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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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89화
88화. 검마 초월
콰아앙!
찾아야 할 목표를 발견한 소청은 온 힘을 다해 운현궁에 떨어져 내렸다.
깊이 박힌 두 발에 지면이 너울을 만들었다가 모조리 터져 나가 버렸다.
자욱한 먼지 속으로 쇠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자자작!
단창이 늘어나는 소리.
방립의 무인들이 아직 모습도 드러나지 않은 먼지 속의 소청을 에워쌌다.
“기다리던 자가 등장했군.”
의자에 앉은 이는 소청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꽤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보게 되는군.”
“…….”
소청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굳이 그에게 이름을 물을 필요도 없었다.
방립을 쓰고 자신을 포위한 날카로운 기도의 검귀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겠지?”
“검마(劍魔) 초월.”
“…….”
초월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소청의 눈동자에는 익숙함이라는 것이 떠올라 있었다.
그저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 만나 본 적이 있는 사람을 대하는 눈빛이었다.
“흠, 나를 알고 있었나?”
“모를 수가 없지.”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역시나 보통 놈은 아니란 말이겠지?”
“그나저나 실망이군. 검마가 인질을 이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더구나 검림(劍林)의 정예들까지 끌고서 말이야.”
“호오? 본가까지 알고 있나?”
초월은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이름도 모자라 자신의 신분까지 알고 있었다.
“원래 이런 더러운 짓거리를 하는 성격은 아니지 않아?”
“더러운 짓거리라……. 그냥 자네를 인정해서 그렇다고 해 두지.”
“좋아해야 하는 건가?”
“마음대로 생각하게. 폭마를 죽였을 때만 해도 그저 애송이라 생각했었는데, 대공의 몸에 상처까지 입히다니, 꽤나 놀라웠어.”
“구자겸 말이군.”
소청의 눈에 불길이 차올랐다.
“허허, 말을 삼가 주게.”
“개소리는 거기까지.”
“…….”
초월이 조금 언짢아진 듯한 표정으로 소청을 바라보았다.
“이거, 조금 누그러뜨려 놓을 필요가 있겠군.”
초월이 손짓하자 방립의 검수가 장로들을 향해 다가갔다.
“이제부터는 예의를 갖춰 주었으면 좋겠군.”
“다시 말하기도 입 아프군. 개소리는 그만하라고.”
슥!
검이 너무도 간결한 움직임을 만들어 내었다.
툭, 데구르르…….
“사제!”
“연우!!”
양중선과 장로들이 핏발이 선 눈으로 외쳤다.
곤륜의 장로들 중 가장 막내였던 연우자는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어떤가? 이제 좀 제대로 대화할 준비가 된 건가?”
초월의 미소에 소청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큭. 크크크.”
“…….”
“뭔가 착각하고 있군.”
“…….”
“이봐 검마. 저들이 죽는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
“난 곤륜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어.”
소청의 말에 그를 바라보는 곤륜파의 수뇌들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이미 마천에 협력했던 변절자들일 뿐이야. 다 죽여도 상관없어.”
“뭐? 그럼 어째서 기다렸던 것이지?”
“끌어안을 수 있을까 고민했을 뿐이야. 마천과의 싸움에서 칼받이로 쓸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괜한 고민이었나 봐. 이런 자들이라면 마천과의 싸움에서도 필요할 것 같진 않군.”
“…….”
“내 목표는 마천이야. 싸우다 누가 무너져도 상관없어. 정천이 무너지든 사도련이 무너지든 내 알 바 아니야.”
“네놈 진심이로군.”
거짓이라고 하기에는 소청의 말투는 너무나 차갑고 싸늘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너야. 너의 목숨. 그리고 네가 알고 있는 것들. 알겠어?”
담담했던 초월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곤륜파의 수장들을 인질로 잡고 소청을 위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진소청의 성격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운현궁에 소란이 일자 그를 상대하기 위해 밖을 지키던 곤륜의 무인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물러나야 할 때였다.
“하, 실패를 인정하지. 역시 처음부터 진가를 건드렸어야 했나.”
검마가 순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말에 소청의 눈에 서늘함이 깃들었다.
오싹.
검마는 일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뭐였지 방금?’
마종이나 대공에게서 느꼈던 느낌이었다.
하지만 소청의 몸에서는 아무런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군.”
소청이 이죽거리며 양손으로 잡은 창대에 내공을 주입했다.
우우우웅.
창대에서 시작된 거대한 떨림이 곤륜산을 가득히 채웠다.
소청의 몸에서 무지막지한 기운이 흘러나와 사방을 끈적하게 잠식했다.
‘어찌 이런 힘이……. 위험하다.’
온몸을 짜릿하게 울려 오는 느낌에 검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검마의 시선이 곤륜의 수뇌들을 향했다.
죽여야 할 존재들.
쓸모없는 자들이기는 했으나 칼날을 돌린다면 언제고 마천의 걸림돌이 된다.
소청을 죽이기 위해 그들을 이용하려던 계획은 실패했지만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 곤륜을 짓밟아야 했다.
“여기까지군. 진소청, 아쉽지만 다음에 보도록 하지.”
차앙!
검마의 손을 따라 시커먼 광택을 가진 검이 뽑혀 올라왔다.
일격에 모조리 베어 버리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 순간 소청의 발이 지면을 강하게 박찼다.
까아앙!
검이 튕겨 나갔다.
검마의 눈이 부릅뜨였다.
움직임을 보지도 못했다.
자신의 수하들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마치 공간을 뛰어넘어 버린 것처럼 나타난 소청의 모습에 검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런 속도를!’
소청은 분명 삼십 장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창대로 검을 튕겨 버린 소청이 광기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쉽다는데 그냥 보내 줄 수는 없지. 그냥 죽어라.”
뒤로 뻗어져 있던 소청의 창대에 강렬한 기운이 머금어졌다.
“이런 젠장할!”
검마는 사력을 다해 검을 들어 올렸다.
까앙!
검과 창이 부딪쳐 귀가 따가울 정도의 파열음을 만들어 내었다.
‘막았…….’
우우웅!
검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막았다 생각하는 순간 창대에 실린 힘이 검을 밀어내었다.
‘크윽!’
검등이 그의 가슴팍을 파고들며 아릿한 고통을 안겨 주었고 소청의 창대에서 가공할 기운이 느껴졌다.
순간 떠나오던 그를 향해 흘러가듯이 말한 구자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조심해야 할 게야. 꽤나 강렬했거든, 그 폭발력.
콰아아앙!
가슴에서 터져 버린 폭발의 충격파에 검마가 튕기듯 날아가 운현궁에 처박혔다.
단 한 호흡이었다.
뒤늦게 검림의 무인들이 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가가가각!
청석을 긁어내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들어 낸 창대가 휘어졌다가 휘둘러졌다.
쑤가각!
창대에 어린 기운이 거대한 낫처럼 세상을 베어 내었다.
단 일격에 달려들던 검림의 무인들이 검을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반으로 잘려 나가며 사방에 피가 튀어 올랐다.
“후우…….”
창대를 늘어뜨린 소청이 곤륜의 수뇌를 보호하듯이 서 있었다.
“자, 장문인! 장문인께서 구해졌다! 적을 죽여라!”
순식간에 전세가 뒤바뀌었다.
운현궁으로 몰려든 누군가의 외침에 곤륜의 무인들이 검림의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난전이 시작되었다.
검림의 무인들과 곤륜의 무인들이 뒤섞이고 있었다.
검림의 무인들의 고강함에 비하면 곤륜의 무인들은 나약한 개미 떼에 불과했다.
하지만 악착같이 달려들어 물고 또 물어 대는 곤륜 무인들의 기세에 검림의 무인들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밀려나기 시작했다.
“장문인과 장로님들을 보호하라!”
인질.
그 한 가지의 차이로 적에서 아군으로 바뀌어 버리는 모습에 소청이 조소를 머금었다.
‘우습군.’
검림의 무인들과 싸우는 자들은 대부분 일대제자와 이대제자일 뿐이었다.
지금의 소청의 눈에는 약하디약한 자들.
수뇌에 의해 마천으로 변절되었는데, 그런 수뇌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모습이 소청에게는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어떤 결정을 따르든 지금 소청의 목표는 검마였다.
소청의 걸음이 운현궁을 향해 내디뎌졌다.
“크아악! 이런 개자식!”
가슴팍이 길게 찢어져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천뢰충파에 직격으로 맞아 버린 검마의 몸은 처참했다.
상체가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갈가리 찢겨 있었다.
“크으으으…….”
치명적이었다.
피가 쉽게 멎지 않았다.
핏발이 선 눈에 운현궁을 향해 걸어 들어오는 소청의 모습이 보였다.
으드득.
고통을 참아 내기 위해 갈아 낸 어금니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좀 더 완벽한 상황에서 사용하려 했거늘…….’
지금 상태로는 싸울 수가 없었다.
우우웅!
검마는 자신이 일으킬 수 있을 만큼의 힘을 뽑아내었다.
짧은 울림과 눈이 검게 물든 검마에게서 짙은 마기가 회오리치듯이 몰려들었다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차아악!
검마가 손을 휘젓자 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소청의 어깻죽지가 찢어졌다.
“…….”
검마의 기운이 변했다.
이전까지는 안정적이었던 기운이 순식간에 광포하게 변했다.
느껴지는 기운 자체가 날카로운 예기를 머금고 사방을 갈라놓고 있었다.
역천의 진언이 아니었다.
다른 세주들에게서 느꼈던 기운과는 확연히 달랐다.
좀 더 진하고 날카로운 느낌이었다.
파파팍!
아무런 기세도 없었는데 바닥이 베였다.
그의 손에 들렸던 검이 사라지고 무형의 검들이 그의 주위에 생겨났다.
마검 회선칠류(回旋七流).
검마를 마천의 열두 세주 중 한 자리를 차지하게 할 정도로 뛰어난 기예였다.
하지만 과한 상처를 입었기에 본래의 힘을 낼 수는 없었다.
스거걱!
소청이 발을 디뎠던 자리에서 검날 수십 개가 솟구쳐 올랐다.
파학!
보이지 않는 검이 소청을 노렸다.
슷, 스슷!
옷자락이 잘리고 피부가 여기저기 베였다.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숨기고 있는 힘이 있었군. 하지만…….’
소청이 창대에 기운을 밀어 넣었다.
창대의 떨림이 강해지고 소청의 발이 떼어지는 순간 검마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뭐지?’
무언가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소청의 몸은 검마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기다렸다.”
검마가 입을 오므리며 무언가를 불었다.
그리고 섬전과 같은 속도로 운현궁의 창을 통해 빠져나갔다.
‘설마?’
불안감은 현실로 돌아왔다.
소청이 몸을 날렸던 검마의 자리에 익숙한 느낌을 주는 아이가 서 있었다.
“젠장!”
소청의 눈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뜨였다.
검마가 준비했던 마지막 한 수였다.
폭멸마동.
아이의 회색 눈이 화광으로 물드는 순간 소청은 재빨리 피풍의를 덮었다.
꾸아아아앙!
“피! 피해라!”
폭발의 여파가 곤륜산 정상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거대한 화마가 운현궁을 터트리고 검림과 싸우고 있던 곤륜의 무인들을 향해 뻗어졌다.
“비켜!”
중턱에서의 싸움을 끝내고 막 곤륜에 오른 혁련휘가 뻗어지는 폭발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참작을 휘둘렀다.
만경창파가 화마를 밀어내고 붕산진곤이 곤륜을 짓누르며 충격파를 잠재워 버렸다.
하지만 이미 그 일부가 폭발에 휩싸여 참상을 만들어 내었다.
곤륜의 상징인 운현궁이 있던 자리는 평지로 변해 버렸고 폭발에 휩쓸린 이들은 시신조차 남기지 못했다.
“소청!”
혁련휘에게 중요한 것은 곤륜파의 피해가 아니었다.
그 어느 곳에도 소청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초사! 서둘러 찾아라!”
초사와 비마대가 소청의 모습을 찾는 사이 혁련휘는 검림의 무인들을 노려보았다.
“감히…….”
시뻘겋게 달아오른 그의 분노가 잔인하게 휘몰아쳤다.
혁련휘는 자신의 친구를 해한 적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고 지쳐 버린 검림의 무인들은 혁련휘의 칼을 막을 힘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