속도를 따라잡질 못하겠어. 고작해야 그 중심을 찾아 파괴하는 수밖에 없겠네. 일단 그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축도의 장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가 느끼지도 못하고 보이지도 않기에 언제 어디서 공격이 다가올지 모르고, 한 점에 만 변을 담을 수 있기에 적은 힘으로도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보고 피한다.
그리고 그 중심을 찾아 부숴 낸다.
아무리 자신이 축도를 익히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고는 해도 단시간 안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망할 자식.”
신경질을 부렸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소청은 자신보다 강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가 좋았다.
목표.
따라잡아야 하는 상대가 눈앞에 있으니 자신은 온 힘을 다해 달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 상대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다음에는 반드시 얼굴에 한 방 먹여 주지.”
“크크크, 그래. 다음에는…….”
소청이 웃자 혁련휘가 한숨을 내쉬며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아이구, 삭신이야. 무리했더니 온몸이 쑤시는군.”
너스레를 떠는 혁련휘의 모습에 소청이 피식 웃으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어?”
한참 동안 집중을 하고 있었던 터라 주위에 구경꾼들이 잔뜩 몰려 있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다들 뭔 일이야?”
소청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
그들은 마치 자신들을 마치 괴물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멀뚱하게 서 있을 거면 가서 술이나 좀 가져와라. 은수.”
“예? 예!”
소청의 말에 은수가 급히 고개를 숙이고 달려갔다.
* * *
“뭐? 좀 더 강해지고 싶다고?”
“예. 축도니 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좀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
소청과 혁련휘는 자신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말하는 황보인과 악이군, 그리고 승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도 충분히 강하잖아.”
“두 사람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약하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
“전처럼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거나 힘을 내세워 누구를 핍박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황보인과 악이군, 승혜의 눈동자에는 열망이 가득히 어려 있었다. 더 강해지고 싶다는 무인들의 순수한 욕심이었다.
“대장과 소련주를 보고 있으면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 왔고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황보가에서 느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
소청은 그들을 응시했다.
“우리는 경험도 부족하고 능력도 부족합니다. 오존 어른들과 비슷한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라 생각했던 우리의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자학하지 마.”
“자학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황보인이 어조에 강하게 힘을 주며 말했다.
“거, 재미있겠네.”
혁련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소청 어때? 우리 또 다른 승부를 내 보는 것이.”
“뭔 소리야?”
“어차피 북해가 내려오려면 반년은 걸린다고 하지 않았나? 연맹에서도 그 점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하고 있는 것 같고 진혜가 하오문을 풀어서 북쪽을 감시하고 있으니 당장 할 일도 없지 않나.”
“…….”
“저기 저 창을 쓰는 악가 친구는 자네가 좀 도와주면 될 것 같고, 이 황보가 친구는 내가 좀 도와주면 될 것 같은데?”
“하, 그래서?”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누가 더 뛰어난 스승인가를 가려 보잔 말이지.”
“동년배들끼리 스승은 무슨.”
소청인 피식 웃자 갑자기 악이군이 소청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허락하시면 스승으로 모셔도 좋습니다.”
“…….”
“도와주십시오.”
악이군이 소청의 소매를 부여잡았다.
“이거 참, 이봐 휘. 설마 나한테 안 되니까 이런 식으로 이겨 보려는 것은 아니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너 정도는 이길 수 있거든?”
발끈하는 혁련휘의 모습에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해 보지. 어차피 마천과 싸우려면 조금이라도 더 단련해 두는 것이 좋을 테니까.”
소청의 허락이 떨어지자 황보인과 악이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런데 저…….”
잠자코 있던 승혜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저는 어느 분께서…….”
“…….”
소청과 혁련휘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저보다 강한 소청에게 배우는 것이 낫겠습니다. 더욱이 승혜 소저께서도 창을 쓰시니…….”
“이…….”
혁련휘가 선수를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보인이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그…….”
소청이 머쓱해진 얼굴로 머리를 벅벅 긁어 대며 말했다.
“그 참…….”
악이군을 수련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늘 그래 왔듯이 소청의 수련법은 단순했다.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목숨의 한계까지 밀어붙여서 스스로의 잠재력을 이끌어 낸다.
물론 그 과정에서 구타는 당연히 동반되는 일이었다.
동생인 소강에게도 그랬고, 비마대원들에게도 그랬다.
그런데 승혜는 여인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미 황보 공자와 악 공자를 수련시키시는 모습을 수차례 보았습니다.”
“…….”
“더는 동도의 죽음 앞에 힘없이 물러나 있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수련이 고되고 힘들더라도 이겨 낼 것입니다.”
“흠, 그러시다면야…….”
맞아도 상관없다는데야…….
승낙이 떨어지자 승혜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 좋아하실 일은 아닐 겁니다.”
소청의 입가에 왠지 스산한 미소가 지어지자 승혜가 오싹함을 느낀 것인지 몸을 떨었다.
“흐흐흐…….”
소청은 원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