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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15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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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115화

114화. 자격이 없다

 

 

 

 

면양에서 물러난 소청 일행은 간양에서 지원군과 합류했다.

이미 전서구를 통해 서천맹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접했던 정사 연합의 사기는 진소청의 합류로 인해 다시금 불이 지펴졌다.

 

“진 공자!”

임시 지휘부로 마련된 진가의 가주전 안으로 신승이 체신도 잊은 채 가사 자락을 휘날리며 뛰어들었다.

가주전에는 진소청과 함께 면양에서 돌아온 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승을 뵙습니다.”

“이런 못된 친구 같으니!”

타박이었지만 신승의 목소리는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자네의 장례가 치러졌다는 말에 참담함을 금치 못하였는데. 이리 살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신승이 소청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그의 뒤로 사도련의 지원대를 이끄는 해우량과 철혈기의 수장 곡상이 들어왔다.

진가의 가주전은 순식간에 정사 연합의 축소판처럼 변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진소청이 있었다.

‘어째서 저런 자인가?’

모두가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옥명자는 여전히 소청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면양에서 나누었던 소청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죽으면 협의이니 정의이니 아무 소용이 없다 했던가?

하지만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세워 왔기에 사람들은 정협이라 부른다.

그런데.

“자네가 단신으로 대막혈궁을 무너뜨렸다는 소식은 총군사에게 전해 들었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옥명자를 비롯해 좌중에 있던 이들은 처음 듣는 소식에 놀란 눈으로 소청을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이미 주력이 빠져나간 뒤여서 병력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또한 때마침 사도련의 섬뢰께서 오셔서 도와주셨고요.”

대막을 홀로 무너뜨렸다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 정도의 전공이라면 스스로 자랑해도 모자랄 판에 아무렇지도 않은 겸양이라니?

옥명자는 도무지 어떤 것이 소청의 진짜 모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맞네. 진가의 이 공자가 저들의 선봉을 무너뜨린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나 본진인 서천맹이 그리 단시간에 무너졌으니…….”

“그만큼 적들이 강하다는 이야기겠지요.”

소청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이 너무 강했다.

그리고 그들은 서천맹이 무너졌다는 것 이외에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혹시 생존자는 없다던가?”

신승의 말에 진가신이 고개를 내저었다.

“예. 척후들의 말로는 죽은 자들의 목이 서천맹의 성벽에 걸렸다고 합니다. 모두가 죽었는지, 포로가 되었는지는…….”

“음…….”

그의 말에 짙은 신음이 좌중을 가득히 채웠다.

“일단은 적에 대한 전력 파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소청의 말에 신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사이 저들이 먼저 이곳으로 공격해 오면 어찌합니까?”

옥명자가 날카롭게 반박하고 나섰다.

“생각이 있다면 움직이지 않을 거다.”

“어째서 그리 확신합니까?”

“저들은 며칠 동안 쉬지도 못하고 달려와 서천맹을 손에 넣었다. 우리의 전력을 알지 못하니 지친 채로 쉽게 공격해 올 수는 없지.”

“…….”

“그리고 지금쯤이면 섬뢰께서 대막혈궁과 그 예하의 세력을 부숴 놓고 남하를 시작했을 테니까. 소식을 들은 무황이시라면 그쪽에 사도련의 병력을 충원하셨을 테고.”

“오오!”

모두의 얼굴에 환호의 표정이 떠오르자 사도련에서 파견된 해우량과 곡상이 우쭐한 표정을 했다.

이어 모자겸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서천맹을 공격해 오고 있다는 말에 본 곡으로 전서구를 보냈소. 앞으로 닷새면 올라올 것입니다.”

모두에게 ‘은공’이라는 단어는 들리지 않았다.

운남 천독곡의 주력이 북상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사도련, 정천맹, 운남 천독곡이 뭉친다면 저들보다 수가 월등히 많아진다.

“저들도 지금쯤이면 대막혈궁과 그 예하의 거처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

“또한 그를 위해 병력을 나눌 수가 없다. 어느 한 곳의 전력은 약해질 테니까.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서천맹을 지키거나 이곳을 공격해 오는 방법뿐이다.”

“오늘 하루는 저들이 쉬며 체력을 회복한다 해도 지원군이 올 때까지 저들이 기다려 주겠소?”

옥명자의 말에 소청이 빙긋이 웃었다.

“이제부터 저들은 절대 서천맹의 성벽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지.”

“어떻게?”

“고립시킨다.”

“…….”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만이나 되는 그들의 수를 어찌 성안에 고립시킨단 말인가?

하지만 소청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군. 무슨 수로 고립을 시킨단 말이오!”

옥명자는 당장에 공격을 해야 한다 생각했다.

소청의 무위를 보았지만 그것만으로 이만의 무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저들이 지쳐 있는 틈을 타 선공을 한다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승, 궤변일 뿐입니다. 서둘러 저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포로들이 잡혀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옥명자가 발끈하며 반발했다.

더는 볼 수 없었던지 신승이 그의 말을 막았다.

“이보게. 어찌 그리 반박만 하는가?”

“반박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어허!”

신승의 말에도 지지 않고 답하는 옥명자를 보며 소청이 피식 웃었다.

“그대는 전술부터 공부를 해야 할 듯싶은데?”

“뭐요?”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었지만 소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긴 뒤라 말투가 곱지 못했다.

“적을 치는 건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다. 그러지 않으면 피해만 늘어나지.”

“…….”

“눈앞의 적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옥명자는 소청의 물음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다.

“도적도 준비가 확실하지 않으면 물건을 털지 않는다. 탐욕만 앞세우다가는 뇌옥 신세를 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지.”

“…….”

“운남의 무인들이 도착하기까지 닷새. 그사이에 우리는 적에 대해 세세하게 파악하고 철저하게 고립시킨다. 그리고 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무너뜨릴 준비를 해야지. 손 놓고 기다릴 틈 없이…….”

소청이 자신의 말을 인용해 비꼬자 옥명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들의 경계가 삼엄할 터인데 누가 저 안으로 들어가 정보를 파악한단 말이오?”

“내가.”

“…….”

“안으로 들어가는 건 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돼.”

순간 소청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 하는 순간에 그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기세는 물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 좁은 공간에 십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소청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소청이 다시 원래의 자리에 나타났을 때 그의 손에는 익숙한 검 하나가 들려 있었다.

“헙!”

옥명자는 순간 숨이 턱하니 막히는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검집뿐이었다.

자하검은 소청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리고 소청이 옥명자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나보다 적합한 사람은 없다 생각하는데.”

“…….”

옥명자는 벌게진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자하검을 빼앗기면서도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소청은 스산한 눈으로 탁자 위에 당가타가 세밀하게 묘사된 지도를 펼쳤다.

“자 그럼, 나머지 분들이 무엇을 해 주셔야 할지 말씀드려 볼까요?”

소청의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성안에서 수성하는 적을 상대하는 가장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은 식량과 식수를 막는 것입니다.”

소청이 짚은 것은 다름 아닌 당가타로 이어진 세 곳의 물길이었다.

“물길을 차단합니다.”

소청은 마치 군문의 책사처럼 전략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모두가 혀를 내두르며 집중했다.

“그런데 내부의 우물과 식량은 어찌할 건가?”

신승의 물음에 소청이 빙긋이 웃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소청이 하겠다 하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때 가주전의 문이 벌컥 열렸다.

“좀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진가성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진가의 대연무장에 한 떼의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서천맹에서 도주해 온 자들.

면양을 지키다 퇴각했던 승혜가 신승을 향해 황급히 포권했다.

“어찌 된 일인가?”

“진가의 이 공자의 판단에 따라 저희가 서천맹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서천맹이 무너진 뒤였습니다.”

“음…….”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승혜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 새끼야! 똑바로 감지 못해!”

부상을 당한 사내가 팔에 붕대를 감아 주는 의원에게 호통을 쳤다.

황보인.

그리고 그의 휘하에 들어갔던 서문중걸, 팽천기…….

그 외의 인물들.

제갈상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투에 패배하고 돌아온 이들이다.

살아 돌아왔으니 응당 다행이라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 멀쩡했다.

애초에 전투 따위에 뛰어들어 본 적도 없어 보일 만큼…….

“네놈들 뭐냐?”

소청이 황보인에게 다가갔다.

“진소청? 흥, 죽었다 들었는데 살아 있었군.”

“네놈들 뭐냐고.”

“기껏 살아 돌아온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 않아?”

“내가 묻는 건 어째서 네놈들뿐이냐는 거야.”

“마치 죽었어야 한다는 표정이군.”

“아니, 상대가 되지 않으면 도망치는 게 맞아. 그런데 어째서 내가 보기엔 싸우다 도망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도망친 것처럼 보이지?”

“그, 그건…….”

황보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랬다.

그들은 도망쳤다.

세상에 자신들보다 강한 인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괴물을 보고 말았다.

처음은 어린아이였다.

회색빛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이 다가서는 순간 성벽이 통째로 날아갔다.

그 뒤를 이어 따라온 괴인들은 부딪치는 모든 무인들을 찢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이 나타났다.

붉은 장포를 걸친 사내와 그의 옆에 선 두 명의 무인.

그들은 손짓 한 번으로 수십 명을 짓눌러 터트려 버렸다.

전의마저 끓어오르지 않을 정도로 강한…….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무의미한 죽음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은 도망쳤다.

죽어 가는 서천맹의 무인들을 외면하고 싸워 보지도 않은 채 도망쳤다.

모두가 그런 그들을 향해 멸시와 경멸 어린 눈빛을 보내자 황보인이 항변하듯이 외쳤다.

“그 상황이면 누구나 우리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우리는 가문의 명예이자 미래다. 그까짓 하급 무사들과 우리 목숨의 무게가 같다고 생각하나?”

“…….”

“우리는 죽을 수 없어. 우리가 바로 오대 무가이기 때문이다.”

“그렇군. 처음 보았을 때부터 개새끼인 줄은 알았지. 집으로 돌아가라. 이 전투에 짖어 보지도 못하고 꼬리를 만 개새끼는 필요 없다.”

소청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싸늘한 말과 함께 그들을 외면했다.

“뭐라고? 이런 개자식이! 감히!”

쩍!

“컥!”

소청이 아니었다.

소강이 악다구니를 쓰는 황보인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박아 넣었다.

쩍! 쩌억!

소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황보인의 얼굴을 계속해서 두들겼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무표정하게.

그리고 싸늘하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쩍! 쩍!

둔탁한 소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참이나 지나 소강은 완전히 늘어져 버린 황보인의 멱살을 잡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너는…… 서천맹주가 될 자격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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