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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12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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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패월진천 112화

111화. 격돌 (2)

 

 

 

 

검마가 떠난 뒤 구자겸이 본대를 서쪽으로 우회하게 했던 바로 그 시각.

소강이 이끄는 서천맹의 무인들은 제갈상아가 미리 준비한 대수(大水) 상류의 수문을 막았다.

제갈상아는 군사로 취임하면서 당가타를 보수했던 은가장의 도움으로 서천맹 주위로 적이 침입할 수 있는 지역에 다양한 함정을 만들어 두었다.

그중 하나가 면양의 강 상류에 구축한 수문이었다.

서천맹 보수와 함께 만들어진 것이기에 방유현을 통해 십 년 동안 중원 곳곳의 정보를 파악했던 마천조차 알지 못했다.

드넓게 흐르던 강물이 수문에 막혀 강바닥이 드러났고 상류의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것은 수공(水攻)이었다.

알아채지 못한다면 저들은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이고, 알아챈다 해도 쉽게 진입하지 못할 테니 그들의 발목을 묶어 둘 수 있었다.

“적이 두 갈래로 나누어졌습니다. 반 시진 후면 강 건너편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소강은 저들이 척후를 보냈듯이 광풍단과의 싸움이 끝난 이후 옥명자를 보내 적의 동향을 파악했다.

“예상했던 대로군요. 이쪽으로 오는 적의 수는 얼마나 되어 보입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일천은 되는 듯했습니다. 그 외 뒤를 따르는 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천이라 여전히 쉽지 않은 숫자로군요. 하지만 당초 예상대로 반나절의 시간은 번 셈인가요?”

적의 선봉을 무너뜨림으로써 확보한 시간은 그들에게 무척이나 소중했다.

이제 남은 반나절만 버티면 지원군이 도착할 터였다.

소청은 문득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상자가 너무 많다.’

승리하기는 했으나 상대적으로 수가 적었던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이어질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동성이었다.

만에 하나 자신들이 적을 지연시키기 위해 꾸민 계책이 탄로난다면 재빨리 물러나야 했다.

부상자들은 저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부상자들을 맹으로 돌려보내야겠습니다.”

“예? 지금도 부족한 전력입니다.”

고심하던 소강의 말에 옥명자가 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반발했다.

“아닙니다. 어차피 다음 전투는 적에게 혼란을 준 다음 후퇴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아마도 대규모 전투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음…….”

미간을 잔뜩 찌푸린 모자겸과 옥명자를 뒤로한 소강이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승혜에게 다가갔다.

“소저.”

“네. 들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고집을 피울 수는 없겠지요. 제가 이끌고 돌아가겠습니다.”

승혜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면양 전투를 이끌고 있는 소강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 데리고 빠질 수는 없습니다. 다리를 다치지 않은 자는 남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소강이 동의하자 승혜는 중상을 입은 자들과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을 자들을 분류해 면양을 빠져나갔다.

부상자를 제외하니 남은 병력은 고작 이백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일천에 달하는 적에 비하면 너무도 적은 수였다.

“지금부터 전력을 두 패로 나누겠습니다.”

“둘로 나눈다고?”

“예. 대족장께서는 진무월창의 무인 오십과 함께 상류의 수문을 지켜 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린가? 설마 자네가 적들을 맞이할 생각인가? 그럴 순 없네. 자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돌아가신 은공과 진 가주님을 무슨 낯으로 뵌단 말인가? 자네와 함께하겠네.”

모자겸이 고개를 내젓자 소강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대족장님.”

“…….”

“이것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힘이 잔뜩 들어간 눈에는 정광이 흘러넘치고 얇은 입술이 고집스럽게 다물어졌다.

“상류의 수문은 적의 발길을 돌리기 위한 중요한 방책입니다. 만약 저들이 계책을 알아차린다면 반드시 수문을 노릴 것입니다. 빼앗기면 적의 발목을 잡아 둘 수단마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음…….”

모자겸은 더 이상 반발하지 못했다.

상류 수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후우…….”

모자겸이 한숨을 내쉬었다.

소강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던 그의 몸에서 진득한 위엄이 느껴졌다.

그는 점차 한 가문의 주인으로서 성장해 가고 있었다.

“알겠네. 하지만 절대 무리해서는 안 되네.”

“예. 그러겠습니다.”

소강도 모자겸의 걱정을 모르지 않은 터라 환한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약속하게. 위험해지면 반드시 몸을 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약조를 받아 낸 모자겸이 진무월창의 무인들과 함께 서둘러 상류를 향해 떠났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바닥을 드러낸 강 너머에 적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히이잉!

쉬지 않고 달려온 말들이 거칠게 투레질을 하며 멈춰 섰다.

참혹한 시체의 숲.

광풍단 무인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죽은 채 나무에 걸려 있는 모습은 소름이 돋아 오를 만큼 스산한 느낌을 주었다.

시신에서 흐른 피가 나무를 타고 내려 대지를 핏빛으로 바꾸어 놓았다.

“고작 이따위 짓으로 우리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려 했던가?”

멀리 강이 보이는 곳에서 진격을 멈춘 검마가 전방을 훑었다.

“보고드립니다!”

본대보다 먼저 척후를 나갔던 방립의 무인이 날듯이 되돌아와 무릎을 꿇었다.

“적들의 수는 백오십여 명! 현재 강 너머에 대기 중입니다.”

“…….”

“광풍단 일천은 모조리 전멸한 것 같습니다.”

수많은 시신들, 그리고 말라 버린 강.

그 너머에 서천맹의 무인들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함정을 준비한 모양이군.’

상황을 보지 못했으니 적의 전력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지 못했다.

“멍청한 광풍단 놈들. 하긴 기껏해야 마적 떼였으니.”

검마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어렸고 척후의 보고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강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강의 상태가 다르다?”

“예. 강물의 양이 너무 적습니다. 바닥이 젖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가뭄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보고를 받던 검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가 보아도 수공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적들은 그 사실을 마치 대놓고 알려 주듯 하고 있었다.

‘광풍단은 수공에 당한 것이 아니다. 하면 그들과의 싸움 이후에 강물을 막았다는 이야기인데…….’

“무슨 속셈일까요?”

고민을 하고 있는 검마를 향해 검림의 다섯 지파 중 하나를 이끄는 호광이 물었다.

“마르지 않은 강바닥에 물이 없으니 상류에서 물을 막았다는 뜻이겠지. 본대가 진입하는 즉시 터트릴 것이다. 하나, 놈들은 수공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전력을 노출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수공은 소수로 다수를 상대하기 위한 전술.”

“…….”

“이곳을 지키는 것은 저놈들이 전부라는 뜻이겠지.”

“하면 어찌할까요? 적이 수공을 준비하고 있다면 함부로 진입할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크크크, 놈들이 우리의 발을 잡아 볼 생각인 듯하다.”

오랜 세월 동안 무림에서 살아온 검마는 대번에 계책을 알아차렸다.

“호광, 상류에 수문이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수가 있을 것이니 가서 부수고 신호를 보내라.”

“알겠습니다.”

검마의 명에 호광이 재빨리 무인들을 선발했다.

“멍청한 놈들, 감히 나의 발길을 허접한 계략 따위로 막으려 하다니.”

검마가 혀로 입술을 잔인하게 쓸었다.

“득천! 준강! 풍검! 날랜 녀석들을 선발해라! 나와 함께 강을 건넌다. 나머지는 호광의 신호를 기다려라. 수문을 점거하는 즉시 강을 건너겠다.”

“알겠습니다!”

검림의 무인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대공께서 기다리신다! 서둘러라!”

짜악!

히이잉!

검마가 거칠게 채찍질을 하자 말이 앞다리를 높이 쳐들었다가 거칠게 내달렸다.

 

“적이 나누어졌습니다. 접근해 오는 자는 오십!”

옥명자의 외침에 소강이 창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고작 오십여 명 때문에 수문을 개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적만 막으면 된다.

적의 발걸음을 늦추는 계략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파앙!

말을 마친 소강의 뒤를 따라 옥명자가 바짝 따라붙었고 일백여 명의 무인들이 날듯이 그 뒤를 따랐다.

 

“크크크, 날벌레 같은 놈들! 모조리 죽여 주마!”

자신들을 맞아 오는 서천맹 무인들의 모습에 말 등을 밟고 일행들을 앞지른 검마가 손을 뻗어 내었다.

파라라락.

회오리치듯이 몰려드는 기운에 대기가 진동하고 그의 옷자락이 찢어질 듯이 펄럭거렸다.

마검 회선칠류(回旋七流).

슈가가가각!

그의 손을 따라 수십 개의 무형검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갔다.

‘이, 이건!’

순간 섬찟함을 느낀 옥명자가 재빨리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올렸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기운을 머금은 무언가가 전방에서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슈가가각!

허공으로 뽑혀 올라온 자하검이 하늘을 향해 한 폭을 그림을 그려 내었다.

단 한 송이의 붉은 매화.

아름답게 떠오른 꽃은 검이 수직으로 세워지는 순간 화려하게 갈라지며 대기에 스며들었다.

날이 저물지도 않았는데 세상이 붉게 물든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검이 그어지고 붉은 기운이 회선칠류를 가르고 검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검존 현우자의 비기였던 낙영(落英)이 옥명자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콰콰콰콰!

“…….”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공격을 무위로 돌려 버린 검객의 모습에 검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의 손에 마기가 휘몰아치며 몰려들었다.

휘리리리리!

회선칠류의 무형검이 마기로 변해 하나의 거대한 형상으로 뭉쳐졌다.

회선칠류, 지충추(地衝錐)!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날아오는 낙영의 중심을 향해 검마의 마검이 쏘아져 나갔다.

콰드드드!

“으윽!”

막아 냈다 생각했던 옥명자는 낙영을 꿰뚫는 지충추의 기운을 막기 위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강했다.

천을 넓게 펴서 그 중심에 가위를 댄 것처럼 낙영이 빠르게 잘려 나가고 있었다.

‘이토록 강하다니!’

결국 찢어졌다.

가진 최강의 수를 꺼내 놓았으나 검마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랐다.

그 순간.

우우웅!

대기의 떨림이 한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파앙!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소강이 검마의 전면에 나타났다.

휘리리리.

태극의 기운을 머금은 소강의 창대가 검마의 복부를 향해 쇄도해 들었다.

‘이, 이런! 그때와 같은!’

검마는 순간적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기운이 너무도 익숙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소청이 펼쳤던 가공할 폭발력을 머금은 일격, 천뢰충파였다.

‘설마!’

이미 한번 당해 본 경험이 있었던 검마는 낙영을 잘라 내던 지충추의 기운을 흩트려 검을 뽑아 들었다.

콰아아앙!

주르륵!

재빨리 기운을 돌렸으나 완전하지 않았다.

방어에 실패한 검마가 서너 장을 물러났다.

“크아악!”

그사이 검마에 의해 갈라졌던 옥명자의 낙영이 좌우로 나누어져 검림의 무인들을 집어삼켰다.

지충추에 의해 그 위력이 줄었음에도 십수 명의 수하들이 떼 몰살을 당했다.

그와 동시에 서천맹과 검림의 무인들이 부딪쳤다.

까가가강!

검격이 부딪쳐 사방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고 핏물이 치솟았다.

하지만 검마에게 그따위 전투는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자신을 공격한 상대를 확인해야만 했다.

취치릭! 차아악!

하지만 그를 틈도 없이 창대가 거친 궤적을 만들며 날아들었다.

쩌어억!

“크아악!”

창대에 얻어맞은 어깻죽지가 뜯겨 나갈 것 같은 고통에 검마가 깊은 신음을 토했다.

익숙하다.

묵빛 창을 늘어뜨리고 검은 방립에 피풍의를 휘날리는 모습.

강렬한 폭발.

‘지, 진소청?’

순간 검마의 머릿속에 섬찟함이 들었다.

진소청에게 당했던 가슴의 상처가 다 나았음에도 욱신거려 왔다.

‘아, 아니다. 그는 분명히 죽었어.’

당황한 검마는 소강의 창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몸을 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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