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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61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61화

160화. 지난밤에 있었던 일 (1)

 

 

 

 

와장창!

방 안에 있던 온갖 집기들이 부서졌다.

“헉, 헉. 이런 개자식이!”

황학루로 돌아온 이상백은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진소청에게 느꼈던 섬뜩함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손이 잘게 떨려 왔다.

두려움.

그러한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언제였던가? 피와 살육의 전장에서도 이토록 진하게 느껴 본 적은 없었다.

자신을 쏘아보던 눈동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의 위엄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수하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린 꼴이 아니던가?

“감히 한낱 무부 따위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진소청. 내 반드시 네놈을 엮어서 사지를 찢어 죽여 버릴 것이다.”

이상백은 거칠어진 호흡을 가라앉히며 기녀들을 불렀다.

“술을 가져와라! 어서!”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독주(毒酒)에 취해 잠시나마 치욕을 지워 버리고 싶었다.

그날 밤, 이상백은 기녀들을 끼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비어 버린 술병들이 방안을 가득 채웠을 때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첨사 대인.”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이상백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첨사 대인.”

밖을 지키고 있던 무장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서성거리며 몇 번이나 그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첨사 대인, 몽우입니다.”

“끄응. 무슨 일이냐!”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신경질적으로 일어난 이상백은 짜증이 잔뜩 묻어난 목소리로 외쳤다.

“확인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술이 덜 깼기 때문인지 거절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무척이나 급하게 들렸다.

“들어와라!”

이상백은 주전자에 담긴 물을 단숨에 비워 내며 자리에 앉았다.

허락이 떨어지자 급히 안으로 들어온 몽우가 눈치를 살피며 손에 든 무언가를 내밀었다.

“여기…….”

푸른 족자에 싸인 물건.

군령이 담긴 명령서였다.

도독부에서 또 무언가 지시가 내려진 모양이라 생각하며 얼굴을 찡그린 이상백이 투덜거렸다.

“웬만한 것은 너희 선에서 처리해도 되지 않느냐.”

“그게…….”

이상백의 말에 몽우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이 무척이나 의아했다.

족자를 받아 내용을 읽은 이상백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족자와 몽우를 번갈아 바라보던 이상백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방효곤, 이 개자식이 정말!”

그것은 형부의 협조 공문이었다.

말인즉슨 민간의 살겁을 조사하는 일에 노고가 많음을 칭찬하기 위해 도찰원(都察院)의 어사(御史)를 보내겠다는 내용이었다.

도찰원은 황제 직속의 감찰 기관이었다.

도독부에 연락을 보내 형부를 압박해 달라고 했더니 놈들이 도찰원을 움직인 것이다.

말이 ‘치하(致賀)’지 감시를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감찰어사의 이름이 가관이었다.

상계지주 방효곤.

정오품인 지주를 정칠품의 어사직으로 발령 내는 인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방효곤과 형부가 대놓고 도독부의 행사를 방해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황제의 직인까지 찍혀 있는 것을 보면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 이…… 망할 자식들이!”

이상백의 두 눈이 날카롭게 솟구쳐 올라갔다.

“언제 온 것이냐?”

“그게…….”

“언제 왔는지도 모른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명령서들 틈에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이런 멍청한! 폐하의 직인까지 찍힌 명령서를 놓쳤단 말이냐! 도대체 군령을 관리하는 놈들은 어떻게 돼먹은 게야! 당장 끌고 오라! 내 목을 베어 버릴 것이야!”

“옛!”

길길이 날뛰는 이상백의 모습에 몽우가 목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저어, 한데 어찌할까요? 폐하의 직인이 있는 것을 보면 정식으로 명령이 내려진 것인데…….”

몽우의 말에 이상백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이를 갈았다.

이미 도독부와 형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형부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찰원까지 끼어들면 일이 복잡해진다.

그리고 하필이면 방효곤이라니?

이상백은 그의 성품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조차도 관인은 저래야 한다면서 그의 공명정대한 일 처리에 대해 수하들에게 칭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몰래 일을 꾸미고 있는 처지에서는 그런 성품을 가진 자가 감찰어사로 오게 되는 것만큼 신경 쓰이는 일이 없었다.

안 그래도 일전에 찾아와서 법에 맞지 않는다며 으름장을 놓지 않았던가.

“전서를 띄워야겠다. 방효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어.”

“어디로?”

“이런 멍청한! 누구에게 보내겠느냐!”

“죄송합니다.”

핀잔을 들은 몽우가 찔끔하며 지필묵을 준비했다.

일필휘지로 써 내린 전서를 가지고 급하게 뛰어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상백이 어금니를 갈았다.

“오냐, 네놈이 감히 도독부에 반기를 들어? 네 아비를 믿고 까부는 모양인데, 이 기회에 네놈 부자를 모조리 털어 내 주마.”

이상백이 소청에게 향했던 분노를 방효곤에게 전가하며 서슬 퍼런 분노를 표출했다.

 

푸드득.

한 마리의 전서구가 날갯짓을 하며 힘차게 황학루를 떠나 순식간에 산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죽이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마십시오!”

나지막한 목소리에 이은 대답과 함께 활시위에 촉 없는 화살이 걸렸다.

찌이익!

터질 듯이 당겨진 활이 전서구를 겨냥하며 뒤쫓았다.

핑!

숲을 뚫고 솟구친 화살이 쾌속하게 날아가자 힘차게 날갯짓하던 전서구가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초사!”

짧은 부름과 함께 초사가 떨어지는 전서구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뛰었다.

잠시 후 초사가 손에 잿빛 전서구 한 마리를 들고 돌아왔다.

분명 화살을 맞았음에도 잠시 충격을 받아 움직이지 못할 뿐 전서구는 말똥거리는 눈을 끔벅거리고 있었다.

“역시 대단한 궁술입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전서구를 맞힌 것도 모자라 이렇게 상처 하나 없다니요.”

소청이 그의 궁술을 칭찬하자 방효곤이 으쓱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 꼭 한번 제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아, 정말입니까?”

“대단하십니다. 저는 감히 흉내도 못 내겠습니다.”

“…….”

소청의 아부는 점점 더 진화하고 있었다. 이제는 입만 떼면 방효곤에 대한 칭찬이 절로 나왔다.

역시 처음이 어렵지…….

“여기…….”

초사가 전서구의 다리에 묶인 통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내밀었다.

“호오?”

쪽지를 꺼내 읽은 것은 다름 아닌 소청이었다.

“왜?”

함께 있던 혁련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소청이 히죽 웃었다.

“큭큭, 정말 빨리도 입질이 오는군.”

“…….”

소청이 역시나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하고 있는 방효곤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이, 이건?”

전서의 내용을 읽고 난 방효곤이 소청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전서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행선지가 좌군 도독부?

방효곤은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닌가 몇 번이나 확인했다.

이상백은 직책은 호북성의 도지휘첨사였다. 성의 군권을 가진 도지휘사 예하에서 전비(戰備: 전투 준비)를 맡고 있는 장군이었다.

오호 도독부의 직접 통제를 받는 직위에 있는 자라는 뜻이었다.

중원의 성들을 전, 후, 좌, 우, 중의 다섯 방위로 나누어 통제하는 오호 도독부는 각기 독립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호북성은 원래 중군 도독부에 소속되었다가 후군 도독부로 소속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응당 전서를 보내자면 행선지가 후군, 혹은 중군 도독부여야만 했다.

방효곤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마 오호 도독부 전체가 이 일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인가?

도무지 답을 내릴 수가 없었던 그가 소청을 쳐다보았다.

“어째서 좌군 도독부에?”

“그건 이제부터 확인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소청은 그저 빙긋이 웃기만 했다.

“한데 어찌 아셨습니까? 저들이 도독부로 전서구를 띄울 것이라는 것을요?”

마치 소청은 저들이 어떤 움직임을 취할지 알고 있는 것처럼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게 소청의 말처럼 진행되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아, 그게…….”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이 소청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아마…….

 

* * *

 

지난밤.

이상백이 돌아간 뒤 대역을 남기고 진가를 빠져나온 소청은 곧바로 방효곤을 찾아갔다.

형부에서 내려온 전서를 받은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관병들이 대규모로 움직여 정사 무림맹을 제재한 일로 형부와 도독부가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했다.

민가의 치안 문제를 두고 주장하는 도독부라 형부에서도 강하게 나갈 수 없으니 조금 기다리라는 답변이었다.

“어찌하죠? 형부에서 명령이 내려오지 않으면 저도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

방효곤이 못내 미안해하며 말하자 소청이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꽉 막힌 놈 같으니…….

그깟 명령이 뭐가 중요하다고?

네놈을 믿은 내가 바보지.

‘개입을 할 수가 없어? 좋아, 이상백이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이게 만들면 되지.’

음흉한 계획을 세운 소청은 방효곤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지주 대인, 일단은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는 좀 더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예상대로라면 내일쯤 이상백이 움직일 것입니다.”

“내일요?”

무슨 근거로?

방효곤이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소청은 그저 제 할 말만을 했다.

“일단 저를 믿고 내일 진시(7~9시)쯤 이곳에서 다시 만나시죠.”

“예?”

방효곤이 되물었지만 대답조차 해 주지 않고 일행들과 사라진 소청은 곧바로 황학루로 향했다.

“초사.”

“예, 패월.”

황학루를 내려다보던 소청이 초사를 불렀다.

“무한 뒷골목에 가면 태중길파라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위치를 찾아라.”

“태중길파요?”

“그래.”

딱 들어 봐도 정사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뒷골목 불량배들의 패거리가 분명했다.

가끔 보면 어떻게 저런 사실을 아는지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소청에게 단련될 대로 단련된 그였다. 명령이 떨어지자 별다른 질문 없이 곧바로 무한을 향해 움직였다.

“자네 어쩔 생각인가?”

혁련휘마저 의아하게 물었다.

“그냥 미끼 좀 던져 보려고.”

“미끼?”

“잠시만 기다리게. 안에 들어가서 한 가지 물건만 챙겨서 나올 테니.”

의문이 가득한 표정의 혁련휘를 두고 소청은 황학루로 잠입했다.

그리고 반 시진이 조금 지난 뒤 돌아왔다.

“그게 뭔가?”

돌아온 소청의 손에는 푸른 천을 덧대어 만든 작은 족자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이거? 미끼.”

“…….”

소청은 여전히 웃기만 했다.

언제나처럼 음흉하게…….

하지만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생각에 혁련휘가 마주 보며 웃었다.

“일단은 남은 시간이 별로 없으니 서두르지.”

 

적서(赤鼠)를 통해 초사의 위치를 찾아낸 소청은 곧바로 이동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무한의 외곽에 위치한 뒷골목이었다.

부랑자들이 살아가는 곳이라 사고가 일어나도 쉬쉬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 관의 통제가 부족한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각종 뒷거래가 이루어지는 일도 많았고 숨어 사는 범법자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들을 한군데 모아서 뒷골목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무한 뒷골목 범법자들의 집단.

태중길파.

참 웃긴 이름이지만 소청과 혁련휘는 은밀하게 그곳으로 숨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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