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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25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25화

124화. 소청의 항전

 

 

 

 

“…….”

뚝. 뚝.

거혈의 몸에서 뽑아 올린 창극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차아악!

흩뿌린 창대에 들러붙어 있던 육편과 진득한 핏물이 바닥에 떨어져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든다.

“지금부터 이곳은 나의 전장이다. 모두를 막을 순 없지만…….”

불끈.

두 발을 넓게 벌린 소청이 창대를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마주한 적은 확실히 죽여 주마.”

패월(覇月), 으뜸가는 달.

어둠 속에서 가장 크고 밝게 세상을 밝히는 달, 진소청의 모습이 마천 무인들의 뇌리에 공포를 심어 놓기 시작했다.

창이 궤적을 만들고 조각난 신체의 조각들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피의 비는 쉴 새 없이 흘러내렸고 거친 숨소리가 하얀 김과 함께 내뱉어졌다.

두려움과 공포, 비명 소리가 혼재된 전장의 치열함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소청은 드넓게 펼쳐져 간양으로 향해 가는 마천의 무인들을 모두 막지 못했다.

하지만 전생에 마천이 그러했던 것처럼 소청의 창대가 휘둘러진 모든 곳이 죽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그 효과는 충분했다.

소청의 움직임에 목표 따위는 없었다.

살육.

일방적인 살육이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자행되었고 전장의 경계에 있는 이들은 소청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간양을 향한 진격은 계속되었지만 속도는 둔화되었다.

그사이에도 죽어 가는 이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소청도 지쳐 가고 있었다.

‘한 시진. 한 시진이면 충분하다.’

앞으로 조금만 더 적의 움직임을 늦추면…….

소청의 시선이 뒤쪽을 향했다.

좌우로 펼쳐진 산의 마지막 지점. 곧 간양이었다.

산을 지나고 들판이 나오면 적들은 드넓게 퍼지게 될 것이다.

그 전에 최대한 적의 진격을 지연시켜야만 했다.

집중된 세력은 그 입구만 틀어막으면 되지만 나누어진 힘은 막기가 힘들어진다.

아무리 뛰어난 경공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간양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 적의 범위를 모두 지킬 수는 없었다.

“그 전에 최대한…….”

꾸우우…….

소청이 발이 지면을 강하게 짓밟았다.

굽혀진 허벅지와 종아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용천혈을 향해 쑥 하고 기운이 빠져나갔다.

퍼엉!

지면이 터트려졌다.

소청의 신형이 순식간에 쏘아져 나갔다.

파라라락!

혈잠의 보포.

흑색 피풍의가 휘말리며 소청의 손안에 움켜쥐어졌다.

쑤아아앙!

곧장 창대를 던져 버린 소청이 그 뒤를 따르며 피풍의로 만든 창을 휘둘렀다.

쏘아진 창대가 닿는 모든 것을 꿰뚫어 놓았다.

나무든 바위든 마천의 무인이든 그 어느 것도 창의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

창대의 궤적이 지나간 뒤를 소청이 뒤따르며 적을 섬멸했다.

“으아압!”

쩌어어엉!

단중혈의 화기로 만들어 낸 태극의 기운이 적들의 머리 위에서 작렬했다.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수십 장이 초토화되었다.

파파팍!

하지만 가공할 위력에 잠시 물러났던 마천의 무인들은 계속해서 밀려들며 소청을 향해 공격해 왔다.

일순간 쑥 빠져 버린 내공에 소청은 재빨리 물러났다.

아직 구자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힘을 아낄 여유가 없었다.

‘젠장, 끝도 없이 몰려드는구나.’

짜증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소청은 또다시 천뢰충파로 적들의 선두를 날려 버렸다.

단중에 이은 백회의 뇌기가 수많은 벼락을 만들어 마천의 무인들을 지져 놓았다.

“헉, 헉…….”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쉬지 않고 창대를 휘두르느라 팔이 저려 왔다.

파앙!

물러나고 공격하기를 반복하던 그때.

간양이 보이는 그 입구에서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왔구나!”

익숙한 복장의 무인들을 알아본 순간 소청의 얼굴이 희열로 물들었다.

무엇보다 무인들의 수가 부족했던 전투였다.

한 사람이 수십, 수백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그 피로감이 더욱 심해지는 전투였다.

섬뢰와 뇌령도문.

기다리고 기다려 왔던 북쪽의 지원대가 도착한 것이다.

“문주님!”

“진 공자!”

뇌령도문의 무인들을 이끌고 달려오는 섬뢰를 발견한 소청이 적들을 베어 내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늦었네.”

“아닙니다. 아주 적절한 때에 맞춰서 오셨습니다.”

“적들의 수가 엄청나구먼.”

“예.”

“좋네. 일단은 저들부터 처리하세!”

 

* * *

 

두두두두.

후미에서 선두를 향해 이동하던 구자겸이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눈썹을 찌푸렸다.

“적입니다! 측면에서 규모를 알 수 없는 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령의 보고가 있기도 전에 구자겸이 눈살을 찌푸리고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학!

수많은 인마가 숲을 뚫고 튀어나왔다.

숲을 뚫고 나타난 그들은 등장과 동시에 달리는 속도 그대로 뛰어들어 마천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끄아악!”

미처 방어하지 못한 무인들의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하지만 구자겸의 곁으로는 그 누구도 다가서지 못했다.

“하압!”

말 등을 차고 오른 무인이 곧장 구자겸을 향해 뇌기를 머금은 검을 뻗었다.

차아아악!

하지만 검격이 닿기도 전에 구자겸의 호위들의 검에 갈가리 찢겨 나갔다.

푸하학!

피가 비처럼 뿌려졌다.

사도련의 정예였던 그들이었지만 한려와 호위들의 검을 뚫지 못했다.

그들은 전투와는 상관없이 오직 구자겸의 호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놈들의 지원군이 온 것 같습니다.”

뇌령도문의 무인을 잘라 버린 한려가 주변을 경계하며 말했다.

“재미있군. 놈들이 끈질기게 버티고 있더니 이걸 기다린 것인가?”

“증원된 적의 수가 적지 않습니다. 어찌할까요?”

전장을 바라보는 구자겸의 눈이 씰룩거렸다.

뭐가 이리 걸리적대는 것이 많단 말인가?

새로운 적의 등장에 당황한 축융단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쓰러지고 있었다.

“쓸모없는 것들. 몇 되지도 않는 적들에게 이리 휘둘리다니…….”

짜증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다 이긴 전쟁이었다. 간양이 코앞에 있었다.

그런데 지원군이라니?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는 것처럼 보였다.

마종으로부터 하사받은 대막혈궁이 저들에게 무너졌다.

서천맹의 성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너진 것은 다시 지으면 그만이었다.

저들의 투지를 꺾어 놓고 공포를 심어 놓아야만 했다.

하지만 얻은 것이 무엇인가?

저들은 끈질기게 항전하고 있었다.

“충마.”

“예, 대공!”

“전충사를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구자겸의 결정이 내려졌다.

진형의 변화.

지금까지의 싸움은 오롯이 대막혈궁에게 맡겨 두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열화사의 무인들은 적들의 간계에 빠져 행방조차 묘연해졌고, 축융단은 간양의 입구조차 밟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많은 수를 가지고도 벌써 끝났어야 할 전투를 이제까지 질질 끌고 있는 것이다.

“전충사! 적을 섬멸하라!”

뇌령도문의 무인들을 향해 쏘아져 나간 충마의 외침에 후미에 있던 흑의인들이 일제히 전방을 향해 달렸다.

그들의 등장은 순식간에 전세를 바꾸어 버렸다.

“끄아악!”

마천을 습격해 승기를 잡아 가던 뇌령도문의 무인들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싸르르르…….

전충사의 무인들이 온몸을 감싸고 있던 천을 풀어내자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암기처럼 뻗어진 그것은 순식간에 뇌령도문의 무인들을 꿰뚫고 지나갔다.

까드득. 까득.

“끄아악!”

검은 물결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살점이 모조리 뜯겨 나간 뼛조각뿐이었다.

 

“응?”

섬뢰가 이끄는 뇌령도문의 무인들과 함께 간양으로 접근해 오던 무인들을 죽여 나가던 소청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갑자기 움직임이 변했다.

간양을 향해 달리던 적들이 좌우로 갈라지고 있었다.

길이 비키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적의 움직임이 변했을 때는 무언가 원인이 있어야만 했다.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함께 가세!”

물러나는 적들을 향해 다가가던 소청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흑의를 입은 무인들의 등장에 마천의 습격했던 뇌령도문의 무인들이 모조리 죽어 나가고 있었다.

싸르르르!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뇌령도문의 무인들에게 날아왔다.

까가강!

“끄아악!”

분명 쇳소리가 들렸다.

암기였다면 막았을 것인데 무인들이 갑자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 이건?”

섬뢰가 놀라는 사이 소청이 또 다른 무인을 향해 날아오는 검은 물체를 막아섰다.

따다다당!

창대로 검은 물체를 튕겨 내었던 소청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

창대의 중심을 뚫고 박힌 것은 다름 아닌 사악하게 생긴 손가락만 한 곤충이었다.

까득, 까득…….

곤충이 날카로운 이빨로 창대를 씹었다.

“하, 별 그지 같은 게 다 있네?”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암기처럼 날아와 쇠를 갉아 먹는 곤충이라니…….

소청이 창대에 짙은 열기를 일으켜 창대에 박혀 있는 곤충을 태워 버렸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의 무인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충마?”

그리고 그의 뒤로 엄청난 수의 흑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싸르르르…….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가득 메운 곤충 떼.

충마의 전충사(戰蟲舍).

그리고 그들이 길들여 사용하는 식육충(食肉蟲).

소청의 눈이 씰룩거렸다.

길들여진 벌레 떼를 암기로 사용하는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의 옆을 지키는 우람한 체구의 괴인은 다름 아닌 혈독지괴였다.

‘칫!’

좋지 않다.

살아 움직이는 암기처럼 날아다니는 벌레 떼도 문제였지만 혈독지괴의 독성이라면 피해만 커질 뿐이었다.

더욱이 물러났던 축융단의 무인들이 좌우로 펼쳐져 다시 간양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문주님, 일단은 간양으로 물러나전력을 가다듬어야겠습니다.”

“지금 말인가?”

“예. 지금쯤이면 운남의 병력이 도착했을 것입니다. 병력이 모두 모이면 그때 놈들과 전면전을 벌여야 합니다.”

“알겠네.”

소청의 말에 따라 섬뢰가 다른 반문 없이 병력들을 퇴각시켰다.

“이놈들! 누가 도망치게 내버려 둘 줄 아느냐!”

충마가 양손을 쫙 펼치자 그의 장포에서 무수히 많은 검은 물체가 날아올랐다.

싸르르르…….

“…….”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가진 벌레들이었다.

날갯짓 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려왔다.

파라라팍!

충마의 식육충들이 사방으로 퍼트려져 물러나는 뇌령도문의 무인들을 향해 쏘아졌다.

망할 벌레들이…….

우우웅.

소청은 명문혈의 기운을 빠르게 휘돌려 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명문에 담겨 있는 것은 한기(寒氣).

소청이 밟은 땅이 서리 내린 듯이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단중의 화기, 백회의 뇌기, 그리고 명문에 담긴 세 번째 힘, 한기.

단전의 내기와 결합해 태극을 이루자 살을 에일 듯한 한기가 소청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흐아압!”

세 번째 천뢰충파!

엄청난 한기가 소청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쩌저저적. 쩌적.

순식간에 세상이 얼어붙었다.

파라락!

식육충들의 날갯짓이 느려졌다.

쩌저적.

종래에는 그 몸마저 얼어붙기 시작했다.

파삭, 파사삭.

허공에서 얼음으로 화해 버린 식육충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부서졌다.

소청이 딛고 선 수십 장이 북해의 대지로 변해 버렸다.

“크윽……. 후욱, 후욱…….”

허연 입김과 함께 거친 숨을 내몰아쉰 소청이 고개를 들었다.

쏟아 낸 한기의 여파가 남았음인지 소청의 눈동자가 백색을 띠고 있었다.

충마를 바라보던 소청이 천천히 간양으로 물러났다.

“이노옴!”

분노한 충마가 괴성을 지르며 뒤를 쫓으려 하는 순간 그의 수하가 막아섰다.

“세주님!”

“…….”

둥둥둥둥.

사방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남쪽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무인들이 새카맣게 간양을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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