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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107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1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107화

106화. 마혈녹독인(魔血綠毒人)

 

 

 

 

“크르…….”

사방에서 괴음이 들려오자 걸음을 멈춘 소청이 고개를 돌렸다.

파학!

수십 곳의 혈독에서 피를 뒤집어쓴 열 명의 괴인들이 솟구쳐 올랐다.

혈독지괴.

독혈보가 만들어 낸 저주받은 산물이 깨어났다.

으드득.

그들을 보는 순간 소청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수백의 목숨을 제물로 만들어진 괴인들…….

“키히힛! 죽일 수 있을 때 죽였어야 해. 나에게 시간을 준 네놈의 오만이 죽음을 자초할 것이다,”

공동의 벽에 기댄 독마가 소청을 향해 조소를 날렸다.

소청은 강했다.

지금 자신의 힘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독마는 싸늘한 미소와 함께 품에서 작은 단환을 비벼 바닥에 뿌렸다.

백색 연기가 확 하고 퍼져 나와 안개처럼 공동 안을 채웠다.

심혼독(心魂毒).

인간의 본성 중 살심과 탐심을 끌어내 마성에 빠지게 하는 독이었다.

공동을 채우던 백색의 기운이 은은하게 퍼져 네 방향의 동혈을 향해 빠르게 번져 나갔다.

“크르르…….”

그사이 혈독지괴 열 구가 소청을 포위하듯 둘러쌌다.

“운 좋게 혈궁의 심처까지 잠입했다만 이젠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소청은 독마를 향해 피식 웃었다.

“지랄하고 있네. 처맞고 드러누워서 할 만한 위협은 아니지 않나?”

열구의 혈독지괴.

이미 한번 상대해 본 적이 있는 괴물이었다.

도검불침에 극독을 품고 있었으나 찢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끄으…….”

공동 안에서 부상을 당해 쓰러져 있던 대막혈궁의 무인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독 기운에 몸이 녹은 자, 팔다리가 하나씩 잘려 나갔던 자들이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나 살기를 피워 올렸다.

“끄으…….”

대막혈궁의 무인들이 도망쳤던 동굴에서도 기괴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흰자위조차 사라진 검게 물든 눈.

무언가에 취한 듯한 몽롱한 얼굴에 몸에는 지렁이 같은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분명 어디선가 보았던 느낌이었다.

‘설마!’

소청의 눈가에 잔경련이 일어났다.

잊고 지낸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소청의 눈가에 살기가 짙게 떠올랐다.

사천 당가에 의해 자행되었던 간양 습격.

당시 당가의 무인들이 마기에 빠진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얼마 전 화혈독에 중독되었던 이들이 당태위의 ‘증혈 증상’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기에 독혈보가 관련되어 있으리라고 추측만 했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그 모든 일의 원흉을 알게 되었다.

“그래. 네놈이었구나, 독마.”

당시 간양의 모습들이 소청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노인이며 어른, 어린아이까지 피 맛에 취해 덤벼들던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놈은 또다시 자신들의 수하나 다름없는 자들을 중독시켜 이용하고 있었다.

생기가 완전히 다할 때까지, 제 몸이 완전히 아스러져 움직이지 못하게 될 때까지 마기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이다.

“다 이해할 수 있어. 무림이란 그런 곳이니까. 하지만 진가는 노리지 말았어야지.”

분노.

시리도록 차가운 분노로 가득 찬 소청의 눈이 독마를 향했다.

이글거리며 피어오른 화기가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소청은 일그러진 얼굴로 발을 떼어 내디뎠다.

치이이익.

그의 발이 닿은 자리가 지글거리며 끓어오르면서 연기를 피워 올렸다.

또 한 걸음.

꾸우우…….

대기가 한없이 무거워져 심혼독에 잠식당했던 혈궁 무인들의 발이 바닥을 푹푹 파고들었다.

걸음이 내디뎌질 때마다 기운은 더욱 강해졌고, 붉게 타오르던 화염이 청색으로 변해 갔다.

소청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청색의 불꽃이 닿은 모든 곳이 순식간에 불타오르며 재로 변했다.

‘사, 삼매진화(三昧眞火)?’

독마의 눈이 거세게 떨렸다.

아무리 양강의 무학을 익혔다고 해도 삼매진화의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낼 수 있는 인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붉은 화광을 토해 내던 눈동자마저 청백색으로 희번덕거리고 열기가 더욱 강해졌다.

휘리리리!

머리칼마저 푸른 빛으로 변해 흩날렸다.

독마의 이 장 앞으로 다가온 소청이 걸음을 멈췄다.

새파랗게 빛나는 눈동자와 마주한 독마는 눈알이 관통되는 것처럼 따가워졌다.

살기가 아니었다.

또한 아무리 대단한 자라 해도 이만한 크기의 공동을 자신의 기운으로 채울 수는 없었다.

“…….”

독마가 문득 제 손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떨려 왔다.

소청이 내뿜는 살기에 마음 깊숙한 곳에 감춰진 본능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갈가리 찢어 죽여 주지!”

파앙!

공기가 터져 나갔다.

청백색의 눈동자가 긴 잔영의 꼬리를 만든다.

대기를 진동시키던 살기와 기운이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나타났다.

파파파파파!

광기를 머금은 눈동자와 함께 창대가 대기를 거칠게 가르며 날아갔다.

삐이-!

피리 소리와 함께 앞을 막는 혈독지괴에 창대가 사정없이 틀어박힌다.

짜자자작!

열기가 확 하고 뿌려져 독마의 얼굴을 데워 놓았고 혈독지괴가 반으로 찢어졌다.

‘허, 허억!’

반으로 갈라진 틈 사이로 청백색의 눈동자가 독마를 쏘아본다.

쩍, 쩌적, 쩍!

다행이 뒤를 이은 혈독지괴의 공격이 격분해 있는 소청의 몸을 밀어붙이며 떨어졌지만 돋아 오른 소름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압!”

소청의 기합성과 함께 팔과 어깨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창대에 푸른 기운이 응축되었다.

뻐버버벅!

강렬한 충돌음과 함께 혈독지괴 두 구의 머리가 청염에 휩싸여 사라졌고 사방에 독기가 뿌려졌다.

“크아아악!”

진득한 독 기운이 심혼독에 빠진 무인들을 덮쳤다.

혈독의 정수가 담긴 독의 위력은 닿는 모든 것을 녹여 버렸다.

소청은 분노한 모습으로 마구잡이로 창을 휘둘렀다.

육편이 조각나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뿜어진 피가 공동을 가득하게 적셨다.

도검불침이라던 혈독지괴의 팔다리가 부서지고 잘려 나갔다.

‘이,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독마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머릿속에 그려진 것은 죽음.

죽고 싶지 않았다.

마천은 패자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저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수좌를 잃어버린 환영곡, 편살원, 벽뢰문이 그러했다.

적어도 타인의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간 그에게 찾아올 것은 아니었지만 지독스러운 생의 의지가 그의 몸에 잠든 역천의 기운을 깨워 놓았다.

삐이-!

결정을 내린 독마의 입이 오므려지자 소청을 공격하던 다섯 구의 혈독지괴가 독마를 향해 되돌아왔다.

독마의 손이 혈독지괴의 머리 위에 올려졌다.

“끄으으으…….”

이지를 상실했음에도 혈독지괴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츠츠츠.

그의 손을 빠져나온 마기가 순식간에 괴인의 몸을 집어삼켰다.

우둑, 우두둑.

눈에서 뿜어진 녹빛이 검게 변했고 그의 몸이 기괴한 소음을 내며 독마의 몸이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독마에게서 뿜어져 나온 기운에 반응한 혈독이 갑자기 커다란 거품을 만들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쩌억! 콰아앙!

다섯 구나 되는 혈독지괴가 빠져나가자 소청은 더욱 광포하게 날뛰었다.

으드드드…… 콰직!

마지막으로 남은 괴인의 머리를 잡은 소청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두개골이 으스러지며 괴인의 머리가 터트려졌다.

쫘아악! 화르륵.

머리를 잃어버린 혈독지괴 한 구가 소청의 손에 찢기자마자 푸른 불꽃에 휩싸여 타올랐다.

“……!”

그 순간 소청의 고개가 돌려졌다.

머리가 판단하기 이전에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안감이 피부를 따끔거리게 했다.

변화.

독마에게서 엄청난 기운이 파도처럼 뻗어져 나온다.

이전에 느껴 보지 못한 거대한 마기와 함께 막대한 기운이 공동 안의 대기를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파앙!

괴인을 찢어 버린 소청이 순식간에 지면을 박찼다.

츄아아악!

하지만 뒤의 행동이 이어지지 못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혈독의 내용물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여 소청을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슈가가각!

창대가 부러질 듯이 휘어져 대기를 가른다.

하지만 혈독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피. 잘라도 소용없었다.

푸하학! 치이익!

핏물을 온전히 뒤집어써 버린 소청의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크윽…….”

황급히 물러난 소청이 몸에 열기를 일으켰다.

화아악!

몸에 닿았던 핏물과 함께 독 기운이 불타올랐다.

만독불침을 이루어 중독은 되지 않았지만 혈독에 담겨진 독기를 피부가 버텨 내지 못했다.

순간 분노로 가득 찼던 소청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수십여 개의 혈독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솟구쳐 넘실거리고 그 중심에 기괴하게 변해 버린 독마가 서 있다.

파앙!

소청이 창대를 움켜쥐고 지면을 박찼다.

푸학!

솟구친 혈독이 소청을 향해 쏘아졌지만 그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뭐든 필요 없다 생각했다.

어차피 힘의 근원은 독마일 터다. 독마만 부숴 버리면 될 일이다.

쩌억!

독마의 옆구리에 창대가 틀어박힌다.

슈우욱! 터엉!

튕겨 나가 버린 독마의 신형이 벽면에 처박혔다.

휘리리리!

빠바바박!

소청은 한 차례의 호흡도 내쉬지 않고 건월식에서 곤월식까지의 공격을 무자비하게 쏟아부었다.

잘게 나누어진 초식이 수십 수백 초로 변해 독마의 몸에 틀어박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섬찟한 기운이 창의 궤적을 파고든다.

쩌-엉!

서둘러 창대로 막은 소청의 몸이 한참이나 밀려 나갔다.

“제길…… 이건 처음 보는 건데…….”

손아귀에 느껴지는 찌릿함에 소청의 눈이 일그러졌다.

쿠우우우…….

먼지를 뚫고 나타난 검은 눈동자.

“크으으으…….”

짐승의 그것 같은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순간 무언가 ‘휙’ 하고 쏘아져 나왔다.

슈가가각!

날카롭게 자라난 짐승의 발톱이 세상을 다섯 가닥으로 잘라 놓았다.

땅! 따다다당!

발톱과 부딪친 창대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났다.

막지 못한 기운에 소청이 재빨리 일보월하로 벽까지 물러나 서둘러 독마의 모습을 살폈다.

거대했다.

마치 근육이 증식하고 뼈가 늘어난 것처럼 몸이 서너 배 이상이나 커져 있었다.

쓰읍…… 하아…….

모습뿐 아니라 내쉬는 숨마저 독기로 변했다.

“크크크.”

몸을 일으킨 독마의 입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스산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울퉁불퉁한 근육을 꿈틀거리며 다가오는 독마는 조금도 충격을 받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미 오존을 한참이나 넘어서 버린 소청이지만 독마가 뿜어내는 기운에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였다.

괴물이 된 독마의 몸에서 느껴지는 내력은 몇 배나 더 강해져 있었고 만독불침에 이른 소청임에도 독 기운에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크흐흐흐…….”

독마가 제 힘을 음미하듯이 솥뚜껑 같은 주먹을 움켜쥐며 소청을 힐끗거렸다.

‘역천의 진언으로 변한 모습과는 다르다. 도대체 이게 뭐지?’

소청의 시선이 독마의 발아래 고목처럼 말라비틀어진 혈독지괴에 닿았다.

‘설마? 흡수한 건가?’

그것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혈독지괴의 힘을 흡수한 독마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닌 괴물로 변해 있었다.

혈독의 힘으로 만들어진 괴인을 흡수함으로써 완성되는 마혈녹독인(魔血綠毒人).

독마가 가진 최후의 절초였다.

후아악!

솥뚜껑 같은 주먹이 펼쳐져 파리채처럼 휘둘러지자 폭풍 같은 바람이 불어닥쳤다.

시체는 물론이고 혈독의 핏물이 소청을 향해 모조리 쏘아져 들어왔다.

“제길!”

이미 한차례의 경험으로 혈독을 자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손으로 잡은 창대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수많은 궤적을 만들었다.

가가가각!

창격에 실린 기운이 공동의 벽을 무자비하게 긁어 대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패월창법 태월식.

늪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가 독마가 일으킨 모든 공격을 잡아먹었다.

슈웅!

하지만 창식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주먹이 촘촘한 궤적을 뚫고 날아들어 왔다.

짜우우!

주먹에 실린 기운은 소청으로서도 경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콰앙!

창대로 독마의 주먹을 비껴 낸 소청이 회오리처럼 몸을 비틀며 창대를 휘둘렀다.

스거걱!

‘베었다!’

창극에 무거운 느낌이 있었다.

살을 베고 지나가는 느낌이 손을 통해 선명하게 느껴져 왔다.

휘리릭! 터엉!

하지만 기뻐할 틈이 없었다.

독마의 날카로운 손톱과 함께 혈독이 소청을 향해 날아왔다.

뒤로 물러나던 소청의 신형이 벽면에 닿으며 간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커억!”

다섯 줄기의 독기가 소청의 가슴을 훑고 지나가고 부딪힌 충격에 바닥에 패대기쳐졌던 소청이 급히 몸을 일으켜 물러났다.

치이익.

“…….”

혈독이 쏟아졌다.

지독한 독 기운에 바닥에 깔린 시신들이 모조리 녹아내렸다.

그리고.

쿠르륵. 쿠르륵.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혈독의 핏물이 그의 몸에 흡수되더니 배꼽 언저리까지 베인 복부의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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