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52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52화
151화. 탐욕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거참 희한하네.”
소청이 대청에 앉아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보가에서의 싸움이 끝난 이후 소청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초사와 비마대 중 치료가 필요한 이도 있었고 황보인과 악이군이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신경을 거슬려 왔다.
소청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부엉, 부엉…….
부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말 못하는 짐승이다.
그런데 마치 자신을 감시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팟!
부엉, 부…….
갑자기 사라졌던 소청의 신형이 부엉이 앞에 나타났다.
“거참. 그냥 부엉인데.”
부……엉…….
“희한하단 말이야.”
부…….
소청이 노려보자 부엉이가 마치 당황한 것처럼 고개를 천천히 반대로 돌렸다.
“패월.”
초사가 담벼락에서 나무 위 부엉이 앞에 앉은 소청을 불렀다.
“연회 준비가 끝났습니다. 모두들 찾고 있습니다.”
“어, 그래?”
소청이 대답하는 사이.
푸득! 푸드득!
부엉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참…….”
소청은 날아가는 부엉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마음껏 들게!”
황보인과 패왕대가 서천맹으로 떠난 이후 조용하기만 하던 황보세가가 모처럼 시끌벅적해졌다.
승리를 기념해 조촐한 잔치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떠날 때까지만 해도 본인이 최고인 줄 알았던 황보인이 황보세가의 하급 무사들 틈에 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황보인을 대하기 어려워하던 그들도 술이 몇 잔 오가고 그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솔깃해하는 표정으로 기대하기 시작했다.
“핫핫핫, 그래서 내가 말이야. 그놈의 목을 이렇게…….”
“대, 대단하십니다.”
“대단은 무슨!”
황보인은 신이 나 있었다.
전에는 몰랐던 기분이었다.
사람들과 서슴없이 대한다는 것이 이토록 유쾌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변화는 점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원래 무림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제일 재미있어하는 것 중 하나가 과장된 싸움 이야기가 아닌가?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서천맹 전투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느라 침이 마를 시간이 없었다.
“저는 정말 소가주님께서 천왕삼권을 펼쳐 그 요녀들을 밀어 버릴 때 소름이 다 돋아 올랐다니까요.”
“그러게. 저 담벼락 봐 봐. 한 방에 밀어 버렸다니까?”
“음마라는 년이 잡술만 쓰지 않았어도 소가주께 상대가 되겠어?”
점차 황보세가의 무인들도 황보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맞장구를 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핫핫핫! 뭘 그 정도 가지고! 핫핫핫!”
허리춤에 팔을 올린 황보인은 황보세가의 건물이 떠나가라 웃었다.
“황보 공자께서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좋기는 개뿔…….”
초사의 말에 닭 다리를 입에 문 소청이 황보인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듣지 않으려고 해도 안 들을 수가 없었다. 황보인의 목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불리한 건 쏙 빼놓고 대부분은 제 편한 대로 과장하고, 아주 그냥 만담가를 해도 되겠어.”
소청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근데 저거 파락호였다고 하지 않았어? 집안사람들이랑 잘 어울리네.”
“그러게요. 하지만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자신과 관련된 사람, 모시는 주인이 뛰어나면 뭔가 우쭐해지고 그런 거…….”
저희들처럼요.
초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 뭐, 그런가 보지.”
소청이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도 한잔해.”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괜찮아. 잠시 휴식을 취해야지. 이럴 때라도…….”
소청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초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만.”
“그래,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고. 그런데 어째 승혜 소저가 안 보이네?”
소청이 잔치가 벌어진 곳을 두리번거렸다.
그들이 앉은 자리는 구석진 곳이었고 황보인과 악이군의 자리는 제일 중앙, 멸절사태는 황보숭과 함께 상석에 앉아 있었다.
“숙소에 계십니다. 전투가 끝나고 돌아가신 뒤로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흐흠…….”
뭐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원래 원한을 갚고 나면 충격이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함께 수련해 온 동문들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는 복수심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과 느끼지 못했던 슬픔이 한 번에 찾아오는 법이다.
하지만 몇 번이나 치열한 전장을 헤쳐 왔으니 거뜬하게 버틸 것이라 생각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도 황보인의 자랑은 멈추지 않았다.
아예 천왕삼권을 보여 주며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 뭐시냐, 소가주님이 소속된 별동대라는 곳이 서천맹 전투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셨다면서요?”
“암! 대단했지. 사실 서천맹 전투의 승리는 우리 별동대가 다 이루어 놓은 거나 다름없지.”
별동대 이야기가 나오자 황보인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근데 소가주님, 얼굴은 왜 그렇게 되신 겁니까?”
“응? 뭐?”
“그게 왠지 계속 째려보시는 것 같아서…….”
“…….”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질문에 황보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이, 이게…… 싸, 싸우다가. 싸우다가 그랬어. 사, 상처를 입어서…….”
갑자기 말을 더듬는 황보인이 멀리 떨어진 소청의 눈치를 살폈다.
피식.
순간 소청이 지은 비웃음을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이미 자신을 무슨 영웅쯤으로 생각하는 가문의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뭐 틀린 말도 아니지 않는가?
그냥 누구에게 당했다는 말만 빼놓았을 뿐이다.
싸운 거다. 진소강에게 일방적으로 맞은 건 아니다. 사실 조금 발끈하며 발가락을 움직였었다. 라고 되뇌며 스스로를 자위했다.
소청의 눈치를 살피며…….
“그런! 육시럴 놈들! 감히 우리 소가주님께!”
“…….”
“맞네! 이런 찢어 죽일 놈들!”
“…….”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우신 우리 소가주님의 얼굴을!”
사방에서 대상을 지칭하지 않는 욕설이 난무했고 사람들이 흥분할수록 황보인은 등줄기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피식.
또 비웃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청이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지랄하네. 어디 한번 계속해 봐. 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갑자기 오른손을 허리께로 가져갔다.
갑자기 소름이 돋아 오르고 오한이 느껴졌다.
히끅!
“그, 그 이야긴 그, 그만하지. 하, 핫핫핫.”
황보인이 대충 웃음으로 얼버무리자 사람들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이런, 소가주님 식은땀이…….”
“저런, 무리를 하신 게야. 아직 회복도 덜 되셨는데.”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자 황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게. 내가 왜 이러지? 좀 더 쉬어야겠는데?”
“들어가시지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응? 아, 괜찮아. 괜찮아.”
황보인이 힐끗힐끗 소청의 눈치를 살피며 못 이기는 척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긁적, 긁적.
옆구리가 가려웠던 소청은 황보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왜 저래? 뭘 잘못 처먹었나? 재미있게 듣고 있었는데…….”
소청이 웃은 것은 순수하게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경험을 한 것이 분명한데 황보인이 꾸며 낸 이야기는 마치 저잣거리에서 인기리에 떠도는 협행문집 같았다.
“나중에 불러다가 만담이나 좀 시켜야겠어. 아주 재능이 있어.”
* * *
잔치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모두가 취해 가고 있을 무렵.
승혜는 황보세가의 후원 연무장에 있었다.
차라락! 퓩! 퓨퓩!
휘둘러진 창이 허공을 꿰뚫었다.
풀어 헤쳐진 머리카락이 흠뻑 젖고 손바닥이 찢어질 때까지 그녀의 창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펼치고 있는 것은 중원 사대창 중 하나로 추앙받고 있는 아미의 창술이었다.
‘부족해…….’
아무리 휘둘러도 소청의 창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내기의 문제가 아닌 초식의 문제였다. 예리함이 달랐고 타격의 무게감이 달랐다.
그처럼 강했다면?
아미는 그리되지 않았을 거야.
쫓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지금의 힘으로는 그의 일 초식조차 받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해지지 않으면 또다시 마천의 무리들에게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아야만 할 것이다.
당가와의 전투에서 그랬고, 서천맹의 전투에서도 그랬다.
언제나 누군가의 등 뒤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자신보다 강했고 앞서 나갔다.
이제는 같은 창술가인 악이군마저 자신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다.
분명 시작점은 같았을 것인데…….
단지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계율이 그러했기 때문에 부러워도, 질투가 나도 그저 웃기만 했다.
강해져야 한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해져야 해.
승혜는 미친 듯이 창을 휘둘렀다.
‘기존의 방법만으로는 안 돼.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나찰이 되어야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회장을 빠져나온 멸절사태는 제자의 상태가 걱정되어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의 계속되는 수련을 지켜보았다. 이겨 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수련에 매진하다 보면 분명히 잊힐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저, 저건!”
갑자기 승혜가 엄청난 무공을 선보인 것이 아니었다. 승혜가 뻗은 창대가 묘한 기운을 뿌리기 시작했다.
섬뜩함.
분명 불가의 창인데 어찌 그런 기분이 들었단 말인가?
어찌 가득한 살기와 울화가 느껴진단 말인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승혜의 수련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멈추어라!”
멸절사태가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기에 승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승혜는 도통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무아(無我)의 경지에 빠진 것처럼 희열에 가득 찬 표정으로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무인에게 무아의 경지에 빠진다는 것은 기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의 육신에서 벗어나 무공 자체에 동화됨으로써 무공이나 병장기가 가진 고유의 힘을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짧게는 몇 시진에서 며칠, 혹은 몇 주를 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승혜의 눈동자에는 있어서는 안 되는 광기가 가득하게 느껴졌다.
선기나 불기가 아닌 사이한 느낌의 기운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무아를 경험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스스로 이지를 버린 상태였기에.
강제로라도 멈춰야만 했다.
‘허, 어찌 찾아온 기연이 선연이 아닌 악연이란 말인가…….’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막 멸절사태가 승혜를 말리려 다가서는데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소청이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기다려 보시죠.”
“…….”
멸절사태가 자신을 막은 소청을 바라보았다.
어찌 막는단 말인가?
“장문인, 승혜 소저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습니다.”
“…….”
“하지만 때로는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마(魔)는 언제나 모두에게 찾아오는 법입니다. 스스로 깨지 못하면 다음에도 깰 수 없습니다.”
소청의 말이 멸절사태의 가슴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
고작 약관을 넘은 청년이었다.
하지만 어찌 한 세대를 살아온 사람처럼 말한단 말인가?
가끔 그와 대화를 나눌 때면 어린아이 같다가도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삶을 살아온 이처럼 행동했다.
껍질을 깨는 것.
쉽게 충고할 수 있지만 행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모두가 원하는 말이지만 이루기 어려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