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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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64화
163화. 고리꾼들의 뒷배
“이보시오.”
“…….”
“도대체 무슨 일이오?”
소청이 물었지만 포목점 주인은 그저 혁련휘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소청이 계속해서 물어보자 포목점 주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괜한 짓을 하셨습니다. 분명 다시 돌아와 해코지할 것인데.”
“음? 그게 무슨 소리요? 엄연히 관부도 있고 근처에 남궁가가 있는데?”
“관부? 남궁가? 허,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절강성에서 왔소.”
“거 소식이 어두울 만도 하십니다.”
포목점 주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관부 놈들이야 우리 것들 말을 들어주지도 않고, 남궁가는 이미 문을 걸어 잠근 지 오래되었소.”
문을 걸어 잠갔다고?
어째서?
소청 때문에 남궁천세가 죽고 창궁검수대의 일부가 무너졌지만, 명가의 저력은 그 정도로 사라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무인들이 남아 있었고 다리가 부러졌다고 해도 소가주 남궁진수가 살아남았다.
분명 가문을 지키기 위해 밑바닥부터 다시 다지고 있어야만 했다.
‘이상하다. 왜? 봉문을 했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설사 봉문을 했다고 해도 그들의 자존심상 황산 인근에서 이런 소란이 자행되게 둘 리가 없었다.
소청이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포목점 주인이 하소연하듯이 말했다.
“이게 다 그 진소청 개자식 때문입니다.”
“…….”
“그놈 자식이 마천이고 어쩌고 하면서 남궁가를 공격한 탓에 봉문을 하고 얼마 뒤부터 저런 놈들이 나타났소. 이곳뿐이 아니라 안휘성 전체가 무법천지요. 관에 고변을 해 보아도 신경조차 쓰지 않더이다.”
포목점 주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지금까지 어떻게든 고향에서 버텨 볼까 했는데 더는 안 되겠소. 딸년을 팔아먹느니 떠나야지.”
포목점 주인이 축 늘어진 어깨로 절룩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 저…….”
소청이 무언가를 물어볼까 했는데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황산 인근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농사를 짓는 이들도 지주들의 과도한 요구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나?”
사파에서 그 같은 일들을 수도 없이 보아 왔던 혁련휘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상하지. 당연히 이상해.”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악랄한 자들도 기본은 남겨 두는 법이다. 지금처럼 수탈해 대면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남지 않는다.
지금 안휘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마치 뒤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완전히 말라 버릴 때까지 짜내고 있다.
황학루 기녀 양화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돌아간 이후 첨사 대인이 호두만 한 야명주를 보이며 자랑을 했다고 하더군요.
이상백이 여인을 만나고 난 다음에 야명주를 받았다.
이상백뿐일까?
분명 더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상백을 찾아온 여인이 왠지 금성희가 아닐까 했던 추측이 점점 더 확실해져 가고 있었다.
“만약 금성희가 맞는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했을 거야. 그래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이겠지.”
“금성희? 그게 누군데?”
“남궁세가의 가모. 금마강의 딸.”
“흐흠…….”
그들이 만약 문을 잠근 척하고 고리, 지주, 인신매매, 도박장을 하는 자들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것이라면?
‘좋아, 확인해 보면 알겠지.’
“휘, 가세.”
“아씨, 또 어딜?”
소청은 대답하지 않고 걸었고 혁련휘는 금존청을 몇 병이나 받아야 하나 계산하며 뒤따랐다.
* * *
쩍!
사정없이 휘둘러지는 검집에 사내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들은 낮에 포목점에서 강짜를 부리던 고리꾼들이었다.
“죄송합니다.”
쩍!
사죄를 청했지만,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복부를 파고든 발길질에 꼬꾸라진 수하가 바닥에 구토를 하자 손과 다리에 붕대를 감은 혁진이 재빨리 엎드려 외쳤다.
“사, 살려 주십시오. 갑자기 이상한 놈들이 끼어드는 바람에 그리된 것입니다.”
“이상한 놈?”
“예. 상인 같았는데 호위 무사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
치도곤을 놓던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떤 자들이냐?”
혁진은 자신이 본 대로 소청과 혁련휘의 행색을 상세하게 아뢰었다.
“흐흠,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것은 용서할 수 없지.”
스걱!
손이 움직이는 순간 뻗어 나온 백광이 혁진의 모가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찰칵, 툭. 데구르르…….
검이 꼽히는 소리와 함께 혁진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고 피가 솟구치는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쓸모없는 놈을 원하지 않는다. 내일까지 할당량을 채워 놓아라.”
“아, 알겠습니다.”
혁진이 일검에 죽어 버린 모습에 얼굴이 창백해져 버린 고리꾼들은 그가 사라질 때까지 납작 엎드린 채로 벌벌 떨었다.
혁진을 죽여 버린 무인은 은밀하게 그들의 거처를 빠져나와 황산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숲속에 숨어 혹여 자신을 지켜보는 자가 있는지 주위를 세밀하게 살피다 남궁세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향한 곳은 남궁가의 여인들이 기거하는 처소의 가장 깊숙한 곳이었다.
“가모님, 충헌입니다.”
“들어오게.”
안에서 금성희의 허락이 떨어지자 충헌이라 밝힌 무인이 안으로 들어갔다.
“오, 정말 남궁세가에서 뒤를 봐주는 모양인데?”
소청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은 혁련휘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낮에 고리대를 놓던 이들을 찾아갔었다.
그런데 갑자기 충헌이라는 자가 나타나 그들이 거두어들인 고리대를 챙겨 남궁세가로 숨어들었다.
충헌이라는 자뿐만이 아니었다.
일단 안을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휘, 자네는 여기서 기다려 주게.”
“들어가 보게?”
“그래. 무슨 작당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겠다.”
소청이 말을 마치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혁련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 정말 놀라워. 비마대원들의 은신술은 대충 눈치챌 것 같은데 도무지 기척을 찾을 수가 없으니.”
불이 어슴푸레하게 밝혀진 직사각형의 길쭉한 방 안.
발을 내려 모습을 가린 금성희의 앞으로 소가주인 남궁진수가 앉아 있었고, 방의 좌우로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두 줄로 늘어앉아 있었다.
“말하게.”
“관부에서 좀 더 많은 돈을 원하는 눈치였습니다.”
“…….”
맨 앞에 앉은 무인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금성희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 변화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좀 더 쥐어짜면 될 일이지. 다음.”
“관에서 사용했던 대장군포를 다량 확보하였습니다. 다만 화약을 사려면 좀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좋네. 내 마련해 보도록 하지.”
금성희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무기들을 확보한 이야기와 관부에 들어가는 자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금일 황산 인근에서 고리대를 놓던 자들에게 작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문제?”
“예. 예정된 금액만큼 수금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뭐라? 어째서냐?”
“못 보던 이들이 끼어들었다 하더군요.”
충헌의 말에 금성희의 고운 아미가 일그러졌다.
“못 보던 이들이라니?”
“고리대를 운영하는 자들의 말로는 상인 같았다고 했습니다.”
“상인?”
“예. 근방에서 처음 본다고 했으니 아마도 다른 성에서 온 것 같습니다.”
“흠…….”
금성희가 말을 멈추고 손으로 턱을 쓸었다.
앞으로 반년, 남궁가의 무인들을 보검과 갑주, 군문의 무기를 빼돌려 무장시키자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아직 남궁가는 부족하다.
남궁천세와 창천오검, 창궁검수들의 태반이 죽어 나간 탓에 전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또한, 혈승의 지시대로 반년 동안 관군을 이용해 중원 무림을 묶어 두게 하자면 더 많은 뇌물을 바쳐야만 했다.
이미 육부에서 반발이 시작되는 바람에 도독부에서도 난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에 대해서 알아보라. 무엇 하는 자들인지, 무슨 목적으로 이곳을 찾아왔는지.”
“알겠습니다.”
“은밀하게 움직여라. 반년이다. 그때까지는 절대로 세가의 이름이 나와서는 아니 된다.”
“예!”
충헌이 대답을 마치고 물러난 뒤에도 회의는 계속되었다.
그녀는 안휘성 전역에서 불법적인 일들의 뒤를 봐주며 자금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은밀히 그들의 대화를 듣던 소청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남궁세가는 마치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것처럼 관부의 무기를 빼돌려 무장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금성희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기다려 보았지만 마천에 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소청은 의문을 가득히 품은 채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암, 그래 뭐 좀 건진 건 있어?”
“그래. 지켜보는 자들은 없었나?”
“적어도 내 기감에 걸린 놈들은 없었다.”
혁련휘의 기척에 잡히지 않았다면 안심해도 될 일이었다.
“일단 그녀가 엄청난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은 알았네. 안휘성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들의 뒷배에 남궁세가가 있는 건 확실해졌어.”
“흠, 그 많은 돈을 모아서 어쩌려는 거지? 남궁세가를 다시 일으킬 생각인가?”
혁련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필요 이상으로 관부의 무기를 빼돌리고 있더군.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그 외에도 뇌물로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한 모양이더군.”
“뇌물?”
“그래. 아마도 그 뇌물이 관부를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야.”
이상백이 가지고 있던 야명주는 필시 그녀에게서 나온 것이 확실할 것이다.
그녀는 없는 자들의 고혈을 빨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는지도 대충 알 것 같았다.
관부의 무기를 통해 남궁세가의 전력을 보강할 생각이다.
그런데 왜?
아무리 전력을 보강한다고 해도 지금 그들이 가진 힘으로는 무림에 어떠한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관부의 힘으로도 지금으로서는 무림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전력을 보강하고 관부와 연줄을 대고 있었다.
그리고.
‘반년…….’
금성희는 반년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도대체 그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한번 건드려 보는 수밖에 없나?”
“건드려? 뭘? 남궁세가를 공격하게?”
“아니. 남궁세가를 직접 공격하면 관부가 나설 수도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들과 부딪쳐서 좋을 게 없어.”
“그럼?”
“일단은 저들의 돈줄부터 말려 버려야지.”
“훔치게?”
“내가 도둑이냐?”
“신투였잖아.”
“…….”
뭐 생각해 보니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훔쳐 내기만 하면 그들은 더욱더 사람들의 고혈을 짜낼 터이니 죄 없는 사람들만 피해를 볼 것이었다.
“휘, 혹시 남궁가가 뒷배를 봐주고 있는 이들 중에 사도련에 포함된 자들도 있을까?”
“글쎄? 안휘성은 남궁가의 영역이라 남궁천세가 맹주가 되었을 때 스승님의 명령으로 대부분 철수했지.”
“흠, 그럼 상관없겠군.”
“뭐가?”
“지금부터 개새끼들을 좀 때려잡아서 주인을 불러내 볼까 하고.”
소청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휘, 철혈군을 좀 불러 주게.”
“철혈군을?”
“그래.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야지.”
“흐흐흐, 드디어 시작하는군. 안 그래도 몸이 찌뿌둥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