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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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72화
그 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사마경이 분했다.
어렵사리 꼬리를 잡아냈는데, 머리를 확인하기도 전에 몸통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가진 증거와 증언만으로 공격하기도 쉽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 저들은 기다렸다는 듯 역공을 취할 것이다.
전대 성주의 독살!
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인가. 그에 대해 모함을 받았다는 명분이라면 힘으로 밀고 나오는 것도 가능하다.
―소성주가 말도 안 되는 모함으로 구천성의 원로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렇게 명분을 세우고 반란을 일으킬 경우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복수도 못한 채.
“할 수 없죠. 천운이 노 장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걸 봐가면서 시작하는 수밖에요.”
“너무 늦어져도 안 되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알고 있소. 비밀이 새어나가기라도 하면 저들이 먼저 칼을 뽑을지 모르오.”
그 말에 장천운이 한마디 나섰다.
“당연히 무작정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우문각이 고개를 돌려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장천운이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일단 조사를 진행한 후 다른 개똥이를 내세워서 저들을 건드려보면 어떨까 합니다. 건드려봐서 반응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죠.”
우문각이 입을 살짝 벌리고 장천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이없어서가 아니다. 생각대로만 되면 정말로 막힌 물꼬가 트일 듯했다. 안 된다 해서 손해 볼 것도 없고.
‘정말 잔머리 하나는 기막히게 돌아가는군.’
그럴수록 마음은 무거워졌다.
저놈을 어떡하지?
72장: 선전포고(宣戰布告)
여주에서 서쪽으로 오십여 리를 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거대한 장원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내부의 면적만 이십여 만평에 달했고, 그 안에는 고색창연한 건물 수십 채가 들어차 있었다.
사방 네 개의 문 중 정문은 동쪽을 향해서 나있었는데, 높이가 일장 반에 넓이는 마차 세 대가 동시에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바로 그 정문 위에 길이가 이 장이나 되는 거대한 현판이 묵직하게 걸려 있었다.
[무림맹(武林盟)]
그곳이 바로 구문팔가가 연합해서 만든 무림맹의 본산인 것이다.
그런데 봄바람이 미친년 치맛바람처럼 오락가락 불어대던 삼월의 어느 날 오후, 무림맹 대정천전에서 엄중한 경비 하에 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에는 구문팔가를 대표해서 무림맹에 와 있는 장로들과 정파의 원로 명숙 십여 명 등 사십여 명이 참가했다.
회의는 오후 미시 말쯤에 시작되어서 술시 초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회의 시간의 대부분은 당하에서 구천성 소성주를 공격한 것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히 오가며 소모되었고, 나머지 시간은 구천성의 역공에 대한 대책논의였다.
회의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에 파했다.
그리고 결론이 내려졌다.
—구천성과는 더 이상 양립할 수 없다. 앞으로 구천성은 무림맹의 적임을 선포하노라!
그날 저녁, 무림맹에서 날아오른 전서구 서른여섯 마리가 천하 사방, 구문팔가의 본산과 본가는 물론 정파의 대세력을 향해 날아갔다.
***
뿌연 안개가 흐르는 새벽녘, 허창 인근의 장원 깊숙한 곳에서 노인의 칼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림맹이 구천성을 적으로 선포했다고?”
“그렇습니다, 부회주.”
“흥, 이제야 정신을 차렸나보군.”
나직이 코웃음 친 서문주경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당하의 일로 인해 곤란한 지경에 처한 그였다.
실패했다고 할 것까진 없지만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별 이득도 없이 파천회의 전력만 노출시켰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서 서문주경은 발언권이 약화되고 본의 아니게 자숙하는 지경까지 몰렸다.
짜증과 분노가 뒤섞인 그는 무림맹이 야속했다.
공격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말이야. 고수들 몇 명만 더 동원했어도 그날 구천성의 체면을 진흙탕에 처박았을 것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구천성을 모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즉 나섰다면 이미 강호의 판도가 달라졌을 텐데.
“부회주, 이제 우리의 대응방법도 달라져야하지 않겠습니까?”
서문주경은 제갈승우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달라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어떻게?’하느냐다.
제갈승우는 서문주경의 마음을 짐작하고 넌지시 말했다.
“엊그제 여주 쪽에서 수상한 정보 하나가 걸렸습니다.”
서문주경이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
“무슨 말인가? 수상한 정보라니?”
“무림맹이 구천성 쪽의 제보를 받고 움직였다고 합니다.”
“무림맹이 구천성의 제보를 받고 움직여?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말 그대로, 구천성 측에서 누군가가 무림맹에 사마경의 이동 경로를 제보했다는 것이지요.”
“혹시 공손백이나 나극이?”
공손백과 나극이 사마경과 각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강호인은 없었다.
구천성을 부수겠다고 나선 파천회의 부회주가 어찌 그 일을 모를까.
“겉으로야 구천성의 패도적인 정책에 불만을 품은 자가 제보했다고 합니다만, 공손백과 나극 아니면 누가 했겠습니까?”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허락하신다면 제가 그쪽과 접촉해보겠습니다.”
“백기주, 자네가?”
“잘하면 손도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을 겁니다.”
그뿐이 아니다. 저번 일 때문에 파천회의 또 다른 부회주인 모용문태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다.
서문주경도 그 점을 잘 알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적과의 내통도 때로는 훌륭한 병법인 것이다.
“좋아, 그럼 자네가 알아서 하게. 대신 조심해야 하네.”
“걱정 마십시오, 부회주.”
***
장천운은 사밀령 이령주 전이산을 지원군이 향한 박주로 보내서 노회현의 동행여부를 확실하게 알아오라고 했다.
그러고는 사밀령을 지휘해서 장로원의 경비무사들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탐문케 했다.
“노 장로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을 찾아보시오. 그리고 그날 이후 장로원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는지, 수상한 행적이 있었거나 이상하게 느껴졌던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시오.”
전이산이 빠진 삼대령주와 사밀령 휘하 삼십여 무사들은 장로원 안팎의 경비무사들을 붙잡고 질릴 정도로 질문을 퍼부었다.
조사 시작 전에 장천운이 말했다.
“방법은 알아서 하쇼.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단, 폭력은 쓰지 마쇼.”라고.
조사대 대장이 그리 말한 이상 최소한 말로써 겁주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사밀령 무사들은 협박도 서슴지 않았고, 당장 잡아가서 고문이라도 할 것처럼 윽박지르기도 했다.
장로원 안팎을 지키는 경비무사의 숫자는 모두 이백. 그 중 장로원 자체 경비무사인 선경대가 백여 명이고, 나머지는 벽호당 무사다.
선경대원이라면 몰라도 벽호당 무사들까지 모두 공손백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뭐든 단서가 있다면 어디에선가 튀오나오지 않겠는가.
사밀령에게 경비무사에 대한 조사를 맡긴 장천운은 청묵전으로 공손백을 찾아갔다.
청묵전 내전에는 공손백과 문인동, 사계 중 동백과 염하, 춘화가 있었다. 추산은 오늘도 보이지 않았다.
공손백은 혼자서 찾아온 장천운을 바라보며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는 장천운을 사마경과 함께 보았다. 청묵전으로 찾아왔을 때도, 대평의회 등에서도 언제나 장천운은 혼자가 아니었다.
일찌감치 일대 일로 만나보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르거늘.
장천운만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면 이미 구천성은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을 텐데…….
그는 처음으로 장천운을 보면서 분노가 아닌 아쉬움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전과 달리 묻는 목소리에서 차가움이 덜했다.
“무슨 일로 왔느냐?”
“몇 가지 여쭤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뭘 물어보겠다는 거냐?”
“노회현 장로께선 대령주의 최측근 중 한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만난 게 언젠지 기억나시는지요?”
“떠나기 전날 점심때쯤 만난 게 마지막 같구나. 그때 내가 지원군으로 나서달라고 했지.”
“그런데 대령주께선 노 장로님의 안위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군요.”
“아직 노 장로가 어떻게 되었다는 확신도 없는데, 내가 왜 걱정한단 말이냐? 너야말로 지나친 걱정을 하는 것 같구나.”
“제가 지나친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지금 조사하고 있으니 곧 밝혀질 겁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미리 양해를 구했으면 합니다.”
“양해를 구한다?”
“그렇습니다. 노 장로의 일에 연루된 사람은 누구든 구천률에 따라서 처리할 것입니다. 대령주의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만, 혹시라도 관여되어 있다면 제가 어떻게 처리하든 이해해 주십시오.”
말이 이해해 달라는 것이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당신이라 해도 가만두지 않겠다! 그런 말이었으니까.
공손백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물 안에 들어왔을 때 죽여버릴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조사책임자를 자신의 방에서 죽일 수도 없는 일이다. 분해도 참는 수밖에.
“걱정 마라, 그게 사실이라면 내 어찌 막겠느냐?”
“감사합니다. 그런데…… 종리성학이란 자와 추산은 오늘도 안 보이는군요.”
“그 일은 이제 잊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만.”
장천운이 그 말에 차가운 표정으로 씩 웃었다.
“뭐, 대령주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잊기 위해서 노력해보지요.”
밖으로 끌어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팔이 잘린 선자나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소성주께서도 잊을 수 있을지는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죽일 놈.’
공손백은 속이 끓었지만 겉으로는 일절 표현하지 않았다.
“너라도 잊겠다니 그나마 다행이군. 아직 더 물을 것이 있느냐?”
“하나 더 있긴 합니다만, 그에 대해선 나중에 묻지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장천운은 여운을 남겨 놓고 포권을 취한 후 돌아섰다.
동백과 염하, 춘화의 싸늘한 눈빛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등 뒤에서도 공손백의 눈길이 느껴졌다.
일반 무사라면 온몸이 떨려서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의 기파가 그를 옭아맸다.
그럼에도 장천운은 눈썹 한 올 까딱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방문을 향해 걷던 그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서 염하를 쳐다보았다.
비웃듯 입술을 비튼 염하의 눈에서 살기 가득한 눈빛이 불길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내가 전에 말한 것 같은데. 그 썩은 눈깔로 그렇게 쳐다보면 후회하게 될 거라고.”
염하의 불길 같은 눈빛이 꿈틀댔다.
“언제까지 그렇게 건방을 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건방은 누가 떠는지 모르겠군.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눈에 힘만 주면 단가?”
“이 개자식이……!”
염하가 눈을 치켜뜨며 욕설을 내뱉은 순간, 장천운이 염하를 향해 몸을 틀었다.
동시에 그의 신형이 일 장 정도 떨어진 염하 쪽으로 죽 늘어졌다.
염하의 눈에는 장천운의 모습이 흐릿해진 듯 보였다.
그와 함께 가공할 압박감이 전신을 짓누르며 커다란 손이 날아들었다.
염하는 반사적으로 한발 물러서며 두 손을 가슴 높이로 들었다.
그의 온몸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났다.
‘오냐, 이놈!’
이 기회에 저 건방진 놈의 심장을 태워버리라!
작심한 염하는 극양의 양강지공인 융천마수(融天魔手)를 펼쳤다. 적중하면 몸속의 내장이 지글지글 익어버리는 악랄한 무공이었다.
장천운은 염하의 무공이 마공임을 간파하고 눈빛을 번뜩였다.
적당히 창피만 주고 끝내려 했거늘, 저 따위 악랄한 무공을 펼치다니.
그는 손을 살짝 틀면서 뇌정무극수에 내공을 좀 더 주입했다.
두 기운이 충돌한 순간, 쾅! 하는 폭음과 함께 염하의 몸이 뒤로 날아가서 벽에 처박혔다.
“크읍!”
신음을 삼킨 염하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진 채 파르르 떨렸다. 그는 자신이 일격에 당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지켜보던 동백과 춘화가 장천운의 좌우로 이동하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돌덩이처럼 굳은 표정과 미미하게 떨리는 눈빛에서 그들의 경악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멈춰라!”
공손백이 냉랭히 소리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