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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39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7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39화

138화. 여유를 부린 참혹한 결과

 

 

 

 

서천맹에서 소강과 멸절사태가 출발한 그때.

조사를 끝내고 신시 간(오후 4시)쯤이 되어서야 지월곡을 떠난 소청 일행은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 날 아침에서야 아미산 백 리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비마대원들뿐이었다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 테지만 황보인과 악이군의 속도가 너무 느렸다.

“아 정말 짜증 나네.”

소청이 뒤늦게 다가오는 황보인과 악이군을 째려보았다.

물론 황보인도 째려(?)보았다.

“이게 지금 꼬나보냐? 늦게 온 주제에!”

“아니, 그건…….”

아, 정말 짜증 난다. 눈을 깔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고…….

황보인은 한숨을 내쉬었고 화살이 그에게 쏠리자 악이군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 좀 쉬었으니 출발할까?”

“예?”

“그…….”

소청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보인과 악이군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쫓아왔다.

하루도 아니고 반나절이 조금 지난 시간 동안 오백 리를 달려왔다.

단연코 살아오면서 최고의 속도를 낸 것이다.

파발로 쓰는 말도 그 정도 달리면 체력을 감안해 역관에서 교체를 한다. 하물며 사람이 어찌 그리 달릴 수 있단 말인가?

쉬지도 않고 달리는 소청과 비마대가 괴물일 뿐이었다.

내공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고 근육에도 휴식이 필요한 법이었다.

황보인과 악이군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말’이라는 것이 있는 겁니다!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소청의 얼굴을 보면 저절로 화가 사라졌다.

“뭐? 왜?”

“아니, 저희도 좀 쉬어야…….”

황보인이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거참, 손 더럽게 많이 가는 놈들이네. 진짜.”

소청이 있는 대로 신경질을 내었다.

아미의 상황을 확인해야 했지만 뭐 서천맹과 이백 리 길에 불과한데 잠깐 지체한다고 별일이야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식들아, 우리끼리 왔으면 자정에는 충분히 도착했었다.”

소청은 나름 초사와 비마대의 수준에 맞춰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

거짓말도…….

사람이 어떻게 몇 시진 만에 육백 리를…….

황보인과 악이군은 속으로 ‘에이.’ 하는 마음으로 소청을 흘낏거렸다.

“하아, 정말 어쩔 수가 없네. 야, 간단한 걸 가르쳐 주마. 한 번만 말해 줄 테니까 잘 들어.”

뭔가 가르쳐 준다는 말에 황보인과 악이군은 물론 비마대까지 귀가 솔깃해졌다.

“내가 쓰는 경공은 일반 무공하고 내공을 쓰는 게 달라.”

그럴 리가?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논리였다.

자신들이 아는 경공은 모두가 특정 무공의 부속이 되는 수단이다.

물론 따로 경공술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무공이 있긴 했지만 내공운용은 비슷했다.

“단(團), 폐(閉), 폭(爆), 승(乘), 이 네 가지만 알면 돼. 쉽지?”

뭉치고, 닫고, 폭발하고, 탄다.

뭔 개소린가?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이상하네? 소강이 녀석은 단번에 이해하고 일보월하까지 사용하던데? 왜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지?”

소청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모두의 머릿속에 ‘진소강은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 이리 와 봐.”

소청의 손짓에 악이군이 다가왔다.

“뭐, 듣는 것보단 몸으로 해 보는 게 빠를 테지.”

“…….”

“잘 들어. 경공은 내공만으로 뛰는 게 아니야. 다리 근육의 움직임, 바람의 저항을 줄이는 몸동작이 모두 합해져야 하는 거야.”

“…….”

“공력은 삼 푼(3%), 오른발의 용천혈로 뿜어서 뛰어 봐.”

소청의 말에 악이군이 다리를 굽혔다가 풀쩍 뛰었다.

그래 봐야 서푼의 공력이니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다.

“자, 다음은 똑같이 삼 푼을 용천혈로 보내되 발출하지 말고 혈을 닫아.”

악이군은 밑져야 본전이니 시키는 대로 했다.

다리를 굽히고 서푼의 공력을 오른발 용천혈로 보냈다.

‘윽!’

닫아 놓은 용천혈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릿함이 느껴졌다.

“기다려. 터질 듯한 느낌이 들 때까지.”

“…….”

빠져나가야 할 힘을 막고 있으니 힘줄이 돋아 올랐다.

“지금!”

소청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악이군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운을 방출하며 뛰었다.

파앙!

공기가 터져 나갔다.

“……!”

정확히 사람 키의 한 배 반.

삼 푼의 힘으로…….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뛰면 한걸음에 한 장 가까이 뛸 수 있었다.

또한 삼 푼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면?

바닥으로 내려온 악이군과 황보인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야, 뭔 생각인지 아는데, 장거리는 무조건 삼 푼이야.”

“예?”

“내공이 스스로 회복하는 힘을 고려해야지. 속도가 빠를수록 소모되는 공력은 더욱 커진다.”

“아!”

“자, 이해됐으면 이제부턴 알아서 수련해. 단폐폭승이다. 물론 바람을 타는 건 열심히 연습해야 되겠지만.”

소청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뭉치고, 닫고, 폭발하고 탄다.

“자, 그럼 대충 쉬었으니까 가 볼까?”

마치 잊지 않기 위해 중얼거리며 연습하는 그들의 모습에 소청은 히죽 웃었다.

발전해야 한다.

더욱 뛰어나져야만 마천과의 싸움에서 더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파앙!

소청이 지면을 밟고 솟구치자 모두가 그 뒤를 따랐다.

자신들이 배워 온 무리(武理)와는 달랐기 때문인지 실수 연발이었다.

경공만을 전문적으로 수련해 온 초사와 비마대가 훨씬 더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보인과 악이군도 점차 소청의 속도를 따라오고 있었다.

‘자, 대충 쓰는 법은 알았을 테니, 속도를 좀 올려 볼까?’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파앙!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소청이 쏘아져 나가고 초사와 비마대가 빠른 속도로 뒤쫓았다.

“…….”

황보인과 악이군이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 삼 푼 맞지? 저거?”

“그렇지 않을까요?”

이제까지는 정말로 천천히 달렸다는 말이 이해될 것만 같았다.

그들의 삼 푼과 소청의 삼 푼은 애초에 크기가 달랐다.

정말로 육백 리를 반나절 만에 뛰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괴물이니까…….”

“그, 그렇죠?”

황보인의 말에 악이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서둘러 따라가세. 초사님 정도는 뒤쫓아야. 내공도 훨씬 많은데…….”

점차 그들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며 아미산의 인근에 도착했을 때.

“패, 패월…… 저것이…….”

초사가 가리킨 방향을 이미 소청은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아미산 정상의 하늘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자연적인 발화가 아니다.

화재에 의한…….

“제기랄!”

파앙!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 소청이 온 힘을 다해 지면을 밟고 쏘아져 나갔다.

 

“아!”

소청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미산의 금정봉(金頂峰)이 불타고 있었다. 보이는 모든 곳에 불길이 넘실거렸다.

우지끈!

불에 타 약해진 기둥이 무너지며 지붕이 내려앉았다.

누대를 걸치며 천 년을 이어져 온 아미의 역사가 불길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열세 채의 불당과 그 주위를 둘러싼 높다란 녹나무들은 화마에 휩싸인 채 쓰러졌다.

곳곳에서 먼저 도착한 서천맹의 무인들이 불을 끄느라 뛰어다니고 있었고, 아미파의 무인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야! 저쪽을 끄란 말이야!”

“이쪽으로 불이 넘어온다!”

“물! 물 가져와!”

촤아아…….

사방에서 물 쏟아붓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산정에 부는 강풍으로 인해 불길이 쉬이 잡히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소청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아미를 덮친 것은 화마(火魔)뿐만이 아니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퍼져 나오는 짙은 혈향.

바닥에 뿌려진 핏자국.

잔인하게 도륙된 여승들.

무인들은 불을 끄는 것뿐만 아니라 시신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도무지 표현할 말이 없었다.

습격이 있었다.

그리고 흉수는 충분히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마천이다.

복호사의 대웅전에 도착한 소청은 당황한 눈으로 내부를 훑어보았다.

복호사의 상징과도 같았던 화엄동탑(華嚴銅塔)이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무너진 탑 앞에 죽어 있는 여승, 보은신니.

멸절사태는 그곳에 있었다.

열 살 남짓의 여승을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멸절사태는 어린 여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멸절…….”

소청은 차마 그녀의 곁으로 다가설 수가 없었다.

여승을 달래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절규처럼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슬퍼 보였다.

천 년의 역사를 이어 온 아미의 모든 곳이 불태워졌다. 남겨진 제자들이 모조리 도륙당했다.

한 문파의 수장으로서 그 모두를 보았으니 마음이 찢어지리라.

“후우…….”

소청은 미간을 찌푸렸다.

“형님!”

별안간 멸절사태와 함께 도착해 화마를 잡고 있던 소강이 소청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적들의 습격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멸절께서 안고 있는 저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

참혹하게…….

“아이가 모든 것을 보았더군요. 꽤나 충격이 컸을 겁니다. 동문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으니.”

슬펐으리라. 아팠으리라…….

“저희도 저 아이가 보낸 전서구를 보고 출발했습니다. 이미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난 뒤였다고 하더군요.”

“끝나? 습격받은 것이 그럼?”

“아이의 말로는 오늘 새벽이었다고 합니다.”

“새, 새벽…….”

순간 소청은 크게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휘청거렸다.

“형님.”

“괘, 괜찮다…….”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

불안감이 들었을 때 곧장 왔었어야 했다.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

‘젠장…….’

모든 게 자신의 잘못 같았다.

모든 것이…….

으드득.

소청은 턱에 근육이 잡힐 정도로 이빨을 깨물었다.

그리고…….

뒤늦게 따라와 현장을 확인한 초사와 비마대가 소청에게 다가왔다.

“패월, 보셔야 할 것이…….”

“으음…….”

 

“헥헥, 이게 뭔 일이래?”

“그러게…….”

뒤늦게 도착한 황보인과 악이군은 처참한 광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아미가…….”

“일단 대장을 찾으시죠.”

그들은 서둘러 소청을 찾아갔다.

“대…….”

소청을 부르려던 악이군은 그의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수많은 시신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팔다리가 없는 시신들도 다수였고 머리와 몸이 서로 맞지 않는 것도 많았기에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아미파와는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복장을 한 무인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승려, 도사, 그 외 다수 문파의 무인들…….

“사라진 전초의 무인들입니다.”

“…….”

“아미파 무인들의 시신에 남겨진 상처를 보았을 때, 그들은…….”

뒷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그제야 놈들이 지나칠 수도 있었음에도 포로를 데려간 이유를 깨달았다.

놈들은 전초들을 이용해 아미파를 습격했다.

불태우고 서로 죽이는 모습을 보며 비웃다가 다른 곳으로 떠났을 것이다.

잔혹한 유희였다.

그리고 보란 듯이 유희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들은 자신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마천, 이런 개자식들이…….”

소청은 손가락 근육이 당겨 올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불안감이 들었을 때 여유를 부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시신들의 경직 상태를 봤을 때, 금정이라는 어린 여승의 말대로 오늘 새벽녘에 습격당한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새, 새벽…….”

“……!”

초사의 말에 악이군과 황보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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