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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월진천 63화

무료소설 패월진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1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패월진천 63화

62화. 반쪽짜리 천라지망

 

 

 

 

안을 천천히 둘러보던 남궁천위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지어졌다.

“자, 이제 남은 건 너희들 셋뿐인가?”

“…….”

호법부의 무인들이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우드득, 우득.

남궁천위의 얼굴이 기괴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네놈…….”

무인들이 검병을 잡았지만 더 이상의 행동은 이어지지 못했다.

또르르…….

머리통 세 개가 바닥을 뒹굴었고 모가지에서 뿜어져 나온 핏물이 천장까지 솟구쳤다.

털썩.

호법부의 무인들은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쓰러졌다.

펄럭.

소청의 손에 쥐여 도(刀)로 변했던 피풍의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째서…….”

“뭐?”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할 수 있었지 않나.”

“웃기고 있네. 저들은 이미 변절자들일 뿐이야. 아직도 그런 약한 마음으로 뭘 하겠다는 거지?”

“…….”

“서둘러. 피 냄새를 맡고 금방 치고 들어올 테니까.”

소청의 채근에 제갈휘문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청초각의 서가 한곳을 누르자 기관이 작동하며 작은 통로가 드러났다.

야명주로 밝힌 통로를 지나 거대한 밀실에 도착했다.

호법부에 의해 뒤져진 뒤라 다섯 줄로 세워져 있었던 서가가 모조리 쓰러져 있었고 서책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제갈휘문은 회한이 깃든 눈으로 주위를 모조리 눈에 담았다.

“섭섭한 모양이지?”

“나의 십 년이 이곳에 있었으니까.”

소청의 말에 제갈휘문이 회한에 잠긴 눈으로 원형의 석탁 중앙을 눌렀다.

그그긍.

돌이 밀리는 소리와 함께 탁자의 중앙에 한 사람 정도 들어갈 구멍이 생겼고 제갈휘문은 망설임 없이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밀실 안의 또 다른 지하 밀실.

그리고 그 밀실은 꽤나 긴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소강, 달릴 수 있겠냐?”

“예.”

“그래. 안전해질 때까지는 죽을힘을 다해.”

통로는 무척이나 길었다.

제갈휘문을 업은 소청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고초를 당한 소강으로서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려야 했다.

‘제길, 소강에게도 은형섬전보를 가르쳤어야 했는데…….’

후회가 생겼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참을 달렸을 때.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쪽 수풀에 배가 있다.”

제갈휘문의 말한 곳에서 찾은 배는 세 사람이 강을 건너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그런데, 소청이 얼굴을 찡그린 채 자신들이 달려온 비밀 통로를 바라보았다.

“쳇, 제법 눈치가 빠른 녀석들이군.”

“예?”

“꼬리가 붙었다.”

“…….”

“일단 먼저 출발해. 금방 뒤따르겠다.”

“형님!”

소강의 외침이 있기 전에 이미 배가 밀려났다.

부드러운 경기를 일으키자 배가 순식간에 멀어져 나갔다.

파라락!

휘말린 피풍의가 창으로 변했다.

단전에 태극의 기운을 모은 소청이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진득한 살기와 투기가 회오리치듯이 뿜어져 나왔다.

“쫓아라!”

어느 순간 뛰쳐나온 추격대 무인 수십이 비밀 통로를 빠져 나오며 솟구쳤다.

취리릭! 콰콰쾅!

휘저은 창대가 무인들을 모조리 때려 바닥으로 처박았다.

“누가 보내 준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지면을 박찬 소청의 모습이 비밀 통로를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콰앙! 콰직! 쩍!

비밀 통로 안으로 들어왔던 무인들은 점점 더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넓은 공간에서야 사방에서 공격할 수 있었지만 고작 두어 사람 지나갈 정도의 공간에서 소청을 넘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제법 모였네.”

어느 순간 비밀 통로 안에서 정체되어 가는 추격대를 보며 소청이 싸늘하게 웃었다.

통로의 끝이 어딘지 모르니 아직 나루까지는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짧게 후려쳐 밀려드는 적을 떨친 소청이 태극의 기운을 창대에 실었다.

우우웅!

드드드드.

창대의 떨림과 함께 비밀 통로가 뒤흔들리며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청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살인적인 기운은 추격대의 얼굴에 불안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산 채로 묻어 주마! 이 변절자 새끼들!”

“…….”

소청의 스산한 웃음에 추격해 온 무인들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도, 도망쳐!”

누군가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취리릭!

쩌어엉!

창대가 지면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땅속 깊은 곳에서 천뢰충파의 기운이 터져 나갔다.

쿠르릉. 쩌저적!

창대가 박힌 지점에서 시작된 균열이 도망치는 추격자들을 뒤쫓았다.

우그르르.

소청의 기운에 의한 충격파가 사라졌음에도 붕괴는 꼬리를 물고 연결되었다.

통로가 무너지며 꺼지자 지면이 움푹 파이며 함몰되기 시작했다.

꾸우우.

통로의 위에 있던 성곽이 주저앉고.

쩡!

통로와 이어진 청초각이 기울기 시작했다.

“피, 피해라!”

가까스로 붕괴를 피해 통로를 빠져나온 추격자들은 온 힘을 다해 쓰러지는 청초각 밖으로 몸을 날렸다.

우직, 우지직. 콰콰콰콰!

결국 청초각이 무너져 내렸다.

오랫동안 제갈휘문이 구축해 온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거대한 떨림을 느낀 남궁천세가 황급히 달려 나왔다.

“무슨 일이냐!”

“저, 저도 잘 모르…….”

쿠쿠쿠쿠.

청초각이 무너지는 모습에 대답을 하려던 호법부의 무인이 입을 다물었다.

“이런 망할!”

남궁천세는 급히 청초각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소란을 듣고 돌아갈 준비를 하던 각 파의 수장들이 모여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뇌옥의 죄인이 탈출했습니다.”

“뇌옥……?”

남궁천세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청초각을 향해 움푹 꺼진 지면을 따라 시선이 이동했다.

흔적은 성곽을 따라 밖으로 이어져 있었다.

‘서, 설마 비밀 통로…….’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 남궁천세가 한달음에 성곽 위로 날아올랐다.

‘강나루까지?’

화가 치밀었다.

“어찌 된 일인지 소상하게 고하라!”

성곽을 내려온 남궁천세의 다그침에 호법부의 무인이 대답했다.

“저희는 그저……. 호법부장께서 조사할 것이 있다고 청초각으로 향하셨습니다.”

“천위가?”

“예. 한데, 함께 갔던 무인들이 죽어 있었고 급히 추격을 했습니다만 이렇게…….”

“…….”

남궁천위의 낯빛이 시커멓게 변했다.

핏발이 선 눈으로 돌아본 곳에는 서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방유현이 서 있었다.

‘좋지 않다…….’

어째서 남궁천위란 말인가?

“뭣들 하느냐! 보고만 있을 셈이냐! 서둘러 쫓아라!”

“예!”

남궁천세의 닦달에 호법부의 무인들이 허겁지겁 흔적이 이어진 강나루를 향해 달려 나갔다.

“죄인이 도망쳤습니다. 이는 스스로 마천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당장에 천라지망을 펼쳐 저들을 잡아야 합니다.”

“…….”

남궁천세가 동조를 구하듯이 말했지만 그를 향한 각 파의 수장들의 반응은 두 부류였다.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동조를 하며 힘을 모았지만, 아미를 비롯한 회의적인 이들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맹주.”

제갈무성이 잔뜩 화가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서 호법부장인지부터 설명해 주시오.”

“뭣?”

“호법부장이 내 아들을 데려갔다고 했소. 아직 혐의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건 어찌 된 일이오?”

“그건…….”

“나는 그것부터 들어야겠소. 그 전에는 천라지망을 찬성할 수가 없소.”

‘이자가…….’

제갈무성의 말에 멸절사태가 말을 보태었다.

이미 남궁천위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 터였다.

“제갈 가주의 말이 옳습니다. 호법부장에 대한 의혹부터 풀어 주셔야 할 것 같소.”

‘이년까지!’

모두가 남궁천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남궁천위’의 이름에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위장일 게요. 위장을 하고 저들을 구해 간 것이오. 일단은 잡아야 의혹을 풀 것 아니오!”

“위장이라……. 허! 내가 귀가 어두운 모양이오. 정천맹이 무슨 동네 무관인가? 호법부장이 무림 백대 고수에 이름을 올린 지 오래. 그런 인사로 위장을 했고 호법부의 무인들이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다? 그럼 진짜 호법부장은 어디 있소?”

“…….”

꼬투리를 잡은 제갈무성이 남궁천세를 비웃었다.

“본 가는 애초에 휘문이 마천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고 있소. 확실한 증좌가 없는 이상 천라지망의 발동에 찬성할 수 없소.”

제갈무성이 몸을 돌려 버리자 멸절사태마저 남궁천세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본 파도 이만 돌아가겠소. 맹주의 판단에 신뢰가 들지 않는구려.”

아미의 뒤를 따라 화산과 청성마저 돌아가 버렸다.

소림과 무당은 자리를 지켰지만 그다지 협조적인 눈빛을 띠고 있지는 않았다.

“이…… 이자들이…….”

그리고.

-반드시 찾아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방유현의 살기 어린 전음이 남궁천세의 귓가를 때렸다.

‘망할…….’

 

결국 맹주령에 의해 천라지망을 발동했지만 무한 인근을 담당해야 할 화산이 빠졌고 제갈이 빠졌다.

소림과 무당은 자파의 영역인 하남성 일대는 경계해 주겠다며 선심 쓰듯이 말하고 돌아갔다.

삼단의 무인과 개방, 종남, 기타 오대 무가가 힘을 보탰지만 촘촘해야 할 천라지망은 성글어질 수밖에 없었다.

 

* * *

 

정천맹의 분열로 대응이 늦어지는 사이 소청은 묵영단의 안가에 도착했다.

“군사님!”

흑비와 초사, 비마대의 무인들이 제갈휘문을 반겼다.

“다들 무사했구나.”

“예.”

흑비의 말로는 외부에서 활동 중이던 이들은 모두 살아남았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현학들을 제외한 묵영단은 건재하다는 말이었으니까.

“자, 이제 말해 봐. 도주하면서 천라지망이 펼쳐질 건 알았을 것이고……. 대책은?”

“그래. 천라지망. 하지만 완전한 천라지망이라고 할 순 없지.”

“…….”

“현재 무한에서 동원할 수 있는 천라지망은 소림, 무당, 화산, 제갈을 제외하면 안휘의 남궁과 하북의 팽가, 호북의 황보, 기타 예하 중소방파, 삼단의 무인들뿐이다. 소림과 무당, 화산, 제갈이 빠졌으니 북서쪽에서 북동쪽까지 심각한 구멍이 생기지.”

“완전하지 않다?”

“그래. 그래도 방심할 순 없지. 맹주령이 내려지면 동원되는 무인이 물경 오만은 족히 될 테니까.”

“그래도 빠져나갈 방법은 있겠지.”

“힘은 들겠지만…….”

“그럼 됐네. 빠져나가면 어디로 갈 생각이지?”

“화산. 지금으로선 그들이 가장 우호적인 세력이니까.”

“제갈이 아니었군.”

“제갈은 힘이 없다.”

“화산이라……. 검존을 이용해 구파를 규합할 생각인가?”

소청의 물음에 제갈휘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됐네.”

소청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소강을 향해 다가갔다.

“소강.”

“예.”

“움직일 수 있겠지?”

“예.”

“진가를 향해 출발한 자들은 그다지 강하지 않다. 사도련의 소련주가 진가를 구하기 위해 갔다. 아마 연락을 받았으면 모자겸도 와 있겠지. 세가로 돌아가라.”

“…….”

“너는 진가의 소가주다. 돌아가서 가문을 지켜야 한다.”

“형님께선?”

“나? 나는 걱정 마. 무모하긴 해도 멍청하진 않으니까.”

소청의 대답에 제갈휘문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천라지망일세.”

“알아.”

“아무리 자네가 폭마와 잔마를 죽이고 당가를 상대했다곤 해도 오만의 무인을 당할 수는 없네.”

“당연히 못 당하지. 정면으로 싸우면…….”

제갈휘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소청이 코웃음을 쳤다.

“걱정 마. 천라지망이라는 게 천망팔진을 말하는 거면…….”

“…….”

“지금부터 그 천라지망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알게 될 거야.”

“뭐?”

모두가 소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감 있게 자리에서 일어난 소청이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구멍을 만들어 줄 테니까 알아서 도망이나 잘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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