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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59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2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59화

158화. 칭찬은 만년교룡도 춤추게 한다

 

 

 

황보인과 악이군은 그날 이후 극악에 가까운 수련을 받아야만 했다.

딱 정신을 잃지 않을 만큼의 구타가 이어졌고 수련이 끝난 다음에는 내공을 쓰지 않고 미친 듯이 초식 수련을 해야만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방효곤은 소청의 실력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어느 정도로 강한지 알 수가 없었다.

대련을 해 본 황보인은 엄청나게 강했다.

그가 이긴 것은 단지 운이었다.

만약 내공을 사용했다면?

분명 상대도 되지 않았으리라.

아직 형부에서 답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방효곤은 진가 표국의 분점에서 기거하며 소청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황보인과 악이군을 구타하고 뒤이어 승혜를 수련시켰다.

그러곤 사라진다.

온종일 보이지 않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흠,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계속 지켜보다 보니 황보인 등이 하는 수련이 궁금하기도 했다.

왜 저렇게 죽도록 맞아 가면서도 감사하다고 하는 것일까?

철포삼(鐵袍衫)을 수련하기 위해 맷집을 기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저, 진 공자…….”

방효곤이 다가서자 소청이 흠칫 놀란 표정으로 물러났다.

마치 징그러운 무언가를 본 듯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자신에게 왜 그럴까?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까워지고 싶은데 너무나 경계하니 도무지 방법이 없어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 와중에 소청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이놈을 어떻게 이용하지? 시간만 자꾸 흐르고…… 말하기가 껄끄러우니 부탁하기도 그렇고. 법대로 하는 놈이라 사건 현장 조사나 이상백에 대해서 물어보면 관의 일이니 분명히 안 된다고 할 텐데…….’

그를 통해 어떻게든 관부를 조사해야만 했다.

이상백을 지켜보라고 한 초사와 비마대를 통해 확인한 정보는 두 가지였다.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으며 또한 형부와 관련해 도독부에 전서구를 보내고 있었다.

방효곤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형부를 압박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도독부가 형부를 압박한다는 건 무언가 구린 것이 있다는 뜻이겠지.’

사건 현장을 조사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관병들이 지키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눈을 속이는 것쯤이야.

하지만 자신이 조사해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의 조사는 신뢰도가 떨어진다.

어차피 무림인의 말 정도로 치부할 테니까.

‘뭔가 좀 더 압박해 보면 답이 나올 것 같기도 한데…….’

분명 이상백과 연결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압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방효곤의 역할이었다.

아, 뭐라고 꼬드기지?

황보인이 말을 잘해 놔서 자신을 향해 호감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긴 하는데 영 내키지 않았다.

소청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결국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하자. 해!

어차피 나는 이제 배수 막야도 아니고 다 과거의 일인데 내가 쫄 이유가 뭐가 있어!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그를 이용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저어, 지주 대인…….”

하지만 말을 거는 소청의 모양새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어색한 눈웃음을 치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예!”

소청의 부름에 방효곤이 마치 이름을 불러 주니 꽃이 된 것처럼 화사한 얼굴로 대답했다.

원하는 걸 얻자면 일단은 친해져야 하는데…….

이럴 땐 칭찬과 아부가 제일이다.

원래 ‘칭찬은 만년교룡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뛰어난 궁술을 가지고 있으시다 들었습니다만…….”

“궁술요? 하하, 제가 궁술을 조금 합니다!”

호감을 가지고 있던 소청이 자신의 궁술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방효곤이 신이 나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이것이 황제 폐하께서 제게 직접 하사하신 십자궁입니다. 여기 보이시죠? 폐하께서 하사하셨다는 인증입니다. 통짜 한철로 만든 것이기에 탄성이 엄청납니다. 범인은 시위를 당기지도 못하지요. 한번 보시겠습니까?”

자랑하고 싶었다.

방효곤 역시 자신의 장점을 보여 주며 소청의 호감을 사고 싶은 것이리라.

물론 소청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자, 보십시오. 때마침 저기 쓸 만한 놈이 있네요.”

방효곤은 멀리 나뭇가지 위에 앉아 이쪽을 보고 있던 다람쥐를 향해 빈 시위를 당겼다.

“무형시라는 것입니다. 기를 응축해서 쏘는 것이지요. 활을 사용할 때보다 힘이 들긴 하지만 어느 정도 방향 전환이 가능해서 전투에서 꽤나 유용하게 쓰입니다.”

찌이익! 퉁!

힘 있게 당겨진 시위가 놓아졌다.

‘쐐애액!’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간 기운은 단번에 다람쥐의 눈을 꿰뚫어 버렸다.

회백빛 눈동자를 가지고 진가의 표국 분점을 감시하듯 바라보던 다람쥐가 무형시의 기운에 통째로 터트려져 버렸다.

“대단하네요.”

엄지를 세워 올렸지만, 영혼 한 점 실리지 않은 딱딱한 감탄사.

억지로 지어진 듯 일그러진 웃음.

“감사합니다. 진 공자에 비하면 미흡한 실력입니다. 핫핫핫.”

하지만 중원 무림에서 최강이라 칭해지는 무인 중 한 명인 소청의 칭찬에 방효곤의 입꼬리가 귀에 걸려 내려올 줄 몰랐다.

이렇게 가벼운 놈이었나?

어쨌든 어렵게 대화를 끌어냈으니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그런데 혹 무림에 대한 관부의 조사가 어찌 되어 가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소청은 하고 싶은 말을 천천히 꺼냈다. 놈이 기분 나빠 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관무불침이니 알려 줄 수 없소.’라며 대번에 거절하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던 소청의 예상과는 달리 방효곤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도독부의 명이니 제 직책으로는 참견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형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니 답이 올 때까지 기다려 보고 있습니다. 만약 알게 되는 사실이 있으면 제일 먼저 알려 드리겠습니다.”

엥? 뭐가 이리 쉽지?

너무도 쉽게 이야기를 해 주자 소청이 당황했다.

법과 정의, 공명정대의 표본과 같은 놈이 아니었던가?

어찌 보면 관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이렇게 막 무림인에게 말해 줘도 되는 건가?

사실 소청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소청이 그를 만났던 것은 배수였던 시절이었다.

방효곤이 바라보는 전생의 막야는 그저 갱생되질 않는 악질 배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의 소청은 무인들에게 있어 그 누구보다 뛰어난 우상이었다.

고민했던 것과는 달리 일이 쉽게 풀리자 소청의 말투가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

“제가 이런저런 일을 조사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뭐 지주 대인께서도 눈치채셨겠지만…….”

소청이 슬쩍 방효곤을 치켜세워 주며 눈치를 살폈다.

호기심이 끓어오르는 눈치였다.

“그게 뭡니까?”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오는 통에 소청은 전신에 두드러기가 나는 듯이 흠칫 물러났다.

여전히 적응은 어려웠다.

“말씀해 주십시오. 그게 뭡니까?”

“이, 일단 조금 물러나시고…….”

“아, 죄송합니다. 조금 흥분했군요.”

방효곤이 물러나자 소청이 놀란 마음을 다스렸다.

역시 친해지기 힘든 종자였다.

“첨사 대인께서 도독부와 관계된 의문의 여인을 만나셨다고 하더군요.”

“……?”

“분명 첨사 대인이 소속된 곳은 후군 도독부지요?”

“그렇습니다. 척승광 장군의 휘하입니다.”

“하면 그 여인은 척승광 장군 측에서 보낸 인물일까요?”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었다.

첨사 이상백을 만날 수 있는 여인 따위는 도독부에 존재하지 않았다.

여인의 몸으로 사내들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곳은 무림이 유일하리라.

“그리고 민가의 안정을 위해 군부가 나섰는데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하더군요.”

소청의 말에 방효곤의 눈이 찡그려졌다.

조사가 목적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하면 도독부에서 그저 제재를 가할 목적으로 그리하고 있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중원 무림계와 관은 서로 불침이지만 상호적인 관계이기도 했다.

군부에는 구파는 물론 중원 무가 출신의 장수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 어째서 무림에 제재를 가한단 말인가?

아무리 민가의 치안 유지를 위해서라고 해도 과하게 병력을 움직였으니 황제의 분노를 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도독부로서는 얻을 것이 없는 행동이었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말이 되지 않지요.”

방효곤의 말에 소청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만약 도독부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면요?”

“그런?”

방효곤이 당황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무관이었다.

누구보다 충성심이 뛰어난 자였고 관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한 사내였다.

도독부는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다섯 장수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그런 도독부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말은 황제를 향한 그들의 충성심이 약해졌다는 것을 뜻했다.

“저희야 한낱 무부(武夫)에 불과하니 어디 조사라는 것에 익숙해야 말이지요. 그저 허울 좋은 무공으로 남의 뒷조사나 하는 편이라…….”

“…….”

“아마도 뛰어난 현장 판단 능력과 영민한 두뇌를 가진 관인이 뒤를 캐면 좀 더 확실할 것인데……. 가령 지주 대인과 같은 분이라면…….”

“음…….”

“막말로 지주 대인께서 어떤 분입니까? 서른의 나이에 정오품이라니요? 남들은 배경이니 뭐니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지주 대인의 출중한 능력을 알아보지 않았다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칭찬을 하는 와중에 두드러기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휴우……. 하지만 저희로서는……. 무림의 일이라면 몰라도 관에 대해서는 무지렁이라…….”

소청이 한껏 자신을 낮추었다.

따지고 보면 방효곤 정도는 창대 한 방에 찜 쪄 먹을 실력이지만 관부의 일 처리를 위해 무조건 그를 이용해야만 했다.

“이거 참, 어찌해야 할지. 분명 정치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나설 수가 없으니. 괜히 저들이 차일피일 미루다가 조사 결과를 조작해 누군가에게 이용을 당한다면 큰일이 아닙니까? 괜히 이런 일로 황제 폐하께 누가 되기라도 한다면…….”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말에 스스로도 놀라며 소청이 슬쩍 눈치를 살피자 방효곤의 눈에 사명감과 같은 불길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지요! 암, 무림인들도 황제 폐하의 백성인데!”

역시 걸려들었다.

칭찬과 아부의 능력을 새삼 다시 느끼는 부분이었다.

“제가 무엇을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예? 도와주시겠습니까?”

소청이 짐짓 놀라는 체하며 방효곤을 바라보았다.

“암요! 당연합니다. 이런 일에는 한 치의 음모도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하면 형부에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그리고 동창에서도…….”

“동창요?”

“예. 막말로 동창이 어떤 곳입니까? 황제 폐하의 권위를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곳이 아닙니까? 폐하의 직인도 받지 않고 군을 움직였으니 응당 동창이 조사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음, 알겠습니다. 연이 있는 분께 부탁을 드려 보겠습니다.”

“지주 대인은 역시 호탕하십니다.”

“별말씀을요. 사직의 안위를 걱정하시는 진 공자의 마음 씀씀이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하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형부에 촉구하여 사건 현장을 다시 한 번 조사해야겠습니다!”

방효곤은 마치 눈에서 불을 토하듯 하다가 연무장을 나가 버렸다.

“파하!”

방효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소청이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후우……. 숨 막혀 뒈질 뻔했네.”

소청은 쪼그라들었던 가슴을 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일단 목적한 바는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방효곤이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관의 문제는 그가 알아서 하겠지. 그사이에 나는 마천과의 연계성을 파악하면 된다.’

마음을 가라앉힌 소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좀 쉬어야지. 무슨 관인 하나 상대하는 게 구자겸과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지…….”

어쩔 수 없다.

그게 범죄자들의 본능이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자신을 수도 없이 잡아들여 치도곤을 놓았던 상대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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