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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70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6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70화

169화. 평생을 개처럼 기어라

 

 

 

 

소청이 그녀 앞에 우뚝 서서 내려다보았다.

“악연이구나. 악연이야……. 조금만 더 버텼다면 좋았을 것을……. 반년만, 반년만 더 버텼더라면 네놈의 뼈에서 살을 발라내고 진가의 족속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었을 것을…….”

마치 회환과도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원독에 찬 눈동자는 여전했으니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듯했다.

“반년?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말해 줄 것 같으냐?”

“…….”

그녀는 쥐고 있던 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러 갔다.

땅!

소청이 검을 쳐 내 버렸다.

“자결을 하게 둘 것 같으냐? 말해라. 반년이라는 게 뭐지?”

“흐흐흐…….”

금성희가 표독스러운 눈으로 낮은 음성을 흘렸다.

“손톱을 뽑고 눈알을 파낸다 한들 내 입에서는 어떠한 것도 들을 수가 없을 것이다.”

“…….”

“죽여라. 네놈을 저주하겠다. 귀신이 되어서도 네놈의 집안을 저주하겠다.”

“…….”

소청이 물끄러미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상관없어. 네년이 아니면 금마강을 찾아가겠다. 그러다 보면 알게 되겠지. 그리고 네년은 죽을 가치도 없어. 그건 너무 편안한 결말이니까.”

“뭐?”

스걱!

두 다리의 힘줄이 잘렸다.

“꺄아아악!”

금성희의 날카로운 비명이 남궁세가를 진하게 울려 놓았다.

“평생을 개처럼 기고…….”

힘없이 쓰러진 그녀를 내려다보며 소청이 또다시 창을 휘둘렀다.

파하학!

“끄아아악!”

금성희가 예리하게 잘려 버린 두 눈을 잡고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보지 못하는 암흑의 세상에 갇혀서…….”

스걱.

귀가 잘렸다.

“더 이상 어떠한 희망도 듣지 못하는 고통을 느끼며 살아라.”

스걱.

귀와 눈을 잡고 있던 그녀의 두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잡고 싶어도 잡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라. 평생을 속죄하며 살든, 아니면 나에 대한 복수심과 원망으로 살든…….”

소청은 무심하게 그녀에게 징벌을 내렸다. 그리고 소청이 남궁진수를 향했다.

검을 내린 그의 모습은 싸울 의욕조차 잃어버린 패배자에 불과했다.

“못난 새끼. 어미가 폐인이 되어 가는 중에도 두려움 때문에 나설 수도 없는 것이냐?”

“나, 나는…….”

“왜, 물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서 짖지도 않는 거냐? 물지 못하더라도 짖어는 봤어야지. 차라리 어미를 살려 달라고 빌기라도 했어야지.”

잔인했다.

잔인한 말이었다.

분노로 물든 소청은 그의 자식에게까지 잔인함을 이어 놓았다.

“너는 죄가 없을 것 같으냐? 그저 네 어미가 시켰다고 힘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그건 주인 된 자가 할 말이 아니다. 네게 책임이 있다. 옳지 않으면 막았어야지.”

“…….”

소청의 말에도 남궁진수는 차마 칼을 들지 못했다.

두려웠다.

눈앞에서 어미가 폐인이 되어 가는데도, 원수인 소청이 자신에게 잔인한 말을 내뱉고 있음에도 도저히 칼을 들 수가 없었다.

“죽일 가치도 없는 놈.”

소청은 남궁진수를 노려보다 창을 거두었다.

전쟁은 끝났다.

소가주인 남궁진수는 더 이상 의욕적이지 못했고 모든 것을 꾸며 오던 악녀 금성희는 폐인이 되었다.

그리고 갖은 돈을 들여 무장시킨 창궁검수대도 무너졌다.

남궁세가의 역사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무가의 일은 끝났고 남은 것은 방효곤이 해야 할 일이었다.

남궁세가와 관부의 결탁을 알았으니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되리라.

사건의 진행이 어찌 될지 모르지만 무가를 제재하고 있는 관부의 병력도 돌아갈 것이다.

남은 것은 마천의…….

“이게 뭐야?”

소강상태로 접어든 전장에 목소리 하나가 참견하듯이 들려왔다.

여인의 목소리였다.

“기껏 도와 달라 해서 왔더니 벌써 끝나 버린 거야?”

하늘거리는 나의를 입고, 전장을 향해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는 여인.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 속살을 버젓이 드러내고 요기를 품은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아름답다.

싸움이 막 끝난 관군과 남궁가의 무인들마저 홀려 댈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치 사람을 홀려 간을 빼 먹는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짐승처럼 요사스러운 미소를 짓자 모두가 길을 비켜 주었다.

“남궁가를 괴롭히는 자가 있다더니 제법 대단했나 보네? 관병도 있었는데…….”

그리고 그녀가 전장의 중심에 도착했다.

“응? 너는!”

혁련휘를 발견한 그녀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 버렸다.

“너는 분명 무한에 있었는데? 어떻게?”

여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았다.

순간 급살을 맞은 것처럼 비틀거렸다.

“지, 진소청?”

바닥에 쓰러진 금성희의 앞에 있는 소청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리고.

“어떻게 된 거지?”

소청 역시 그녀를 알아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어찌 잊겠는가?

하지만 분명히 죽었다.

빼앗은 정혈을 잃고 노파로 변한 그녀는 승혜의 손에 처참하게 죽었다.

“음마…… 갈옥향…….”

둘은 서로를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아, 어쩐지 너무 쉽게 죽는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자랑하던 역천의 진언도 쓰지 않고 말이야. 그때 의심을 했어야 했는데……. 뭐 좋아. 몇 번이라도 죽여 주면 되니까.”

“…….”

갈옥향의 얼굴에서 여유로움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인가?

분명 무한을 떠나오기 전까지 그와 혁련휘가 진가에서 계속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 왔었다.

그런데 어째서?

“네, 네놈 설마 나의 눈을 속인 것인가?”

“역시 네놈들이 지켜보고 있었던 거군. 내 생각이 맞았어. 안 그러면 우리가 표국의 분점에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지.”

“망할…….”

대역을 쓴 것이다.

대역을 써서 자신들의 감시를 속이고 남궁가로 향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음마의 시선이 전투의 현장에 있는 방효곤을 찾아내었다.

‘망할.’

혈승에게 알려야만 했다.

그들이 남궁가의 사태에 끼어들고 이만한 사건을 벌였을 때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마천과 남궁가의 결탁은 물론 관의 세작까지 밝혀질지도 모른다.

혈승은 이번 계략으로 반년은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년은커녕 이제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고작 한 달 만에 남궁가가 털려 버렸으니 이제 관에 심어 넣은 세작들까지 위험하다.

잘못하다가는 그들과 협력한 좌군이 통째로 드러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진소청…….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들지 않았다.

자신의 애제자와 수하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놈이었지만 역천대공을 처참하게 때려눕히고 혈승과의 일합에서도 살아남은 놈이다.

세주의 신분인 그녀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도망쳐야 했다.

도망쳐서 혈승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이젠,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군. 음마. 모두가 마천이 꾸민 일이겠지. 마천이 관부 놈들과 결탁된 것이고. 또 누가 있나? 권마도 대역을 쓴 건가? 아니면 다른 세주들도 왔나?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얼 준비하고 있는 거지?”

“…….”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직 혈승의 계략을 알지 못한다.

차자자작!

소청이 창대를 뻗었다.

“너희들과 엮이면 모두가 왜들 이렇게 악랄해지는지.”

소청이 바닥을 고통스럽게 기어 다니는 금성희를 보며 잔인하게 웃었다.

“이리 와. 죽여 줄 테니까.”

“…….”

음마는 세밀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망칠 수 있다.

남궁가에 있는 이 많은 놈들이 잠깐이라도 자신의 방패막이 되어 줄 테니까.

“하압!”

은밀히 끌어 올린 기운을 모조리 안력에 집중했다.

마안(魔眼), 대단위 섭혼술.

순식간에 검게 물든 그녀의 눈이 세상을 관조하듯이 빛을 뿜어내었다.

찌잉-!

순간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려 시선을 떼지 못했던 이들이 일시적으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죽여라!”

음마의 외침에 전투 의지를 잃고 멈췄던 이들이 갑자기 살기를 뿜어내며 소청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음마는 재빨리 솟구쳐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런 썅!”

쩌엉!

소청이 창대로 자신을 향한 검격을 모조리 때려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엄청난 섭혼술이었다.

이전에 상대했던 갈옥향의 대체자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단 한 순간에 뿜어낸 눈빛에 삼 할에 달하는 무인들의 이지가 잠식되었다.

“칫! 놓칠 줄 알아?”

소청이 온 힘을 다해 무릎을 굽혔다.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닫아 두었던 용천혈이 터져 나가려는 순간 다리를 펴며 온 힘을 개방했다.

파앙!

“휘! 뒤를 부탁한다!”

혁련휘를 향해 외친 소청의 신형이 순식간에 음마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

멀리 사라지는 소청의 뒷모습을 보던 혁련휘가 시선을 돌려 섭혼에 빠진 이들을 쳐다보았다.

“하아…….”

관군, 남궁가의 무인, 철혈군의 일부까지 섞여 있었다.

“정말이지 수지 타산이 안 맞아. 수지 타산이……. 금존청 가지고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겠군.”

혁련휘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주먹이 와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 * *

 

남궁가를 빠져나온 음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오직 달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녀는 다른 세주들보다 경공이 뛰어났다.

환락무는 일종의 춤이다.

그 무엇보다도 보법에 영향을 받는 무공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각술의 수련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스쳐 가는 주변의 풍경들이 일그러져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빨리 달렸다.

그런데.

“어이, 그만 멈추는 게 어때?”

“……!”

이런 무슨 개 같은 경우가?

어느새 진소청이 자신의 바로 옆을 달리며 웃고 있었다.

어찌…….

“힘 빼지 말고 멈추라니까?”

“…….”

사력을 다해 달리는 자신과는 달리 너무나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좀 더 힘을 내면…….

휘리릭! 쩌어엉!

갑자기 자신의 앞으로 튀어 나간 소청이 몸을 비틀며 창대를 휘둘렀다.

“큭!”

팔을 교차해 막은 음마가 거센 충격과 함께 뒤로 죽 하고 밀려났다.

“…….”

강제로 멈춰진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청을 노려보았다.

어깨에 창대를 걸치고 선 소청이 자신을 향해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

“일단 죽이기 전에 하나만 묻지.”

“…….”

“반년 동안 뭘 준비하는 거지?”

“…….”

일상적으로 묻는 듯 평이한 목소리였지만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투기와 살기가 숨 막힐 듯이 몸을 짓눌러 왔다.

“대답하면 곱게 죽여 줄게.”

“…….”

“대답 안 하면 할 때까지 처맞든가.”

“…….”

이미 만수통령술에 의해 그의 무위를 본 뒤였다.

무공만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음마가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일어났다.

어쩌면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든지 틈을 만들어야만 했다.

“호호호, 과연 듣던 대로 대단하구나. 진소청.”

“…….”

음마의 목소리가 간드러지게 들려왔다. 목소리에 미혼의 힘이 담긴 음공을 실은 것이다.

슬쩍슬쩍 나의를 흔들며 움직이는 몸짓에 환락무를 녹이고 작은 손짓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했다.

일단은 환락무로 놈의 주의를 빼앗고 결정적인 순간에 마안을 사용한다는 계책이었다.

그도 안 되면…….

“지랄하네.”

“……!”

“다 늙은 할망구 주제에.”

소청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나도 먹혀들지 않았다.

음마는 마음만 먹는다면 소림사의 방장도 홀릴 수 있다 자신했다.

설마 이놈은 욕정이라는 것이 없단 말인가?

어찌 혈기 가득한 약관의 젊은이가 승려보다 정심한 이지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사내라면 응당 가져야 할 것이 욕정이다.

그런데…….

“지금 내 기분이 별로거든. 또 한 번 그 짓거리 하면 사지를 찢어 죽일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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