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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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72화
171화. 금마강을 찾은 손님
다음 날 아침.
“끄아아악!”
관부의 조사가 시작된 남궁가의 한 전각에서 비명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노파의 고통스러운 비명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얼굴을 찌푸리게 했다.
“아직인 모양이오?”
방효곤이 전각 앞에서 술을 마시는 혁련휘를 발견하고 넌지시 물었다.
“그런 모양이오.”
“참 대단합니다. 밤새도록 한숨도 재우지 않고 고문을 하는데도 정신을 잃지 않는다니…….”
방효곤이 혀를 내둘렀다.
정신을 잃지 않도록 고문을 하는 사람이나 그 같은 고문을 당하며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이나…….
소청은 어떤 식으로 고문을 할까?
궁금했던 방효곤이 전각의 문으로 다가가는데 혁련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라면 들어가지 않을 거요.”
“…….”
“뭐, 정히 궁금하면 어쩔 수 없지만 추천하고 싶진 않소. 생각 이상으로 잔인하거든.”
“아, 예.”
문고리를 잡았던 방효곤이 슬며시 손을 놓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끼이익.
문이 열리고 소청이 밖으로 나왔다.
도대체 어떤 고문을 했기에 입고 있는 옷이 피투성이일까?
대충 손에 묻은 피를 닦아 내는 그를 향해 혁련휘가 물었다.
“끝났나? 뭐 좀 알아냈어?”
혁련휘의 말에 소청이 고개를 내저었다.
“예상은 했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는군.”
“그래.”
“일단은 우진혜를 불러야겠어.”
“응? 진혜를?”
“그래.”
“흠, 그렇군. 그녀라면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소청의 말에 혁련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소청과 함께 진가로 돌아가던 그때 독혈보의 무인을 심문하던 그녀의 방법을…….
“일단은 철혈군에게 그녀의 신병을 데리고 있으라 해 주게.”
“알았다. 그나저나 그 아리따운 여인이 저런 흉측한 노파였다니…….”
혁련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청은 그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방효곤을 바라보았다.
“어찌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말씀하신 대로 이곳으로 오기 전에 동창을 설득해 두었습니다. 지금쯤이면 좌군 도독 이치성 장군께 압력이 들어갔을 겁니다.”
“음…….”
소청이 잠시 턱을 쓸며 고민했다.
만약 자신이 금마강이라면?
분명 남궁세가가 무너졌고 조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남궁세가와 연결된 끈을 모조리 자르는 것이다.
그래서 방효곤에게 동창을 동원해 그들을 압박하라 했다.
그런데 뭔가 모르게 불안하다.
음마는 분명 혈승이 중원에 들어와 있음을 알려 주었다.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혈승이 움직이고 있을 것인데 오랫동안 공들여 온 관부를 무너지게 할 리는 없었다.
“혹, 금마강이 관군을 움직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글쎄요? 설마하니 그가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비리를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누구보다 나라를 생각해 온 공신인데…….”
“그건 마천과 관련되지 않았을 때겠지요. 그가 무슨 생각으로 마천과 협력한 것인지 모르지만 어쩌면 관군을 움직일지도 모릅니다.”
“음…….”
“방 대인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가 좌군을 손에 넣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더욱이 후군과 중군에서도 그를 돕는 자들이 많습니다.”
소청의 말을 들으니 방효곤의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다. 그의 말대로 금마강이 좌군을 손에 넣고 곧장 북진한다면?
시간 싸움이 될 것이다.
누가 먼저 군권을 장악하는가 하는…….
“알겠습니다. 전서를 보내 미리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예. 하면.”
소청이 인사를 하고 물러나려는 것을 방효곤이 불러 세웠다.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절강성으로 가야겠습니다.”
“예? 하면 금마강을 잡는 데 도움을 주시려는……?”
“아니요. 저는 무림인입니다. 관의 일에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관의 일은 관이 해결해 주십시오.”
“한데 어찌?”
“금마강이 위기에 처했으니 필시 마천의 인물을 불렀을 겁니다. 그는 무림의 문제입니다.”
“아!”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청이 가볍게 인사를 하고 움직이자 혁련휘가 ‘예뻤었는데…….’라고 무언가 아쉬운 듯이 중얼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후우, 정말 대단한 자로구나. 지난밤 그 같은 전투를 벌이고도 조금도 지쳐 보이질 않으니…….”
방효곤은 말 위에 오르자마자 남궁세가를 빠져나가는 소청과 혁련휘의 뒷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서둘러 좌군 전체에 명령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 * *
절강성의 성도 합비.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축조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낼 만큼 거대했다.
외성 밖으로는 좁게는 삼 장, 넓게는 십 장에 달하는 해자(垓字: 성 주위에 둘러 판 못)를 파 다리를 내리지 않으면 감히 접근조차 시도할 수가 없었다.
또한, 길게 이어진 성곽은 외성과 내성을 따로 두고 성문이 위치한 곳마다 삼 층에 달하는 거대한 적루(敵樓: 망루)를 지어 외부를 감시하게 하였다.
성곽 위에 파인 홈마다 장군포를 설치했고 궁수들이 매서운 눈으로 지키고 있으니 가히 철옹성이라 할 만했다.
외성의 안쪽, 밤을 훤하게 밝혀 놓고 수천의 군사가 밤낮없이 경계하는 두 겹의 외성을 지나면 거대한 마을이 펼쳐졌다.
벽돌을 깔아 만든 관도가 수직으로 교차하고 단단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내부를 빼곡하게 채워 놓았다.
안으로 갈수록 그 크기는 점점 더 거대해졌고 관군들이 사용하는 병영, 훈련장 이외에도 장군부와 관청이 각 구역의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깊은 중심, 한눈에도 단단해 보이는 갑주를 걸친 정예병들이 지키고 있는 거대한 장원.
소청이 남궁가를 무너뜨린 다음 날 소식을 전해 받은 대군후 금마강은 아침부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콰앙!
백염이 아름답게 뻗은 홍안의 노인이 탁자를 거세게 내리쳤다.
“남궁가가 어찌 됐다고?”
노인은 백염이 떨려 올 정도로 짙은 분노를 드러내었다.
빗어 올린 머리를 팽팽히 당겨 옥투관(상투관)으로 고정한 노인의 얼굴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했다.
그가 바로 수많은 공적을 세워 군후(軍侯)의 직책을 받은 좌군 도독첨사(都督僉事) 금마강이었다.
원래 안휘의 도지휘사사로 있었으나 계속된 부름에 도독부로 자리를 옮겼다.
도독의 자리에 제수되었으나 자신의 나이를 거론하며 사양하고 그 아래 직위에 올랐다.
비록 도독첨사에 있었지만, 도독마저도 그의 눈치를 보는 형편이었다.
그런 그에게 아침부터 형부에서 한 통의 배첩이 날아들었다.
남궁가와 군부의 결탁.
그리고 그와 이어진 수많은 비리에 연루된 관부를 조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놈이냐? 어떤 놈이 이 같은 짓을 한 게야?”
휘하 장수들을 노려보는 그의 기세에 모두가 목을 움츠렸다.
전장에서 수십만의 대군을 지휘했던 그의 위엄은 어떠한 기운보다도 진하고 강했다.
“형부상서의 아들 방효곤이 사건을 주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복과도 같은 장수, 풍진의 말에 금마강의 눈이 세모꼴로 뜨였다.
“방효곤, 그놈이 기어이…….”
“동창도 함께였다고 하니 소란이 쉬이 가라앉지 않을 듯합니다.”
“음…….”
“제 생각에는 잘라 내는 것이…….”
풍진은 남궁세가를 자르라 말하고 있었다.
눈과 귀가 잘려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다리 힘줄이 잘려 걷지도 못하게 된 딸을 외면하라 하는 것이다.
“좋다. 지금 즉시 남궁세가와 연결된 모든 것을 자르라.”
아쉽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딸의 안위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잘라 내 버린 비정한 부정(父情)이었다. 자신의 딸은 남궁가로 보낸 순간부터 혈연이 아닌 이용해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그녀가 군부와 마천을 이용해 복수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훨씬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기에 그대로 둔 것이다.
그것이 패착(敗着)이 되었다.
그로 인해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지게 생긴 것이다.
금마강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전령이 안으로 뛰어들어 군례를 올렸다.
“대군후님! 도독께서 지금 즉시 무장을 해지하고 도독부로 들라는 령이십니다.”
“……!”
도독이 휘하의 첨사를 찾는 일이 무에 대수겠는가?
하지만 무장을 해제하라는 단서가 달렸다는 것은?
금마강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어졌다.
갑자기 상황이 매우 급해졌다.
놈들의 움직임이 너무 빠르다.
남궁가가 지난밤 무너졌다는 소식을 받은 것이 아침나절인데, 갑자기 형부에서 배첩이 날아오고 도독부에서 자신을 부르다니?
필시 동시에 움직인 것이다. 아니라면 이렇게 빠를 수가 없었다.
남궁가가 무너짐과 동시에 형부에서 움직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치성이 움직였다?
아무리 정황이 확실하다고 해도 형부가 황제의 명을 받는 도독에게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이치성이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것을 두려워 선수를 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잘라 내려는 것이다.
“망할, 감히 이치성 그자가?”
“대군후님, 어찌할까요?”
“…….”
지금 도독부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휘하에 명령을 내려라. 병력을 소집하고 대기 태세를 취하라.”
“알겠습니다.”
휘하 장수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하며 군례를 올리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모두가 금마강의 수족과도 같은 자들이니 배신자는 없으리라.
“풍진, 탑리격을 불러라. 이치성이 우리를 잘라 내려 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저들이 움직이기 전에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급하다. 서둘러라!”
“알겠습니다.”
풍진에게 명을 내린 금마강은 잔뜩 굳은 얼굴로 의자에 몸을 묻었다.
마천과의 협조.
그들이 무림을 정벌하는 동안 자신은 군권을 장악하려 했다. 그리되면 황제조차 자신들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무림은 마종에게, 관과 황가는 자신들의 손에 있어야만 했다.
그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협조의 대가로 바친 것이 남궁세가였다.
“망할…….”
멍청한 자식 년에게 맡겼더니 계획에 크나큰 차질이 생긴 것은 물론 오랜 세월 군문에 터를 잡고 이어 온 가문 전체가 흔들리게 생긴 것이다.
“멍청한 년!”
마음이 급했다.
배첩이 날아왔으나 아직 저들이 완전히 움직이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조사를 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저들이 자신을 구금하려는 것은 군을 움직이지 못하게 함일 것이다.
그 전에 먼저 움직여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좌군 도독부를 점거하고 자신과 연이 닿은 이들을 통해 세상을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역천(逆天).
그것만이 살길이었다.
그날 밤.
금마강의 저택 인근에 숨어 있던 초사는 암문(숨겨진 문)으로 들어서는 자의 모습에 경악했다.
‘어, 어째서 저자가?’
혈승, 탑리격.
비록 검은 천으로 얼굴까지 덮어쓰고 있었지만, 언뜻언뜻 드러나는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수 없었다.
혈승 탑리격이 암문을 통해 금마강의 처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갑자기 병력이 무장하고 흉흉한 기세가 들끓어 의아해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혈승과 금마강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