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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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71화
170화. 음마를 사로잡다
음마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소청을 노려보았다.
탐심이 없는 자.
자신보다 훨씬 더 무공이 강한 자.
하지만 스스로를 믿었다.
숱하게 많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어린 시절부터 세주가 되었던 그때까지 자신보다 강한 자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 모두를 자신의 치마폭에 집어넣고 파멸시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진소청, 대단한 자임이 분명했다. 이제까지 만나 왔던 적들 중 단연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무너뜨린다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혈승이나 두 명의 대공을 넘어 마종의 곁에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음마의 머릿속에 탐심이 끓어올랐다. 강하지만 결국엔 맛있는 먹잇감에 불과하리라.
음마는 쉼 없이 머리를 굴렸다.
일단은 자신이 가진 장기로 소청의 방심을 유도해야 했다.
무공이 안 된다면 육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방심을 유도하고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순간 섭혼술을 건다면?
단 한 순간이면 되리라.
“좋다. 알려 주마. 우리가 반년 동안 무얼 준비하는지. 대신 나를 살려 다오.”
“…….”
또다시 목소리가 간드러졌다.
얼굴의 미소가 화사함을 품었고 화사함 속에는 칼날이 스미었다. 환락무의 기운을 모든 곳에 녹였다.
발걸음, 손짓, 표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자신의 기운을 스미게 했고 그로 인해 소청을 유혹하고자 했다.
소청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반응이 있었다.
“좋아. 말해 봐. 꼼수 부리지 말고…….”
“오홋홋, 그럴 리가 있나? 우리가 뭘 준비하느냐 하면 말이다.”
소청의 누그러진 반응에 음마는 그저 자신의 계획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음이라 생각했다.
‘역시 사내놈에게 탐심이 없을 리가 없지.’
소청의 시선이 그녀의 몸짓에 닿자 걸음걸이를 좀 더 요염하게 변화시키고 눈치채지 못하도록 섭령탈혼무(攝靈奪魂舞)의 기운을 흘리며 사뿐히 다가섰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야 했다.
먹잇감이 충분히 달아오르도록 만들고 눈치채지 못하게 다가가 단숨에 끝내야 했다.
거미가 자신보다 큰 나방을 잡을 때는 급히 움직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걸린 나방이 허우적거리다 충분히 힘이 빠지면 단번에 거미줄로 옭아매야만 했다.
그녀는 한 가지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녀의 대체자로 꾸며졌던 수제자, 요희(妖喜) 한수연과 소청의 싸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안, 혈금쇄(血擒鎖).
아무리 자신의 수제자였다고 해도 자신의 기예를 모조리 흉내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동술에 있어서 최강이라 불리는 자신의 능력이라면 한순간의 틈을 만들어 낼 것이 틀림없다.
놈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단 한 번의 기회.
놈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만큼 가까이 다가가서 혈금쇄로 움직임을 멈추고 심장에 손을 박아 넣는다.
그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환락무의 기운에 반응했다면 그럴싸한 미끼를 던져 주어야 했다. 일단은 사실을 말해 그의 관심을 끌어 올린다.
“사실 이 모든 계획은 혈승이 세웠다.”
“혈승?”
소청의 눈동자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목소리에 힘이 빠지고 동공이 확장되고 있었다.
“혈승이 중원에 들어와 있나?”
소청이 관심을 보이는 듯하자 음마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소청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들어와 있지, 암. 애초에 우리의 계획은 중원의 세력들을 각개 격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군을 움직이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군. 결국 아미, 화산, 황보세가를 습격한 것은 우리의 눈을 돌리기 위함이었나? 민가를 습격한 것도 너희 짓이겠군? 관군을 이용해 우리의 움직임에 제재를 가하기 위해서?”
“맞아. 똑똑하군.”
“그렇군. 망할 새끼들. 죄도 없는 사람들을…….”
“아, 흥분을 가라앉히라고. 아직 알려 줄 내용이 남았으니까.”
소청이 쌍심지를 돋우며 창대를 움켜쥐자 음마가 웃으며 그를 진정시켰다.
아직이다.
아직 환락무에 완전히 빠져들지 않고 있었다.
‘분명 눈동자에 반응이 있었는데, 의지가 강한 놈이로군.’
하지만 지금까지의 노력을 허사로 돌릴 수는 없었다.
이제 멀지 않았다.
확실해질 때까지 힘을 빼놓아야만 했다.
음마는 좀 더 뇌쇄적인 모습을 만들어 내며 천천히 소청의 시선을 끌었다.
소청은 알지 못하겠지만 그녀는 환락무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모든 기운을 담아내었다.
“그런데 어째서 관군을 이용했지? 우리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긴 했어도 그로 인해 너희들의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했을 텐데?”
“그건 말이야.”
반 장(1.5m).
한 발만 더 내디뎌 손을 뻗기만 하면 될 정도의 위치였다.
확장된 동공이 선명하게 보였다. 소청의 눈동자가 흐려지고 있었다. 움켜쥐었던 창대의 끝이 힘없이 바닥으로 처졌다.
희열이 끓어올랐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했기에 음마는 단 한 순간의 기회를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그리고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뎠다.
지금이다!
모든 것을 사로잡는 핏빛 눈의 힘, 음마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화악!
그리고 확인할 것도 없이 소청의 왼쪽 가슴을 향해 날카롭게 세워진 손을 뻗었다.
꿰뚫리리라!
그리고 곧바로 단전을 향해 손을 뻗었…….
꽈악.
왼쪽 가슴을 향해 뻗어졌던 음마의 손이 소청의 손에 잡혀 있었다.
음마의 눈이 부릅뜨였다.
어떻게? 분명 혈금쇄의 동술에 움직이지 못할 것인데?
“쯧, 장단 좀 맞춰 줬더니. 다 늙어 빠진 할망구 주제에 별 지랄을 다 하고 있네.”
“…….”
“내가 똑같은 수에 당할 것 같아?”
소청은 그녀의 눈동자에 붉은 빛이 어리는 순간 눈을 감아 버렸다.
“꼼수 부리지 말랬지?”
우지직!
“꺄악!”
소청이 음마의 손을 우그러뜨렸다.
손바닥뼈가 부러지며 모조리 압착되는 느낌에 음마가 소청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역시, 너희들은 말로 해서는 안 돼.”
차자작!
음마의 손을 놓아준 소청이 허리춤에서 창대를 꺼내 늘렸다.
“이, 개자식이…….”
부러진 손을 잡은 음마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소청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자신이 놈을 유혹한 줄 알았으나 놈이 깔아 놓은 덫에 걸린 것이었던가?
파학!
날카롭게 세워져 휘둘러진 손톱에 소청이 음마의 손을 놓고 훌쩍 물러났다.
“이, 이…….”
음마는 곱디고왔던 손을 보며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으스러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쓸데없는 지랄 하지 말고 덤벼.”
“……!”
소청의 비웃음에 음마의 눈동자가 붉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한 수가 실패하자 모멸감과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네놈이 감히…….”
사방으로 사이한 요기가 퍼져 나가고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죽여 버리겠다! 진소청!”
온몸의 기운을 끌어 올린 그녀가 묘하게 보법을 밟아 가며 소청을 공격했다.
이미 대체자를 통해 한번 겪어 본 적이 있는 무공이었지만 그 위력은 천양지차였다.
춤사위처럼 휘도는 움직임마다 날카로운 경기가 스며 있었고 백옥처럼 빛나는 손에 맺힌 수강이 등줄기를 섬찟하게 했다.
빠강!
손날과 창대가 부딪치며 강한 쇳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지잉!
예상보다 강한 공격에 훌쩍 물러났던 소청은 창대에 일어난 진동을 멈춰 내었다.
과연 마천의 세주였다.
그녀가 가진 것은 섭혼술과 동술만이 아니었다.
물 흐르듯이 움직이며 공격해 오는 그녀의 무위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뛰어났다.
“그래. 이래야지. 이래야 줘 팰 맛이 나지!”
화악!
남궁가에서 발출하지 않고 돌려보냈던 명문혈의 한기가 단전의 기운과 뒤섞여 응축되었다.
쩌저적!
엄청난 한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고 서리가 내린 듯 하얗게 변한 소청의 머리칼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한기뿐만 아니라 태극을 이룬 기운에 소청의 정신이 예리하게 가다듬어졌다.
전신의 맥들이 활기차게 뛰어오르고 사지백해(四肢百骸)에 서늘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후우…….”
길고 느리게 내쉰 호흡에 허연 입김이 새어 나와 대기 중으로 퍼져 나갔다.
휘리릭!
소청의 창대가 천천히 휘돌려져 겨드랑이에 끼워졌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낮게 호흡을 고르며 감각을 끌어 올리자 음마의 기운이 느껴지고 대기를 타고 느껴지는 주위의 풍경이 유형화되어 머릿속에 그려졌다.
“와라.”
“이야압!”
깡! 까강!
춤의 기본이 되는 화려한 보법이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이 이어지고 날카롭게 세워진 손톱이 소청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비록 한 손밖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속도였다.
하지만 소청이 휘둘러 대는 창대에 번번이 막혀 버렸다.
쩡!
창대에 맺힌 기운이 음마의 손에 어린 수강(手剛)을 튕겨 내었다.
빠직!
분명 강기의 기운으로 보호되고 있음인데 곱게 갈아세운 손톱이 얇게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치잇!’
소청의 공격이 강기를 부수고 그녀의 신체에 직접 닿고 있었다.
‘망할,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기운인 강기를 부술 정도의 위력이라니…….’
더욱이 혈금쇄의 동술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소청은 음마와의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오직 감각에 의존해서 싸우면서 단 한 순간도 밀리지 않았다.
슈가각!
빠르게 찔러 들어오는 창극을 가까스로 피해 낸 음마가 소청의 옆구리를 향해 일장을 뻗었다.
내가중수법이 담긴 탈명장(奪命掌)이었다.
그런데 소청이 주먹을 뻗어 장력에 맞섰다.
쩡!
그리고 부딪치는 순간 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비틀림.
부딪치는 순간 비틀렸다.
“으극!”
음마가 다급하게 손을 빼내며 물러났다.
손바닥뼈가 얼얼했다.
피부와 살갗이 회전체에 부딪친 것처럼 벗겨져 피가 튀었고 쓰라림에 눈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고통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네놈, 어떻게 권마의 와류투공(渦流鬪功)을?”
“아, 이름이 와류투공인가?”
“…….”
“권마를 죽인 친구가 흉내 내길래 나도 한번 해 봤다. 근데 잘 안 되는군. 역시 천재를 따라갈 수는 없는 건가?”
“뭐라고? 흉내…….”
음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신과 싸우면서 무공 따위를 연습할 정도로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났다.
“이놈…….”
“아, 너무 화내지 말라고.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 죽이지 않으려고.”
“이 개자식이!”
치욕이었고 능욕이었다.
음마는 극에 치달을 정도로 분노를 느끼며 소청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녀의 공격이 바뀌었다.
손톱이 날카롭게 세워졌다. 춤사위와 같이 부드럽던 공격이 모든 것을 찢어 버릴 듯이 악랄해졌다.
세워진 손톱에서 빠져나온 기운이 주위를 모조리 할퀴어 대었다.
하지만.
후우욱!
짧게 숨을 들이마신 소청의 발이 강하게 지면을 찍어 눌렀다.
파앙!
단전의 기운을 모조리 때려 박은 일보가 펼쳐지는 순간 소청의 신형이 순간에 음마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이!”
마치 공간을 뛰어넘어 다가온 소청의 모습에 기겁한 음마가 재빨리 눈앞의 공간을 수십 개의 조각으로 할퀴어 대었다.
갈랐다.
소청의 몸이 갈가리 찢겨…….
하지만 피가 튀지 않았다.
음마가 잘라 낸 것은 소청의 잔상이었다.
음마의 공격이 이루어지는 순간 측면으로 틀어 버린 소청이 창대를 강하게 휘둘렀다.
쩌어어억!
“끄어어…….”
복부에 박힌 창대가 허리뼈를 부숴 놓았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강한 고통을 받은 음마의 몸이 새우처럼 꺾였고 소청의 잔인한 눈동자에 짙은 살기가 어렸다.
쩍!
솟구쳐 오른 주먹이 비틀리며 음마의 얼굴을 짓이겨 놓았다.
쩌쩍!
그리고 몸을 비틀며 뻗은 발뒤축이 그녀의 턱을 때리고, 창대가 휘도는 힘을 타고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빠바바바박!
소청의 연환 공격이 시작되자 음마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처음 몇 번은 방어를 할 수 있었지만, 그 뒤부터는 완전히 노출되었다.
곱게 정리되었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날리고 도무지 어느 곳을 맞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구타를 당해야 했다.
턱!
그리고 소청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았다.
푹!
“끄아아악!”
창극이 그녀의 단전을 꿰뚫었다.
비명과 함께 내기가 흩어졌다. 단전이 꿰뚫렸으니 역천의 진언은 발현되지 않으리라.
“꺽, 꺽…….”
내기가 빠져나가면서 주안공이 깨어진 음마는 다른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머리카락이 하얗게 탈색되고 주름 가득한 노파로 변해 버렸다.
소청의 손아귀에 잡힌 음마의 몸이 마치 거죽만 남은 듯이 늘어졌다.
“당장 죽이지 않는다. 물어볼 게 많으니까.”
소청이 음마의 단전을 지혈하고 바닥에 던져 버렸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는 그저 힘없는 노인일 뿐이었다.
내력의 힘으로 버텨 온 그녀의 육신은 더는 어떠한 위협도 되지를 못했다.
“휴우…….”
소청은 한숨을 내쉬었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려야 하는 싸움이 이렇게 고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소처-엉!”
멀리서 혁련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궁가의 상황이 정리된 모양이었다.
“소청!”
급히 달려온 혁련휘가 무언가를 찾듯이 고개를 휘휘 돌렸다.
“어디 있나?”
“뭐가?”
“그 예쁜 여인 말이야! 그 속살을 다 드러낸 몸매 좋은 여인!”
“…….”
아, 대꾸할 힘도 나오지 않는다. 혁련휘 때문에 갑자기 긴장이 풀려 버렸다.
“하, 정말 자네는…….”
부리부리하게 뜬 눈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는 혁련휘의 모습에 소청은 헛웃음이 나와 버렸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긴장이라는 것이 되지 않았다.
소청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