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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98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98화

97화. 진정한 그림자

 

 

 

 

서천맹을 빠져나온 옥명자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쿠르릉.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한 모습에 답답했던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소나기라도 내릴 모양이군.”

맑은 하늘을 보지 못함이 아쉬웠을까?

옥명자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 위에 올랐다.

“옥명, 어디로 가려 하는가?”

매화검수의 수장 운검자.

배분으로 따지자면 사숙이었으나 옥명자가 검존의 진전을 이은 이후부터는 사형제처럼 대우해 주고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저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답답하군요. 일단은 진가에 들러 볼까 합니다. 사조님께서 반드시 들러 감사를 전하라 했으니…….”

“알겠네. 그리하세.”

운검자는 옥명자의 결정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검존이 그리했고, 화산의 현 장문인인 운상자가 화산의 모든 제자에게 명한 일이었다.

화산의 모든 무인들은 옥명의 말을 문규(門規)에 준하여 따르라 했다.

설사 그리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옥명은 검존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후계였다.

또한 그의 성품이 다음 대를 이끌어 감에 부족함이 없으니 마음 깊이 따르고 있는 참이었다.

옥명과 매화검수들은 말을 달려 간양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께서 손님을 받지 말라 하셨습니다.”

진가의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옥명자는 문을 가로막는 진무월창의 무인에게 향불이라도 올리게끔 해 달라 청했으나 완강히 거절당했다.

“아직 위패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조만간 가주님께서 장례를 치른다 하셨으니 그때 다시 오십시오.”

“장례를 치른단 말이오? 하면 시신이 돌아왔다는…….”

진무월창의 무인은 슬픔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빈손으로 돌아오셨습니다. 하니 얼마나 가슴이 메시겠습니까.”

“…….”

아들의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가신의 마음이 아련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휴우. 알겠소.”

더는 청하지 못했다.

장례식 때 찾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인사를 나누고 물러나던 옥명자는 갑자기 느껴진 진한 기운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이, 이런 기운이!’

그리고.

쩌어엉!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진가를 뒤흔들어 놓았다.

검존의 기운을 물려받은 자신에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기운이었다.

설마 진소청이 살아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진무월창의 무인은 지금의 이 기운이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진소청이 아니었다.

하면 누가 이만한 기운을 뿌릴 수가 있단 말인가?

“대관절 이 진동은 무엇입니까?”

“본가의 소가주님입니다.”

“소가주?”

“그렇습니다. 둘째이신 진소강 공자이시지요. 산에서 돌아오신 이후로 계속해서 수련 중입니다. 장례가 끝난 뒤에 서천맹으로 가겠다 하시며…….”

“허!”

부서진 기운의 편린이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선명히 느껴질 정도였다.

‘이럴 수가. 진가에 진소청이라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 어찌 이런 자가 그동안 무림에 알려지지 않았단 말인가? 그의 동생 역시 그 못지않은 무위를 지니고 있었다니.’

옥명자가 감탄을 금치 못하는 사이 운검자가 설명을 도왔다.

“흠, 들은 적이 있었지. 진소강과 그의 동생을 두고 사천이룡이라 했었지.”

“사천 이룡요?”

“그렇네. 자네는 참가하지 않았었지만 후기지수 대화합 때의 이야기일세. 당시 당가와 홀로 싸운 진혼창에 대한 이야기가 무림에 떠돌았지. 그때, 진소강이라는 그의 동생이 악가의 악표를 이긴 바 있었네.”

“허!”

악표라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칠룡에 들지는 못했었으나 단지 사용하는 무구 때문이었지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대단하군요. 그사이에 이만한 발전을 이뤘단 말입니까?”

“글쎄. 어쩌면 실력을 감추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운검자의 이야기를 들은 옥명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사숙님. 아직 희망은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가 보네.”

“서천맹에 남아 있어야겠습니다. 진가의 소가주를 도와야겠습니다. 저런 이리 떼 같은 자들에게 서천맹의 미래를 맡기느니 그를 도와 서천맹을 일궈야겠습니다.”

“부탁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자네의 뜻대로 하게. 우리는 그저 따를 뿐이네.”

 

* * *

 

늦은 밤.

정천맹 청초각의 최심처.

제갈휘문은 눈앞에 나타난 소청을 보며 신기함과 미안함이 공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로 살아 있었군.”

“뭐야? 죽었으면 좋았겠다는 건가?”

“이 사람. 농이 심해졌군.”

제갈휘문이 달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내 자네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전서를 믿지 않았네. 아무 곳에도 알리지 않았고.”

제갈휘문은 지난밤 진소강으로부터 날아온 전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통이각을 새로이 맡은 각주에게 전서의 내용을 함구하라 명했다.

초사의 보고를 들었을 때, 마천이 그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그의 생환이 알려진다면 또다시 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곤륜을 인질로 삼았으니 어쩌면 진가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잘했군. 옳은 결정이야. 아버님께도 나에 대해서 알리지 말아 달라했으니 조만간 장례를 치르시겠지.”

“거짓 장례를 치른단 말인가?”

“그래. 누구나 믿게 해야 하니까. 이제는 진짜 그림자가 되어 볼 생각이야.”

“음…….”

“소강이 혁련휘에게 소식을 보냈다는 말을 듣고 급히 함구해 달라 전했지만 이미 무황께서 잘 조치를 한 모양이더군. 하오문에서 잘 막아 주겠지.”

“하긴 저들의 눈과 귀가 아직 어느 곳에 남아 있을지 모르니……. 하지만 서천맹이 문제군. 나는 자네의 생환 소식을 듣고 계획대로 창설하라 명했는데…….”

“아니, 문제 될 것 없어.”

“그게 무슨 말인가? 명진자에게서 전서구가 날아왔네. 저들이 서로 서천맹주가 되겠다 싸우고 있는 모양이던데.”

“그렇겠지. 꼴같잖은 놈들이 힘을 얻었으니 뭐라도 된 줄 알겠지.”

“자네가 나서 주리라 생각했네만.”

“필요 없어. 나를 대신할 녀석이 있으니까.”

“…….”

“소강. 그 녀석이 알아서 잘할 거야.”

“자네 아우 진소강?”

“그래.”

“…….”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대 무가의 후계들은 격체전공에 성공한 강자였다.

그런데 소청의 자신감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하니 자네의 동생이 오존 어른들에 비견한다 할 참은 아니겠지?”

“쯧쯧, 이렇게 정보가 느려서야……. 어쨌든 그 녀석에게 맡겨 둬 봐. 알아서 잘할 테니까. 떠나오면서 부탁한 것도 있고.”

“…….”

아무리 뛰어난 제갈휘문이었지만 소청의 생각은 언제나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보다. 이곳에서 제법 떨어진 안가를 하나 물색해 줘야겠어.”

“어찌?”

“하오문이 환영곡의 잔당 다섯을 데리고 있어.”

“그 이야기는 이미 보고받았네. 독혈보라는 곳이 노리고 있다지? 본가에서 의원들을 모아 그들이 사용하는 화혈독의 해약도 만들고 있네. 한데 그들을 어찌할 참인가?”

“명을 수행하지 못했으니 놈이 직접 올 거야. 어쩌면 벌써 중원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고…….”

“누가?”

“독마 북궁려강. 그때는 검마를 살리기 위해 도망쳤지만 분명 다시 나올 거야. 놈의 뒤를 좀 쫓아 봐야겠어. 정말로 놈들의 거처가 북쪽인지도 좀 알아야겠고.”

“음…….”

제갈휘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에게 포로들이 죽게 내버려 둘 참이로군.”

“그래. 심문을 한다 해도 쓸모없는 내용뿐일 거야. 어차피 죽어야 할 목숨들이기도 하고.”

“알겠네. 하면 이송할 자들 역시…….”

“그래. 죽어도 상관없을 자들이 좋겠지. 돈만 주면 뭐든 하는 놈들 말이야.”

“알겠네. 그리 준비하겠네.”

“그래. 이송 경로 역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부탁하지.”

“그 또한 알아서 준비하도록 하지. 하면 한동안 이곳에 있을 생각인가? 내 거처를 마련하겠네만.”

“뭐 하러. 괜히 눈에 띌 뿐이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지. 준비가 되면 연락이나 줘.”

소청의 말에 제갈휘문이 고개를 끄덕이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사이 꽤나 정든 모양이더군. 초사와 비마대를 통제하기가 힘드네. 아직도 북쪽으로 가겠다며 고집을 피우고 있으니.”

“들었어. 멍청한 것들…….”

질책 어린 말이었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데려가겠는가?”

“어쩔 수 없지. 북쪽으로 가겠다는데…….”

“뇌옥에 있네. 알아서 데려가게. 내가 임무를 준 것으로 해 놓을 터이니.”

 

제갈휘문과 헤어진 소청은 은밀하게 정천맹의 뇌옥으로 향했다.

미리 손을 써 둔 덕분에 뇌옥을 지키던 병력이 모두 빠져나가 접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뇌옥에 갇혀 있는 초사와 비마대는 식사조차 거른 터라 꽤나 수척해져 있었다.

“모자란 것들…….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죽었어? 굶기는 왜 굶고 난리야?”

소청의 말에 초사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창살을 움켜쥐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져 내렸다.

“패, 패월…….”

그의 반응에 은수를 비롯한 비마대의 무인들이 모조리 창살에 매달렸다.

모두의 얼굴이 똑같았다.

그들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던 소청이 피식 웃었다.

“임무다. 나와. 그 전에 뭘 먹기도 해야 할 것 같고…….”

철컹.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아무런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

먹지 않아 수척해져 있었지만 사라지는 그들의 발걸음에는 힘이 넘쳐흘렀다.

 

* * *

 

‘흐흐흐, 다 왔군. 이번 일만 끝나면 새 삶을 살 수 있어.’

곽송은 목적지가 가까워 오자 내심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송 금액만 금 다섯 관이었다.

누구를 이송하는지, 왜 이송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살인 전과만 이십 건이 넘는다.

숨어 살던 것에 진절머리가 났고 이번 일만 끝나면 새로운 신분을 얻어서 떵떵거리며 살 생각뿐이었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출처가 명확했다.

사도련의 의뢰.

그렇게 믿었다.

감숙과 섬서의 경계 천양(千陽) 인근.

‘이제 마을 하나만 지나면…….’

그 순간.

“스, 습격이다! 공격에 대비해라!”

누군가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공허할 뿐이었다.

짙게 퍼진 독 기운에 죄인은 물론이거니와 이송하던 이들까지 모조리 쓰러져 버렸다.

푸욱!

“으으…….”

부푼 기대를 안았던 곽송은 자신의 가슴에 박힌 손을 보며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 녹빛 눈을 가진 어린아이, 독마 북궁려강이 나타났다.

그리고…….

“살아남은 놈이 없어야 한다. 확인하라.”

그의 명령에 녹의를 입은 괴인들이 독에 죽은 이들의 목을 베고 사지를 뜯어 놓았다.

참변을 당한 것은 이송하던 무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죄인들 역시 그와 같은 꼴을 면치 못했다.

피, 그리고 죽음.

그들은 생존자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여 버렸다.

“세주님, 끝났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독마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쫓아온 자들은?”

“없습니다.”

“화골산으로 시체를 처리하고 흔적을 지워라.”

“알겠습니다.”

임무는 끝났다.

비록 검마가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진소청이 죽었고 정천 내에 숨었던 환영곡의 생존자들을 모조리 처리했다.

마종의 명은 지켜진 셈이었다.

“돌아간다.”

 

독마와 독혈보의 무인들이 사라진 자리.

검은 방립으로 얼굴을 가린 소청과 비마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놈들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는 최대한 거리를 두고 쫓는다. 혹여 저들이 경계를 배치할지 모르니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은밀하게 몸을 숨겼던 소청과 비마대는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자, 이제 안내해라, 독마. 네놈들이 숨은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소청은 멀리 사천 방향으로 잠시 고개를 돌렸다.

‘한동안 또 멀어져 있겠군. 소강이 녀석이 잘해 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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