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월진천 66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패월진천 66화
65화. 남궁, 무너지다
남궁세가.
황산(黃山)에 거대한 전각을 지어 안휘의 주인으로 군림했던 그곳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궁진린의 죽음.
사도련으로 갔던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참담함에 가모 금성희는 식음을 전폐했고, 식솔들은 상복을 꺼내 입었다.
하지만 그 슬픔을 이길 새도 없이 천라지망이 발동되었다.
남궁가의 무인들은 남궁천휴를 필두로 상복을 입은 채 서릉협으로 이동했다.
남아 있는 남궁천린과 일백여 명의 무인들은 조촐한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둠이 낮게 깔린 시각.
홰를 바꾸어 걸던 위사 초복은 남궁세가를 향해 다가오는 의문의 사내를 응시했다.
검은 방립에 흑색 피풍의를 두른 그의 모습은 마치 어둠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촤라락!
두 사람이 양팔을 벌려야 크기를 겨우 가늠할 만큼 큰 정문.
그리고 그 앞에 선 사내는 등에 걸치고 있던 피풍의를 끌러 내 휘말았다.
한 자루의 창처럼 변해 버린 피풍의를 든 그는 누구냐 물을 새도 없이 창대를 휘둘렀다.
콰아앙!
“…….”
정문은 물론이고 그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던 담벼락이 터져 나가 버리자 초복은 입만 떡 벌리고 주저앉았다.
방립 아래로 드러난 사내, 소청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땅, 땅, 땅, 땅!
위급을 알리는 타종 소리가 남궁세가를 깨워 놓았다.
“네놈은 누구냐!”
일백이 넘는 무인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조금도 위축되어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남궁천린은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는 무척이나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남궁가의 무인들이 모조리 연무장으로 모일 때까지 기다린 것처럼…….
“변절자의 가문 남궁세가. 타인의 죽음은 신경 쓰지 않아도 제 식솔의 죽음은 위로하는군.”
“무슨 개소리냐!”
남궁천린이 창궁검을 뽑았다.
그럼에도 소청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뭣들 하느냐! 당장 놈을 잡아 꿇려라!”
남궁천린의 외침에 포위했던 무인들이 단번에 도약해 소청을 향해 검을 찔렀다.
후웅!
휘둘러진 창대가 몰려든 무인들을 모조리 때려 내었다.
땅바닥에 처박힌 자들은 단 한 번의 휘두름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초사!”
소청의 부름에 초사와 스무 개의 그림자가 그의 주위에 솟구쳐 오르듯이 나타났다.
“초절정의 고수는 보이지 않는군. 남은 적은 육칠십여 명이다. 할 수 있겠지?”
“맡겨 주십시오.”
“좋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라.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알겠습니다!”
초사의 대답에 소청이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내디뎠다.
와아아!
사방에서 무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몰려드는 순간 초사와 비마대의 무인들이 작은 바람 소리를 만들며 그들의 틈새로 쏘아져 들어갔다.
초사와 비마대가 합류한 것은 남궁천세에게 서신을 남기고 안휘의 경계를 지났을 때였다.
창천검수대와 안휘의 문파들이 남쪽으로 치우쳐져 있었기에 손쉽게 안휘로 진입할 수 있었다.
‘오대 무가가 결집하면 전면전이 일어난다.’
안휘로 출발하던 소청은 정천맹에서 날아오른 무수히 많은 전서구 중 하나를 탈취했다.
그들은 천망팔진을 구성했던 무인들을 정천맹으로 모으고 있었다.
소청은 상황이 급박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방유현은 제법 똑똑했다.
자신들의 생각을 눈치채고 세력을 결집시켜 일전을 준비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구파와 오대 무가의 충돌.
전면전이 일어나면 쌍방의 피해가 급격히 커지게 된다.
그것은 소청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세력이 축소되고 약해지면 그저 마천이 먹기 좋아질 먹잇감으로 전락할 뿐이었다.
‘아직 환마를 포함해 열한 놈이 남아 있어.’
이제 겨우 폭마와 잔마를 잡았을 뿐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이들은 치를 떨게 할 정도로 무서운 힘을 가진 강자였다.
마천을 잡기 위해서는 정사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모아 방비하고 ‘마종’이라는 자가 나타나기 전에 적의 힘을 최대한으로 축소시켜 놓아야 했다.
제갈휘문이 알아서 세력을 규합할 테니 자신은 그저 도와주기만 하면 되었다.
오대 무가의 세력이 결집할 수 없도록…….
“죽어라 이놈!”
남궁천린과 함께 남아 있던 남궁가의 소가주 남궁진수가 창궁검을 번뜩이며 휘둘러 왔다.
턱.
소청은 화려한 변초를 구사하며 날아오는 창궁검을 맨손으로 잡았다.
우직.
창궁검이 그의 손아귀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우그러졌다.
쩌저적!
소청은 남궁진수의 머리를 잡고 그대로 연무장 청석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끄으윽.”
태어나 지금까지 익혔던 남궁진수의 창천검술은 소청의 손짓 한 번에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으드득!
“끄아아악!”
소청은 쓰러진 남궁진수의 다리를 꺾어 버렸다.
“네, 네놈…….”
눈앞에서 소가주가 처참하게 당하는 모습을 본 남궁천린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파앗!
지면을 박찼다.
남궁천린이 반응조차 하지 못한 그 순간 그의 복부에 주먹이 틀어박혔다.
“꺼어억!”
백대 고수인 남궁천위조차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물며 백대 고수에 오르지도 못한 남궁천린이 그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뻐억!
내지른 발에 남궁천린이 전각의 문을 부서뜨리며 처박혔다.
우우웅!
창대에 기운이 담겼다.
후웅!
짧게 휘돌아 올랐다가 수직으로 내리쳐졌다.
꽈아앙! 쩌적!
만월의 기운을 품은 일격이 남궁천린이 처박힌 전각을 통째로 무너뜨려 버렸다.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초사도 비마대도, 남궁가의 무인들도…….
펄럭.
소청은 진기를 풀어 버린 피풍의를 등에 걸치고 돌아섰다.
“이, 잔학한 놈!”
소란에 달려 나왔던 금성희가 다리가 으깨진 아들의 모습에 원독에 찬 눈빛으로 소청을 쏘아보았다.
“그대가 남궁가의 가모인가? 잔학해? 뭘 모르는 소릴 하는군. 남궁천세는 지하에 뇌옥을 만들고 수많은 아이들을 유괴했다. 행해서는 안 될 잔인한 대법 하나를 위해 그 아이들 대분이 죽었어. 알고 있었나?”
“뭐라고? 그런?”
“흥, 몰랐던 모양이군. 하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놈이 할 짓은 아니니까.”
“…….”
금성희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지자 소청이 몸을 돌려 낮고 담담하게 말했다.
“모두 꿇려라.”
소가주와 남궁천린이 죽었다.
가문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가모 금성희가 잡혔으니 더 이상의 반항은 없었다.
쩔겅.
누군가 칼을 떨어뜨렸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남궁가의 무인들은 모조리 무릎을 꿇었다.
그사이 죽은 무인들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것은 오십을 넘지 못했다.
소청은 초사에게 명해 무인들과 가솔들을 점혈해 소연무장의 건물 안에 구금했다.
“초사.”
“예. 패월.”
“제갈휘문이 올 것이다. 그에게 신호를 보내서 만나라. 그리고 모든 것이 확인될 때까지 절대로 나서서는 안 된다고 해라.”
“알겠습니다.”
초사가 고개를 숙였다.
“은수!”
“예. 패월!”
“남궁천세가 올 것이다. 시신을 한곳에 모으고 물러나라. 절대 나서서는 안 된다.”
“예?”
“다시 말해야 하나?”
소청의 무심한 눈빛이 그를 향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은수는 심란한 표정으로 비마대 무인들과 남궁세가 밖으로 물러났다.
소청은 느긋한 표정으로 무너진 대전각의 계단에 앉았다.
‘이제 기다리면 된다. 남궁천세가 올 때까지…….’
소청은 남궁천세를 유인했다.
그리고 제갈휘문이 신승과 태존, 검존을 이끌고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백대 고수였던 그가 불현듯 오존에 오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태위는 마기를 사용해 짧은 시간에 독성에 올랐다.
짐조의 깃털 두 개만으로 만독해를 극성으로 익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궁천위 역시 어렴풋이 마기를 흘렸다.
역천의 진언.
마천에 협력했던 자들이 가졌던 힘.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힘을 가진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 있었다.
분노에 휩싸이면 살심, 탐욕 등이 극도로 끓어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역천의 진언’에 의존하게 되는 순간 모든 기운은 ‘마기’로 변한다.
스스로가 주체할 수 없는 마인이 되는 것이다.
그가 마천임을 밝히는 데 그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이익을 위해 변절한 자가 가문의 위기를 그냥 두고 볼 리 없었고 이미 제 아들, 조카, 동생이 둘이나 죽었다.
그리고 자신이 남궁가를 부숴 놓았다는 사실이 그의 분노를 더욱 충동질할 것이었다.
‘남궁천세. 오너라. 이곳이 너의 무덤이 될 테니까.’
소청의 눈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 * *
“남궁천세는 어디에 있나?”
모든 보고는 남궁천세가 하도록 명했다.
자신이 부르기 전에 다른 어떤 인물도 원로원에 나타나지 말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취선개가 나타나자 분재를 손질하던 방유현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방유현의 물음에 취선개가 손에 쥔 서찰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이것이…….”
빼앗듯이 받아 든 서찰을 읽은 방유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망할!”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조속히 세력을 규합해서 구파를 쳐야 했다.
그런데 그 중심에서 세력을 모아야 할 남궁천세가 남궁가로 돌아가 버렸다.
아니 서신을 읽었다면 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변절했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남궁가의 수장이었다.
문제는 시기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진소청이 남궁천세를 불렀다. 지금의 상황을 알 텐데…….’
방유현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화산의 운상자는 분명 저들을 옹호했다. 놈들이 구파를 규합하려 한다면 소림과 무당의 도움이 절실하다. 젠장! 그렇군. 이것이 놈들의 노림수였군.’
증거.
제갈휘문의 누명을 벗기고 남궁천세가 마천임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진소청이 남궁가를 무너뜨리고 남궁천세의 분노를 촉진시킨다면?
역천의 진언을 얻은 남궁천세는 필시 마기를 이용할 것이다.
‘아, 안 된다. 제갈휘문 이 개자식이 신승과 태존을 움직일 생각이구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소림과 무당이 참가하면 지금의 상황에서 무너지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 될 것이다.
신승, 태존, 검존.
그리고 소림, 무당, 화산의 수많은 백대 고수들.
“세, 세주? 괜찮으십니까?”
취선개가 평소와 다른 그의 당황하는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세력의 결집은 어떻게 되고 있나?”
“하루 정도는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형산까지 내려간 터라…….”
‘하루…….’
다급해졌다.
계획이 계속해서 틀어지고 있었다.
‘진소청. 네놈이…….’
모든 것에 진소청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가 나타나면서부터 모든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취선개!”
“예.”
“모든 세력이 결집되는 즉시 화산을 쳐라!”
“…….”
취선개도 서신을 읽었다.
한데 어찌 그런 결정을 내린단 말인가?
응당 남궁가를 도울 방법을 먼저 마련해야 했다.
“남궁가는…….”
“내가 직접 간다.”
“알겠습니다.”
취선개가 나가고 방유현의 눈이 짙은 마기에 물들기 시작했다.
‘십 년을 넘게 준비해 왔거늘…….’
우드득.
줄기만 남았던 분재가 그의 손에 파헤쳐져 가루로 변했다.
‘진소청. 폭마, 잔마, 그리고 나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일의 실패에 네놈이 있구나. 모든 일을 어그러뜨린 네놈만은 직접 죽여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