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7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74화
왼쪽에 돼지를 키우는 우리가 있고, 오른쪽에는 닭을 키우는 촘촘한 벽이 서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독한 분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놈의 돼지가 왜 이렇게 사납게 굴어?”
돼지우리 쪽에서 욕설이 들렸다.
돼지가 말을 듣지 않는가보다.
“이봐, 조심해! 엊그제 왕씨가 돼지에게 물려서 살점을 보시했다는 말 못 들었어?”
“빌어먹을 돼지새끼들. 지들이 뭐 호랑이라도 되는 줄 아나?”
일꾼들의 투덜거림을 듣던 장천운이 미간을 좁혔다.
“일령주, 돼지가 사람도 뭅니까?”
“사나운 놈들은 제 주인도 문다고 들었소.”
“돼지가 사람을 물어뜯는다?”
“돼지가 못 먹을 게 어디 있겠소?”
그 말을 들은 장천운은 돼지우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돼지우리에 가까이 가서 안쪽을 바라보자 일꾼 중 하나가 말했다.
“이보쇼, 무사 나으리. 너무 가까이 가지 마쇼. 잘못하면 똥물이 튀니까.”
장천운은 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슬쩍 몸을 띄워서 자신의 키 높이쯤 되는 돼지우리의 말뚝 위에 내려섰다.
말뚝 위에 내려서서 뒷짐을 지고 있는 장천운을 보고 돼지들이 꽥꽥 댔다.
그때 말뚝 위에 서 있던 장천운의 시선이 돼지우리 내의 중앙에 고정되었다.
잠시 그곳을 바라보던 장천운이 갑자기 신형을 날렸다.
“어? 이보쇼!”
일꾼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위곤도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돼지우리 안쪽을 쳐다보았다.
장천운은 돼지의 등을 밟으며 두어 번 몸을 날리더니 순식간에 중앙지역에 이르렀다.
다행히 그곳에는 돼지가 몇 마리 없었다.
분뇨와 흙이 뒤엉킨 바닥에 내려선 장천운은 바닥에서 뭔가를 주워들었다.
찢어진 옷자락이었다. 분뇨 때문에 본래의 색을 알 순 없었는데 씹다가 뱉은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장천운은 그 외에도 두어 가지 물건을 더 주웠다.
그 사이 돼지들이 그를 향해 몰려왔다.
“조심하시오, 대주!”
위곤이 소리쳤다.
장천운은 주워든 물건을 쥐고 신형을 날렸다.
“이게 뭔 줄 알겠습니까?”
장천운이 내민 물건을 보고 위곤의 표정이 급변했다.
“뼈 아니오?”
“무슨 뼈 같습니까?”
“아무래도…… 사람의 다리뼈 같소이다.”
“돼지들을 한쪽으로 몰아넣으라고 하십시오.”
장천운의 말뜻을 깨달은 위곤이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꾼들이 돼지들을 다른 쪽 우리로 몰아넣었다.
사밀령 무사들은 더러운 돼지와 숨바꼭질을 하지 않게 된 것에 안도하며 돼지우리 안을 세세히 살펴보았다.
곧 대여섯 개의 뼈가 더 발견되었다. 대부분 팔뼈나 다리뼈 등 큰 뼈들이었다.
그리고 짓이겨진 옷자락도 몇 조각이 더 발견되었다.
사람의 뼈가 발견된 지 일각 후. 척산농장의 책임자가 잡혀오고 일꾼들이 모였다.
위곤이 농장책임자를 심문했다.
“이 뼈들이 왜 돼지우리 안에 있는 건지 말해봐라.”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농장책임자는 금화당 소속의 조장이었다. 그는 위곤이 뼈를 코앞에 던지자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저, 저도 잘 모르는 일…….”
“모른다? 사람이 돼지에게 먹혔는데도 모른단 말이지?”
“사, 사람이 먹히다니요? 저는 사람을 먹이로 준 적이 없습니다요.”
“이 뼈들은 상태로 봐서 오래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사오 일 정도? 그런데도 기억을 못한단 말이냐?”
“저는 정말로…….”
“정말 모른다면 알만한 놈을 말해봐.”
농장책임자는 일꾼들을 둘러보더니 한 사람을 가리켰다.
“저 친구라면 알지도 모릅니다. 장로원에서 마차가 왔을 때 저 친구가 상대했습죠.”
“그래?”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손끝을 따라갔다.
그 순간, 농장책임자가 가리킨 자가 땅을 박차고 일꾼들 속에서 벗어났다.
“흥! 어딜 도망가려고!”
대뜸 소리친 백오가 그자를 덮쳐서 제압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제압당한 자가 혀를 깨물어버린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그는 다급히 혈도를 눌러서 지혈시켰다. 그러나 혀가 절반 이상 잘려서 뿜어지는 피가 멈추지 않았다.
그 사이 장천운과 위곤이 곁으로 다가왔다.
“누구야! 누구 시체를 돼지에게 먹인 거지? 말해!”
위곤이 다그쳤다.
혀가 잘린 장한은 실실 웃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장천운이 장한의 손가락을 잡고 강제로 뜯어냈다.
눈을 부릅뜬 장한의 몸이 푸들푸들 떨렸다. 혀가 잘린 입에서도 비명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끄어어어!”
차가운 목소리가 장한의 고막을 흔들었다.
“피를 흘려서 죽으려면 일각은 걸릴 거다. 그 동안 너는 지옥에 빠진 고통을 당할 거다. 선택은 네가 알아서 해라.”
그 직후 또 다시 손가락 하나를 잡아 뜯었다.
몸서리치는 장한의 눈에 처음으로 공포가 떠올랐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해쓱하니 질린 표정으로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심지어 사밀령 무사들조차 창백해진 안색으로 입이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장천운은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세 번째 손가락을 천천히 잡아 뜯었다.
장한은 얼음구슬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장천운의 눈을 보고 대항을 포기했다.
저자는 아수라다!
“마, 마하게…… 제바…….”
혀가 잘린 입에서 핏물과 함께 토막토막 말이 흘러나왔다.
***
구천성으로 돌아가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위곤은 표정이 석상처럼 굳었고, 백오는 구천성이 가까워지는데도 창백해진 안색이 풀어지지 않았다.
“내가 너무 독한 것 같습니까?”
구천성 정문을 백여 장 앞두었을 때 장천운이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그가 자청한 일이니.”
위곤이 나직이 말했다. 목소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강호에서 살아가다 보면 손을 심하게 쓸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상대의 목을 단숨에 쳐야하고, 어떤 때는 손을 뱃속에 쑤셔 넣고 내장을 터트려야 할 때도 있다.
고문을 할 때는 더하다. 정보를 얻기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극악한 고문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위곤도 무창에서 혈겁이 벌어지던 날 그 못지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안다. 심지어 눈앞에 있는 장천운의 가슴을 사령주가 밟아서 심장을 터트리려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은 그 모습을 보고도 별 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었다. 그저 독한 놈이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
그런데 그가 겪은 어떤 경우도 오늘만큼의 충격을 주진 못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흥분하거나, 분노하거나, 감정적인 자극을 받았을 때 한계를 넘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장천운은 그와 달랐다.
무표정, 무감정의 눈빛, 한 점 흐트러짐 없는 호흡.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
자신이 아는 장천운은 결코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더 섬뜩하고 두려웠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런 장천운이 싫지 않아서 문제다.
“어릴 때부터 독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내가 독하게 마음먹지 않았다면 지금 살아 있지도 못했겠지요. 두 분 령주께서도 무슨 말인지 잘 아실 겁니다.”
위곤은 쓴웃음을 지었다. 백오는 머쓱한 표정으로 눈치를 봤다.
어제 다쳐서 나오지 못한 초광이 원망스러웠다.
왜 장천운을 밟아 죽이려고 해서……
“좌우간 일이 조금 묘하게 되었습니다. 노 장로의 시신을 영원히 찾지 못하게 되었으니…….”
혀를 잘린 장한은 시신 두 구를 돼지 밥으로 던져주었다고 했다.
아쉽게도 시신의 주인이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토막 난 시신을 돼지우리 한가운데에 던져 넣었을 뿐.
그가 살아있기라도 하면 장로원의 무사와 대질심문을 해서 죄상을 밝혀낼 수 있을 텐데, 그마저 죽어버렸다.
또 다시 줄이 끊어진 것이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 대주?”
위곤이 물었다. 그로선 아무리 생각해도 공손백 측의 범행을 밝혀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노 장로가 죽었을 가능성은 더 커졌습니다. 일단은 그 점을 이용해서 방법을 마련해봐야지요.”
***
장천운은 사마경에게 조사내용을 보고했다.
처음서 끝까지 듣기만 하던 사마경이 척산농장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듣고는 되물었다.
“노 장로가 돼지 밥이 되어서 죽은 게 확실해?”
“시신을 확인할 수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열 중 아홉입니다.”
사마경은 입술을 비틀었다.
‘돼지 밥이 되었다고? 아주 확실하게 벌을 받았군. 다른 자들도 그 정도 벌은 받아야 돼.’
그녀는 내심 각오를 다지며 입을 열었다.
“시신이 없는 상태에서 저들을 공격할 수 있겠어?”
“왜 노 장로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부각시킨다면 간부들도 흔들릴 겁니다.”
“언제 할 거야?”
“이령주가 돌아오면 보다 더 확실해질 겁니다. 그때 시작하죠.”
사마경의 방을 나온 장천운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무거운 마음만큼이나 짙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네.’
사람이 돼지 밥이 되었다는 데도 놀라지 않다니.
놀라기는커녕 그녀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맺혔다.
장천운은 그런 사마경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복수에 매몰되어서 감정이 메마른 것은 아닐까?
차라리 까칠하게 툭툭 쏘아대던 때가 나았던 것 같다.
‘후우우우. 하긴 소성주만 그런 건 아니지. 나도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기분인데.’
씁쓸한 마음으로 시선을 내린 그는 선등경 등이 머물고 있는 영빈전으로 갔다.
하지만 영빈전에 들어간 지 반의반각도 되지 않아서 급히 뛰어나와 무화원으로 달려갔다.
영빈전에서 선등경 등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용화성이 보이지 않아서 물어봤더니 채응도가 말했다.
“용 공자는 무화원에 갔네. 흑월대에 청년고수가 많다는 말을 듣고는 한번 비무해보고 싶다고 하더군.”
용화성의 호승심이 지나치다는 걸 알고 있는 장천운은 자신이 갈 때까지 별 일이 없기만 바랐다.
그런데 무화원 안으로 들어가자, 유고원이 그를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대주, 오셨습니까?”
“무슨 일 있었어?”
“그게…… 용 공자가 비무하다가 다쳤습니다.”
“누구하고 붙었어?”
“사공 조장하고요.”
흑월대의 거처로 간 장천운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용화성이 한쪽에 앉아서 진기를 다스리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도 안색이지만 입가에 핏기마저 보였다. 내상이 심한 듯했다.
용화성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반대편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사공명신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별 거 아니네, 대주. 그냥 비무를 했을 뿐이야.”
사공명신이 대충 둘러댔다.
그의 말대로 비무를 하다가 부상을 입었을 뿐이다. 문제는 용화성이 중요한 손님이라는 것이다.
“손님하고 그리 심하게 비무를 하면 어떡합니까?”
그에 대해선 사공명신도 할 말이 있었다.
“누구든 자신의 십초를 받아내면 실력을 인정하겠다고 하더군. 그래서 십 초를 겨루었지.”
장천운이 용화성을 바라보았다.
“흑월대에는 왜 오신 겁니까?”
용화성은 바로 대답을 못하고 슬그머니 눈길을 돌렸다.
구양명이 말했다. 흑월대에 청년고수가 많다고. 그라 해도 쉽게 이기기 힘들 거라고.
그 말을 듣고 가만있을 순 없었다. 한편으로는 간접적으로나마 장천운의 실력을 알아보고 싶었다.
당연히, 자신이 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무리 강해봐야 흑월대의 대원, 장천운의 수하 아닌가.
십초면 실력을 알아볼 수 있겠지.
그래서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나는 광양산장의 용화성이라 하네. 친구들이 동정일수라고도 부르지. 나와 십초만 겨뤄보세. 버티면 자네 실력을 인정해주지.”
어지간한 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듣고 나면 긴장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흑월대원들은 먹이를 앞에 둔 개 떼처럼 앞다투어서 서로 나섰다.
서로 싸우겠다면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는 걸 보니 싸우지 못해서 환장한 놈들 같았다.
결국 자신이 직접 상대를 골랐다. 나름대로 품위도 있어 보이는 자, 사공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