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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51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1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51화

150화. 한 점에 만변을 담다

 

 

 

 

권마가 주먹을 말아 쥐고 고개를 꺾자 경직되어 있던 뼈마디가 우두둑거리며 위협적인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권마가 머금은 기세가 뻗어져 나오자 혁련휘가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우직하고 직선적이다.

그렇기에 더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기분인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올랐다.

권마의 묵직한 기세가 대기를 통해 전해지고 온몸의 털들을 곤두서게 했다.

마치 날 선 거대한 망치를 든 괴인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극도의 흥분이 그의 전신을 타고 올랐다.

‘그래! 바로 이 기분이지!’

혁련휘는 묵룡아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근데 너, 이름이 뭐냐?”

“권마 우도.”

“우도……. 너도 세주들 중 하나인가 보군.”

혁련휘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와라. 최선을 다해 죽여 주마.”

그 말에 권마가 새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코끝을 찡그렸다.

죽여 주겠다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권마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변했다. 눈앞에 있는 혁련휘의 기세는 강했다.

권마가 망치라면 혁련휘는 날이 잘 세워진 칼 같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서늘함이 느껴지고 등골이 오싹해져 올 정도였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하아압!”

거대한 기합성과 함께 권마의 발이 화산을 이루는 화강석 암반을 찍어 눌렀다.

쿵!

일순간 커진 거대한 투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쳐 나가며 혁련휘의 날선 기세를 밀어내었다.

그것을 신호로 권마가 이끄는 천패동의 무인들이 화산의 정상을 향해 내달렸고 혁련휘를 이끄는 철혈군과 화산의 무인들이 뒤섞였다.

둔탁한 타격음과 베이는 소음이 화산을 가득하게 채워 놓았다. 사방에서 피가 튀고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사이에 마주 보며 서 있던 혁련휘와 권마는 서로의 기세를 밀어내며 조금씩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일장. 그 거리가 권마의 공격권이었을까?

파앙!

발을 구르는 순간 육중한 몸이 순식간에 혁련휘의 전면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후웅!

거친 주먹에 담긴 바람 소리가 자세를 낮춘 혁련휘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쉬이잇!

횡으로 잡아당긴 도격이 권마의 무릎께를 잘라 갔지만 베이는 느낌이 없었다.

혁련휘는 재빨리 지면을 박차고 옆으로 이동했다.

쿠우웅!

잔상이 남은 자리를 찍어 누르자 부서진 돌이 튀어 오르고 거대한 울림이 만들어졌다.

권마는 곧바로 혁련휘의 신형을 뒤쫓으며 수십 개의 권격을 뻗어 내었다.

기운이 실린 주먹을 향해 혁련휘의 도가 빠르게 휘둘러졌다.

까아앙! 까가강!

주먹과 칼날이 부딪쳤음에도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겁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무거운 권격이 혁련휘의 몸을 밀어 버렸다.

권마는 쉬지 않고 권격을 퍼부었고 혁련휘는 계속해서 물러나며 그의 권격을 막아 내었다.

깡! 까가강!

모든 권격이 묵직했고, 모든 도격이 예리했다.

찰나의 틈을 내보이는 순간이 승패를 결정할 것처럼 둘의 싸움이 팽팽하게 이어졌다.

한 호흡에 수초의 공수가 나누어졌고 둘은 화산의 전역을 돌아다니며 주먹과 칼을 맞대었다.

쩌어엉!

강렬한 격돌의 충격과 함께 물러났던 혁련휘가 수직으로 세워진 칼날을 재빠르게 그었다.

쉬이익! 콰콰콰콰!

도기가 세상을 가득 채우는 파랑을 만들며 권마를 향해 뻗어 나갔다.

“흥!”

자신을 향해 밀려드는 도기의 파도에 권마가 코웃음을 쳤다.

“이까짓!”

피해 본 적? 없다.

패배한 적은 있어도 물러난 적은 없는 권마였다.

바위가 막으면 바위를 부수고 산이 막으면 산을 무너뜨리면 되는 것이다.

권마가 ‘후흡’ 하며 숨을 깊게 들이켰다.

꾸우우…….

강하게 내리밟은 진각이 바위산을 잘게 진동시키고 옆구리에 휘말렸던 주먹이 혁련휘가 만들어 낸 만경창파의 파도를 향해 곧게 내질러졌다.

그리고 닿는 순간 비틀어졌다.

쿠우우우!

권마 우도의 권격, 와류(渦流).

거대한 파도에 비틀림이 생겼다.

비틀림은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고 권마는 단숨에 그 안으로 뛰어들어 만경창파를 지나왔다.

만경창파에 담긴 수많은 변화가 권마의 전신에 상처를 새겨 놓았지만 피부를 헤쳐 놓았을 뿐 탄탄한 근육을 뚫지 못했다.

“……!”

단지 힘만으로 무지막지하게 뚫어 버릴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혁련휘의 당혹스러움을 권마의 주먹이 파고들었다.

쩌어엉!

도의 넓은 면이 부러질 듯이 휘어지고 혁련휘의 신형이 수십 보를 밀려났다.

“크으…….”

짧은 신음과 함께 밀려났지만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권마의 권격이 이어졌다.

좌우를 번갈아 밟아 갈지(之)자 모양으로 전진해 오는 그의 움직임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신속했다.

쩍! 쩍!

좌우를 번갈아 가며 날아오는 둔탁한 주먹의 타격에 이은 비틀림이 그 위력을 배가시키고 있었다.

무호흡의 권격.

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연계기였기에 몸을 빼기가 쉽지 않았다.

파핫!

일순간 솟구쳐 오른 혁련휘의 신형을 따라 권마가 뒤쫓아 올라왔다.

허공에서 몸을 비튼 혁련휘의 칼에 무지막지한 기운이 어렸다.

“흐아합!”

혁련휘는 도기를 그대로 뿌려 내었다.

만근의 힘을 실어 산을 짓눌러 버린다는 파천도법의 세 번째 초식, 붕산진곤.

하지만 피할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않는지 권마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콰드득.

또다시 비틀림이 일어났다.

하지만 변화에 치중을 둔 만경창파에 실린 기운과 오로지 힘에 치중한 붕산진곤은 달랐다.

비틀리는가 싶더니 되레 권마를 집어삼켜 버렸다.

쿠아앙!

허공에서 도격에 정통으로 얻어맞아 버린 권마가 바닥에 처박혔다.

“크으…….”

살갗이 찢어진 것이 아니라 짓눌려 터트려지자 시뻘건 근육이 드러났다.

“왜지?”

이런 적이 없었다.

“이아압!”

바닥에 처박혔던 권마가 곧바로 혁련휘를 향해 쏘아져 나왔다.

쾅! 쾅! 쾅!

권마의 주먹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혁련휘의 몸에 닿지 않았다.

그가 강해질 때마다 혁련휘의 방어는 더욱 탄탄해져만 갔다.

아무리 때려도 뚫리지 않았다.

“헉, 헉.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물러난 권마가 숨을 헐떡거리며 혁련휘를 노려보았다.

이미 자신이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한 번이 아니면 두 번 때리면 된다. 그도 안 되면 세 번 때리고 끝까지 같은 자리를 두들기다 보면 언제나 부서졌었다.

그런데.

“너, 어째서 부서지지 않지?”

권마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혁련휘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상황이 진행되자 갑자기 조급함이 찾아왔다.

조급함은 그를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점점 더 강하게 점점 더 빠르게 권마는 자신도 모르게 마성에 빠져들어 갔다.

성난 황소처럼 몰아붙이는 권마를 다시 한 번 떼어 버린 혁련휘가 거칠어진 호흡을 골랐다.

“후우…….”

잠시간의 대치.

혁련휘는 눈에 시뻘겋게 핏줄이 선 권마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가늠해 보고 싶었다.

소청이 싸워 온 마천의 세주들은 얼마나 강한 것일까? 자신은 얼마나 가까이에 다가가 있는가?

수련을 하는 동안 혁련휘의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소청이었다. 그는 친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넘어야 할 산악 같은 존재였다.

육 개월간의 수련.

단 한 차례도 자신이 만들어 낸 소청의 허상을 이기지 못했다.

‘치잇! 망할 놈…….’

혁련휘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권마 우도.

이전의 자신이라면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도, 네가 가진 힘은 이것이 전부인가?”

“뭐?”

혁련휘의 물음에 권마의 눈가에 씰룩거림이 만들어졌다.

“모든 것을 꺼내라, 우도.”

마치 아량을 베풀듯이 말했다.

자신을 앞에 두고…….

마천의 열두 세주 중 힘에 있어서는 최강에 가까운 자신이었다.

타고난 신력은 그 누구도 따라 올 자가 없다 자부했다.

“이 애송이 자식이! 감히!”

우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눈동자에 검은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오는 의지가 아닌 분노의 힘만으로 역천의 마기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쉬이이이…….

권마의 몸이 시커먼 마기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의 투기가 이전보다 배는 증폭되어 느껴졌다.

“좋군. 새로 얻은 힘을 시험해 보기 딱 좋은 기세다.”

혁련휘는 갑자기 무슨 생각에선지 도를 집어넣었다. 그러곤 마치 발도하려는 듯한 자세를 잡았다.

“크으으……. 이 미친 자식이!”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듯한 모습에 권마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보를 내디뎠다.

반마(半魔), 마기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은 그의 주먹이 내디딘 일보에 이어 천천히 뻗어 나왔다.

쿠우우우…….

비틀림에 마기가 더해져 대기에 만들어진 검은 와류가 회오리를 만들고, 회오리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혁련휘를 향해 뻗어 나갔다.

하지만 혁련휘는 도리어 고요하기만 했다.

날카로웠던 기세는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정신은 하나에 집중되었다.

우우웅.

파천도법 최후의 수, 혈영(血影).

파천도법의 두 번째 초식이자 호신강기와도 같은 경천기개의 기운이 극의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의 두 눈이 붉게 물들고 세상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다가오는 권격의 회전이 서서히 느려졌다가 멈추는 순간, 혁련휘의 눈에 환하게 열린 권마의 가슴이 선명하게 보였다.

수련을 통해 얻은 하나의 심득.

만경창파, 축도(蓄刀).

혁련휘는 그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았다.

느린 시간 속에서 묵룡아가 빠르게 휘둘러져 호선을 그렸다.

선명한 궤적이 부채꼴처럼 퍼져 나갔다.

지이이잉-!

칼이 허공에서 멈추고 묘한 떨림을 만들어 내자 느려졌던 시간이 비어 버렸던 공간을 채우듯 엄청난 속도로 흐른다.

픽.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던 권격의 회오리는 온데간데없었고 권마는 주먹을 뻗은 채로 멈춰 버렸다.

찰칵.

묵룡아가 도갑 안으로 들어갔다.

“한 점(點)에 만변(萬變)을 담는다.”

“…….”

나지막한 혁련휘의 말이 끝나는 순간 권마의 몸에 한 줄기 혈선이 생겨났다.

푸학!

혈선이 만들어 낸 사선으로 갈라진 상처에서 피가 튀어 오르자 뒤이어 무수히 많은 혈선들이 거미줄처럼 권마의 몸을 뒤덮었다.

후두두둑.

권마의 몸은 셀 수 없는 조각으로 나누어져 핏물과 함께 쏟아졌다.

몸을 돌린 혁련휘는 권마의 흔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서현당으로 몸을 돌렸다.

아직 철혈군과 천패동의 무인들이 싸우고 있었지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쪼르르…….

혁련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현우자를 앞에 두고 잔에 술을 채웠다.

“…….”

권마가 뿜어낸 투기는 현우자가 온전한 상태였다 해도 막지 못했을 만큼 강했다.

‘허, 강할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무황이 또 다른 괴물을 키운 것인가?’

현우자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 홀로 여유롭게 술을 마시는 혁련휘의 모습이 너무나 의아해 보였다.

“돕지 않을 셈인가?”

“예.”

“어찌해서…….”

“저들은 제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스승님께서도 혈랑들을 그리 키웠고, 저 역시 저들에게 그리할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할 일은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것.

“이 병이 비워지기 전에는 끝나지 않겠습니까?”

“…….”

“싸움이 끝나면 친구를 보러 갈 생각입니다.”

“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라 말하니 현우자는 더 이상 참견하지 않았다.

연합이라고 하나 사도련에는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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