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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40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40화

139화. 조호이산(調虎離山)

 

 

 

 

$-이 자식들아, 우리끼리 왔으면 자정에는 충분히 도착했었다.

 

소청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들이 아니었으면…… 소청과 비마대가 그들의 습격이 있기 전에 아미파에 도착했을 터였다.

“아…….”

황보인과 악이군이 허물어지듯이 주저앉았다.

자신들 때문에…….

“주접떨지 마. 너희 때문이 아니니까.”

소청이 그들을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

“하, 하지만…….”

“시끄러. 지나간 일은 잊어. 일찍 도착했다면 무사한 것만 확인하고 돌아갔을 터다. 어차피 막을 수 없었어.”

“…….”

소청은 아니라 말하지만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 둘을 바라보던 소청의 시선이 멸절사태와 아미파의 무인들을 에게 옮겨졌다.

무슨 위로를 해도 그들의 슬픔을 달래 줄 순 없으리라.

지금은 자신이 할 일을 해야 했다.

슬퍼하며 주저앉아 있는 것보다는 습격한 자들이 더 멀리 도망치기 전에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미의 여승들에게 남겨진 상처는 그들의 목숨을 앗아 간 흔적뿐 아니라 다른 것도 있었다.

그것은 겁간…….

그들은 사내들에게 강제로 더렵혀졌다. 그리고 그 흉수는 전초의 무인일 터였다.

‘전초의 무인들, 맨정신으로 이따위 짓을 하진 않았겠지. 그들은 필시 강력한 무언가에 이지를 빼앗긴 것이다. 상대가 마천이라면…….’

소청은 죽은 전초 무인들의 시신에게 다가갔다.

침(針)이나 독에 당한 흔적은 없다.

남은 것은 환술?

아니다.

마천에서 환술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환마와 환영곡.

그들은 마천에 버려졌고 환마는 자신이 죽였다.

그들의 몸에 미세하게 마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지를 제압하고 상대의 영혼마저 조종할 수 있는 마천의 인물은 단 한 명뿐이었다.

마안(魔眼)을 가진 음마(淫魔) 갈옥향과 환희요락궁의 요녀들.

“이 개 같은 년들이…….”

그 망할 년이 확실했다.

그런데 이런 식의 공격은 마천의 방식이 아닌데?

적어도 소청이 기억하기에는 그랬다.

전생에서의 마천은 뒤를 남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언제나 모든 병력을 동원해 단번에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진격했다.

서천맹을 공격해 왔을 때도 그들은 일절 다른 계략 따위는 쓰지 않았다.

‘바뀌었다. 이건 내가 아는 마천의 움직임이 아니야. 놈들의 전략이 달라졌어.’

어째서?

차분히 생각해야 했다.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해야만 했다.

저들의 공격 방법이 달라졌으니 그에 맞는 대응책을 세워야만 했다.

왜 아미파를 쳤을까?

무인들의 대부분이 서천맹에 있었기에 남아 있는 것은 고작해야 얼마 되지 않는…….

설마?

빈집 털이?

“하! 감히…… 내 앞에서 빈집 털이를 해?”

소청의 눈동자에 살기가 가득하게 차올랐다.

저들은 현재 각 문파가 비워져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소수로 공격해 온 것이다.

도둑들이 가장 털기 좋은 곳은 빈집인 것처럼 그들도 빈집을 노리고 있었다.

놈들이 아미파를 쳤으니…….

분명 비워진 또 다른 문파의 본진을 노릴 게 분명했다.

“초사! 중원 세력도!”

촥!

소청의 짧은 명령에 초사가 품에서 얇은 지도를 꺼내 바닥에 펼쳤다.

중원의 모든 세력들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

빈집 털이를 한다면.

‘중소 방파는 노리지 않을 거야. 음마뿐이 아니겠지.’

토번에서 중원을 향했다면 가장 가까운 곳이 청해와 사천이었다.

냉정해져야 했다.

버릴 것은 버려야 저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모든 문파를 방비할 수는 없었다. 범위가 너무 넓었다. 확률이 높은 문파를 찾아야 했다.

아미가 당했으니 다음은 청성?

아니다. 서천맹과 너무 가까이 있다.

그렇다면 다음은?

호남성…….

황보가와 형산파가 가장 큰 문파였다.

“둘 중에 하나는 분명히 노리겠지.”

소청의 눈매가 날카로운 빛을 뿜었다.

빈집 털이의 목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목적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세우는 것은 제갈휘문이 알아서 해 줄 것이다.

그사이 자신은…….

“음마…… 반드시 찾아내서 찢어 죽여 버릴 테다.”

소청이 일어나자 은수가 지도를 접어 넣으며 물었다.

“초사, 비마대원들을 모아라. 이동해야겠다.”

“어디로 가십니까?”

“호북성 장사(長沙).”

“장사라면…… 황보…….”

순간 황망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던 황보인이 득달같이 일어났다.

“예? 본가란 말입니까?”

“시끄러워.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그저 확률이 높은 것뿐이지.”

“그, 그래도…….”

황보인은 이미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아미파의 상황을 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진 공자.”

그사이 황보인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던 멸절사태와 은승혜가 곁으로 다가왔다.

“장문인, 승혜 소저…… 죄송합니다.”

“…….”

둘의 표정은 똑같았다.

절제된 표정.

속에서는 분노가 지펴 놓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으리라. 복장이 터지고 화가 치밀 것이다.

하지만 멸절사태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차갑고, 싸늘했다.

분노가 극에 달해 더 이상 표출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위험하다.

터져 버린 화산은 피하면 되지만, 고요하나 내부가 들끓는 화산은 언제 터트려질지 모르기에…….

“그대가 죄송할 게 뭐가 있겠는가?”

“…….”

“흉수가 황보세가로 간 것인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함께 가도 되겠는가?”

소청은 고민했다. 어찌해야 하는가? 흉수를 보게 되면 참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냉정해져야 할 상황에 참지 못한다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하나…….

차갑게 가라앉은 그들의 눈동자에 가득한 슬픔은 어찌한단 말인가?

“휴우…….”

소청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

“다만, 두 분만 갑니다. 다른 아미의 제자들은 이곳이 수습되는 대로 서천맹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멸절사태와 승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가지, 무조건 제 말에 따라 주셔야 합니다. 흉수가 눈앞에 있더라도 제 명령이 없이는 절대로 단독 행동을 하거나 먼저 나서시면 안 됩니다. 약속하시겠습니까?”

“음…….”

멸절사태의 코끝이 찡그려졌다.

“알겠네. 약속하겠네.”

“좋습니다.”

소청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소강.”

“예, 형님.”

“너는 이 길로 서천맹으로 돌아가라.”

“예? 함께…….”

“아니, 적들이 소수로 움직이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천맹을 지켜라. 또한 아미의 사태로 분명 동요가 일어날 것이다. 절대 서천맹을 비워서는 안 된다.”

“…….”

소청이 소강의 양어깨를 움켜쥐었다.

“소강, 믿겠다.”

“알겠습니다…….”

소강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래. 돌아가거든 우진혜에게 전해라. 마궁을 감시하되 하오문, 묵영단, 새로 만든 개방의 전력을 총동원해서 적을 찾으라고.”

“예.”

“그래. 자, 가자!”

소청과 비마대, 황보인, 악이군, 멸절사태와 승혜.

그들은 곧장 아미를 떠나 황보세가를 향해 달렸다.

‘아, 젠장…… 도저히 따라갈 분위기가 아니네…….’

소강의 옆에 있던 서문중걸은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차마 따르겠다 말을 꺼내지 못했다.

소청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나서 구타의 효능(?)을 알게 된 참이었다.

악이군과 황보인이 때려 달라며 매달리고 밤새워 기다렸다가 소청을 따라갔다 했을 때 얼마나 배가 아팠던가?

하지만.

아미의 참상을 눈앞에 두고 도저히 제 욕심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기회가 있겠지…….’

서문중걸은 깊이 한숨을 쉬며 물통을 잡았다. 일단은 소강을 도와 남겨진 불길을 꺼야만 했다.

 

* * *

 

무한 정사 연맹에 긴급하게 회의가 소집되었다.

무황 위도혁을 비롯해 태존, 제갈휘문, 정천의 원로 고수들, 위도혁을 따라온 사도의 장로들이 모조리 참석했다.

두 장의 전서구.

 

@[아미파 소실. 적의 습격으로 보은신니 외 아흔네 명 사망. 흉수, 마천. 진소청 이하 멸절사태 등이 황보가로 이동.

@-제갈상아-]

 

@[청해성 태룡문, 적산산장. 전원 사망, 건물 전소. 흉수 미확인.

@-묵영단 청해 지부-]

 

아미파가 무너졌다는 소식은 정사의 원로들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허, 아미가 무너지다니…….”

탄식과도 같은 읊조림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가에서 그 역사란 정신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이 무너졌으니 충격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비록 일백에 달하는 인원이 참혹하게 죽었으나 아직 장문인께서 건재하시고, 장로들과 제자들이 서천맹에 남아 있습니다.”

“…….”

“잃은 것은 아미의 건물과 기록입니다.”

제갈휘문의 말에도 웅성거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마천과의 싸움입니다. 역사상 유례없는 환란입니다. 아미뿐 아니라 더 많은 곳이 불타고, 더 많은 곳이 죽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살아 있으면 언제든 재건할 수 있습니다.”

“…….”

제갈휘문은 고작 건물, 역사 따위에 생각이 갇혀 있는 원로들에게 일침을 놓았다.

쿵!

“모두 조용히 하라!”

무황이 발을 굴러 웅성거리는 좌중을 정리했다.

“군사의 말이 옳다. 살아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아미는 아직 건재해.”

“…….”

주위를 안정시킨 무황이 제갈휘문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상황에 대한 자네의 의견을 말해 보게.”

“…….”

하지만 아직 명확한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제갈휘문은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전서구를 받아 들고 탁자 위에 놓인 중원 전도를 바라보았다.

‘망할…….’

갑자기 적들이 전략을 바꾸었다.

적은 소규모로 구성된 부대로 중원의 곳곳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습격한 위치와 시간을 계산해 봤을 때 적의 방향은 총 둘, 혹은 셋.’

소식을 들은 제갈휘문은 그 즉시 중원의 문파 모든 곳에 경계령을 내렸다.

중소 문파는 즉시 인근 거파로 이동해 적의 기습에 대비하라 명을 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어째서?’였다.

어째서 서천맹이 아니라 외곽인가?

어째서 정면 승부가 아니라 비워진 문파를 급습하는 것인가?

제갈휘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지도 위에 표시된 서천맹이었다.

성도에 지어진 서천맹 안에 규합된 수많은 문파들, 무인들.

가히 정천의 모든 문파의 주력이 그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군.’

이미 한번 패한 경험이 있다.

소청의 말로는 간양 전투를 이끌었던 구자겸은 마천의 최고위직에 있는 대공 중 하나였다.

그런 자들이 이만이나 되는 전무후무한 병력을 이끌고 공격했다가 참패를 당했다.

겨우 마궁의 혈승이 구해 갔다고 하나 이만 무인을 잃었으니 당분간 정사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서천맹을 공격하지는 못할 터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분열이다.’

제갈휘문의 눈이 가늘어졌다.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를 산에서 떠나게 만든다.

놈들의 목적은 외부의 새끼들을 공격해 호랑이를 불러내려는 것이다.

이미 아미파의 본산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천맹의 병력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것이다.

서천맹의 결속이 약화되고 걱정에 찬 이들이 본 파로 돌아가기를…….

제갈휘문은 이미 소청이 황보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옳은 판단이었다.

호랑이를 끌어내자면 호랑이 새끼를 노려야지 토끼를 노려서는 의미가 없었다.

놈들은 서천맹이 동요할 만큼의 파급력을 가진 문파를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

“연맹주님.”

한참의 장고 끝에 제갈휘문이 입을 떼자 모두가 집중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일단 서천맹을 안정시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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