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102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102화
101화. 소강 분노하다
성도가 발칵 뒤집혔다.
진가의 연락을 받은 관인들이 성도의 관내에 깔렸고 화산의 매화검수, 아미파의 여승들까지 소강과 소혜를 공격한 살수를 뒤쫓기 시작했다.
또한 암시장은 진무월창의 무인들의 방문을 받아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었다.
암시장의 상인들이 모조리 끌려 나와 무릎이 꿇렸다.
‘이, 이런. 한발 늦었군.’
의뢰를 했던 독묘를 찾아와 죽이려 했던 모개는 진무월창의 무인들이 생각보다 빨리 들이닥치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허술했다. 저들이 이리 빨리 움직일 줄이야.’
그들은 진가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고 소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천의 사람들조차 소청이 너무도 뛰어났기에 소강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암시장의 살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알았다면 이같이 허술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고, 애초에 의뢰 자체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거대한 형의 그림자와 예의 바름 속에 감추어져 있었지만, 소강은 과거의 기억을 가진 소청의 성취를 빠르게 뒤쫓을 만큼 뛰어난 무재와 지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소강을 잡기 위한 계획을 세울 때 좀 더 치밀했어야 했다.
‘제길, 일단은 몸을 빼는 수밖에…….’
모개는 진가 무인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눈앞에 창대를 늘어뜨린 진소강이 서 있었다.
“악가…… 그대가 암시장에 있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 * *
그날 저녁.
콰앙!
악가의 무인들이 묵고 있던 객점의 벽면이 통째로 부서져 나갔다.
한 손에는 흑빛 창을 들었고 한 손에는 곤죽이 된 모개의 멱살이 잡혀 있었다.
“이놈, 무슨 짓이냐!”
“…….”
객점에는 스무 명 정도의 무인이 있었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서천맹의 거처에 있었고 객점에 자리를 잡은 것은 악이군을 비롯한 수뇌와 호위를 위한 오십여 명의 무인뿐이었다.
소강이 무심하다 못해 감정 한 올 실리지 않은 눈으로 자신을 향해 창극을 겨눈 무인들을 노려보았다.
“허헛! 단주님!”
소강의 손에 잡혀 있는 모개를 알아본 무인들이 소강을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단주님께! 당장 놓아주지 못하겠느냐!”
“악이군은 어디 있지?”
소강의 말에 무인 하나가 분기탱천해 소리쳤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감히 네놈 따위가 함부로 부를 분이 아니다!”
“악이군을 데려와.”
소강은 차분하게 무인들을 향해 말했다.
당장이라도 소강을 공격해야 했지만 그의 손에 잡혀 있는 모개로 인해 창을 들이밀 수가 없었다.
“이 비겁한 놈! 지금 인질을 잡고 협박하는 것이냐!”
악가 무인의 외침에 소강이 손에 들린 모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안으로 던져 넣었다.
털썩.
피 떡이 되어 버린 모개는 숨을 헐떡이며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인질……? 너희들 따위가 무서워 데려온 인질로 보였나? 그는 죄인일 뿐이다.”
소강의 어조는 낮고 차가웠다.
“닥쳐라 이놈! 감히 간양의 저급한 가문의 아들놈이 함부로…….”
쩌억!
삿대질을 하며 외치던 무인의 얼굴에 소강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코뼈가 함몰되어 버린 무인은 그대로 꼬꾸라졌다.
“……!”
순간 갑자기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소강의 모습에 무인들이 뒤늦게 쫙 하고 갈라졌다.
“악이군을 데려와라. 그럼 죽지는 않는다.”
“뚫린 입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죄를 물어야 할 것은 악이군이다. 다가서지 않으면 죽이지는 않겠다.”
“감히 대 악가를 두고 어디서 그런 망발을! 뭣들 하느냐! 놈을 공격해라!”
비룡창단의 부단주 오채서의 외침에 무인들이 창을 내질렀다.
“다가서지 않으면, 이라 했었다.”
휘이이이-!
앞발이 뻗어지고 뒤로 잡았던 흑빛 창대가 원을 그려 양손에 잡혔다.
소강의 얼굴에 잔혹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빛살처럼 뻗어 나갔다.
우두둑! 쩌어엉!
이 층짜리 객점이 통으로 폭발하며 무너져 내렸다.
충격파에 튕겨 나가 버린 무인들이 걸레 조각처럼 변해 무너진 건물의 잔해 곳곳에 널려 있었다.
강렬한 진동에 사방에서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단 일격에 악가가 자랑하는 비룡단의 무인 스물을 모조리 건물에 묻어 버렸다.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
건물이 무너지고 드러난 후원에서 악이군과 악가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소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잔해 속에서 모개를 집어 들어 악이군의 앞에 던졌다.
“……!”
모개를 보는 순간 악이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표정을 보니…… 확실해졌군. 네놈이 범인이었어.”
“무, 무슨 말이냐!”
일단은 발뺌을 해야 한다 생각했다.
소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만약 그가 사주한 것이 모두에게 밝혀지면 서천맹주에 오르기는커녕 악가에 치명타가 될 것이었다.
“나를 노렸어야 해.”
소강의 몸에서 끈적끈적한 살기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감히 악가의 거처에 와서 난동을 부리다니……. 이 무례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악이군이 노기를 드러내며 노려보자 소강이 피식 웃었다.
“그래. 긴말할 필요 없겠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확인이 필요할 뿐이었다.
소강이 창대를 겨누자 악가의 무인들이 모조리 창대를 꺼내고 악이군의 앞을 막아섰다.
“내게 필요한 건 악이군뿐이다. 물러나라. 적어도 아직까지 내게 이성이라는 것이 남아 있을 때…….”
“지랄!”
그 반응이 내뱉어지는 순간 소강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지어졌다.
휘리리리-.
팔맥의 혈도가 꿈틀거리고 막대한 기운이 단전에 응축되었다.
소강은 비무 따위를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수를 겨루며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었다.
분노로 들끓는 가슴을 남아 있는 이성으로 가까스로 절제하는 중이었다.
차라리 자신에게 행해진 살수였다면 그냥 넘겼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은소혜가 다쳤다.
자신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독에 중독되었다.
흉수의 정체가 드러났으니 주저할 필요 없었다.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힘으로 모조리 부숴 버리리라.
“물러나지 않으면 모조리 부숴 주마!”
우우웅!
가공할 기세가 소강의 전신에서 피어올라 대기를 무겁게 짓눌러 놓았다.
‘이, 이런!’
악이군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악표를 쓰러뜨렸을 때의 힘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소강의 기운에 자신의 기운이 밀려나고 있었다.
자신의 기세를 뚫고 들어온 한줄기 기운이 피부에 닿는 순간.
파앙!
지면을 박찬 소강이 순식간에 그들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우우웅!
수직으로 세워진 창대의 끝에 달처럼 둥근 기운이 하얗게 맺혔다.
“위, 위험하다! 피해!”
악이군의 외침과 동시에.
짜우-!
부서진 달의 파편들이 바닥을 때렸다.
꾸아아앙!
충격파가 일대를 뒤흔들어 놓으며 악이군의 앞을 막아섰던 무인 열 명을 모조리 땅바닥에 때려 박았다.
방어하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진을 구성할 여유도 없었고 당대 최강이라 평가받는 창식인 악가창을 펼쳐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무지막지한 힘에 그저 짓눌린 수하들은 모조리 정신을 잃어버렸다.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충격파와 함께 뻗어 나온 바람이 사방으로 휘몰아쳐 나왔다.
‘이익!’
창대를 휘둘러 충격파를 밀어낸 악이군이 서둘러 소강의 신형을 찾았다.
“……!”
그 순간 좌측에서 막대한 기운이 대기를 가르며 날아들었다.
쩌-어!
창대를 들어 막는 순간 악이군은 소강의 스산한 미소를 보았다.
쩌엉!
창대가 서로 교차되는 순간 막았다고 생각했던 창대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졌다.
‘무슨 이런 힘이…….’
악이군의 창은 가문을 대표하는 여섯 개의 무구 중 하나였다.
그 강도만으로도 능히 만년한철에 버금가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단 일격에 부서져 버렸다.
소강의 창에 실린 힘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었다.
창대가 부서지는 순간 뒤로 물러나는 악이군을 향해 소강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치리릭!
휘돌려진 창대가 그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제길!’
온몸의 기운을 끌어 모은 악이군은 서둘러 기운으로 보호하며 다리를 들었다.
쩌-어!
소강의 창대가 악이군의 정강이와 부딪혔다.
기운을 잔뜩 끌어모았음에도 짜릿한 아픔이 타고 흘렀다.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막았…….’
하지만 그의 의식은 거기까지였다.
피했어야 했다.
휘돌려 찬 발뒤꿈치를 팔로 막은 것이 실수였다.
쩌억! 우두둑!
소강은 뒷발에 천뢰충파의 기운을 실었다.
막았던 팔뼈가 폭발과 함께 으스러지고 발은 막은 팔을 지나 악이군의 턱에 틀어박혔다.
콰아아앙!
천뢰충파의 기운이 악이군의 얼굴을 강타하며 폭발했다.
골이 통으로 흔들리는 순간 소강의 주먹이 그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쩍! 쩌억!
쓰러지려는 그의 멱살을 잡고 소강의 주먹이 쉬지도 않고 때려 박았다.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는 구경꾼들은 들썩거리는 악이군의 모습에 뒷걸음치며 물러났다.
“지, 진 공자!”
뒤늦게 살수들을 잡으러 갔던 옥명자와 아미파의 승혜가 나타났다.
그들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격체전공의 무인.
서천맹주의 자리에 오를 세 명의 후보 중 하나였던 악이군이 소강의 손에 잡혀 실신한 채 피 떡이 되도록 얻어맞고 있었다.
“이거 문제가 심각해지겠는데요?”
옥명자의 말에 승혜가 얼굴을 찌푸렸다.
벌써 소식을 듣고 서천맹에 기거하던 악가의 무인 오백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미는 장내를 지켜라! 악가의 무인들을 절대 이곳으로 오게 하지 말라!”
승혜가 재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악이군이 무너졌다는 사실에 무인들이 동요하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할 것이 틀림없었다.
“옥명! 우리도 아미를 돕겠네.”
운검자의 말에 옥명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에는 유혈 사태로 번지는 것은 막아야 했다.
이미 암시장을 털어 악이군이 소강을 해하기 위해 살수를 고용한 사실을 밝혀내었다.
이제 시시비비만 가리면 악가에서도 더 이상 반발을 할 수 없을 터였다.
“그나저나 어떻게 말린다…….”
옥명자가 잔뜩 분노한 소강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때 남광과 함께 온 여인이 옥명의 고민을 덜어 주었다.
남광과 진무월창의 무인들은 소강과 소혜를 공격했던 살수들과 암시장의 상인 하나를 붙잡고 있었다.
“소가주님!”
남광의 외침에 악이군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 넣었던 소강의 고개가 돌려졌다.
“은…… 소저?”
“가가…….”
여전히 안색은 파리했고 진무월창의 무인들에게 부축을 받고 있었지만 걷고 있었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은소혜의 모습을 발견한 소강은 악이군을 짐짝처럼 버리고 소혜를 향해 달려왔다.
“괜찮습니까? 독은? 해독이 된 것입니까?”
“예. 남 대협께서…….”
소혜의 힘든 대답에 남광이 손가락으로 코끝을 쓸었다.
“다행이 살수를 고용한 암시장의 상인이 해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원의 말로는 해독이 되었으니 한동안 몸조리를 하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소강의 칭찬에 남광이 으쓱해하며 말했다.
“일단은 두 분께서 함께 계십시오. 장내를 정리하겠습니다.”
“예.”
소강에게 포권을 한 남광이 진무월창의 무인들에게 명했다.
“지금 즉시 본가의 소가주님께 음모를 꾸민 자들을 구금하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