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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18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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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118화

117화. 일합을 나누다

 

 

 

 

“이노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노독형이 허리께에서 한 쌍의 륜을 꺼내 양손에 나누어 잡았다.

휘류류류!

그의 몸에서 강맹한 열기가 뻗어 나와 사방으로 휘몰아쳐 나갔다.

“죽여 버리겠다!”

파앙!

눈이 시뻘겋게 변해 버린 노독형이 소청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강하군. 하지만 멍청해 상대의 실력을 알고 덤볐어야지.”

스으으으…….

소청이 일순간 뒷발을 물리며 자세를 낮췄다.

우우웅!

단전에 단중혈의 기운이 맹렬하게 쏟아져 들어오고 두 기운이 응축되어 태극이 만들어졌다.

쩡!

뒷발에 힘이 들어가며 내디뎌지는 순간, 무게 중심이 순식간으로 앞으로 옮겨 간다.

꾸웅!

진각이 대지를 뒤흔들고 푸른 안광이 두 줄기 선을 만들자 엄청난 속도로 당겨진 창대가 활처럼 휘어져 그 뒤를 따랐다.

진(眞), 천뢰충파!

콰콰콰콰!

가공할 기운이 대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갔다.

소청은 노독형은 물론 자신을 둘러싼 무인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정면으로 싸울 생각은 아니었다.

이만의 무인이라면 무황은 물론 무황 할아비가 와도 불가능한 숫자였다.

소청은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전에 저들의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여 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천뢰충파의 기운 앞으로 누군가 뛰어들었다.

익숙한 모습을 가진 그의 몸에서 시커먼 강기가 쑥 하고 뿜어져 나와 천뢰충파의 기운을 때렸다.

꾸아아앙!

엄청난 소음이 서천맹을 뒤흔들어 놓았다.

기운의 충돌이 가져온 소음이 음공처럼 퍼져 나가고 거대한 공진이 모든 것을 집어삼켜 버렸다.

“피, 피해라!”

마천의 무인들은 휩쓸리지 않게 모조리 도망쳤다.

범위 내에 있던 전각이며 담벼락이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휘이이이…….

바람이 먼지를 날렸을 때 드러난 풍경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충격파는 범위 내의 모든 것을 무(無)로 돌려 버렸다.

반경 삼십여 장의 공간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충격파에 휩쓸렸던 마천의 무인들은 시체는커녕 육편 조각도 남기지 못했다.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움푹 파인 흔적.

그리고 그 경계에 적포를 걸친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대공!”

“…….”

“놈도 무사하지 못한…….”

충마 타율강이 다가왔다.

하지만 앞을 바라보고 있는 구자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표정이 좋지 못했다.

안색은 창백했고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충마가 다급히 주위를 향해 외쳤다.

“이런 멍청한 놈들! 고작 한 놈 때문에 대공께서 직접 나서셔야겠는가!”

“죄, 죄송합니다.”

“서둘러 뒤쫓…….”

수하들을 향해 명을 내리는 충마의 손을 잡은 구자겸이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의 마라강기와 부딪히고도 도망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놈이다.

도망쳤다고는 하지만 그가 피해를 입은 것조차 불분명했다.

그리고, 사천은 적의 영역이었다.

성 밖에서 놈들이 지키고 함정을 파고 있다면 괜한 피해만 입을 뿐이었다.

“소란을 수습하고 내부를 지켜라.”

“…….”

구자겸의 명에 충마가 반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충마 역시 마천의 한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세주로 독립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마종의 명에 위배되어서는 안 되었다.

또한 서천맹 공격의 책임자는 구자겸이었으니 반드시 명을 따라야 했다.

“멍청한 놈들, 포로들마저 놓치다니! 꼴도 보기 싫다! 적들이 또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른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라! 축융단과 열화사는 성 주변을 샅샅이 뒤져라. 비밀 통로를 통해 빠져나갔다면 필시 성 밖 어느 곳에 출구가 있을 것이다!”

추상같은 호통에 마천의 무인들이 서둘러 물러났다.

“한려!”

“예. 세주님.”

“주위를 경계하라.”

한려는 역천대공 구자겸을 호위하는 직속 호위대인 마령대의 수장이었다.

충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가 외부에서 구자겸이 보이지 않게끔 수하들이 진을 형성하도록 포진시켰다.

“대공, 이제 괜찮습니다.”

진에 의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자 충마가 구자겸을 서둘러 부축했다.

“쿨럭!”

구자겸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너지며 검붉은 피를 토해 내었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저 수하들에게 자신의 처참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에 참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충마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볼썽사나운 꼴을 보일 뻔했다.

“내, 내상을 입으신 겁니까? 아무리 갑자기 끼어드셨다고는 하나 대공께서 내상을…….”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는 구자겸의 모습에 충마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역천대공 구자겸이 누군가?

마종을 제외한 마천 최고의 강자.

충마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공을 가진 사내였다.

그가 익힌 마라강기는 북천대공의 옥령한기와 함께 마천을 대표하는 절기 중 하나였다.

마라강기를 극도로 끌어 올린 그는 마천의 세주 다섯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았다.

그런 그가 내상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중원에 무황 말고 그만한 자가 또 있었단 말인가?

충마가 폭발의 흔적을 살피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놈이 흔적도 없이 찢어진 모양이니. 살았다면 필시 큰 적이 되었을…….”

“죽이지 못했다.”

“예?”

“도망쳤어. 폭발하는 순간……. 망할,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아쉽기 짝이 없었다.

마종의 명을 따라야 했기에 처음 만났을 때 죽이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그때라면? 놈이 누군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진소청…….”

“예? 진소청요? 그놈이 살아 있단 말입니까?”

“그래. 분명 그놈이었어…….”

검마가 눈앞에 있다면 당장에 찢어 버리고 싶었다.

‘멍청한 검마 놈……. 죽였다며 그리 자신을 하더니…….’

구자겸이 코끝을 찡그리며 들끓는 내기를 가라앉혔다.

“한려, 대공을 뫼셔라.”

충마는 한려에게 부축되어 돌아가는 구자겸의 뒷모습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대막혈궁이 사도련에 의해 무너졌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다.

후속으로 출발한다던 독마는 소식이 없었다.

또한 무너진 선봉대의 복수를 위해 떠났던 검마조차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독혈녹동인…….’

독마가 죽었다면 그 술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사도련에 무황을 제외하고 독혈녹동인으로 변한 독마를 죽일 수 있는 자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또한 검마가 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설마 두 사건에 진소청이 관련된 것인가?’

하지만 그 역시 속단할 수는 없었다.

도무지 인간이 움직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불안했다.

‘일단은 대공 몰래 은밀하게 혈마궁으로 연락을 취해야 한다. 후에 추궁을 받더라도 지금은 서천맹을 빼앗겨서는 안 돼.’

충마는 재빨리 전서구를 가진 수하를 불렀다.

 

* * *

 

“큭!”

손목이 시큰거려 왔다.

숲으로 접어들던 소청은 욱신거리는 느낌에 창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망할, 역시나 굉장하군.’

오른손이 잘게 떨려 왔다.

주먹을 쥐어 보았지만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중간에 끼어드는 구자겸을 똑똑하게 보았다.

마라강기와 천뢰충파가 부딪히는 순간 되돌아온 반탄력.

그 정도의 힘이라면 적진에서 놈과 맞붙어도 승산이 없었다.

소청은 뒤를 확인하지 않고 반탄력에 몸을 실은 채 일보월하를 펼쳤다.

버티려 하지 않았기에 다행히 내상은 없었다.

단숨에 강을 넘는 경공에 구자겸에게서 전해진 반탄력이 전해지니 그 속도는 섬광 같았다.

순식간에 성벽을 넘어 숲까지 도망칠 수 있었다.

차차작.

창을 갈무리한 소청이 성을 바라보았다.

적들은 뒤쫓지 않았다.

‘구자겸…….’

그의 힘은 여전히 강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천뢰충파의 기운은 네 배나 강해졌는데…….

“괴물 새끼…… 그걸 또 막네.”

소청은 구자겸이라는 상대에 대해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일단은 포로들부터…….”

서천맹의 성에서 멀어진 소청은 곧바로 녹문동 비밀 통로와 이어진 곳으로 향했다.

적이 쫓지 않는다 해서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비밀 통로는 단순히 위급 시 성벽을 빠져나오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 길이가 길지 않았다.

쫓지 않는다 해도 다음 공격에 대비해 성벽의 경계가 강화될 것이다.

어둠에 몸을 숨긴다 해도 무공을 상실한 포로 수백이 움직이다 보면 필시 적의 눈에 걸리게 되어 있었다.

이미 적들이 성 밖으로 몰려나오고 있었다.

출구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소청은 그들의 눈을 피해 비밀 통로의 출구가 있는 곳으로 은밀하게 접근했다.

툭.

소청은 만리향의 단약을 바닥에 던졌다.

적서가 움직이면 초사와 비마대가 올 것이다.

초사라면 필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고 신승에게 고할 것이 틀림없었다.

시큼한 냄새를 뿌리고 대지로 스며드는 단약을 확인한 소청은 곧바로 비동의 입구를 막고 있는 덤불을 걷어 내었다.

갑자기 스며든 빛에 수많은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순간 검이 날아왔다.

파하학! 팅!

손가락으로 검날을 잡아 버린 소청의 모습에 공격을 감행했던 양중선이 당황하며 검을 물렸다.

“접니다.”

“미, 미안하네.”

양중선의 사과에 소청이 피식 웃었다.

혹여 자신이 아니라 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니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이다.

“아직 적들의 눈이 많습니다. 호위할 이들이 도착하면 움직여야 합니다.”

“알겠네.”

양중선과 명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는 누굽니까?”

뒤에 있던 제갈상아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출구를 경계하는 소청을 가리켰다.

“응? 군사께서는 몰랐는가?”

“그게 무슨?”

“그가 바로 진혼창이네. 그를 따르는 자들은 패월이라 부르더군.”

“패월…… 진소청!”

드디어 그의 이름을 듣게 된 제갈상아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진소청에 대한 이야기는 숙부인 제갈휘문으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태존, 검존, 신승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마천의 혈겁으로부터 정천, 아니 중원을 지킬 인재.

직접 본 그는 듣던 것보다 더욱 대단한 무인이었다.

그 수를 알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적들을 앞에 두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기개.

혈혈단신으로 쳐들어 와 포로들을 구하는 가공할 무위를 가진 사내.

그런데.

“야, 뭘 계속 꼬나봐?”

“…….”

‘귀찮지만 걸쳐 준다.’라는 느낌의 옷차림과 묶지도 않고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숨이 멎을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안광…….

도무지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쳇, 더럽게 잘생기긴 했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저런 게 정천을 지킬 인재라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목숨을 구해 준 것은 감사해야 마땅할 일이었지만 소청의 모습은 제갈상아가 꿈꾸던 ‘영웅’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왜 자꾸 꼬나보냐고!”

“아니 그게…….”

소청이 눈을 찌푸리며 다가서자 제갈상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패월!”

그 순간 기다리고 있던 초사와 비마대가 도착하자 소청이 제갈상아에게서 관심을 끊어 버렸다.

“이들은?”

초사가 비밀 통로 안에 가득한 이들을 발견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눈에도 마천에 의해 잡혀 있던 포로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들에게는 구하지 말라고 하더니…….

초사는 소청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웃지 마. 정든다. 근데 너희들만 왔냐?”

“아닙니다. 성벽 위에 저들의 경계가 삼엄해져서 신승께서는 멀찍이 떨어져 대기 중입니다.”

“흠, 곧 동이 튼다.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경계가 너무 많습니다. 성벽 위뿐 아니라 이 근처에도…….”

“적들의 경계는 내가 풀어 주겠다. 너희는 포로들을 신승께 인도해라.”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적들이 나에게 집중되는 순간 바로 움직여야 한다. 만약 위험해지면 포로들을 버려. 따라오는 자만 구해서 도망친다.”

“이봐요! 버리라니! 그게 무슨!”

제갈상아가 뾰족한 목소리로 따졌다.

기껏 구해 놓고 위험해지면 버리라니?

그러고 보니 내부의 싸움이 기억났다.

소청은 피아를 가리지 않았다.

길만 열어 주었을 뿐 그의 말처럼 부상을 당해 도망치지 못했던 이들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적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소청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소청의 무시무시한 안광이 그녀의 심장을 옥죄었다.

“그럼, 다 같이 죽어야 하나?”

“아니, 그건…….”

제갈상아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초사. 분명히 말했다. 위험해지면 버린다.”

“……알겠습니다.”

초사가 대답하자 소청은 기다리지 않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 이봐요!”

제갈상아가 그를 불렀지만 이미 소청은 사라지고 없었다.

“저런 망할 자가…….”

제갈상아가 까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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