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78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78화
177화. 음마가 암습을 당하다
이른 새벽.
닭이 홰를 치기도 전에 일어나 연무장으로 나온 소청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밤이 완전히 새벽에 밀려나지 않아 어슴푸레하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멀리서 밝아 오는 빛에 그 색이 하얗게 변해 가고 있었다.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시간대에 선 소청은 문득 마종을 떠올렸다.
‘마종 종리세라…….’
전생의 그는 마천 삼 공자의 막내였다.
가장 힘없고 가장 약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마천의 세 번째 후계자.
그런 그가 자신과 같이 되돌아온 자였다니.
그리고 어쩌면 자신은 그가 되돌아오는 길에 공짜로 얻어 탄 것인지도…….
‘그런데 이상하군. 그가 그렇게 강했나? 마천을 모조리 꿇리고 새외마저 손에 넣을 정도로?’
소청은 그것이 좀 의아했다.
그러고 보니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정말로 종리세일까?
자신은 막야가 아니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진소청의 몸으로 깨어났는데?
그리고 종리세도 종리세지만 자신이 전생에 그리 똑똑했던가?
무공에 대한 감각이 그리 뛰어났던가?
그건 아니었다.
여러 방면에 달통했었다곤 해도 오래전 일들을 명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전생의 모든 일을 그리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저 한번 보았던 무공도 선명히 떠오르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제갈휘문이 가끔 멍청해 보이고 혁련휘의 무공이 낮아 보이는 이유는 뭘까?
분명 전생의 그들은 마치 신과 같은 자들이었는데…….
후우,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더 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충분히 강해졌다 생각했었지만 아직 멀었다. 마종이 아닌 혈승에게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차자작!
소청의 손에서 늘어난 창대가 쇠 갈리는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패월창법.
자신이 그 두 가지 무공을 얻은 것은 스물다섯 살 때였다.
죽어 가는 한 무인의 품에서 훔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신투의 길을 열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팔괘의 흐름을 따라 만들어진 그것은 이상하리만치 진가의 월식창법과 비슷했다. 마치 월식창법의 진화형이랄까?
어째서?
자신이 전생에 익히고 있던 그 무공이 어째서 진가의 월식창술과 비슷할 수가 있는 것일까?
무공은 본디 만든 사람에 따라 그 특징이 달라야 하는 것인데…….
패월창법은 마치 진가의 누군가가 발전형을 만들어 놓은 것 같지 않은가?
‘거참…….’
모든 것이 기억나지만 유일하게 기억나지 않는 것이 그때 무공서를 가지고 있었던 그 사람의 얼굴이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복잡해져 오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저은 소청은 내력을 담지 않고 창을 길게 늘어뜨렸다.
아침 수련을 하는 것은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그래. 모처럼…….’
한철로 만들어진 창대가 새벽 공기에 차가워져 있었다.
손을 타고 머릿속까지 전해져 오는 그 한기가 깨지 않았던 정신을 맑게 일깨웠다.
패월창법의 여덟 초식은 하늘에 떠오른 달의 변화와 팔괘가 가진 의미를 담고 있었다.
건월식은 꽉 찬 달만큼이나 가득한 변화와 무거움을 가지고 있었고 곤월식은 아무것도 없는 그믐처럼 어둡고 은밀했다.
쉬이익! 파앙!
소청의 창대가 휘둘러져 건월식에서 곤월식까지의 여덟 초식을 펼쳐 내며 연무장을 가득히 채워 놓았다.
“아하함,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네.”
내공을 사용하지 않은 채 소청이 수십 회의 반복으로 땀을 흠뻑 흘려 댈 때쯤에 혁련휘가 막 잠에서 깨어났다.
“아, 일어났나?”
“그래. 좀 더 쉬지 그래? 지난밤에 그리 술을 마셨는데…….”
“무슨 소리. 진정한 주당은 그깟 술 몇 병 마셨다고 힘들어하고 그러진 않는다네.”
혁련휘의 자부심 넘치는 표정에 소청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깟 술 몇 병?”
지난밤 그가 먹은 술은 거의 두 동이는 족히 될 것 같았다.
“정말 사람도 아니야.”
“어허, 그깟 일 가지고 친구를 괴물 취급이라니. 나쁜 버릇일세.”
소청이 혀를 내두르는 모습에 혁련휘가 손사래를 쳤다.
“그보다 일어났으니까, 어때? 그 축의 묘리라는 것에 대해서 좀 알려 주겠나?”
“축도를?”
“그래.”
“아직 새벽인데?”
“무인이 수련을 하는 데 시간이 뭐가 중요한가.”
“음, 그다지 가르쳐 주고 싶지 않은데…….”
“뭐? 어제는 분명히…… 어렵지 않다고…….”
“어렵지야 않지. 근데 왠지 가르쳐 주면 더 강해질 것 같아서 말이야.”
혁련휘가 입을 삐죽거리자 소청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야. 사도련에서 천재로 추앙받고 있는 나조차도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는 데 삼 개월이나 걸렸단 말이야.”
“무아의 경지?”
“그래. 무아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쯤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하여튼 그다지 설명하기가 어려워. 이건 지고지순한 심검의 한 갈래라고.”
“…….”
과하게 포장을 하는 혁련휘의 말에 소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도 그의 설명은 자신에게 지고 싶지 않은 호승심에서 발호한 것이 틀림없었다.
무황조차 이루지 못한 심검까지 꺼내는 것을 보면…….
하지만 무아의 경지는 이미 오래전에 수도 없이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이삼일 동안이나 배고픔을 잊고 무아에 빠져들어 수련을 했었지 않은가?
무려 삼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현실과 무아 속을 오간 자신이었으니 무아의 경지에 빠져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자존심을 무너뜨릴 수가 없었기에 짐짓 수긍을 해 주었다.
그는 권마의 와류투공을 단번에 익혀 버린 천재였으니까…….
“그러지 말고 잠깐만 설명을 해 주게. 나도 좀 배워 보고 싶어.”
“흠…… 좋아. 하지만 공짜는 안 돼.”
“야박하기는…….”
“황학루에서 하룻밤 어떤가?”
겨우 그거냐?
심검 어쩌고 하더니 고작 기루에서 하루를 보내는 걸로 깨달음을 넘기는 게야?
소청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학루는 어차피 하오문의 분타 중 하나였으니 혁련휘는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었다.
그저 구실에 불과했다.
소청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끔 하려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좋아. 원 없이 놀게 해 주겠네. 어차피 곧 우진혜가 오기로 했으니 음마에게 마천에 대해서 들을 겸 그때 가 보면 되겠지.”
“좋아. 그 약속 잊지 말라고…….”
혁련휘가 소청의 옆에 앉았다.
“내가 처음 무아를 깨달았을 때는 말이야……. 그리고 그 안에서 축을 이루자면…….”
혁련휘의 설명을 들으며 소청은 좌정한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축의 묘리를 깨달으면 한 점에 만변을 담을 수 있다. 만약 한 점에 천뢰충파의 기운을 모조리 담을 수 있다면…….
소청은 조금씩 의식을 흩어 가고 있었다.
무아(無我).
자신을 잊어 가는 단계.
말은 어려웠지만 그것은 초감각의 발전형과 비슷했다.
무아의 경지는 또 다른 말로 관조(觀照)라고 부르기도 했다.
감각을 완전히 죽여 자신을 주위 환경에 동화시킴으로써 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완전한 동화를 이루는 순간 세상의 이면에 새로운 세상이 그려진다.
떠야 보이던 것이 감은 채로도 보이고 만져야 느껴지던 것이 피부에 와닿는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느껴진다.
돌처럼 바위처럼 풀처럼…….
모든 곳에 동화를 이루면 의식의 세계가 현실처럼 펼쳐지고 그 안에 존재하는 순간 모든 사물을 또 다른 시각에서 보고 느끼게 된다.
그것이 무아였다.
“어?”
한참을 설명하던 혁련휘는 소청의 모습을 보고는 얼굴을 와락 구겨 버렸다.
이제 막 설명했는데…….
벌써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분명했다.
“이런 씨팔! 뭐 이딴 게 다 있어 진짜!”
삼 개월.
무아의 경지에 들어서는 데만 삼 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승혜의 경우처럼 특정한 계기를 만나 무아의 경지를 경험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무런 계기 없이 무아의 경지에 든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다.
무의식중에 드는 것과 의식 중에 의도적으로 빠져드는 것이 어찌 같단 말인가?
그런데 눈앞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고 있었다.
혁련휘는 이미 소청이 수도 없이 무아의 경지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허, 정말이지. 대단한 친구야.”
질투심은 감탄으로 바뀌었다.
“젠장, 그래도 따라잡힐 수는 없지.”
혁련휘는 자신의 검 흑룡아를 꺼냈다.
그는 자신의 모자람을 남의 뛰어남에 비교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천재이긴 했으되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 천재였다.
* * *
“뭐라고?”
혁련휘에게 연락을 받고 쉬지 않고 말을 달린 우진혜는 황학루에 도착하자마자 당황스러운 소식을 접했다.
음마 갈옥향의 죽음.
황학루의 비동에 감금해 둔 음마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황학루의 비동은 오직 하오문의 문도들 중에서도 엄선된 자들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내부자가 아니라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그곳에서 음마가 죽었다.
마혈과 아혈을 매 시진마다 점혈하고 확인까지 했으니 자살이 아니었다.
“어찌 된 일이냐!”
우진혜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자 하오문도가 소반(쟁반)에 담긴 대침 하나를 꺼냈다.
“이, 이건?”
“경추를 한 번에 뚫고 들어가 뇌를 찔렀습니다.”
“…….”
한 뼘이나 되는 비침이었다.
소청에 의해 단전이 파훼되었으니 음마는 반항조차 제대로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황학루의 비동에는 하오문도 외에도 혁련휘의 호위인 철혈군 다섯이 돌아가며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도 흉수를 보지 못했다는 것은 놈의 은신술이나 무공이 엄청난 수준에 있다는 것을 뜻했다.
또한 음마가 황학루에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은 하오문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소청과 혁련휘의 최측근만 알고 있었다.
결국은 내부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젠장, 그토록 주의를 기울였건만 아직도 이만한 자가 본 문 안에 있었단 말인가?”
우진혜가 찡그려진 눈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발견되었느냐?”
“오늘 새벽입니다.”
“새벽…….”
자신이 도착하기 바로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길, 찬오!”
“예, 소문주.”
“본문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해야겠다. 필시 암습한 자를 도운 내부자가 있을 것이다. 사건 현장을 면밀하게 살펴 어떻게 숨어들어 왔는지, 대침을 사용한 방법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나는 소련주님을 뵈어야겠다.”
우진혜는 곧장 무한의 진가 표국으로 달렸다.
하오문은 방대한 집단이었다.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고 그들의 신분을 모조리 다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황학루는 달랐다.
하오문도들 중에서도 거르고 거른 자들만이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 세작이 있다면 무림맹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으로서는 정사 무림 연맹에 이 사실을 알리는 것보단 소청과 혁련휘에게 알리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우진혜가 진가 표국을 찾아갔을 때 소청과 혁련휘는 여전히 수련에 빠져 있었다.
소청은 여전히 무아의 상태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고 혁련휘는 말리기도 힘들 정도로 모질게 자신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다가서는 그녀를 철혈군이 막아섰지만 사안이 너무 급한지라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소련주님!”
그녀의 외침에 혁련휘가 칼을 거두었다.
“어? 진혜. 언제 왔냐?”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빨리도 왔군. 밥은 먹었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뭐?”
“주위를 물려 주십시오.”
“…….”
그녀의 얼굴에 다급함이 가득함을 눈치챈 혁련휘가 철혈군에게 눈짓을 보내고 주변에 기막을 둘러 쳤다.
기막 안에는 무아에 들어간 소청, 혁련휘, 우진혜 셋뿐이었다.
“됐군. 말해 봐.”
“음마가 죽었습니다.”
“뭐?”
“아침 진시 초에 황학루에 도착했더니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하아!”
혁련휘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배신자라고?”
“예.”
“제길, 소청이 그녀를 통해 반드시 알아내야 할 것이 있다고 했는데 큰일이군.”
“어쩌죠?”
우진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어쩌긴, 잡아야지.”
갑자기 소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