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81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81화
80화. 혈독(血毒)
“이곳이 촌장의 집입니다. 저희와 근 오 년 정도 거래를 해 온 소상입니다.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형문파의 무인이 주먹이 으스러지도록 쥐며 분을 내었다.
목조 건물의 안쪽은 처참했다.
시신들은 수습되어 한쪽에 정리되어 있었지만 핏자국과 부서진 흔적만 보아도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어미는 가슴이 뚫렸고 막 태어난 아이는 사혈이 짚였다.
집 주인인 고본서는 머리가 터져 몸만이 남아 있었다.
우진혜는 날카로운 눈으로 죽은 이들의 몸을 살폈다.
‘이건?’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녀는 시신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폈다.
“왜?”
“아닙니다. 일단은 좀 더…….”
혁련휘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을 주저했다.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소청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응?’
묘하게 신경이 거슬려 오는 느낌이었다.
사건 현장이 아니라 주변에서 느껴지는 끈적한 기운이 그의 기감을 곤두서게 했다.
‘형산파, 관인, 그리고 구경꾼…….’
소청의 시선이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닿았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자락.
그곳에서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지?’
가늘게 뜬 눈으로 집중하는 소청을 의아하게 생각한 혁련휘가 다가왔다.
“뭐냐? 저것들은…….”
그 역시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턱.
소청이 스쳐 지나가는 혁련휘의 어깨를 잡았다.
“기다려.”
“…….”
“괜히 지켜보는 건 아니겠지.”
고개를 저은 소청이 형문파의 무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참혹하군요. 저희보다는 현장에 익숙하신 분들이 조사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청초각에서 나오신 분들이신데…… 저희보다야.”
자신들을 치켜세우는 소청의 말에 형문파의 무인이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나중에 따로 보고서만 부탁드리죠.”
“알겠습니다.”
공손하게 포권하는 형문파의 무인을 뒤로한 소청은 일행과 함께 사건 현장을 빠져나갔다.
마을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 도착한 소청은 초사와 비마대에게 야영을 준비하게 했다.
“뭐야? 조금만 가면 의창인데. 객점을 잡으면 되지 야영은…….”
혁련휘의 툴툴거림에 소청이 피식 웃으며 우진혜의 의견을 물었다.
“말해 봐.”
“뭘요? 같이 보지 않았나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퉁명스럽고 날카로웠다.
“전령에게 보고받은 게 있을 것 아냐. 무언가 이상함을 느껴서 온 것일 테고.”
“…….”
소청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우진혜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칫, 근래 정천 지역에 다발적인 살인 사건이 있었어요. 이곳에 남은 흔적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고요.”
“공통점?”
“네. 독이 사용되었고, 죽은 이들 모두가 무림 문파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모두 참혹하게 죽었죠.”
“독을 사용했다? 모두 다?”
“네. 열 곳이 넘는 곳에 모두 독이 사용되었어요.”
“독이라…….”
소청이 머릿속의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에 혁련휘가 물었다.
“그 외 다른 특징은?”
“수법이 너무 깔끔해요.”
“…….”
“이런 살해 현장은 대부분 복수이거나 입막음일 경우가 많아요.”
“입막음?”
“네, 그리고 누군가에게 보여 주듯 살해 현장을 그대로 남겨 뒀어요. 경고하는 것처럼.”
“…….”
“본 문에서는 이례적이지 않은 살인이 동시적으로 일어난 이유가 마천과 관계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진혜의 말을 듣고 있던 소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회룡협 사태 이후 마천은 종적을 감추었다.
그런데 그들이 어째서 무림 문파와 관련이 있던 자들을 죽인단 말인가?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독이 중원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종류라는 거예요.”
“사용하지 않는 독?”
혁련휘가 눈을 찡그렸다.
“화혈독(火血毒)입니다.”
우진혜의 대답에 소청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피를 태우는 독.
열양공과 독공을 함께 익혀야만 사용이 가능한 독이었다.
특정한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익히기 힘든 독이었다.
중독되면 내부의 화기로 인해 피가 증혈되며 서서히 죽게 되고 눈가에 미세하게 불탄 흔적이 남는 것이 특징이었다.
“죽은 자들의 표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였죠. 아마 몸속이 불에 지져지는 듯한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었을 겁니다.”
우진혜의 찡그림에 소청이 속으로 감탄했다.
중원에서는 화혈독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은 꽤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제법이군. 그런데…….’
최근에 한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태위.
그는 마지막에 분명 피가 태워지는 증혈 증상을 보였다.
당시에는 진원의 기운을 사용한 때문이라 생각했다.
‘설마? 당태위에게 누군가 화혈독의 기운을 심었다는 건가?’
소청의 눈이 살짝 일그러졌다.
“화혈독은 독기도 독기지만 열기가 충분한 곳에서 만들 수 있습니다. 가령 화산 같은…….”
“화산?”
“예. 화산입니다. 한데 마천에 독을 사용하는 자가?”
우진혜가 소청을 힐끗 쳐다보았다.
현재 마천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 그였다.
“있지. 마천에 독공을 사용하는 자들이.”
“…….”
“독마 북궁려강과 그가 이끄는 독혈보.”
혁련휘와 우진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소청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도 자세한 것은 잘 몰라. 하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지.”
“뭐?”
“예?”
모두가 의아해하는 순간.
소청이 고개를 돌리며 일어났고 그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
“젠장! 발각되었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초사! 북쪽 삼십 장! 다섯 놈이다!”
명이 떨어지자마자 초사와 비마대가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고 쏘아져 나갔다.
카앙!
병장기의 부딪침.
퍼엉!
허공에서 공기가 터져 나가는 듯한 소음이 숲을 울렸다.
“아까 그놈들인가?”
“그래. 계속 따라오더군.”
“흠, 그럼 이제 궁금한 걸 물어보면 되겠군.”
혁련휘가 고개를 끄덕였고 소청이 앞서 걸었다.
우진혜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파하학!
가슴께가 뜯겨 나가며 손길이 스쳤던 앞섶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크윽!”
은수가 상대의 응조공에 당하고 재빨리 물러났다.
적은 모두 다섯.
모두가 녹의를 입고 방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덩치 큰 괴인을 중심으로 방진을 구성한 녹의인들은 초사와 비마대의 공격에 도망치지 못하고 포위되었다.
은수가 상처를 입자 초사와 비마대는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고 둥글게 그들을 감싸고 경계만 했다.
“이놈들……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들킨 것도 모자라 도주로마저 차단당한 녹의인들의 수좌가 언짢은 목소리를 내었다.
“오냐! 불나방 같은 것들! 모조리 죽여 주마!”
수좌의 몸에서 짙은 녹빛 기운이 뿜어지자 때를 함께해 녹의인들이 기운을 일으켰다.
지-잉.
녹빛 기운이 뿜어지는 순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초사는 아찔한 기분을 느끼고 소리쳤다.
“독이다! 호흡을 차단하고 범위 내에서 물러나라!”
“흥! 물러나게 둘 줄 알았더냐!”
취리릿!
녹의인들이 네 방향으로 쏘아지자 비마대가 다섯씩 나뉘어 녹의인들을 상대했다.
그들은 소청으로 인해 은신 능력뿐 아니라 무공도 진일보해 있었다.
개개인의 실력은 모자랐지만 빠른 경공을 활용한 공격은 기관이 돌아가는 것처럼 공수 전환의 연계가 빨랐다.
녹의인들이 금세 상처투성이로 변해 피를 흘렸다.
하지만 그들의 몸에서 뿜어지는 독 기운으로 인해 비마대의 움직임이 점차 둔화되고 있었다.
‘핑’ 도는 느낌에 초사가 주춤하는 순간.
틈을 놓치지 않은 녹의인의 손이 가슴을 노렸다.
“죽어라!”
텁.
손이 가슴을 파고들려는 찰나 그들의 사이로 파고든 소청의 손에 그의 손목이 잡혀 버렸다.
뚜둑.
“끄악!”
소청은 그대로 손목을 꺾어 버리고 녹의인의 머리를 움켜쥐고 땅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쩌억.
단 한 수에 머리가 수박처럼 으깨져 버렸다.
스걱!
그리고 붉은 참작이 휘둘러지자 또 다른 녹의인의 머리가 날아갔다.
“한 놈만 있으면 되는 거지?”
혁련휘였다.
소청이 피식 웃었다.
“모두 물러나!”
명은 짧았고 움직임은 빨랐다.
초사와 비마대가 순식간에 녹의인들에게서 뒤로 물러났다.
“어?”
순간 소청의 눈에 비틀거리는 은수의 모습이 보였다.
가슴이 뜯겨 나간 것처럼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다친 거냐?”
“괘, 괜찮습니다.”
“그래. 넌 괜찮아야지. 근데 내가 안 괜찮아.”
소청의 눈이 가늘어지고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쳇, 내가 하려고 했는데……. 이러면 맡길 수밖에 없잖아?”
혁련휘가 소청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느끼며 참작을 집어넣었다.
“패월, 놈들이 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러난 초사가 외쳤다.
“독?”
소청은 오히려 피식 웃으며 살아남은 둘을 향해 다가갔다.
녹의인의 수좌는 소청의 몸에서 뿜어지는 살인적인 기세에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자신들의 몸에서 스며 나오는 독기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허투루 상대할 자가 아니다! 하독하라! 신속히 이탈한다!”
수좌의 외침에 소청의 주위를 향해 작은 약병이 날아왔다.
쨍강.
“화혈독입니다! 위험…….”
병이 깨어지자마자 미세한 열기를 감지한 우진혜가 놀란 얼굴로 물러나며 외쳤다.
열기와 함께 퍼진 독 기운이 순식간에 주위를 가득 채웠다.
혁련휘마저 눈살을 찌푸리며 물러나는데 소청은 오히려 웃으며 한걸음 더 내디뎌 독 기운 안으로 들어갔다.
“저!”
그의 행동에 녹의인들은 당황한 나머지 도망칠 생각도 잊은 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악독하기로 유명한 화혈독이다.
내부에서 퍼지기 때문에 해약조차 없는…….
그런데.
턱.
수하의 목이 잡혔다.
“어이.”
사악하게 웃고 있는 소청의 악귀 같은 얼굴.
뿌드득.
세 번째 녹의인이 그대로 목이 꺾여 절명했다.
“그래서 뭐?”
눈을 희번덕이며 노려보는 소청의 모습에 녹의인의 수좌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독단?”
그것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만독불침’을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런 전설상의 경지가 가능한 인간은 만나 본 적도 없었다.
“공기 좋네. 그래서 뭐 더 없어?”
“…….”
화혈독을 이기는 내독단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저리 멀쩡하니…….
녹의인의 수좌는 눈을 크게 뜨고 마지막 수를 준비했다.
오므려지는 입.
삐-이-!
미세한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잠자코 서 있던 방립의 괴인이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폭발하듯이 소청을 향해 날아왔다.
“크아아아!”
콰앙!
그저 후려쳤을 뿐인데 팔을 교차해서 막았던 소청의 몸이 서너 걸음이나 물러났다.
괴인을 바라보는 소청의 눈이 일그러졌다.
차라락!
피풍의를 재빨리 휘말아 창대로 만든 소청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휘류류류…….
태극의 기운이 단전에 모여들고 순식간에 창대를 향해 뻗어 나갔다.
퍼엉!
다가오는 괴인의 몸에 창대가 적중했다.
콰아아앙!
창대에 응축된 천뢰충파의 기운이 한 점에 모여들어 터트려졌다.
쩌엉!
집약된 폭발에도 충격파가 폭풍처럼 휘몰아쳐 나가 모두의 시야를 가려 버렸다.
튕기듯이 날아간 괴인이 나무에 처박혔다.
“크르르르…….”
하지만.
괴인은 멀쩡했다.
과도한 충격으로 감싸고 있던 방립은 부서졌고 붕대가 찢겨 나가 흉측한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이지를 상실한 듯 회색빛 눈동자가 녹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칠공에서 독연을 피워 올렸다.
주위에 있던 풀과 나무가 독 기운에 생기를 잃고 말라 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