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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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57화
156화. 아무리 그래도 화대(花代)라니?
“아니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방효곤의 이야기를 들은 멸절사태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예, 그렇습니다. 말이 안 되지요. 아무리 조사가 필요하다고는 하나 이런 식은 아닙니다. 황제 폐하의 승인도 없이 도독이 움직이다니요. 치안 유지라면 각 성의 형부에서 나서야 할 일인데…….”
방효곤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흠…….”
승혜의 수련을 지켜본다는 핑계로 멀찍하게 떨어져 있던 소청이 턱을 쓸었다.
이상한 일이다.
방효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군부가 독단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보시오, 진 공자.”
갑자기 방효곤이 다가오려 하자 소청이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거기! 거기서 말하시오.”
“예?”
“멀리 떨어져서! 가까이 오지 말고!”
질색하는 소청의 얼굴에 엉거주춤하게 멈춰 버린 방효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했다.
“아, 예…….”
방효곤은 의아한 표정으로 소청을 향해 말했다.
“일단은 제가 형부에 연락을 보내 두었으니 무슨 움직임이 있을 것입니다.”
“…….”
관의 문제였다.
그들 사이에 일어난 명령 체계의 문제이니 자신이 끼어들 수는 없었다.
그것은 제갈휘문이나 무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라면 시점이 공교롭다는 것이다. 마천이 준동하고 있는 시점에 관이 중원 무림계에 제재를 가했으니 움직임에 심각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흠…….”
소청이 연무장에 쓰러져 있는 초사와 비마대, 황보인과 악이군을 보며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진가 표국의 대표두, 포정이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대공자님!”
“아, 대표두님.”
포정이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말하기를 꺼려 하는 듯하자 소청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말씀하세요. 그리 비밀을 둘 사람들이 아닙니다.”
소청의 말에 포정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혹시 황학루에 빚이 있으셨습니까?”
“황학루에 빚요?”
소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처음에는 그저 급전(急傳: 급한 전갈)을 보낼 게 있다 해서 안으로 들였는데, 대공자께서 계시다는 말을 듣고는 빚을 받을 게 있었는데 잘되었다고…….”
“빚이 없는데…….”
“그게 저…….”
포정이 멸절과 승혜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화대라고…….”
“…….”
“화, 화대요?”
소청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화대(花代)라니?
기생이나 악사 등에게 놀아 준 대가로 주는 놀음차를 말함이다.
황학루를 들른 적은 있었지만 분명 그때 황금 한 관이라는 거금을 치른 다음이었는데…….
“거 이상하네요. 휘와 함께 들렀을 때는 분명 술값을 치렀는데요.”
“그게, 청루 소속이 아니라 홍루(紅樓) 소속의 기녀라…….”
“……?”
속삭이는 듯이 말했지만 멸절과 승혜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방효곤이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홍루는 창기(娼妓)들이 일하는, 속칭 하룻밤의 연정을 나누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난 그런 적이 없는데?
소청이 무어라 변명을 해 보려 했지만.
“핫핫핫, 역시 영웅호색이라 하더니 진 공자께서도 풍류를 아시는 모양입니다.”
“아니 그게…….”
소청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멸절과 승혜가 고개를 돌렸다.
“험험, 승혜야. 진 공자께선 바쁘신 듯하니 우린 그만…….”
“아, 아니 오해가…….”
“괜찮소, 진 공자. 다 이해하오. 사내들의 세계인데…….”
“…….”
멸절과 승혜가 벌게진 얼굴로 인사를 하고는 연무장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무에 그리 부끄러워하십니까? 혈기 넘치는 사내가 그럴 수도 있지요. 뭘 변명을 하려 하시는 겁니까? 핫핫핫!”
방효곤의 말에 더욱 오해가 깊어졌다.
그게 아니라고 이 잡놈아!
“하아…….”
소청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 공자, 황학루라면 콧대가 높기로 유명해 고관대작들도 홍루에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혹, 아는 이가 있으면 언제 나도 소개를 해 주시오.”
“…….”
역시나 전생이든 후생이든 엮여서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놈이다.
서둘러 표국에서 쫓아내야겠다.
소청은 휘파람까지 불어 대는 방효곤을 두고 포정 대표두를 따라 접객당으로 향했다.
“하아, 진짜…….”
당금의 사내들에게 기방에 출입해 기녀와 연분을 쌓는다는 것이 딱히 흠이 될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 여자를 멀리해 청백지신(淸白之身)이나 다름없는 소청에게 홍루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자신은! 결단코! 홍루의 기녀와 연정을 나눈 적이 없다!
무고도 이런 무고가 없다!
소청이 황학루를 찾았던 것은 하오문의 비밀 분타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정사 연합이 이루어졌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애초에 사도련의 무인들 중 몇몇밖에 알지 못하는 곳이 아니었던가.
그곳의 기녀들은 대부분 하오문 소속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화대 운운하며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필시 무언가 전할 것이 있다는 뜻이리라.
포정은 분명 그녀가 사천에 급한 전갈을 보내야 한다며 찾아왔다고 했다.
필시 우진혜에게 정보를 보내기 위한 것이다.
정보가 빠른 이들이니 이미 사천의 서천맹도 관병에 의해 통제되고 있음을 알았을 테고 전서구를 보낼 수 없다 판단했을 것이다.
표국은 표물만을 나르는 곳이 아니었다.
무림이나 관부에서는 전서구를 이용했지만 일반 민초들은 먼 거리에 소식을 전하기 위해 표국을 이용한다.
이것이 표선(鏢線)이었다.
비록 시간은 좀 걸리지만 파발보다 빠르다.
하지만 그 금액이 비싸기에 웬만큼 급한 일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하오문에서는 전서구가 막힌 지금 사천과 왕래가 잦은 진가 표국의 표선을 이용해 우진혜에게 연락을 보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나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한 거짓 이유를 댄 게 분명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화대라니…….
소청이 포정을 물리고 접객당으로 들어서자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다소곳이 인사를 했다.
“진 공자를 뵙습니다.”
“…….”
결단코 처음 보는 여인이었다.
“저는 황학루에서 일하고 있는 양화입니다.”
“무슨 일이오?”
약간의 앙금이 생긴 소청의 목소리가 고울 리가 없었다.
면사를 벗어 낸 여인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걱정 마시오. 주위에 귀는 없으니까.”
소청의 말에 여인이 안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디 소문주님께 전서를 보내야 함이나 사천으로 가신 뒤이고 연맹에 관군이 지키고 있어서요. 진가 표국이라면 사천과 왕래가 잦으니 혹시나 연락이 가능할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래. 아는데…….
아무리 그래도 핑계를 댈 것이 따로 있지.
소청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정보요?”
“…….”
양화가 소청의 언짢은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첨사 대인 이상백이 황학루에 머물며 손님들을 모두 내쫓고 관군을 주둔시켰습니다.”
“……!”
순간 소청의 눈에 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도독부에서 명이 내려졌다고 해도 정사 연맹에 제재를 가한 이가 다름 아닌 그이기 때문이었다.
“이상백이 그곳에 머물고 있다고?”
“예.”
그렇다면 양화는 무언가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황학루가 군부에서 통제되고 있다면 출입을 허투루 할 리가 없었다.
필시 뒤를 쫓는 자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군부의 누군가 진가 표국의 무한 분점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표국을 찾아왔다면 그저 이상백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만을 알리려는 것은 아니니라.
어느새 소청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가득하게 느껴졌다.
“계속해 보시오.”
“지난밤, 첨사 대인이 머무는 처소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여인? 어떤 여인?”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첨사 대인은 그녀를 무척이나 잘 아는 것 같았고 분명 ‘도독께서는 잘 계시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도독부에 여인이라…….”
말이 되지 않았다.
군문에 여인이라니?
없지는 않았지만 이상백 정도의 고관과 독대할 수 있는 것은 왕족 여인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인은 저희를 껄끄러운 듯이 보았고 첨사 대인은 그 즉시 자리를 물렸습니다. 첨사 대인의 곁을 지키는 이들의 눈빛이 매서워 은신자들조차 쉬이 접근을 할 수 없었습니다.”
“흠…….”
지켜보지 못했을 것이다.
무림에 고수가 있는 것처럼 군부에도 고수가 있다.
자신이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방효곤만 해도 백대 고수에 필적하는 자였다.
특히나 그가 십자궁을 들었을 때는…….
소청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무언가 꺼림칙하다.
그녀의 정체를 알아야만 했다. 그녀가 모든 일의 중심이리라.
“한 가지, 그녀가 돌아간 이후 첨사 대인이 호두만 한 야명주를 보이며 자랑을 했다고 하더군요.”
“야명주…….”
엄청난 고가의 물건이다.
물론 전생에 신투로 활동할 당시 수차례 본 적이 있었고 몇몇은 슬쩍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나 흔하지 호두만한 야명주라면 천금에 비견될 만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었다.
‘흐흠…….’
민가에 살겁이 일어났다.
황명도 없이 도독부의 명으로 대규모의 군사가 움직였다.
그 와중에 사건의 핵심에 있는 첨사는 도독부와 관계가 있을 만한 여인을 만났고 귀한 야명주를 얻었다.
‘대가라는 뜻인데…….’
무언가 구린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알겠소. 당신은 그만 돌아가시오.”
“예.”
양화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려는 것을 소청이 무슨 생각인지 불러 세웠다.
“잠깐, 혹 사천에 지인이 있소?”
“예? 그걸 어찌?”
“황학루가 관군에 장악되었다면 들고 나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었을 리 없을 것이오. 필시 추적이 붙었을 터.”
“…….”
“시장도 아닌 표국에 들렀다면 그들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오. 원래 뒤가 구린 놈들은 치밀한 법이거든.”
옳은 말이었다.
그녀의 주장처럼 기녀가 직접 화대를 받으러 다니지는 않을 테니까.
“오래전 기방을 떠나 고향에 돌아간 분이 계십니다.”
“흠, 그녀도 하오문도요?”
“아닙니다. 그저 저희를 잘 챙겨 주신…….”
“좋소. 그녀에게 보낼 전갈을 작성하는 게 좋겠소. 대충 안부를 묻고 같은 처지에 낙향을 하고 싶다, 정도의 내용이면 되겠군.”
“알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화가 돌아간 뒤 그녀가 작성한 전서를 받은 소청은 포정을 불렀다.
“혹 사천으로 가야 할 표선이 있습니까?”
“음, 예. 안 그래도 내일 출발할 표선이 있습니다.”
표선을 매일 보낼 수는 없었기에 달마다 떠나는 날짜를 정해 놓았다.
“잘됐군요. 하면 내일 아침에 이 전서를 포함해 출발시키세요.”
“알겠습니다.”
포정이 전서를 받고 돌아갔다.
“후, 이상백이라 이거지…….”
* * *
다음 날 아침.
진가 표국의 표선이 사천을 향해 출발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던 소청이 초사를 불렀다.
“초사.”
“예!”
평소와 다른 수련(?)에 온몸이 욱신거렸던 초사가 대답했다.
“분명 표선이 검문을 받을 것이다. 검문을 하는 놈이 누구인지, 그리고 검문을 끝내고 나면 누구에게 보고를 하는지. 세밀하게 파악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확인이 끝나는 대로 비마대 전원은 황학루로 잠입한다.”
“황학루요?”
“그래. 그곳에 첨사 이상백이 있다. 그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파악해라. 뭘 먹는지, 뭘 싸는지, 누굴 만나 무슨 대화를 하는지. 그와 관련된 일이라면 단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초사와 비마대가 급히 인사를 하고 은밀하게 진가 표국을 빠져나갔다.
“자, 그럼 나는 제갈휘문을 좀 만나 볼까? 모처럼 할 이야기도 많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