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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77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77화

76화. 하오문과 관계를 맺다

 

 

 

 

예여화의 말에 소청이 웃으며 술잔을 잡자 태극의 기운이 단전에 모여들었다.

후우우웅.

뿜어져 나온 기운이 순식간에 예여화의 기세를 밀어내었다.

‘이, 이건?’

소청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가 알려진 것보다 더욱 강했다.

‘이 정도라면 나에 근접한…….’

예여화는 자신의 위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오존이라도, 같은 사도삼위라도 분명히 격차라는 것이 존재했다.

무황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다가설 자가 없으리라 자신했다.

그런데.

소청은 그만한 기운을 뿌리면서도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뒤를 생각하셔서는 저를 이기지 못합니다.”

‘망할…….’

소청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과도한 기운의 사용에 이마에 땀이 흘렀지만 소청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기세의 흐름도 높낮이 없이 일정했다.

‘설마? 더 강하단 말인가?’

그럴 리는 없다 생각했다.

기세의 싸움이 일각이나 지속되었다.

사도련에 잠입한 잔마라는 자를 처단한 이후 무황은 하오문에 ‘진소청’에 대한 조사를 명했다.

그의 행적에 대한 조사를 마쳤지만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더욱이 그의 행적이 중간 중간 끊어져 있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무황에게 전할 수는 없었다.

“해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뭐?”

자신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답하는 말에 당황스러워졌다.

너무 담담했다.

목소리도 표정도…….

“으음.”

결국 기세를 푼 것은 예여화였다.

쪼르륵.

술잔을 채우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이미 소청의 기세 또한 사라지고 얼굴에 미소만이 가득했다.

‘허, 대단한지고……. 마치 무황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예여화의 시선이 소청을 떠나 혁련휘를 향했다.

이미 혁련휘 역시 소청의 기운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실로 무림의 홍복이로다. 정사에 어찌 이런 자들이 동시대를 산단 말인가. 이미 시대는 흐르고 있음이야. 하니 무황께서도 준비를 하기 시작하신 게지.’

그녀가 소청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였다.

무황이 퇴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혁련휘는 강해져야 했고 그에게 장애가 될 인물은 없어야 했다.

그렇기에 소청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하지만 의문점을 해소할 수가 없었다.

“진혜야. 인사드리거라.”

“예?”

금을 연주하던 여인, 우진혜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 공자, 이 아이는 내가 키워 낸 애제자라오. 경험이 일천하나 능히 일문을 짊어질 만한 재목이오.”

“압니다.”

“안다?”

예여화의 되물음에 소청이 빙긋이 웃었다.

사도지낭 우진혜.

그녀에 대해서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는 비슷하다 여겼던 소청이었지만 예여화를 보는 순간 그녀가 자신이 아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정천에 제갈휘문이 있다면 사도에는 우진혜가 있었다.

물론 마천 정벌 당시, 예여화가 죽은 이후였지만 우진혜는 오랜 세월 숨겨져 있던 하오문을 전면에 내세우며 사도련의 한 축으로 성장시켰다.

또한 혁련휘의 군사로서 사도련의 미래를 만들어 온 여인이었다.

‘허 참. 누가 누구를 조사한 것인가?’

사도련에서 알려진 것은 예여화뿐이었다.

그것도 하오문으로서가 아닌 사도삼위로만 알려져 있었다.

하오문에 대해서 아는 것은 련주와 섬뢰, 그리고 소련주뿐이었다.

하오문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았지만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하오문도인지는 단 한 번도 밝혀진 적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중원에서 가장 신비로운 문파였다.

그런데 소청은 황학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자신과 우진혜에 대해서도 안다 한다.

예여화가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소청이 빙긋이 웃었다.

‘의심스럽기 짝이 없으나 동시에 믿음직하니 어찌 된 노릇인가?’

오랜 생을 살며 그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감시 역이겠지요?”

소청은 예여화가 우진혜를 소개한 의도까지도 알고 있었다.

“부인하지 않겠소.”

“좋습니다. 이미 감시 역은 여럿 있으니까요.”

“여럿 있다? 함께 온 자들을 말하는 것이오?”

“예. 묵영단이라는 사람들입니다.”

“알고 있소. 제갈휘문, 그자의 수족이겠지.”

“예.”

“혹, 그도 의심하고 있었소?”

“저는 황학의 눈도 피할 수 없지만 그의 눈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는 진소청입니다. 정(正)도 아니고 사(邪)도 아닙니다. 그저 꼭 찾아야 할 것이 있고,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해서 마천이라는 곳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한다는 겁니다.”

진심이 분명했다.

오랜 삶을 살아온 그녀는 그 정도도 보지 못할 사람은 아니었다.

찾아야 할 것은 알지 못하지만 지켜야 할 곳이 ‘진가’라는 것을 예여화는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마천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은 최근의 행적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저는 제갈휘문과 공조를 약속했습니다. 또한 그 공조는 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제자를 동행시키겠다 하셨으니 이미 도움을 주실 생각인 것으로 알겠습니다.”

“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의심은 가지만 감추지 않았고 더욱이 비굴하지도 않았다.

“하나 함께 다니면 하오문이 드러날 터인데요?”

“상관없소. 언제까지 숨어 살 수만은 없으니. 또한 입이 가볍지 않은 아이니…….”

“알겠습니다.”

소청이 고개를 끄덕이자 예여화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적어도 협잡꾼은 아니라 좋소.”

“틀렸습니다. 저는 숨어 다니는 것이 좋고, 몰래 남의 뒤를 캐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저 농이라고 여겼지만 이상하게 진심을 담고 있었다.

“홀홀, 그렇다 칩시다.”

소청과 예여화가 마주 보며 웃었다.

“북쪽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소.”

“…….”

이어진 예여화의 말에 소청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과연 하오문이라 할 만했다.

구자겸에 대한 정보.

말하지 않았음인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북쪽에는…….”

“대막혈궁?”

소청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알고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리라.

“조사해 주시겠습니까?”

“홀홀, 난 이제 늙은이일 뿐이니 앞으로는 진혜를 통하면 될 일이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좋은 만남이었소. 젊은이들이 모였으니 늙은이는 이만 돌아가리다.”

“다시 뵈올 때는 풍황의 용정을 구해 오겠습니다.”

“…….”

예여화는 점점 더 소청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어찌 자신이 즐겨 하는 차까지 알고 있단 말인가?

“홀홀, 여전히 의심스럽기 짝이 없구려. 그 차는 무황께서도 좋아하오. 다음에 만나 뵈올 때는 꼭 가져가 보시오. 좋은 결과가 있을 게요.”

그녀는 앞으로의 정세가 어찌 흘러갈지조차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황을 찾아가는 것은 자신이 아니겠지만…….

“살펴 가시지요.”

소청의 인사를 받고 나간 예여화가 사라진 뒤 방 안의 분위기가 어색하기만 했다.

“묻지 않을 셈인가?”

“뭘?”

“그녀가 나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자네라면 이야기 해 줄 용의도 있네.”

소청의 말에 우진혜가 눈을 반짝거렸다.

하지만 혁련휘는 짜증스럽게 술병 통째로 입에 가져갔다.

단번에 비워 버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청.”

“…….”

“나는 친구를 의심하지 않아.”

“…….”

“지금 화가 나는 건. 내가 자네보다 못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야.”

“못하지 않…….”

“틀렸어. 못해. 그래서 자네가 가고자 하는 길이 더없이 위험함을 알고도 지킬 수가 없어.”

“휘…….”

탁.

“술맛이 떨어졌군. 여인이 아깝긴 하지만……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술병을 놓은 그가 일어났다.

“아니 어딜?”

“어디긴! 수련하러 가야지.”

“…….”

휘적거리며 나가 버린 혁련휘의 뒤로 소청이 한숨을 내쉬며 따라가려는데 우진혜가 옷자락을 잡았다.

“왜?”

“술값.”

“뭐?”

“황금 한 관.”

소청이 눈을 끔벅거렸다.

“아니, 그걸 어째서 나한테…….”

“소련주께서 들어오실 때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

뭘 먹었다고?

그리고 계산은 계산대에서 해야지.

그저 혁련휘가 하오문을 자신에게 소개해 주기 위해 농을 친 걸로만 생각을 했는데…….

“설마, 불쌍한 여인들의 피땀 흘린 노력의 대가를 주지 않으시고 줄행랑을 치시려는 건가요?”

누가 안 준대?

“첫 만남인데 어떻게…….”

“그것과! 그것은! 분명히 다르지요. 저희는 무전취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승님께서 나가시며 전음으로 반드시! 받으라고 하셔서요.”

“…….”

좀 전까지 혁련휘에게서 받았던 감동이 모조리 사라졌다.

‘망할 놈…….’

소청이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은 돈이…….”

“진가 표국으로 달아 놓겠습니다.”

“쳇.”

한 관의 금값으로 하오문을 얻었으니 그걸로 족하다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갑자기 우진혜와 예여화가 너무도 싫어질 것만 같았다.

 

* * *

 

대막(大漠).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

‘비가 내리지 않는 대지.’

사람들이 대막이라 부르는 이유는 중원의 북동쪽 시작에서 북서쪽의 끝까지 드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능히 중원과 천하의 자웅을 겨룰 만한 곳이 있었다.

중원이 수없이 주인이 바뀌었던 것과는 달리 유일하게 하나의 문파만이 존재해 온 곳.

대막혈궁.

열사의 사막을 통일하고 오랫동안 북쪽을 지켜 온 자들이었다.

 

“어떠십니까?”

“…….”

공손하게 몸을 숙인 의원의 말에 구자겸이 거대한 수은 거울에 제 몸을 비춰 보았다.

가장 상처가 큰 어깨에 으깬 약초가 발려 있었다.

“상처 부위에 직접…….”

치료를 행한 의원의 설명은 들리지 않았다.

구자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쳐 본 것이 언제였던가?

놓아주기는 했으나 생각지도 못한 놈에게 깊지는 않되 치욕스러운 상처를 입었다.

“끝났습니다.”

“으음…….”

구자겸의 한쪽 입술이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졌다.

펄럭!

의원이 조심스럽게 동여맨 붕대 위로 붉은 장포가 걸쳐지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나지막한 말과 함께 걸음을 떼는 그의 뒤로 혈포로 온몸을 가린 무인들이 줄지어 따랐다.

 

치료를 받고 나온 그의 앞으로 거대한 산이 보였다.

사막의 끝에 위치한 검은 대지 위에 존재하는 하나의 산.

쉬지 않고 열화를 피워 올리며 연기가 하늘을 가득히 메우니 해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언제 해가 뜨고 지는지 알 수 없는 그곳은 언제나 어둠에 가려져 침묵하고 있었다.

부글거리며 끓어오른 용암이 만들어 낸 열기는 대지를 검게 태워 놓았다.

초목조차 자라지 못하는 그 산 아래 좌우로 흐르는 용암곡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성이 지어져 있었다.

대막혈궁의 본성.

사막을 지배하는 문파였지만 그들의 근거지는 그곳에 있었다.

황제가 기거하는 자금성을 방불케 할 정도로 거대한 정문을 지나자 연무장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구자겸과 혈포의 무인들이 관도를 지나자 그의 앞으로 기다리고 있던 무인들이 모조리 꿇어앉아 고개를 조아렸다.

“세주들은 어디 있나?”

오랜만에 유람을 끝내고 돌아온 자신을 맞이하고 있었지만 상처에서 오는 아릿한 느낌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종께서 폐관에서 나온 이후 불려 갔습니다.”

“멍청한 것들.”

필시 지금쯤 실패에 대해 보고를 올리고 있으리라.

연무장을 지나고 계단을 오르자 바위를 깎아 만든 입구가 있었다.

기둥에 악귀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 대막혈궁의 무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공을 뵙습니다!”

인사를 해 오는 그들을 무시한 구자겸이 마천의 심처인 용암산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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