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4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4화
“웃기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기껏해야 호위무사가 되기 위해 들어온 계집이 뭐 대단해서 이 공자님이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거냐?”
그 사이 진녹색 무복을 한 청년 몇 명과 청색 무복을 입은 이차 수련생 서너 명이 몰려왔다.
이차 수련생은 삼조원이 셋이고 이조원인 조궁혜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동겸을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리기는커녕 희희덕대며 쳐다보기만 했다.
“왜 그러는 거야?”
“주제도 모르고 나섰다가 뒈지게 맞은 것 같은데?”
“자식, 까불거리고 다니더니 꼴좋다.”
그나마 섭중화는 말리고 싶은 눈치였지만 동겸의 정체를 알기에 나서지 않았다.
그때 연송하가 동겸과 유고원 사이로 끼어들며 소리쳤다.
“이제 그만해요. 잘못은 당신이 해놓고 왜 저 사람을 때리는 거예요?”
동겸이 인상을 썼다.
“내가 사이좋게 지내자고 한 것이 잘못인가?”
“제가 싫다고 했는데도 당신이 강제로 제 팔을 잡아당겼잖아요.”
“그거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거지. 순진하게 생긴 것이 왜 이리 고집이 세?”
대충 사정을 알게 된 수련생들은 동겸을 욕하지 않고 피식 웃기만 했다.
그런데 한쪽에 서있던 조궁혜가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송하, 어지간하면 동 오라버니의 뜻을 받아주지 왜 마다하는 거니? 동 오라버니 정도면 너로선 복 터진 거야.”
“난 싫다니까!”
연송하가 강하게 거부하자 동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때였다. 일조 수련생들이 그곳으로 뛰어왔다.
소란이 벌어진 장소가 일조와 먼 곳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달려온 것이다.
그들 중에는 바위더미 속에서 환귀자가 남긴 것을 끙끙거리며 연구하던 장천운도 있었다.
교관들은 소란이 벌어진 것을 알 텐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에도 수련생끼리 싸울 때가 가끔 있었다. 교관들은 어지간히 심하지만 않으면 관여치 않았다. 그것도 실전수련의 일환이라면서.
“무슨 일이냐, 십오호?”
얼굴과 옷에 피가 묻은 유고원을 보고 구산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유고원이 입술의 피를 소매로 닦으며 조롱하듯이 말했다.
“저 자가 십사호를 움켜쥐고 괴롭히잖아. 그래서 손을 놓으라고 했더니 공격하지 뭐야. 십사호가 욕심나서 어떻게 해보려다가 나에게 방해받으니까 화가 났나 봐.”
동겸이 매서운 눈초리로 유고원을 노려보았다.
“흥! 내가 저딴 첩년의 딸을 왜 욕심낸단 말이냐? 노리개로라도 삼아줄까 해서 의향을 물어본 것뿐이지.”
그때였다.
“그 새끼, 말 더럽게 하네.”
동겸이 욕설이 들린 곳을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장천운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고 있었다.
유고원의 엉망이 된 모습을 보고 화가 나던 차였다. 그런데 동겸이 연송하를 모욕하는 말을 하는 것 아닌가.
속이 확 뒤집힌 그의 입에서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 잠보 자식이!”
“역시 입이 시궁창이라 말끝마다 욕이군.”
계속된 장천운의 공격에 동겸의 눈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그러나 첫해의 일을 그도 봤기에 장천운과 다투는 게 왠지 찝찝했다.
“네놈이 뭔데 저 계집의 일에 나서는 거냐?”
“나? 십사호의 오빠.”
“뭐?”
“송하의 오빠라고. 안 들려? 입이 시궁창이니 귓구멍도 쓰레기로 막혔나 보군.”
“이 죽일 놈이……!”
“나도 십오호처럼 패고 싶은가 보지? 쉽지 않을 텐데?”
끝내 동겸이 이성을 잃고 감정대로 움직였다.
“오냐, 이놈. 지금한 말을 처절히 후회하게 해주마!”
냉랭히 소리친 그는 쭉 미끄러지며 장천운과의 거리를 좁히고는 번개처럼 주먹을 뻗었다.
장천운이 몸을 틀었지만 동겸의 주먹이 조금 더 빨랐다.
퍽!
스치듯 얼굴을 맞은 장천운이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입안이 찢어졌는지 곧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퉤!
장천운이 남들에게 보라는 듯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러서 피를 볼까지 묻게 했다.
‘지미, 억지로 맞아주었는데도 기분은 똑같이 더럽네.’
상대는 당주의 아들이다. 자신은 흑도 출신이고.
일이 커지면 나중에 자신만 당할 터. 그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한 대 맞아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얼굴에 피도 좀 묻히고.
“맛이 어떠냐, 이놈!”
동겸이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조소를 짓고는 재차 달려들었다.
장천운은 더 맞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슬쩍슬쩍 몸을 틀어서 아슬아슬하게 동겸의 주먹을 피했다.
그가 몇 번에 걸쳐서 한두 치 사이로 주먹을 피하자, 동겸이 눈을 치켜뜨고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이 미꾸라지 같은 놈이!”
금방이라도 두들겨 맞고 쓰러질 것 같은 모습.
몇 사람은 낄낄거리며 즐거워하고, 몇 사람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렇게 십여 초가 지날 즈음, 장천운이 당황한 것처럼 두 팔을 휘둘렀다.
진짜 우연인지 몰라도 마구잡이로 휘두른 팔이 동겸의 뺨을 후려쳤다.
짝!
“윽!”
갑작스런 충격에 동겸이 주춤거렸다.
장천운이 한 걸음 물러서는 그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들 눈에는 우연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캬, 잠보가 운이 좋군.”
“그래봐야 동 조장의 화만 돋우는 거지 뭐.”
그러나 마구잡이처럼 보이는 장천운의 공격은 동겸의 방어를 교묘하게 뚫고 들어갔다.
퍼버버벅!
장천운의 주먹이 동겸의 몸을 두들겼다.
동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인 장천운의 주먹은 그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강해서, 마치 쇠망치에 맞은 것 같았다.
“크윽, 이 개자식이…… 억!”
순식간에 십여 차례나 두들겨 맞은 그는 정신이 없었다.
방어를 하긴 해야 하는데, 하필 맞은 부위가 마혈 근처여서 손발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장천운은 다섯 대나 더 때렸다.
그 중 두 대는 동겸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퍽! 빡!
동겸의 입에서 하얀 뭔가가 튀어나왔다.
“그만 멈춰라!”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에 멍하니 지켜보던 진녹색 무복의 청년 둘이 뛰어들면서 장천운을 공격했다.
장천운은 말잘 듣는 강아지처럼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갑작스럽게 그가 물러서자, 달려들던 두 청년 중 하나가 급히 멈춰 섰다.
순간, 장천운이 몸을 틀면서 그자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장천운의 팔꿈치가 청년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사실 대단할 것도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시기가 절묘해서 청년은 피하지도, 막지도 못했다.
퍽!
입을 쩍 벌린 청년은 눈앞이 노래지는 충격을 받고 뒤로 나가 떨어졌다.
장천운은 서너 걸음 물러선 뒤 옷을 툭툭 털었다.
“그러게 왜 얌전히 있는 사람을 건드려?”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잠깐 투닥투닥 하더니 두 사람이 장천운에게 당한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장천운이 실력으로 이겼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바로 그때, 유진생과 양태악이 나타났다.
“얼씨구. 수련이 끝났으면 쉬면서 운공조식이나 할 것이지, 어디서 싸움질이야?”
두 사람은 쓰러져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는 동겸과 또 다른 청년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속이 다 시원했다.
그 동안 동료 교관들에게 ‘어린애들 데리고 논다’며 조롱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어린 수련생이 곧 정예무사로 편입될 자들을 쓰러뜨렸다.
그 뜻인 즉 자신들이 잘 가르쳤다는 말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그 상대 중 하나는 교관들조차 우습게보며 거들먹거리는 동겸이어서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런, 이가 몇 개 빠진 것 같군.”
“앞으로 고기 씹으려면 힘들겠는데?”
그때 부들부들 떨며 상체를 일으킨 동겸이 고개를 들고는 장천운을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네놈,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장천운도 지지 않았다.
“한번만 더 내 동생을 건드리면, 다음에는 이가 아니라 눈알이 터질 거다.”
양태악이 짐짓 화를 내는 척하며 장천운을 나무랬다.
“어허! 십팔호. 그래도 형 뻘 되는 사람에게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오늘 일은 잘잘못을 떠나서 너무 지나쳤다. 고로 벌로써 삼일 간 근신을 명할 테니, 그 동안 열심히 반성하도록.”
말이 벌을 주는 거지, 삼일 근신은 벌도 아니었다.
삼일 동안 푹 쉬라는 말과 다를 게 뭐 있어?
“예, 교관님.”
***
장천운은 삼일 간의 근신이 끝나자 전이나 다름없는 생황을 이어갔다. 여전히 그는 졸았고(?), 게으르게 비추어졌다.
동겸과의 싸움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남기고 그렇게 흐지부지 지나갔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보름이 지날 무렵.
상부에서 명령 하나가 하달되었다.
-선배인 동겸에게 폭력을 행사한 십팔호 장천운을 육 개월 동안 뇌옥에 가두어라!
교관들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걸 가지고 육 개월 동안이나 가두냐’며 반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앞니가 하나도 아니고 네 개나 부러지고 뽑혔다. 갈비뼈도 서너 개가 부러진 것 같다고 했다. 그것도 경혼당주의 아들이.
이번 명령도 경혼당주 동욱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봐야 했다.
아마 총사의 추천으로 들어왔다는 훈장만 아니었다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십팔호, 아무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안하구나.”
유진생이 장천운을 불러서 정말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장천운은 개의치 않았다.
“아닙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이 기회에 몇 달 쉬죠 뭐.”
어차피 그도 혼자서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퀴퀴한 냄새와 자유가 없는 생활이 짜증나고 답답할 수는 있지만, 무창의 뒷골목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그에게는 그다지 나쁜 환경도 아니었다.
그날 오후, 장천운은 제 발로 걸어서 뇌옥에 들어갔다.
7장: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 소란을 피우면 형벌이 추가되니까, 알아서 행동해.”
마흔 살가량으로 보이는 간수가 간단히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문을 세차게 닫았다.
텅.
장천운은 뇌옥문이 닫히는 소리를 뒤로 하고 안을 둘러보았다.
뇌옥도 무서동처럼 암벽을 깎아서 만든 곳이었다. 그 바람에 입구를 통하지 않고는 탈출이 불가능했다. 암벽을 두부처럼 파내는 재주가 있다면 몰라도.
강련곡 내의 사람이 얼마 되지 않으니 옥방(獄房)은 달랑 두 개뿐.
장천운이 들어간 일호실에는 두 사람이 수용되어 있었다.
나이는 이십대 초반. 그들 역시 수련생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장천운도 그들의 얼굴은 본 적이 있었다.
왼쪽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청년은 무진년 일차 수련생으로, 덥수룩한 수염에 눈이 부리부리해서 한 성격 하게 생긴 인상이었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청년은 기사년(己巳年)인 작년에 들어온 자였다.
그는 눈매가 독사처럼 날카롭고 입술이 얇아서 냉혹하게 느껴졌다.
무창 뒷골목에 가면 제법 대우를 받을 것 같은 인상을 지닌 자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저번 달에 싸워서 뇌옥에 들어갔다는 자들이군. 이거 조용히 지내기는 틀린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