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6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68화
“장천운,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다.”
“저 부엉이 우는 소리 들려? 목에 이상이 생긴 것 같지?”
뜬금없는 장천운의 말에 백리우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자식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밤에 찾아와서 물어볼 것이 있다니. 너도 목에 이상이 생긴 거 아냐?”
백리우진은 장천운의 목뼈를 부러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지금 실력으로는 힘들다는 걸 알기에 꾹 참았다.
“장난하려고 온 거 아니다.”
“나도 장난할 시간 없어. 지금 소성주를 호위하는 중이거든.”
빌어먹을 놈.
백리우진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아쉬운 사람은 자신이니 한 번 더 참았다.
“노 장로 방에서 뭐 찾은 거 있어?”
“알아서 뭐하게?”
눈알만 굴려서 좌우를 살펴본 백리우진이 전음으로 말했다.
<대령주가 알아오라고 보냈다. 신뢰를 주려면 뭐든 알아낸 것처럼 보여야 돼. 지금도 대령주의 눈이 나를 감시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고는 짐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러네. 하하하, 나도 소성주를 호위하는 백천대 대주 아닌가? 뭔가를 알고 있어야 임무에 충실할 수 있지. 안 그런가?”
—안 그래!
장천운은 백리우진의 귀에 대고 고막이 터져라 소리치고 싶은 걸 참고 담담히 말했다.
“별 거 아니야. 깨진 자기 찻잔 조각을 몇 개 찾아냈을 뿐이니까.”
“그래? 그런데 왜 노 장로의 시신을 찾고 있나?”
“고수가 찻잔을 떨어뜨려서 깨뜨리다니, 이상하잖아? 차를 마시다 누군가에게 죽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시신을 찾아보라고 했지.”
장천운은 대충 얼버무렸다.
“실수로 깨뜨렸을 수도 있잖은가?”
“그럴 수도 있고. 어쨌든 조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해야 하지 않겠어?”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 추켜 올린 장천운은 딴청을 피웠다.
백리우진이야 노려보든 말든.
“정말 그것 외에는 더 없나?”
“당연히 더 있지.”
“그래? 뭔가?”
장천운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말했다.
“노 장로가 파견되었다고 했는데, 어느 누구도 그가 파견되어서 나가는 걸 못 봤다고 하더군. 너는 이상하지 않아?”
“음, 확실히 이상하게 생각할 만하군.”
“이제 너도 이야기해 봐.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지.”
준 것이 있기나 하나?
백리우진은 불만이 많았지만, 나름대로 이것저것 따져본 다음 정보 하나를 건네주었다.
<대령주가 은밀하게 대장로를 만났다는군. 아무래도 둘 사이에 뭔가 협상이 이루어진 것 같다.>
최근 들어서 공손백이 백리호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무런 상의도 없이 나극을 만났다.
백리호로서는 팽 당하는 기분이었을 터, 그 여파가 고스란히 백리우진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니 백리우진으로선 장천운이 설쳐서 협상이 지지부진해지는 게 나았다.
어쨌든 백리우진의 말에 장천운의 눈빛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소원해졌던 공손백과 나극이 다시 손을 잡는다고?
사실이라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이지?>
<내가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독고 단주가 협상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을 텐데?>
<아직 독고 단주에게는 말하지 않은 것 같다. 대장로가 상황을 봐서 이야기하겠지.>
독고태가 합의하지 않았다면 아직 간극이 다 채워진 것은 아니다.
장천운은 묘한 미소를 짓고는 백리우진을 보며 말했다.
“좋아, 앞으로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니, 고맙군. 나도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은 지우도록 하지.”
‘뭐?’
백리우진이 멈칫하자, 장천운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돌아섰다.
“바빠서 그만 가봐야 돼. 다음에 봐.”
***
사마경은 장천운에게 보고를 듣고 입술을 깨물었다.
“백부가 대장로와 다시 손을 잡으려한단 말이지?”
“예, 소성주.”
“그렇게 되면 곤란해져. 막을 방법이 없을까?”
곤란해지는 정도가 아니다. 겨우 비세를 만회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우리도 힘을 결집하면 어떻겠어요?”
소연추가 말했다.
장천운은 느릿하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대령주와 대장로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소성주파의 세는 우문각까지 합해야 사 할 정도다.
아직은 세를 결집하지 않고 있기에 공손백이 보고만 있는 것일 뿐, 만약 소성주가 세를 본격적으로 결집하면 뭉쳐지기도 전에 공격할 것이다.
나극도 위기를 느끼면 공손백의 손을 들어줄 것이고.
우문각이 본격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칫하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꼴이 될 테니까.
“소성주, 제가 독고태를 만나보겠습니다.”
“천운이? 만나서 어떻게 하려고?”
“나극과 독고태는 공손백을 대하는 마음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을 이용한다면 의외의 성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자신 있어?”
“최대한 노력해봐야죠. 그래도 안 통한다면…… 협박이라도 해볼 생각입니다.”
“협박?”
“죄를 지은 자들은 제풀에 놀라서 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죠.”
“좋아, 그럼 알아서 해봐.”
***
경천단 경비무사는 저만치서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바짝 긴장했다.
‘저 새끼는 장천운이라는 놈이잖아?’
직접 본 것은 두어 번뿐이다. 그나마도 멀리서 본 적밖에 없지만 분명히 그 놈이다.
구천성의 풍운아, 무림십룡도 씹어 먹을 거라고 소문난 골칫덩이 고수, 공손백과 나극조차 이만 갈 뿐 잡아죽이지 못하고 있는 놈.
겁대가리 없는 놈들은 저놈이 소성주 때문에 설친다고 나불댄다. 하지만 당하의 전쟁에 참여했던 자신은 저놈이 얼마나 살벌하고 무서운 놈인지 잘 안다.
그 무서운 놈이 경천단 쪽으로 곧장 다가오고 있다.
“무슨 일로 왔소?”
바라보는 사이 경비조장이 그놈을 막아선다.
“흑월대 대주 장천운이오. 단주를 만나러 왔소.”
“단주님을?”
“그렇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소.”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급한 일이 아니면 내일 오쇼.”
겁대가리 없는 경비조장이 짝다리를 짚고 턱에 힘을 준다.
저 인간이 미쳤나? 상대가 누군 줄 알고!
그런데 묘한 쾌감에 온몸이 짜릿했다.
‘죽으려면 뭔 짓을 못해?’
말릴 생각은 없다. 틈만 나면 자신을 갈구는 조장은 혼이 나도 싸다.
자신은 그저 기다렸다가 깍듯이 예의를 차려서 대하면 된다.
‘설마 예의를 차리는데 패진 않겠지?’
그때였다.
스윽, 한 걸음 내딛은 장천운이 경비조장의 멱살을 쥐었다. 경비조장의 능력으로는 장천운의 움직임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경천단은 위계질서도 없나보군. 보아하니 경비조장 같은데, 흑월대 대주가 우습게 보이나?”
멱살을 움켜쥔 장천운은 경비조장을 한쪽으로 던졌다.
붕 떠서 날아간 경비조장이 땅바닥에 떨어질 즈음, 그는 이미 정문 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경비무사는 다른 두 동료가 미친 짓을 하기 전에 재빨리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경천단의 엄정발이 흑월대 대주를 뵈오.”
“단주를 만나고 싶소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즉시 기별하겠습니다, 대주.”
독고태는 장천운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 자식이 왜 찾아온 거지?’
요즘 아들 때문에 짜증만 나는 그다.
사마경의 미모를 보고 반쯤 미쳐버린 아들은 자나 깨나 사마경 타령만 했다.
사마경이 아름다운 것은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남자새끼가 정신을 못 차리다니.
마음 같아서는 패죽이고 싶었다. 아마 아들이 하나만 더 있어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자꾸만 사마경 곁에 있는 장천운과 비교가 되었다.
“들어오라고 해라.”
좌우간 찾아온 놈을 쫓아낼 수도 없는 일이다. 뭔가 좋은 소식을 갖고 왔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고.
독고태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문이 열리고 장천운이 들어왔다.
“어쩐 일인가? 자네가 여길 다 오고.”
“소성주님의 명으로 왔습니다.”
“호오, 그래?”
나쁜 일은 아닌 듯했다.
그런데 소성주가 무슨 일로 이놈을 보낸 거지?
“소성주님께서는 단주님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하십니다.”
“내 생각을 알고 싶어 하신다? 어떤 생각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오늘 대령주께서 대장로와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은밀하게 나눌 이야기가 있었나 보더군요.”
넌지시 건넨 장천운의 말에 독고태의 이마가 깊게 갈라졌다. 노려보며 건네는 목소리도 가래가 끓듯이 탁하게 가라앉았다.
“무슨 말인가? 대령주가 대장로를 은밀하게 만나다니?”
“모르고 계셨습니까? 오늘 오후에 은밀히 만나신 것으로 압니다만.”
“오늘 오후에? 확실한가?”
“제가 여기까지 와서 헛소리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독고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둘이 만나는 일이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이 그 이야기를 아직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설마 그 영감이……?’
탁자 밑에서 주먹을 움켜쥔 그의 머릿속에서 온갖 추측이 춤을 췄다.
그러나 구천성의 패권을 다투는 효웅답게 겉으로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을 건넸다.
“소성주께서 아시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말해보게.”
“간단합니다. 대령주와 손을 잡으실 것인지, 그리하여 소성주께 등을 돌리실 것인지, 그걸 아시고 싶은 것이지요.”
결코 간단한 질문이 아니다. 간단하긴커녕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골치 아픈 질문이다.
지금의 소성주는 원단 전의 소성주가 아니다. 비록 한시적이긴 하나 구천성의 전권을 틀어쥔 임시성주다.
등을 돌린다는 것은 반역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손을 잡지 않겠다고 한다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
무사란 족속들은 신의에 목숨을 거는 자들 아닌가 말이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대권에 대한 꿈도 물거품이 된다.
명분이 사라진 꿈은 한여름 밤의 개꿈이 될 뿐.
‘고민할 것도 없다. 은묘를 죽일 때 맹세했지 않은가.’
이미 공손백과는 선을 그었다. 다시 손을 잡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은묘에 대한 복수심이 욕망보다 더 컸다.
결심을 굳힌 독고태는 장천운을 빤히 노려보았다.
“최소한 대령주와 손을 잡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만큼은 내 모든 걸 걸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소성주에게서 등을 돌릴 수는 있어도 공손백과 연합하지는 않겠다는 뜻.
장천운도 그 이상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독고태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소성주께 그리 전하지요.”
“나도 하나만 묻지.”
“말씀하시지요.”
“무적장과 광양산장 사람들을 데려왔다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단순히 놀러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이유로 왔는가?”
“우호관계를 맺어서 나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장강팔련을 견제하기에는 그들만 한 세력도 없고 말입니다.”
“정말 그런 이유 때문에 데려온 건가?”
“다른 이유도 하나 있긴 합니다만, 이 자리서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군요.”
독고태는 장천운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눈동자에 티끌이라도 박혀 있으면 손가락으로 쑤셔서 빼낼 것 같은 표정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전대 성주의 죽음에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하던데, 들어 봤나?”
뻔뻔하기는. 그런 말을 어떻게 눈썹 한 올 흔들리지 않고 할 수 있지?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하지만 장천운 본인도 얼굴이 철판으로 덮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성주의 죽음에 비밀이 있다니요?”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말이야. 험, 모르는 일이면 깊게 생각할 것 없네.”
‘흥, 노회현이 사라지니 불안하긴 불안한 모양이군. 그런 생각을 하다니.’
어쩌면 공손백이 노회현을 제거한 것도 독고태에게 불안함을 심어주기 위함일지 모른다.
“좌우간 단주께서 도와주시겠다니 소성주께서도 한결 마음이 편해지시겠군요.”
“그리 생각하신다면 다행이지.”
“아시겠지만 소성주님은 은원이 확실하셔서, 도와준 사람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정상을 참작하시죠. 나중에 후회하시진 않으실 겁니다.”
은근한 뜻이 담긴 말이었다.
알아들으면 좋고, 못 알아들어도 그만이다. 독고태의 이해도가 딸리는 것까지 자신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럼 소성주께서 답을 기다리고 계실 테니, 더 하실 말씀이 없다면 그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독고태는 망설이는 표정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장천운도 느릿하게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