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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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09화
108화. 대막, 진격하다
‘됐다!’
밖으로 빠져나온 소청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가슴을 부풀렸다.
비록 열기로 인해 상쾌한 공기는 아니었지만 안쪽보다는 훨씬 나았다.
하지만 여유는 여전히 없었다.
독마는 지면에 내려서자마자 소청을 향해 공격을 날려 왔다.
취리릭!
쩌엉!
다가오는 독마를 그대로 후려친 소청은 되돌아오는 반탄력에 몸을 싣고 솟구쳤다.
우우웅!
청염의 불꽃이 창극에 가득히 모이고 하늘에 푸르스름한 달이 떠올랐다.
후우욱!
콰아아앙!
내려치는 창격과 함께 가공할 화기가 독마를 짓눌렀다.
뿌드득.
뼈마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독마의 발이 검은 대지를 파고들었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너울 치듯 퍼져 나가고 대지가 괴성을 질러 대며 폭발한다.
“하압!”
파앙!
소청은 지면을 밟자마자 일보월하로 독마를 향해 되돌아갔다.
짜자자작!
두꺼운 가죽을 잘라 내듯이 열기를 머금은 창날이 독마의 팔을 잘랐다.
‘제길, 얕았나?’
완전히 자르지 못했다.
덜렁거리던 팔의 상처가 또다시 꾸역꾸역 메워졌다.
‘저건!’
그 순간 소청의 눈에 독마의 상처가 들어왔다.
치이익.
상처가 아물고 있었지만 속도가 이전보다 현저하게 떨어졌다.
‘역시 혈독이 없으니 재생력이 떨어지는군.’
또한 소청의 단전을 채운 단중혈의 기운은 삼매진화에 버금갈 정도로 강한 화기를 머금고 있었다.
열기가 상처를 지져 놓았기 때문인지 빠르게 회복되지 못했고 잠시 동안 멈춘 독마로 인해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크아아악!”
하지만 서너 번의 호흡을 하기도 전에 독마가 괴성을 지르며 소청을 뒤쫓았다.
“괴물 같은 새끼.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좀 다를 거다.”
소청이 맹렬한 기세로 쏘아져 들어오는 독마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꾸우우우…….
무릎을 굽힌 소청의 허벅지와 종아리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창대를 쥔 팔에 굵은 힘줄이 툭툭 불거져 올랐다.
막 지면을 박차고 독마를 향해 공격하려는 순간.
콰르르릉!
거대한 전격이 떨어졌다.
파파파파! 쩌저정!
뒤를 이어 분영뢰(分影雷)라 불리는 수백 개의 전격이 한 점에 집중되어 내리꽂혔다.
십여 장의 지면이 폭발하듯이 튀어 오르고 독마가 땅속 깊은 곳까지 파묻혀 버렸다.
“문주님?”
무지막지한 공격을 쏟아부은 섬뢰가 소청의 옆으로 내려섰다.
“오랜만일세. 살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믿지 못하였네만 직접 보니 반갑구먼.”
인사하는 섬뢰를 소청이 굳은 얼굴로 안고 빠르게 측면으로 피했다.
순식간에 십여 장의 공간을 뛰어 넘었다.
콰아아앙!
지면에서 솟구친 독마의 주먹이 그들이 있던 대지를 짓눌러 놓았다.
“저, 저럴 수가?”
섬뢰는 뇌전을 가득 머금은 자신의 일격이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정도 공격으로 가능했다면 진작에 죽였을 겁니다.”
입술을 깨문 소청의 말에 섬뢰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도 독마가 그들을 공격해 왔다.
두 눈에서 쏟아지는 광기 넘치는 안광에 느껴지는 내력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이놈은 누군가? 자네가 상대했다는 그 대공이라는 놈인가?”
“아닙니다. 그저 일개 세력을 이끄는 수좌에 불과합니다.”
“허!”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섬뢰가 놀라고 있는 사이에 독마를 후려친 소청이 공간을 넘어 그를 뒤쫓았다.
‘빠, 빠르다.’
쩌엉! 콰앙!
“…….”
소청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땅을 짚는가 싶으면 어느새 날아가 독마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크아아아!”
하지만 독마는 상처에는 개의치 않고 소청을 공격했다.
쩌엉!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지만 독마는 본능적으로 소청의 기세를 찾아 뒤쫓았다.
독마의 공격을 막은 소청이 지면을 밟자마자 또다시 쏘아져 나갔다.
공격이 계속될수록 독마의 살갗이 찢어졌지만 그뿐이었다.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독마의 흉포한 시선이 멍하니 선 섬뢰를 향했다.
소청을 잡지 못하자 본능적으로 섬뢰를 향해 고개가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소청을 향했던 막대한 살기가 섬뢰를 향해 쏘아졌다.
퍽! 퍼퍽!
소청의 창날에 베이고 뚫리면서도 고개를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파하학!
대지가 거칠게 파이는 순간 독마가 긴 송곳니를 드러내며 섬뢰를 향해 쏘아졌다.
둘의 공방에 집중하며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섬뢰는 갑자기 몸을 틀어 공격해 오는 독마를 보며 온몸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하아압!”
가벼운 공격으로는 턱도 없을 터였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내야 했다.
우르릉!
뇌성이 울리고 섬뢰의 도신에 무지막지한 전격이 피어올랐다.
뇌신 천뢰살(天雷煞).
섬뢰의 모든 심득이 담긴 초식이 독마를 향해 날아갔다.
쾅! 쾅! 콰앙!
하지만 독마는 피하지도 않고 얻어맞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전격에 피부가 벗겨지고 살이 타오르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이 세워진 손톱으로 섬뢰를 후려쳤다.
슈가가각!
대기를 가르는 소음에 섬뢰가 재빨리 공격을 피하고 독마의 옆구리를 향해 쌍장을 내밀었다.
퍼어억!
“크윽!”
부딪치는 순간 되돌아온 반탄력에 팔뼈가 으스러질 것 같았다.
퍼억!
후려쳐진 독마의 주먹이 그의 어께를 때렸다.
“큭!”
섬뢰가 튕겨 나갔다.
그리고 독마가 그 뒤를 빠르게 뒤쫓아 높이 들었던 발을 찍어 내렸다.
콰아앙!
대지가 갈라지며 터져 올랐다.
부끄러움도 잊은 채 바닥을 굴렀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이, 이런.’
보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힘의 차이가 극명했다.
그의 무지막지한 공격에 피하기에도 급급해졌다.
쩌억!
“큭!”
공격을 막은 팔이 부서지는 충격이 느껴져 왔다.
‘망할!’
이미 검마에게 한 번 졌었다. 한데 이번에는 독마에게 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마천의 고수들이 이토록 강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무지막지한 독마의 공격이 섬뢰를 절체절명에 빠트리려는 찰나 소청의 그의 앞을 파고들었다.
휘리리릭!
피풍의를 흩날리며 회전한 소청의 창대가 독마의 복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쩌어-!
튕겨 난 독마가 십여 장이나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놈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섬뢰께서는 서둘러 모두를 대피시키십시오!”
“아, 알겠네.”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크으으으! 크아아!”
튕겨 나갔던 독마가 소청을 노려보며 괴성을 질렀다.
울부짖음과 함께 뻗어 나온 음파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검은 대지를 피해 물러났던 비마대와 사도련의 무인들이 눈을 찡그리고 귀를 틀어막았다.
소청은 독마의 몸에서 새카맣게 뿜어지는 독 기운이 검은 대지를 채우는 모습에 눈을 찡그렸다.
“괴물 새끼. 오냐. 더 이상 재생할 수 없도록 조각내 주지.”
소청이 창대를 움켜잡고 단전의 기운을 모조리 웅크린 하반신에 집중했다.
더 이상 힘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그가 힘을 아낀 것은 독마를 죽인 다음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섬뢰에 의해 대막혈궁의 무인들이 제압되었으니 소청은 모든 힘을 쏟아부어 독마를 죽이면 되는 일이었다.
꾸우우우.
소청이 용천혈을 닫아 버리자 빠져나가지 못한 기운이 종아리와 허벅지를 터질 듯이 부풀어 올렸다.
퍼엉!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파공음.
쐐애액!
공기를 가르는 소음이 퍼지기도 전에 대기를 채운 독 기운이 훅 하고 빨려 들어갔다.
소리조차 소청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일보월하의 극의, 영추(影追).
움직임을 그림자가 뒤쫓아 간다는 뜻을 가진 광속의 신법이 펼쳐졌다.
차아악!
날카롭게 베인 독마의 팔이 깊이 잘려 너덜거렸다.
이지를 상실한 독마조차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전에는 방어를 하며 공격이라도 했지만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소청에게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독마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소청의 시간은 쏘아진 화살보다 빠르게 흘렀다.
차아악!
팔이 재생되기도 전에 허벅지가 잘려 나갔다.
쿵!
독마의 육중한 몸이 바닥에 강제로 꿇어 앉혀졌다.
보이지 않는 칼이 가죽을 벗겨 내고 살점을 뜯어내듯이 독마의 몸이 마구 잘려 나가 뼈마디가 드러났다.
소청의 속도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 있었다.
‘으으윽!’
하지만 소청이라고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영추’를 펼친 것은 처음이었다.
근육이 버틸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드득!
좌우의 방향을 바꿀 때마다 뒤틀리는 근육이 끊어질 듯이 비명을 질렀다.
‘조금만 더…….’
파하학!
소청의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독마도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쿠우욱!
수직으로 세워졌던 소청의 창대가 독마의 백회에 틀어박혔다.
“크아아아아!”
깊숙이 박힌 창대에 독마가 괴성을 질러 대었다.
우우웅!
백회의 기운이 밀려들어 단전의 화기와 합해졌다.
고속으로 회전한 두 개의 기운이 태극을 이루는 순간 거대한 청염의 기운이 단전을 빠져나갈 듯이 요동쳤다.
“죽어라…… 독마.”
싸늘하게 내뱉어진 말과 함께 태극의 기운이 독마의 백회로 쏟아져 들어갔다.
쩌적.
쩌저적!
독마의 몸이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졌다.
그리고 그 균열의 곳곳에서 청염의 불꽃이 솟구쳤다.
“끄아아아악!”
콰아아아앙!
괴성과 함께 이어진 거대한 폭발이 검은 대지를 뒤흔들어 놓았다.
폭발과 함께 거대한 공진이 만들어지자 바람이 독 기운을 몰고 소청을 향해 빨려들었다.
화르륵!
진정되지 못한 기운이 푸른 불꽃이 되어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
후두둑, 후두둑.
독 기운과 함께 폭발의 잔해가 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독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창대를 잡고 선 소청의 거친 숨소리가 검은 대지를 가득하게 채웠다.
“후우…… 후우…….”
초고속의 운신법인 영추에 이어 기존 천뢰충파보다 배나 강한 공력을 사용한 덕분에 좀처럼 몸이 진정되지 않았다.
“괜찮은가?”
“예.”
섬뢰가 다가왔다.
초사와 비마대도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정말 대단한 싸움이었네.”
“예. 놈이 그렇게 변할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 했습니다.”
“일단 피하세. 조짐이 좋지 않네.”
섬뢰와 함께 물러난 소청은 비마대와 합류했다.
“심상치 않군.”
섬뢰가 검은 산을 바라보았다.
쿠르르릉!
검은 산이 진동하고 있었다.
회색빛 연기가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청과 독마가 그만큼 두들겨 놓았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대막혈궁.
능히 중원과 자웅을 겨루어도 될 것이라 평가받은 대막의 본거지는 얼마 가지 않아 화산과 함께 묻혀 버릴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떻게 오신 겁니까?”
온몸이 노곤해진 소청이 바닥에 주저앉아 물었다.
“자네가 이곳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련주께서 도와주라 명하셨네.”
“련주님께 감사를 전해야겠군요. 덕분에 저들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소청이 초사의 뒤편에 힘없이 앉아있는 포로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자네가 다 해 놓은 밥에 숟가락을 더했을 뿐이네.”
섬뢰의 퉁명스러운 말에 소청이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곳이 문제가 아니네.”
“예? 그게 무슨?”
“오면서 하오문의 유란이라는 아이를 만났네.”
유란은 대막에서 비밀 분타의 주인이었다.
그녀에게 대막의 무인들이 광풍단으로 집결하고 있음을 듣고 그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도록 부탁했다.
“저들이 대막을 건너고 있다 하더군.”
“대막을 건넌다고요? 중원으로 갔단 말입니까?”
“그러하네. 곧장 남하했다 했으나 어디로 향할지는 알 수 없다고 하네.”
“…….”
유란이 내밀었던 지도에 광풍단의 위치가 있었다.
대막의 서쪽 끝.
광풍단은 감숙의 가욕관(嘉峪關)과 경계를 두고 있었다.
소청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가욕관을 지나 곧장 서쪽으로 향한다면 청해성을 지나 토번에 도착한다.
그러나 방향을 바꾸어 남하한다면?
‘서천맹?’
속단하기는 이른 문제였다.
하지만 그대로 둘 수도 없었다.
소청은 현재 서천맹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하오문의 비밀 분타에서 대막 혈궁까지 넉넉히 이틀 거리.
하루의 시간을 기다렸으니 그들이 움직인 지 사흘은 족히 지났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그들의 방향이 결정되었을지도 몰랐다.
“제길, 쉴 틈이 없군요.”
소청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서둘러 확인을 해야만 했다.
“은수!”
“예. 패월!”
“혈궁의 전서구는 어찌 되었나?”
“하오문에 확인을 요청했습니다만 아직 답신은…….”
“좋다. 일단은 그곳으로 간다.”
“예!”
명을 내린 소청은 섬뢰를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뒷정리를 부탁드립니다.”
“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