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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77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77화

176화. 저놈이 어떤 놈인지 알아?

 

 

 

 

무한 진가 표국 분점.

이른 아침 몸을 풀기 위해 연무장으로 나왔던 황보인은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밖을 지키는 관군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

진가 표국을 둘러싸고 있던 관군이 철수를 하고 있었다.

“이보시오. 무슨 일이오?”

의아하게 여긴 황보인이 관군의 수장을 향해 물었다.

“위에서 지금 즉시 각 위소(衛所: 지방의 병영)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내려왔소.”

“돌아가라 했다고?”

“그렇소.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지난밤에 이상백 첨사께서 도독부로 잡혀갔다고 하더이다.”

이상백이라면 관군을 이끌고 와서 자신들을 핍박했던 자가 아닌가?

그가 갑자기 잡혀가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유가 뭐요?”

“그건 우리도 잘 모르겠소. 일단은 명령을 따라야 하니. 그간에 결례가 많았소. 우리가 진가를 핍박한 것은 명령 때문이었지, 딱히 무슨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니 진 공자에게 잘 좀 전해 주시오.”

“…….”

군례를 올리며 말을 몰고 돌아가는 군관의 모습에 눈을 끔벅거리던 황보인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 알려야 했다.

“대장! 대장!”

황보인이 소청의 처소를 향해 급히 달려왔다.

이른 아침임에도 소청과 혁련휘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인지…….

관군에 제재를 당하고 틀어박힌 것이 얼마나 속상했으면…….

하지만 관군이 돌아갔으니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할 때였다.

“대장, 관군이 물러가고 있습니다.”

“……!”

술을 마시고 있던 소청과 혁련휘가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관군이 물러났습니까?”

“예? 예…….”

갑자기 소청이 뜬금없이 존대하자 혹시나 술을 많이 먹어서 미친 게 아닐까 생각했던 황보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저 싸가지가 자신에게 존댓말을 하는 거지? 그리고 목소리는 또 왜 저래?

황보인이 눈을 끔벅거리는데 갑자기 그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기뻐하며 동시에 얼굴을 찢어 내었다.

“어?”

얼굴을……?

그리고 너무도 익숙한 사람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

그들의 이름을 알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들은 소청을 따라다니던 비마대원인데…….

“관군이 떠났으니 일이 잘된 모양이네.”

“그러게 말이야.”

“이제 다들 돌아오시겠군. 어휴, 내 들킬까 봐 어찌나 조마조마했던지.”

“술을 하도 마셔서 속이 쓰릴 지경일세. 이거 의원부터 찾아가 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소청으로 변했던 은수가 제 배를 어루만지자 혁련휘로 변장했던 재선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

그들을 황당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황보인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변장……이었다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은수와 재선이 그사이의 일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자 모두가 ‘아.’ 하는 얼굴이 되었다.

뒤이어 관에서 대대적인 조사가 있었고 무한이 온종일 시끌시끌했다.

관군들 사이에서 칼부림이 일어나기도 했고 잡혀가는 이들이 속출했다.

정사 무림 연맹과 진가 표국에도 조사관이 찾아왔으나 그저 형식적으로 묻고 답하는 약식 조사가 이루어졌다.

“뭐? 남궁가가 무너졌다고?”

“관부에 마천의 세작들이 있었어?”

놀람의 연속일 뿐이었다.

관군의 제재를 받고 있었기에 상황을 알지 못했던 터라 한바탕의 소란이 있었다는 사실이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리고 이틀 후.

소청과 혁련휘가 돌아왔다.

 

“대주, 그 팔은…….”

은수와 재선이 오른팔이 휑한 초사의 모습에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초사는 그저 그들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리되었다.”

“…….”

은수와 재선도 알고 있었다.

그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혈승의 위치를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소청과 혁련휘가 혈승을 죽이기는 했으나 초사의 팔 하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잘린 팔 한 짝이 거대한 전쟁으로 갈 수 있었던 일을 막아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로…….”

“그래…….”

하지만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멀찍이 앉아 그들을 지켜보는 소청의 마음은 쓰리기만 했다.

“휴……. 하필이면 오른팔을…….”

소청의 말에 혁련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깝게 되었군. 뛰어난 자인데…….”

“그래. 아깝게 되었지.”

초사는 아무렇지 않다 말했지만 그의 팔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싸우다 보면 부상자는 발생하기 마련이고 때로는 죽는 자들도 생긴다.

대막혈궁에서도 셋이나 되는 대원들을 잃었다.

하지만 소청은 될 수 있으면 그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아리는가?”

“뭐…….”

“어쩔 수 없지.”

“…….”

“저 친구는 어쩔 생각인가? 마천과의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텐데.”

“글쎄. 선택에 맡겨야겠지. 마음 같아서는 제갈휘문에게 보내고 싶지만 그가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흠. 무인이 팔을 잃은 충격이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인데.”

“후우……. 익숙해질 거야. 강한 친구니까.”

소청은 마음이 답답한지 한숨을 내쉬었다.

비마대의 무인들은 앞으로 더 많이 죽게 될지도 몰랐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과 함께 전장의 최전선에 서게 될 테니까.

“그보다 우진혜는 어찌 되었나?”

“관의 제재가 있었던 터라 전서구를 날리지 못해 하오문의 비선을 이용했네.”

“비선?”

“그래. 일종의 단거리 연락망이지. 전서구는 제한적이었으니까.”

“그런 것이 있었군.”

“어쨌든 지금쯤 관군의 제재가 풀렸다면 열심히 달려오고 있을 게야. 하루 이틀이면 당도하지 않을까 싶네.”

“흠, 그럼 일단은 음마를 황학루의 비처에 가둬 두는 수밖에 없나?”

“그래. 반년이라 했으니 아직 시간이 있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지만…….”

소청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과 관계가 있었던 금마강이 무너졌으니 필시 무언가 반응이 있으리라.

지금은 몰라도 세작들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으니 혈승의 죽음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세작을 모두 찾을 수는 없었다.

마천과 싸우고 있다고는 해도 중원 어느 곳에든 탐욕스러운 자들은 넘쳐 나는 법이니까.

“한데 나는 혈승이 죽기 전 했던 말이 내내 마음에 걸리는군.”

“혈승?”

“그래. 마종에 대한 것 말이야. 그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마종을 상대할 수가 없다고 했어.”

“음…… 그럴지도 모른다.”

“뭐?”

“생각해 봐. 내가 처음 지금의 몸으로 깨어났을 때가 십 년 전이란 말이지. 그런데 이미 그때 마종은 검존 어른을 무너뜨리고 무황과도 싸웠어.”

“흠, 그렇군.”

혁련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스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완전한 ‘마(魔)’을 이룰 수 있는 사내.

“비록 무황 어른께 졌지만 그는 이미 그 당시에 우리보다 훨씬 강했던 거야. 그런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건 무황 어른을 뛰어넘을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흠…….”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무황께서 아직 생존해 계시다는 것이네. 그는 아직 무황 어른을…….”

소청의 말에 혁련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리지?”

“스승님은……. 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세.”

“…….”

혁련휘가 무언가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청이 의아하게 쳐다보는데 표국이 시끄러워졌다.

“아! 진 공자! 혁련 공자!”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은 방효곤이었다.

“핫핫, 벌써 돌아와 계셨군요. 덕분에 이번 일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동안 관에 있던 비리들까지 모조리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저 인간이 또 웬일이지? 이제 더는 볼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소청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갑자기 긴장감이 확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남궁가의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와 동행을 했지만, 여전히 그가 싫었다.

주는 것 없이 미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소청에게는 바로 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 방 지주님. 수고 많으셨소. 이번에 무림을 도와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 이리 오시죠. 술이나 한잔…….”

그런데 소청이 눈을 부라리며 쏘아보았다.

“핫핫, 그럴까요?”

눈치도 없는 방효곤이 뒷머리를 벅벅 긁어 대며 자리에 합석하자 소청이 흠칫 놀라며 거리를 벌렸다.

“그나저나 좌군에는 언제 가신 겁니까? 덕분에 좌군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제압이 되었습니다. 금마강의 표정이 아주 볼만했다던데요? 핫핫핫!”

“무슨 소립니까?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예?”

소청이 딱 잘라 말하자 혁련휘와 방효곤이 소청을 바라보았다.

“저희는 좌군 도독부에 간 적도 없고 금마강의 얼굴은 본 적도 없습니다.”

“아니, 뭐 탓하거나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니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

소청은 더이상 관부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방효곤과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어 위에서 포상이 내려질 것 같습니다. 해서 제가 무림의 인물을 추천…….”

“괜찮습니다. 절대로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

관과 연을 나누어 봐야 절대로 좋을 일이 없었다.

“아니, 저…….”

“할 말이 끝나셨으면 이제 그만 돌아가 주시지요. 저희도 나름대로 할 일이 많아서요.”

뜬금없는 축객령에 방효곤이 당황스러워하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자, 빨리요. 빨리.”

“아, 예. 어쨌든 제가 이번에 무한에 머물게 되었으니 필요하시면…….”

“괜찮습니다. 절대로 괜찮습니다.”

“…….”

소청의 말에 방효곤이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휴우…….”

“아니 자네 왜 그러나? 이번 남궁가의 일에서 그리 도움을 많이 준 사람에게? 성격도 호탕하고 좋은 사람 같은데? 사귀어 두면…….”

“아니, 그건 자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저자가 얼마나 악질 중의 악질인데? 볼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내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엮이긴 했지만 다신 만나고 싶지 않아.”

소청이 소름 끼친다는 듯이 몸서리를 치자 혁련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저 새끼가 어떤 놈인가 하면 말이야.”

소청이 자신이 기억하는 방효곤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 흠집을 내어 말했다.

“뭐? 크핫핫핫! 그래서 그렇게!”

갑자기 혁련휘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아, 왜 웃어?”

“아니 그냥. 크핫핫핫! 자네가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긴 있었구먼.”

“무려 여덟 번이나 잡혀 들어갔었다고. 그것도 저놈 하나에게.”

“크핫핫핫!”

“…….”

혁련휘가 배를 잡고 뒹굴자 소청이 떫은 감 씹은 표정으로 술을 털어 넣었다.

괜히 이야기했나?

왠지 계속 놀림받을 것 같은 기분인데…….

“하아…….”

소청은 한숨을 내쉬며 문득 청명한 하늘을 지나는 옅은 구름을 바라보았다.

“휘!”

“크크크, 어?”

“혹시 그 축도라는 것 말이야.”

“…….”

“나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겠나?”

“흠, 뭐 어렵진 않은데……. 크핫핫핫.”

뭐가 그리 웃긴단 말인가?

혁련휘는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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