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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41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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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141화

140화. 혁련휘 움직이다

 

 

 

 

“뭐라?”

“저들의 목적은 혼란과 분열입니다. 서천맹에 집결된 병력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당장에 저들이 어디를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이네. 주력이 빠진 문파와 무가가 저들을 어찌 막는단 말인가? 아미처럼 참변이라도 당하면……. 서둘러 별동대를 빼내야 하네.”

“그렇기에 더더욱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들이 노리는 곳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별동대를 빼서 우왕좌왕하게 되면 적을 잡지도 못하고 서천맹마저 빼앗길 겁니다.”

“뭐? 서천맹?”

도무지 제갈휘문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지 계속해서 반문하는 원로원 무인의 말을 무황이 손을 저어 막았다.

“계속해 보게.”

“저들의 노림수는 외곽을 노려 서천맹의 병력들을 빼내려는 것입니다.”

“…….”

“서천맹의 병력이 빠지면 공격해 오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별동대가 빠지면 엄청난 전력 손실이 생깁니다.”

“하면 우리가 그렇듯 저들도 우리를 감시하고 있단 말인가?”

“당연합니다. 세작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니까요.”

서로 경계를 맞대고 싸우고 있는 상대였다.

항시 경계하고 적을 살피는 것은 전쟁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하면 중원에 들어온 저들은 어찌 하는가? 넋 놓고 당할 수는 없을 것인데?”

“굳이 본 전력을 움직일 필요는 없습니다. 저들의 행적이 파악되면 최소의 인원을 움직여 저들을 처리해야지요.”

“최소의 인원? 아무리 백여 명의 인원이었다고 하나 아미가 당했는데…….”

“지금 파악된 적은 두 개 부대입니다. 북쪽 청해성, 남쪽 사천성. 다행히도 사천 쪽에서는 이미 진소청 공자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

진소청의 이름이 나오자 모두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의 무위라면 충분했다.

“문제는 북쪽입니다. 청해성을 지났을 겁니다. 감숙에 있던 사도련 예하의 문파들은 산서로 집결되었으니 목표가 될 만한 곳은 미미합니다. 중소 문파는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요. 다음은…….”

“섬서의 화산?”

원로들 중 일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일어났다.

섬서에 위치한 문파는 화산과 종남이었다. 그중 종남은 마천에 변절한 이후 오대 무가와는 달리 끝까지 버티다 봉문을 해 버렸다.

“예. 검존께서 후인에게 모든 것을 넘겨준 뒤입니다. 방비할 힘이 부족합니다.”

“하면 신승과 백인회를…….”

“아닙니다. 그들을 빼면 대막혈궁을 지키는 전력이 약해집니다.”

“그럼 하남의 소림과 호북 북쪽의 무당 병력을 지원하면 어떤가?”

곳곳에서 원로들의 의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맞네. 내가 가겠네.”

부연맹주 태존이 말을 꺼냈다.

“아닙니다. 화산에 힘을 집중했다가 무당과 소림이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미의 참변을 보았을 때 놈들은 치고 빠지기에 적절한 인원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

“또한 산서의 사도련, 아니 북천맹의 전력을 끌어 내린다면 저들은 모습을 숨길 것입니다.”

“흠…….”

숨어 버리면 소규모의 적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위협이라는 것을 느끼면 그들은 점점 더 은밀해질 것이다.

“놈들이 공격해 온 이상 꼬리를 잡아 확실히 섬멸해야 합니다.”

그럼 도대체 어떤 대책을 강구해야 한단 말인가?

별동대도 안 되고, 사도련도, 정천맹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면…….

“연맹주님.”

잠시 말을 멈추었던 제갈휘문이 무황을 바라보았다.

“설마 무황께서 직접 움직이시라는 말인가?”

“아니요. 무황께선 우리 측이 가진 최강의 패입니다. 쉽게 드러내서야 되겠습니까?”

제갈휘문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무황이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그는 중원 무림의 최강자의 위치에 있는 자였다.

그 존재만으로도 마천에 위협이 되었다.

그가 쉽사리 몸을 움직인다면 적은 항상 그의 움직임을 염두에 두게 될 것이다.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더욱 은밀해질 수밖에 없다.

무황은 제갈휘문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사도련에 있는 휘아를 보내 달라는 것이군.”

“예. 소련주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시려 결심하신 지 오래되셨다 알고 있습니다.”

“…….”

그랬다.

제갈휘문의 말대로 무황은 이미 무한으로 오기 전부터 혁련휘에게 승계의 준비를 마쳤다.

남은 것은 스스로 얻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제갈휘문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자네는 참 많은 것을 머리에 담고 있는 사람이군.”

무황이 빙긋이 웃었다.

적이었을 때는 무서운 인물이지만 아군이었을 때는 더없이 든든한 책사.

“좋네. 준비를 하라 이르지.”

무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허리에 길게 늘어뜨려진 붉은 도감이 흔들렸다.

혁련휘의 도, 참작.

어째서?

그는 자신의 애병이 아니라 혁련휘의 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 * *

 

산서성.

북천맹 인근의 오태산.

망해, 계월, 금수, 염두, 취암으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봉우리를 따라 깊은 계속으로 들어가면 작은 분지가 있었다.

과거 무황 위도혁이 수련했던 사도련의 성지였다.

다섯 봉우리의 중심에 위치한 분지 자체의 고도가 높았기에 항상 은은한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분지로 향하는 다섯 개의 오르막을 따라 각종 석상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길옆으로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가득했다.

들꽃 향기를 따라 분지에 오르면 넓은 장방형의 대지에 작은 초옥만이 서 있었다.

희안하게도 초옥의 앞에는 작은 웅덩이가 있었다.

딱히 어디에서 흘러들어 오는 것도 아닌데 웅덩이는 작은 개울을 따라 분지의 아래로 폭포가 되어 흘렀다.

그래서 사도련의 사람들은 지하에서 물이 솟아오른다 하여 용천평(湧泉平)이라 불렀다.

용천평은 언제나 고요했지만 실상은 허락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비지였다.

현재의 용천평의 주위를 지키는 자들.

철혈군(鐵血軍).

무황 위도혁이 직접 내린 이름이었다.

위도혁을 지키는 혈랑대가 그러하듯이 그들은 오직 혁련휘를 위해서 만들어지고 키워졌다.

후대는 전대보다 더욱 뛰어나야 했기에 무황은 소일거리 삼아 그들을 직접 가르쳤다.

비록 혁련휘보다 자질이 떨어지는 무인들이었지만 무황이 공을 들여 가르친 그들이었다.

사도련에 존재하는 어느 누구보다 강하고 독하게 키워졌다.

그런 그들이 지키는 용천평의 중심에 눈을 감고 좌정한 사내.

그는 무황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혁련휘였다.

“후읍…….”

혁련휘의 숨이 낮고 고르게 내쉬어졌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부풀어 올랐던 가슴이 가라앉자 호흡이 깊이 아래로 내려가 복부에 닿는다.

“하아…….”

내쉬어지는 숨 역시 고요하고 잔잔했다.

숨소리가 가늘어지고 호흡과 호흡 사이 간격이 길어질 때마다 혁련휘는 점점 더 깊은 자아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감은 눈에 느껴지던 빛이 어둠으로 물들고 자신의 호흡 소리조차 귀에 들리지 않았을 때.

쓰르르……. 쓰르르…….

마름에 지쳐 축축하게 젖은 대지를 찾아 힘겹게 몸을 비틀며 나아가는 지렁이들이 기어가는 소리가 우레 소리처럼 귓가를 파고들었다.

휘이이…….

산야를 지나 수풀의 가지 사이를 지나와 용천평에 닿아 회오리치던 바람이 몸에 닿아 피부를 깨운다.

사라락.

바람이 스친 낙엽이 흩날리며 서로의 몸을 쓸어 대는 소리…….

쪼르르…….

물소리다.

모든 것이 어두워졌던 눈가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눈을 감았음에도 모든 것이 피부에 닿은 바람을 통해 사위가 환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무아의 세상.

스스로를 잊어버리기 시작하는 망아(忘我)의 세계는 모든 것을 관조하게 했다.

그리고 보이는 모든 세상이 그의 통제하에 들어왔다.

원하면 모든 곳에 닿는다.

뻗으면 어떤 것이라도 만질 수 있었다.

파라라라!

얇은 날개가 비벼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틱!

검은 물잠자리 한 마리가 용천평에 자리한 수면을 스치듯 지나가며 손톱만 한 물방울 하나가 떠올랐다.

착.

순간 혁련휘의 손이 곁에 있던 무구를 잡았다. 잡음과 동시에 빠르게 휘둘러졌다.

지이이잉!

곧게 펴진 혁련휘의 팔의 연장선처럼 허공에 멈춘 백색 도신이 얇게 떨리며 울음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혁련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팍! 파파파팍!

미세한 변화.

펼쳐 낸 혁련휘만이 알 수 있는 변화.

물잠자리가 튀어 올렸던 손톱만 한 물방울이 갈라졌다.

반으로 갈리고 다시 반으로…….

물방울은 수십 조각으로 갈렸다.

오직 하나에 집중된 변화.

만경창파, 축도(蓄刀).

한 점에 만경창파의 거대한 변화를 담아 만든 스승의 무학이었다.

스으…….

산산이 잘린 물방울이 마치 안개처럼 흩어져 연못에 떨어졌고 혁련휘가 눈을 떴다.

아직 다 이루지 못했다.

스승이 남긴 무공의 단 일 초식만을 이루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얻었고 엄청난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소청, 조금만 기다려 다오. 너를 죽인 놈들에게 반드시 복수해 주마. 놈들의 뼈를 부수고 육신을 만 갈래로 찢어 저승의 문턱조차 밟지 못하게 만들어 주겠다.’

그는 아직 소청의 생환을 알지 못했다.

무황의 명으로 모든 이들이 함구했고 수련 중인 용천평을 지키는 철혈군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혁련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한 가지의 성취를 위해 무려 칠 주야를 앉아 있었다.

우두둑!

굳어 있던 근육이 아우성을 치고 뼈마디 사이의 연골이 비명을 질러 대었다.

“휴우……. 한 번씩 몸을 움직여 줘야 하는데…….”

기지개를 펴자 몸이 욱신거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주군.”

철혈군의 수장 백강이 다가와 작은 붉은색 쪽지를 건네었다.

스승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언제 도착했지?”

“반나절은 되었습니다.”

“반나절…….”

“예. 무황께서 만약 깨어나지 않으시면 전하지 말라 하셨기에…….”

“…….”

혁련휘는 붉은 쪽지를 펼쳤다.

 

@[화산을 도우라.]

 

적혀 있는 내용은 그뿐이었다.

굳이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았다. 스승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기에…….

“그 외 다른 내용은?”

“마천의 무리들이 소규모로 중원의 곳곳을 공격하고 있다 했습니다.”

‘마천’이라는 말에 혁련휘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마천이란 말이지…….”

“예.”

“알겠다. 채비를 해라. 화산으로 간다.”

“전원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혁련휘의 명령이 떨어지자 백강이 가볍게 발을 굴렀다.

쿠우우웅.

매우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용천평 전체에 작은 진동이 만들어졌고 그 주위를 지키고 있던 철혈군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은 방립에 흑색 무복을 입은 자들.

“가지.”

“예.”

수련에 든 지 반년여.

혁련휘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기도를 품고 화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두두두두.

네 기의 말들이 쓰러질 듯이 헐떡 거리며 질주했다.

먼지바람이 달려온 말의 경로를 알리듯이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쫘악! 짜악!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말 위에 앉은 이들은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곧 마을이다! 말들을 교체하고 바로 이동한다!”

“예!”

쉴 틈이 없었다.

주야로 말을 바꿔 가며 달린 지 사흘째, 그들은 하루에 오백 리를 달린다는 파발마들보다 더욱 서둘러야만 했다.

그들은 아미를 떠난 멸절사태와 은승혜, 황보인과 악이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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