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62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62화
161화. 지난밤에 있었던 일 (2)
찰싹.
따끔하다.
황태산파, 은양이파와 함께 무한 뒷골목을 주름잡고 있는 태중길은 꿈속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찰싹.
아픈 걸 보면 분명히 꿈은 아닌데 자신의 뺨을 이렇게 때릴 사람이 뒷골목에 있었던가?
“야, 일어나.”
“…….”
뭔 꿈이 이렇게 생생할 리가 없지!
태중길은 벌떡 일어나 물러나며 위협적인 눈으로 자신을 찾아온 이들을 쓸어 보았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들려 있었다.
차가운 느낌이 손안에 전해지자 자신감이 차올랐다.
“웬 놈들이냐!”
잠이 확 달아난 모습이었다.
눈앞에 있는 습격자는 셋이었다.
“어디냐? 황태산이? 은양이? 어떤 놈이 시킨 거냐?”
뒷골목 생활만 이십 년이었다.
힘없는 모사(摹寫)꾼으로 시작해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위기를 헤쳐 왔던가?
잘난 놈 제치고, 못난 놈 보내고 배신하는 새끼들 다 죽여서 올라온 자리였다.
이 정도의 습격은 수도 없이 받아 본 그였다.
“뭔 깡으로 온 건지 모르겠다만 네놈들은 오늘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이다.”
“…….”
마치 경극의 대사를 읊어 대는 그의 모습에 혁련휘와 초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태중길이 한쪽 벽면에 위치한 장치를 건드린 것이다.
“아, 그 새끼 쉽게 갈 수 있는 일을 어렵게 만드네.”
소청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초사는 이럴 때 보면 소청이 영락없는 시정잡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아마도 태중길이 건든 장치는 수하들을 부르기 위함인 것 같았다.
“네놈들 내가 누군 줄 알고.”
“태중길파 두목 태중길, 황제의 직인을 위조한 뛰어난 모사(摹寫: 위조)꾼들의 영웅. 이후 잠적. 무한 뒷골목에서 잔뼈가 굵었지. 동창에서 네놈의 뒤를 쫓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더 말해야 하나.”
“네놈이 그걸 어떻게?”
“다 아는 수가 있어.”
소청이 웃자 태중길의 눈이 매섭게 가늘어졌다.
황제의 직인을 모사한 죄는 목이 서너 개라도 모자랄 중죄였다.
이미 십수 년 이상이나 지난 일이었기에 관에서도 사건을 종결한 지 오래였는데 어찌 알고 있는 것일까?
“그걸 알고 있다니. 네놈들을 반드시 죽여야겠구나.”
태중길의 비수가 서슬 퍼런 기세를 품고 비틀렸다.
그사이에도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흐흐흐, 도망치기는 늦었다. 이미 수십 명이 밖에서 대기 중일 게다.”
태중길의 싸늘한 위협에도 소청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보려는 놈들이 있다니까. 쉽게 가자, 쉽게. 그저 문서 하나만 모사 떠 주면 돼.”
“닥쳐라!”
“거참…….”
소청이 한숨을 내쉬고는 혁련휘를 쳐다보았다.
“왜? 뭐?”
“시끄럽잖아. 밖에 좀 정리해 주게.”
“뭐? 내가? 이 친구 참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일단 저들은 정식은 아니지만 사도련에 한 발 두고 있는 자들이야. 더욱이 급 떨어지게 저런 것들이랑 싸우란 말이야?”
“싸우라는 게 아니고 패.”
“뭐?”
“그냥 조용히만 시켜 달라고.”
“…….”
“아 뭐 해? 시간 없다니까?”
소청의 채근에 혁련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입술을 삐죽하게 내밀었다.
“황학루 금존청.”
“쯧, 좋아.”
둘이 옥신각신하는 모습에 태중길은 어이가 없었다.
자기들이 무슨 사도련의 소련주나 근래 무림을 울리는 진혼창도 아니고 수십 명이나 되는 자신의 수하들을 처리하는 일을 무슨 가위바위보 하듯이 하다니.
그저 미친놈들이라 치부했다.
혁련휘가 문을 열고 나가자 소청이 새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태중길을 향해 다가왔다.
“칼 내려놔라. 그러다 손 베일라.”
“이 새끼가!”
쉬익!
결국 태중길이 참지 못하고 빠르게 내질렀다.
슉!
허공을 가른다.
정확히 심장을 노렸…….
구깃.
“그 새끼 참.”
박혀야 할 비수가 피부도 뚫지 못하고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그리고 싸늘한 소청의 눈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일단 좀 맞자.”
쩍!
“크윽!”
쩍, 쩍쩍쩍!
후두둑.
바닥에 부서진 이빨이 모조리 떨어지고 피가 뚝뚝 떨어졌다.
퍽! 퍽퍽퍽퍽!
구타는 그치지 않았다.
온몸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고통이었다.
아픔에 눈물이 절로 나고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 그만. 제바-알…….”
태중길은 바닥에 널브러져 힘겹게 외쳤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단 말인가?
“소청.”
그사이에 밖으로 나갔던 혁련휘가 안으로 들어왔다.
벌써? 나간 지 얼마나 지났다고?
태중길이 고통 속에서도 열린 문을 통해 밖을 쳐다보았다.
수십이나 되는 수하들이 한 놈도 빠짐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도대체 뭐냐? 네놈들은?
“초사, 세워.”
“예.”
초사가 부축해 일으켜진 태중길은 뼈까지 스며 오는 고통에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하아, 더 처맞아야 하나? 제대로 못 서?”
“아닙니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소청의 표정에 태중길이 온 힘을 다해 몸을 바로 세웠다.
원래 그런 것이다.
약한 자에게는 더욱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해지는 것이 뒷골목을 살아가는 그들의 생리였다.
그들을 다루는 법은 그냥 패는 것.
아무리 독해도 그보다 더 독하게 패면 된다.
“자, 대충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으니까. 이제 시작해 볼까?”
소청의 말에 태중길이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죽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뒷골목에서 살아온 그의 눈치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황태산? 은양이?
그들이 보낸 자들이 아니다.
영역 따위는 애초에 관심 없는 자들이었다. 시키는 대로 해 주면 조용히 사라져 줄 놈들이었다.
“앉아.”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태중길이 탁자에 앉았고 소청이 그 앞에 손에 들고 있는 족자를 펼쳐 놓았다.
차륵.
“이, 이건!”
태중길은 내용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명령서였다.
그것도 황제의 직인이 찍힌…….
“많이 해 봤지?”
물론. 하지만 황제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를 위조했다가 지금까지도 숨어 살고 있었다.
“해.”
“예? 하지만 이건…….”
“하는 게 좋을 거야. 시간은…… 두 시진 주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래? 그럼 하고 싶어질 때까지 맞든가.”
“…….”
서슬 퍼런 기세에 태중길은 어쩔 수 없이 모사를 시작했다. 필체는 물론 직인까지 똑같이 소청이 불러 주는 내용으로 고쳤다.
“됐군. 흐흐흐. 그럼 한숨 자고 일어나라고…….”
태중길은 소청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들으며 후두부에 강렬한 충격을 느끼고 정신을 잃었다.
“패, 패월.”
“자네 미끼라는 게…….”
초사와 혁련휘는 눈앞에서 벌어진 황당한 계획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흐흐흐, 미끼 완성. 초사.”
“예?”
“이걸 이상백이 머물고 있는 황학루에 가져다 놔라. 군령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끄러워. 시키는 대로 해.”
“…….”
걸리면 죽음인데…….
하지만 이미 내려진 명령이니…….
초사는 황제보다 눈앞에 있는 소청이 더 무서웠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 * *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어찌 아신 겁니까?”
호기심 넘치는 방효곤의 표정에 소청이 고개를 흔들며 지난밤의 기억을 떨쳐 버렸다.
말해 주면 방효곤의 성격상 분명 야단법석을 떨 것이 분명했다.
차라리 말을 해 주지 않는 편이…….
뭐 어때?
움직였다는 게 중요하지.
“그냥 미끼를 던졌습니다. 저들이 덥석 문 것이고요.”
“…….”
그러니까 어떤 미끼냐고?
멱살을 잡고 묻고 싶을 정도로 궁금했지만, 소청이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좌군 도독부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예? 예.”
소청의 질문에 방효곤이 자신이 아는 대로 설명을 했다.
좌군 도독부(左軍都督府).
이치성 도독이 맡고 있는 곳으로 절강성의 항주에 위치하고 있었다.
인근 성인 안휘, 강서, 복건성을 통제하고 있으며 도독동지(都督同知) 서일항 장군 이하 도독첨사 대군후(大軍侯) 금마강과 충후공(忠厚公) 조금산이 있었다.
좌군 도독부의 장군들은 다른 곳과는 달리 현 황제가 역성을 통해 황위에 오를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잠깐, 누구라고?
소청이 방효곤의 말을 막았다.
“대군후 금마강요?”
“어? 아십니까?”
“아니요. 이름이 너무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지요. 금마강 대군후께서는 현 황제 폐하를 도운 이들 중 가장 공적이 높고 친정에도 수차례…….”
방효곤의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소청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떠올라 있었다.
‘금마강, 금마강……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누구지?’
소청은 한참을 고민하다 비슷한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꽤 오래 지난 이름이었지만…….
‘남궁세가? 가모 금성희?’
떠올랐다.
남궁세가를 무너뜨렸을 때 자신을 원독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그녀.
그녀로 인해 제갈휘문이 혹시 군벌이 끼어들지 않을까 우려했던 적도 있었다.
‘변절한 자들 중에 유일하게 역천의 진언을 배워 오존에 올랐던 남궁천세. 관부에 마천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곳이 좌군 도독부라면? 역시 뭔가가 있어.’
더 들을 필요는 없었다.
좌군 도독부는 방효곤이 확인할 것이다.
그사이에 소청은 남궁세가를 살펴보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이상백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들었을 것이고 그 대가로 무언가를 받았을 것이다.
가령 구하기 힘든 ‘야명주’와 같은 것들…….
하지만 그도 절대로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 주어야 했다.
‘네가 감히 진가를 가지고 나를 위협해?’
소청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표국 분점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눈이 있었다면 대역을 세우고 빠져나왔을 때 이미 눈치를 챘어야만 했다.
자신들이 지난밤 동안 움직임을 보였고 황제의 직인을 위조한 사실을 알았다면 이상백이 좌군 도독부로 전서구를 날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그들이 알렸을 테니까.
“초사, 비마대를 반으로 나눈다. 한쪽은 계속해서 이상백을 감시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은 좌군 도독부를 살펴라. 목표는 대군후 금마강이다.”
“알겠습니다, 패월.”
“나는 남궁가로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